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제2이동통신사업권 반납…진실은? [옛날신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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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 제2이동통신사업권 반납…진실은? [옛날신문 보기]
  • 김자영 기자
  • 승인 2024.06.17 13: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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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억 메모’가 불지핀 ‘노태우 비자금’ 그리고 SK 성장
대선 앞둔 YS, ‘선경 사돈 특혜’ 이슈로 대권 가도 비상
YS 측근 김덕룡, 이순석 손길승 만나 “정신 차리라” 직언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 시사오늘 (그래픽 = 정세연 기자)
1992년 SK(선경)의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과 관련해 노태우 대통령의 입김이 작용했을까. 또 영향을 미쳤다면 SK는 왜 사업자를 포기했을까. 그 내막을 쫒아가봤다. ⓒ 시사오늘 (그래픽 = 정세연 기자)

최태원 SK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세기의 이혼’ 소송 항소심 판결로 한동안 정재계가 들썩였다. 

1조3808억 원이라는 역대 최대 재산분할 규모와 함께 노 관장 아버지인 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300억 비자금’ 이슈가 관심을 모았기 때문이다. 

1990년 7월 28일 자 조선일보 ‘한자리에 모인 노 대통령 가족’. 짧은 소매 남방 차림의 노 대통령은 사위 최태원 씨와 바둑을 두고 있고, 지난 6월 결혼한 아들 재헌 씨와 며느리 신정화 씨가 이를 지켜보고 있다. 부인 김옥숙 여사는 딸 소영 양이 안고 있는 외손녀 윤정양을 어루만져보고 있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본
1990년 7월 28일 자 <조선일보> ‘한자리에 모인 노 대통령 가족’. 노태우 전 대통령은 사위 최태원 씨와 바둑을 두고 있고, 아들 재헌 씨와 며느리 신정화 씨가 이를 지켜보고 있다. 부인 김옥숙 여사는 딸 소영 양이 안고 있는 외손녀 윤정양을 어루만져보고 있다.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본

재판부는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김옥숙 여사가 보관해 온 ‘선경 300억’ 메모를 근거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 원이 SK 측에 유입됐다고 보고, 해당 자금이 선경그룹의 성장에 무형의 기여를 했다고 판단했다. 또한 SK그룹의 이동통신 사업 진출과 성공적인 경영에 노 전 대통령과 인척 관계인 점이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했다고도 봤다. 

1988년, 노 관장과 최 회장의 결혼으로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최종현 당시 선경그룹(현 SK) 회장은 사돈 관계가 됐다. 당시 정재계 거물들의 만남을 두고 ‘힘과 돈의 결합’, 정경유착의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도 적지 않았다. 

SK 측은 재판부 판결 이후 불거진 SK그룹 한국이동통신 인수 특혜 논란에 대해 “김영삼 정부 출범 이후 어렵게 한국이동통신을 인수해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는데 마치 정경유착이나 부정한 자금으로 SK가 성장한 것처럼 곡해한 법원 판단에 참담한 심정”이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그렇다면 당시 정치권 상황은 어땠을까. 

 

‘황금알’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 선경 특혜 시비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문제가 불거진 1992년 8월은 14대 대선을 약 4개월 남겨둔 시점이었다. 당시 유력 주자였던 김영삼(YS)은 같은 해 5월 이미 민주자유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 대선 행보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 문제가 발생한다. 당시 휴대전화 보급 대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국내 이동통신시장 진출에 눈독 들이는 기업이 많았다. 황금알 낳는 거위처럼 여겨지는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정보통신사업의 선두 주자였던 선경그룹은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 최종현 선경그룹 회장이 특수관계(사돈)라는 이유로 내정설 등 특혜 시비에 휘말리게 된다. 

관련 업계에서는 최종 주자로 역시 선경이 가장 유력하지 않겠느냐는 분석이 강력하게 나오고 있어 관심을 모으고 있다. 

탈락업체 중 한 관계자는 “지난 6월 26일 사업 신청 이전부터 특정 업체가 이미 최종사업자로 내정됐다는 소문이 무성하지 않았느냐”면서 “이번 1차 심사 결과로 그 소문의 절반은 맞은 셈”이라고 말했다. 

