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측 "연금사회주의 우려...과도한 경영개입으로 기업활동 위축"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장대한 기자]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따라 기업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겠다던 목표가 현실이 됐다. 대한항공 주총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부결을 이끌어내며, 사회적 물의를 빚은 오너일가의 경영권을 견제하는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반면 재계는 기업활동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국민연금에 대해 우려감을 표하고 있어 진통도 예상된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이날 열린 대한항공 주총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표를 던지며, 해당 상정안의 부결을 이끌어냈다. 이는 대한항공 2대 주주로 지분 11.56%를 보유한 국민연금이 기업가치를 훼손하고 주주권을 침해한 이력이 있다는 점을 근거로 조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낸 것이 주효하게 작용한 결과다.
대한항공은 국민연금의 결정이 장기적 주주가치를 고려하지 않은 조치로 유감스럽다는 입장을 피력했지만,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국민연금의 한결같은 반대 입장은 위탁운용사, 기관 투자자를 비롯해 일반 주주들의 표심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국민연금의 이번 주주권 행사는 지지를 얻는 모양새다. 의결권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의 류영재 대표는 "국민연금과 소액주주들이 힘을 합쳐 대한항공의 잘못된 경영을 바로잡은 자본시장의 촛불혁명"이라고 평가했고, 최종구 금융위원장 역시 이날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 회의에서 조 회장의 연임 부결과 관련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의 긍정적인 면을 보여줬다"고 평하기도 했다.
시민단체들의 반응도 비슷하다. 그간 조 회장 연임 반대를 위한 의결권 위임 운동을 벌여온 '대한항공 정상화를 위한 주주권 행사 시민행동'은 이날 주총 결과후 환호하는 모습을 보였고, 땅콩회항 사건 피해자인 박창진 민주노총 전국공공운수노조 대한항공 직원 연대 지부장도 "저희 내부 노동자 입장에서는 환영하는 바"라며 "이번 부결을 핑계 삼아 또 다른 탄압이 이뤄지지 않도록 해줄 것을 요청드린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조 회장의 연임 부결은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로 총수가 물러난 첫 사례라는 상징성을 가지는 한편, 향후 업계 전반에 주주행동주의를 뿌리내리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반면 국민연금의 과도한 개입이 기업의 경영 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의견도 만만찮다.
같은날 전국경제인연합회도 공식입장을 통해 "국민연금이 주주들의 이익과 주주가치를 감안해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야 하는 사안임에도 사회적 논란을 이유로 조양호 회장의 연임반대 결정을 내린 것에 우려스럽게 생각한다"며 "국민연금이 민간기업의 경영권을 좌지우지하는 연금사회주의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있는 만큼 보다 신중해야 했는데 아쉽다"고 전했다.
재계 전반에서는 이번 조 회장 부결 사태를 계기로 기업의 경영권이 위협받는 상황이 언제든 되풀이 될 수 있어, 기업 성장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는 데 무게를 두고 있다.
한편 이번 주총 결과를 두고 대한항공의 엄격한 정관도 한 몫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대주주의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된 이사 선임 요건 규정이 오히려 독이 된 것.
실제로 대한항공은 이사 선임 시 주총 출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이 찬성해야 한다는 규정을 따라왔다. 하지만 이번 사내이사 연임에서만큼은 찬성표가 64.1%에 그치며, 예전과 달리 우호지분 확보에 비상이 걸렸던 조양호 회장에게 수모를 안긴 셈이 됐다. 이에 따라 기업의 정관 변경에 대한 관심도 높아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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