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웅식 기자]
음식 맛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의 마음 씀씀이에 달려 있는 것 같다. 나는 ‘식당 홍보를 해 주겠다’는 방송 관계자의 제안을 거절하고 있다. 남들은 ‘그런 좋은 기회를 왜 놓쳤느냐’고 타박하지만 난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는다.
요즘 방송엔 맛집 소개 프로그램이 많다. 요리사로서 식당을 운영하다 보니 식당 소개 프로그램 담당자로부터 연락을 종종 받는다. 식당 홍보를 해줄 테니 협찬광고를 좀 하란다. 방송이 나간 후 손님들의 발길을 끌 수 있는 일이라면 식당 운영자의 귀는 솔깃해지게 마련이다.
방송의 영향력이 대단하다는 걸 실감할 수 있다. 방송에 맛집이라고 소개가 되면 손님들이 문전성시를 이룬다. 음식 맛에 대한 검증은 방송으로 확인됐다고 굳게 믿고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음식을 맛보기 위해 장시간을 기다리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서울 인근 한 냉면집이 유명세를 떨친 적이 있다. 일반 냉면과는 차별화를 이뤄 손님들이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한여름 날 바깥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리는 수고를 감수하고라도 정성껏 차려내온 냉면 한 그릇을 대하고 보면 그것은 즐거움이었다.
방송 후 냉면집은 몸집을 스스로 키워 갔고 마침내는 4층 건물로 탈바꿈했다. 어느 모로 보나 예전 허름했던 냉면집의 흔적은 찾을 수 없게 됐다. 문제는 최신식 냉면집을 한 번쯤 찾은 사람들은 옛날 허름했던 냉면집을 그리워한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누가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예전 주인 할머니의 손맛을 잊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분위기 나는 반듯한 현대식 건물이지만 판에 박힌 듯 무미건조하게 차려져 나오는 냉면을 대하고 보면 예전에 가졌던 풋풋한 마음들이 가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냉면집을 찾는 사람이 늘어남에 따라 매출이 오르고 종업원도 늘어났다. 그런데 냉면집을 찾는 손님들의 불만은 커져 갔다. 손님이 늘어나면 그만큼 서비스 수준도 따라가야 하는데, 현실적으로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밀려드는 손님에 바쁘다는 핑계로 서비스를 소홀히 하게 됐고, ‘대충 해도 누가 알겠느냐’는 생각으로 음식을 만들었던 것이다. 초심을 잃어 음식 맛이 변하고 손님들도 두 번 이상 이 냉면집을 찾지 않게 되었다.
요리를 시작한 지 벌써 20년이 흘렀다. 중간에 다른 사업으로 잠깐 외도를 하긴 했지만 내가 재미있고 잘할 수 있는 일은 음식을 만드는 것이다. 음식을 잘 만들기란 여전히 어렵다. 좋은 음식은 손님과의 교감 속에 정성이 들어가야 제 맛이 나기 때문이다.
나는 식당 소개 방송 제안을 정중히 거절한다. 식당이 방송을 타면 매출이 오르고 돈도 이전보다 더 만질 수 있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앞에서 소개한 냉면집과 같은 실수를 할까 염려가 되기도 한다.
나는 매일 저녁 10시에는 식당 문을 내린다. 시간을 더 연장해 더 많은 사람을 받아도 될 만한데, 나는 지금의 식당 운영 형태를 유지할 생각이다. 하루 동안 내가 정성껏 대접할 수 있는 손님의 수를 알기 때문이다. 맛 나는 음식으로 건강한 삶을 누리며 단골손님들과 지금의 음식 맛을 오래도록 지켜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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