- 1992년 7월 30일 자 <한겨레> ‘내정 의혹 속 선경 느긋’ 

 

민주당이 국회가 열리면 국정조사권을 발동해 철저히 파헤치겠다고 한 7개 대형사업의 의혹과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중략) 

제2이동통신 허가 = 사업자 선정은 선경그룹의 유공으로 해놓고 짜맞추기를 진행하고 있다. 이는 노 대통령의 사후 보장책으로서, 제2이동통신 경영자가 될 사위에 대한 특혜로 보인다. 선경을 합법적인 사업자로 지정하기 위해 치밀한 준비 작업이 진행돼 왔는데 (중략) 사업자 선정을 심의하는 통신위원회가 정부의 막강한 영향력 아래 놓여있고 업체 선정 시기를 92년 8월로 고집함으로써 노 대통령 임기 말에 최대 이권 사업의 선정을 마치려 하고 있다. 

- 1992년 7월 31일 자 <한겨레> ‘칠흑 속의 7대 의혹 불 밝히기 민주당 6공 특혜사업 백서 내용’ 

 

 김영삼, 노태우에 직언 “사돈에게 막대한 이권 주면 절대 안 돼”


1992년 8월 14일 자 <한겨레> ‘여권 제2이동통신 갈등 증폭’ 기사.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본

제2이동통신사업자 최종 선정을 앞두고 언론이 끊임없이 특혜 의혹을 제기하는 등 잡음이 끊이지 않자 정치권에서도 쟁점이 됐다. 특히 김영삼 당시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이 크게 반대해 그와 노태우 당시 대통령과의 갈등설이 공공연히 흘러나왔다. YS는 후에 회고록에서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1992년 8월 20일 체신부 장관은 제2이동통신사업자를 발표했다. 사업자에는 선경그룹이 선정됐다. 임기 말 대통령이 재계 전체 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중요한 대형 사업의 사업자에 자신의 사돈기업을 선정한 것이었다. 

이즈음 노태우와 주례회동을 하는 자리에서, 나는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임기 말에 이동통신 사업이란 막대한 이권을 사돈에게 주면 절대 안 된다고 얘기했다. 노태우는 오히려 “아니, 모든 사람이 찬성인데 김 후보만 왜 반대합니까”하며 불쾌한 반응을 보였다. (중략) 

이동통신 사업자 선정 문제는 국가적으로도 중대한 대형 사업이었다. 나는 사업자 선정에 있어 국민적 감정을 존중해야 하고 권력 입장에선 백지와 같은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 김영삼 회고록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 3권 中

 

하지만 결국 정부는 선경그룹을 사업자로 선정한다. YS와 노태우가 주례회동을 하기 직전에 이런 내용이 발표됐다. YS는 내용을 보고받고 심한 불쾌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당정 간 마찰로 여권 내에도 분열의 분위기가 싹텄다. 하지만 알려졌다시피 선경은 사업권을 반납한 뒤 문민정부 출범 이후에야 한국이동통신(제1이동통신사업자)을 인수하게 된다.

YS는 회고록에서 최종현 회장을 만나 반납을 요구했다고 기록했다. 당시 YS 측근들도 선경 특혜 시비가 김영삼의 대권가도에 큰 장애물이 될 것으로 보고 선경이 선정된 데 대해 크게 반대했다고 전해진다. 

 

“정부의 사업자 선정 발표를 본 나는 이제 당사자인 선경 측에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24일 오전 하얏트 호텔에서 최종현 회장을 만났다. 최 회장은 사업가로서 이동통신사업에 대한 미련이 대단했다. 나는 최 회장에게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이제 문제를 해결할 사람은 노 대통령이 아니라고 봅니다. 사돈으로서 최 회장이 반납하는 길밖에 방법이 없습니다.”

나는 내가 반드시 대통령에 당선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이번 노태우의 결정을 취소할 것이라고까지 말하며 설득했다. 최 회장은 눈물을 글썽이면서까지 끝내 “두 분이 해결해 주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다 끝난 얘기이니 최 회장의 결심밖에 없다”고 못을 박았다. 선경은 5일 오후 사업권 반납을 발표했다.”

- 김영삼 회고록 <민주주의를 위한 나의 투쟁> 3권 中

문민정부에서 초대 정무1장관을 지낸 김덕룡 민주화추진협의회 이사장은 지난 15일 <시사오늘>과 통화에서 당시 내막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들려줬다. 

“내가 상당히 관여한 일이다. 그 당시 YS가 민자당 대선 후보로 당선된 직후였다. 노태우 정부가 선경 측에 이동통신 사업을 주겠다고 발표했다. YS는 ‘내가 봐도 선경이 이통사로 선정되는 게 합리적이라고, 개인적으로는 동의하지만 노태우 사돈에게 이권을 준다는 게 사회적 물의를 일으킬 게 뻔하니 바람직하지 않다. 왜 문제를 만드려고 하냐. 내가 집권한 뒤에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니, 지금은 주지 말라’는 입장이었다. 아마 노태우 쪽은 ‘YS가 후보됐다고 대드나’ 싶었을 수도 있다. 

