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 시사ON, 시사온=윤명철 논설위원)
조선의 건국 주체인 혁명파 신진사대부는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을 장악하자 곧바로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을 마련했다. 이른바 고려 말에 전격 시행된 과전법이다. 이는 관직을 18등급으로 나눠 전·현직 관리에게 토지 수조권을 지급하는 제도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토지 부족이라는 근본적인 문제점이 도출됐다. 조선의 영토는 한정됐는데 관리(管理)의 미숙으로 수신전·휼양전의 명목으로 토지가 세습됐다. 특히 개국 초부터 연이어 터진 왕자의 난과 정란 등으로 공신의 수가 급격히 증가했다.
권력자는 자신의 정권 유지를 위해 과도한 공신전 지급으로 공신을 우대했다. 새로이 권력층에 편입된 세력은 민생보다는 자신의 뱃속 채우기에 급급한 것은 만고의 진리다. 공신전 등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현직 관리에게도 토지를 급여할 수 없을 정도로 경제적 곤란을 겪게 된다.
한명회 등 훈구세력의 지원으로 계유정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 세조도 과전법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종래의 세습을 일체 폐지하고 현직 관리에게만 지급하는 직전법을 실시했다. 즉 과거 정권에 기여한 전직 관리의 경제적 기반까지 보장할 필요성을 못 느꼈는지도 모를 일이다. 현재의 권력층만 챙기면 될 것이라 판단한 듯하다.
권력의 단 맛에 취한 훈구세력은 이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신의 지위를 악용해 농민에 대한 수탈에 집중했다. 세조 사후, 훈구파의 전략적 선택으로 집권한 성종은 직전법의 폐단을 해결코자 정부가 받아서 토지주에게 지급하는 이른바 관수관급제(官收官給制)을 단행했다.
성종의 의도는 국가가 토지를 직접 관리해야 관리들의 수탈을 막을 수 있다고 판단한 것 같다. 하지만 시장의 반격이 시작됐다. 관리는 자신의 수입을 국가가 직접 관리하자 토지 사유화라는 방법으로 역공을 펼쳤다.
결국 집권층의 토지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반면, 백성의 삶의 지수는 기하급수적으로 하락했다. 국가 재정도 마찬가지로 파탄에 이르렀다.
시장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성종의 개혁안은 ‘토지의 부족’이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고, 관수관급제의 폐지가 논의됐다. 결국 명종 즉위 시절 관수관급제 지급이 불가능하게 됐고,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역사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됐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소득주도성장정책’을 금과옥조로 삼아 최저임금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등을 강행했다. 즉 국가가 시장에 개입해 소득 양극화 등의 적폐를 청산하겠다는 의도가 돋보이는 정책이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냉담했다. 청년실업과 자영업자의 폐업, 중소기업의 도산이 속출하고 있다. 국가가 시장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지배하고자 한다면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다.
이미 500여년 전 관수관급제가 민생 파탄의 비참한 결과를 남기고 조기에 수명을 다한 교훈을 되새겨봐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