남북 경색 풀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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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경색 풀릴까?
  • 박지순 기자
  • 승인 2009.08.24 14: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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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북 경색 관계 풀 해법은
 
이명박 정부 '선 비핵화' 고집으로 남북 경색 장기화
보수층 지지 유도 위해 대북 강경책 고수할 듯
 
이명박 정부 들어 대북 경색 국면이 지속, 장기화되고 있다. 남북 경색 관계는 지난 해 7월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으로 금강산 관광의 전면 중단, 지난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강행, 6월 개성 공단 기업 철수 등 악재가 이어지며 악화 일로로 치달았다.
 
그러다 지난 4일 북한에 억류 중인 여기자 석방을 위해 클린턴 미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만나 여기자 석방을 이끌어 내고 지난 17일에는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의 면담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남으로 돌아오면서 대북 경색관계를 푸는데 현 정부가 이전과는 다른 태도를 보일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2007년 대선 후보시절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는 구호를 외쳤고 그의 당선으로 남북 관계가 이전의 화해분위기에서 긴장, 대립 국면으로 바뀌리라는 점은 이미 예상됐다. 이 대통령 취임 1년 6개월이 지난 현재 그 예상은 그대로 적중되고 있다.
 
▲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억류돼 있던 여기자 두 명의 석방을 이끌어냈다. 미국의 대북 제재의 효과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 시사오늘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이 지난 2000년과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그 결과물로 6·15, 10·4 공동선언이 나왔다. 이 대통령은 이와 같은 이전 10년 동안의 남북 화해 무드에 역방향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듯하다. 보수층을 지지 기반으로 하는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이기도 했지만 남북 관계가 긴장, 경색돼 보수층이 집결한 것이 후보 시절 지지도 상승의 결정적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남북, 통일 문제 최고 권위자인 박재규 전 통일부 장관은 지난 1월 본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2006년 10월 북한의 핵실험 후 이명박 후보의 지지도가 급격히 올라갔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한나라당의 공식 대선 후보가 되기 전인 지난 2006년 10월 그의 여론조사 지지율은 4~7%대로 박근혜 전 대표보다 큰 차이로 뒤지고 있었다.
 
그러다 그해 7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까지 실시하면서 국민들은 안보 불안감을 갖게 됐고 이를 극복할 강한 지도자를 원함으로써 대북관계의 강력한 위기관리를 필요로 한다는 공개적 의사표시를 한 것이라고 박 전 장관은 분석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햇볕정책 부인돼
 
결과적으로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 10년 간 일관되게 추진된 대북 햇볕정책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국민들에게 거부됐다는 것이다. 실제로 햇볕정책이라는 명목으로 북한에 ‘퍼주기’했는데 북한은 남한이 퍼준 것으로 미사일과 핵무기를 만들었다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파고든 것이 사실이다. 이명박 정권이 들어선 후 민주당과 진보시민단체 일각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계속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었지만 대북 강경 주장이 득세하면서 자취가 희미해질 수밖에 없었다.
 
▲ 남북 경제교류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개성공단을 살리는 것이 남북 경색을 풀 최우선 과제라는 목소리가 들린다.     © 시사오늘


북한은 지난해 10월 남북관계의 전면 차단을 경고했지만 이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단순하게 말해 ‘별 관심 없다’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고 말하는가 하면 북한을 자극할 것이 뻔한 흡수통일론을 거론하기도 했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개성공단 없다고 우리 경제에 무슨 악영향이 있나”라고 말하며 개성공단이 부여받았던 남북 교류의 상징성마저 부인했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설정한 남북관계의 기조는 비핵, 개방, 3000 이라는 세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 박 전 장관은 이를 두고 “북한의 체제를 인정하고 북한이 1987년 남한의 소득수준인 3,000달러 소득을 올릴 때까지는 정치제도적 통합 논의를 유보하자는 이명박 대통령 특유의 실용정책이 담겨져 있는 것”이라며 “북한의 소득이 3000달러는 돼야 자유민주주의나 시장경제와 같은 이념논의를 할 수 있다는 아주 실용적인 정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비핵, 개방, 3000’ 정책을 ‘상생공영 정책’이라고 평하며 “북한에서는 남측의 체제붕괴 획책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진단했다.
 
이 대통령 “비핵화 없이 경제 지원 없다”
 
이 대통령은 지난 8월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도 “북한의 비핵화가 이뤄지면 획기적인 경제지원을 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선 비핵화 후 경제지원’ 선언으로 비핵화가 선행되지 않는 한 이전 정부처럼 퍼주기는 없다는 의미다. 그러나 북한의 비핵화 실현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고 보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다. 북한의 ‘통미봉남(通美封南, 미국과는 협상하되 남한은 상대하지 않겠다)’ 전략 하에서 미국의 대북적대정책과 대북제재가 지속되는 조건에서는 북한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핵보유를 고집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바마 정부가 들어선 후 북미 관계가 이전보다 진전될 것이란 관측도 있었지만 북한의 2차 핵실험 이후 미국은 유엔을 앞세워 과거보다 오히려 강도 높은 대북제재를 신속하면서도 일관되게 진행하고 있다. 지난 6월 12일 유엔의 대북 제재 1874호 통과 직후 불법 무기를 적재한 것으로 의심되는 북한 선박 강남1호를 추적해 강제적으로 귀항시켰고 유럽에서의 호화 요트 반입도 저지했다. 이와 함께 제재 대상의 북한 기업과 인사 리스트를 작성해 금융제재 등 직접적인 압박을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미국이 중심이 된 해상봉쇄와 금융제재는 말 그대로 ‘제재’ 이상의 효과를 거두지는 못하리라는 것이 대북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북한은 오랫동안 제재와 고립에 익숙해 있고 식량난을 겪으며 내핍과 배고픔에 단련돼 있는데다 북한에 대한 전면적인 봉쇄와 제재에 반대하는 중국과 교역이 이뤄지고 있어 봉쇄와 제재에 의한 북한의 굴복과 핵포기는 기대할 수 없을 듯하다.
 