나는 YS에게 ‘선경 쪽에 직접 연락해서 선경이 사양하는 것으로 하면 어떻냐’고 물었다. 선경에 개인적으로 아는 지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경복고 2년 선배인 이순석 전 선경 부회장이었다. 이순석 씨를 만나 YS 뜻을 전했다. ‘곧 선거 아니냐. 선경이 먼저 그걸 반납하면 논란도 특혜시비도 안 생긴다’는 취지로 말했다. 최종현 회장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것도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 테니, 반납하는 형식이 어떻겠냐고도 물었다. 이순석 씨가 ‘나도 최종현 회장에게 말은 해보겠지만 손길승 당시 선경그룹 경영기획실 사장 겸 대한텔레콤 사장을 만나보라’더라.

손길승은 김항덕 유공사장, 이순석과 함께 선경 3인방 중 한 사람이었다. 손길승의 세가 더 강해보였다. 손길승을 만나 말했다. 손길승은 ‘이미 결정된 것을 어떻게 반납하냐’ ‘뒤로 미뤄서 된다는 보장도 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나는 ‘당신들 정신 차려라. 세상 돌아가는 것도 모르고 눈 앞에 이익에만 얽매여 그런 식으로 하면 안된다’며 거의 싸우다 시피 토론했다. ‘대선 전에 대통령이 사돈에게 특혜를 줬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걸림돌 된다. 당신들도 문제 생기면 얼마나 불편하냐. 당신들 잘 생각해보라’고 전한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손길승이 최종현을 설득했을 거다.”

다음은 손길승 당시 대한텔레콤 사장이 1992년 8월 27일 사업권 반납을 발표한 뒤 기자들과 가진 일문일답 내용이다. 

 1992년 8월 28일 자 <조선일보> ‘선경 이통 포기 발표 일문일답’ 기사.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캡처본

손길승 대한텔레콤 사장은 27일 오후 4시 30분 부터 약 40분간 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가졌다.

그는 “현 정부 하에서 사업추진을 안하겠다는 의미며 정권이 바뀐 후 여건이 허락하면 반드시 재도전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 왜 포기했나. 
“이미 공표했듯 어떤 하자가 있어서가 아니라 결과적으로 사회적 물의가 빚어져 경제 사회 정치 일반에 심각한 불안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국가 경제에 일조하는 선경 입장에서 이를 좌시할 수도 없고 경영이념상 국민 정서에 반하는 일을 해서도 안된다는 판단하에 포기를 결정했다. 나아가 국가기간 통신사업의 원활한 추진에 장애가 되고싶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했다.”

- 이번 포기가 앞으로 한국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하지 않겠다는 뜻인가, 아니면 이번에 한한 것인가.
“현 정부 하에서는 안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오해받을 우려가 없는 다른 정권 하에서 실력을 객관적으로 인정받아 참여하고 싶다.” (중략)

- 포기 결정 과정에서 정치적 압력은.

“없었다. 다만 지금 이 사태를 그대로 놔두면 여러 점에서 문제가 생겨 빨리 매듭을 풀자는 생각이었다.”

- 1992년 8월 28일 자 <조선일보> ‘선경 이통 포기 발표 일문일답’ 기사. 

당시 언론을 통해 SK측은 정치권의 입김이 없다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상당한 압력이 작용했을 거로 추측된다.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을 둘러싼 정치 공방은 노태우와 김영삼 간의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진 계기로 꼽힌다. 이 일이 발단됐을까. 노태우는 선거를 불과 3개월여 남겨놓은 시점에서 민자당 당적을 정리하겠다며 돌연 탈당을 선언한다. 

현직 대통령의 탈당 선언은 정치권에 큰 혼란을 가져왔다. 당 주요 인사였던 박태준에 이어 당 고문인 채문식·윤길중·박철언·김용환 등이 연쇄 탈당을 강행했다. 

YS는 회고록에 “선거를 앞두고 최대 계파를 대변하는 노태우가 탈당하는 것은 나의 당선을 방해하겠다는 의사표시였다”며 “노태우는 나의 당선을 두려워했을 뿐 아니라, 한편으로는 자신이 탈당할 경우 당이 분열돼 나의 당선 가능성이 희박해질 것이라는 계산까지 하고 있었다”고 기록했다. 

김 이사장 또한 본지와 통화에서 이동통신사업 건이 노태우 탈당에 이유가 됐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생각대신 행동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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