북핵 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돼
 
중국의 대 북 영향력을 활용해 비핵화를 이끌어낼 수 있는 것 아니냐는 견해도 있다. 과거 중국은 대북 송유 파이프를 며칠 중단시킴으로써 북한을 6자회담에 나오도록 압력을 행사한 적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중국은 자국의 경제발전과 국제적 역할 증대를 위해 미국과 일정하게 협력해야할 필요성이 있지만 동시에 미국의 대 중 견제를 완충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는 북한체제의 현상유지를 원하고 있다. 북미 관계에 대한 중국의 일관된 입장은 북한과 미국의 대화와 협상을 통한 문제해결을 희망하는 것이어서 중국이 북한에게 비핵화를 압박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북한의 핵무기는 탈냉전과 사회주의 붕괴 이후 체제유지를 위한 방어적 수단으로 시작돼 지난 2005년 2·10 외무성 성명을 통해 이미 핵보유 국가를 선언했고 2006년 핵실험을 거쳐 사실상의 핵무기 보유 국가로 나아가며 미국이 자신들의 체제보장을 확약하면 핵포기 의사를 내비치는 전략을 내세웠다.
 
박 전 장관은 최근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다’라는 반복된 언급은 미국의 대북 체제보장과 경제적 보상이 확고하게 담보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핵보유를 정당화하려는 전략적 지연작전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오마바 행정부 이후 북미관계가 대결과 제재 국면으로 흐르면서 북한은 제2차 핵실험을 감행했고 6자회담을 전면 부정하면서 핵보유를 돌이키기 힘든 상황으로까지 몰아가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면 이명박 정부가 내세우고 있는 비핵화, 개방, 3000 전략은 첫 단추부터 꿰지기를 기대할 수 없고 남북 대립, 긴장 관계는 현 정권 내내 지속될 개연성이 매우 크다. 결국 이 대통령의 북한의 선 비핵화, 후 경제지원 주장은 남북 대립과 긴장관계를 현실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정확해 보인다.

지난 18일 보도된 한 단신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경찰이 북한 체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핵개발을 비난하는 내용의 안보 홍보만화 15만 권을 만들어 전국의 초·중학교에 배포하기로 했고 행정안전부는 행정고시에 합격한 수습 사무관들을 해병대에 입소시켜 특별훈련을 받도록 조치했다고 한다.
 
신임 공무원의 해병대 입소는 1967년 행정관 훈련과정 개설 이후 처음인 것으로 보도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 교육현장과 공직사회에 구시대의 유물이 된 반공 이데올로기와 획일적 군사문화가 일방적으로 강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진보단체 “현 정권 공안정권으로 회귀하고 있다” 비판
 
▲ 6.15 선언 폐기를 외치는 보수단체 회원들.     © 시사오늘

 
경찰은 만화제작 업체에 보낸 ‘안보 홍보만화 제안 요청서’에서 ‘좌파정권은 지난 10년간 입법, 사법, 행정부의 요직을 반미친북세력으로 모조리 갈아치웠음. 이 여세를 몰아 대한민국의 인민공화국화 작업을 가속화하기 위해 주한미군 철수를 강요해 왔음’이라고 적은 것으로 전해졌다.
 
전교조 엄민용 대변인은 “경찰이 교육의 자율성을 침해하고 1970~80년대 공안기관으로 회귀하려는 것”이라는 논평을 냈다. 경찰과 행안부의 이러한 움직임은 이명박 정권이 대북관계를 긴장과 대립으로 지속시켜 지지기반인 보수층을 공고히 하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시점에서 대북 관계의 변수 중 하나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다. 지난해 뇌졸중 발병 이후 정상 업무에 복귀했지만 지난달 있었던 김일성 주석 추도식에 참석한 김 위원장은 눈에 띄게 초췌한 모습을 보여 췌장암 말기설, 1년 후 사망설 등이 국내외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그러나 클린턴 방북 시 면담과 만찬 과정에서 보인 김 위원장은 상당히 안정되고 시종 웃음을 보여 통치력을 행사하는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현 회장과 김 위원장의 면담 성사로 그의 건재와 지도력은 의심의 여지없이 명확해졌다. 보다 중요한 것은 통미봉남에 이어 ‘통민봉관(通民封官, 민간과는 대화하되 정부와는 대화하지 않는다)’이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대북 관계에서 남한이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인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는 사실이다.
 
현 회장은 남으로 돌아와 “정부와는 조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부와의 사전 조율 없이 유성진씨 석방과 금강산 관광재개는 물론 본래 정부의 역할이던 이산가족 상봉 문제까지 김 위원장과 합의를 봤다.

정부도 현 회장의 합의문 발표에 대해 “민간 차원의 합의일 뿐”이라고 선을 그었다. 전문가들 대다수는 이명박 정부 들어 북한이 채택해 오고 있는 통미봉관과 그의 연장선인 통민봉관이 유효한 것으로 분석하고, 정부도 현대가 조성한 남북 화해무드에 선 긋기를 확실히 하면서 남북관계 경색이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내놓고 있다.

향후 김 위원장과 현 회장 간 합의문 이행 과정에서 정부가 어느 정도, 어떤 방향으로 개입하느냐가 남북 경색 국면 지속의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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