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한설희 기자]
지난 9월 10일 오후,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북악정치포럼’의 사회를 맡은 서정도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로 김성환 의원을 소개했다.
“현 국회의원 300명 중에서도 이런 정치이력을 가진 의원은 참 드뭅니다. 그래서 오늘 강의가 더욱 기대됩니다. 균형감각을 갖춘 리더십을 배양하는 데 있어선 이분만한 적임자가 없으니까요.”
전무후무(前無後無)한 균형감각을 갖춘 리더십의 소유자. 서 교수의 말처럼, 김 의원의 정치 인생은 현직 의원들에게서 찾아보기 어렵다. 노원구의원·서울시의원·노원구청장 등 지방정부 요직을 두루 거쳤을 뿐 아니라, 참여정부에서 정책조정비서관으로 일하며 중앙정부의 정책을 꽃피웠다. 그러던 2018년, 노원병 지역구 재보궐선거를 통해 드디어 원내에 입성한 후 이해찬 당대표 비서실장을 맡았다. 요컨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입법부와 행정부를 모두 섭렵한 정계의 인재(人才)다.
“제 정치입문 과정을 야구로 비유하자면 ‘사이클링히트(한 선수가 한 게임에서 1루타, 2루타, 3루타, 홈런을 모두 기록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젠 그 다음에 할 게 없어서 뭘 해야 할지 걱정이네요.”
참여정부 시절 인연으로 친노(親盧), 친문(親文) 정치인으로 분류되는 김 의원. 사방이 조용한 연단에 서서, 그는 지난 2008년 총선 당시 고(故)노회찬 의원과 함께 낙선했던 경험을 나누며 청중을 사로잡았다.
“그때 고생만 ‘직사게(엄청)’ 하고 3등으로 떨어졌죠. 그런데 노회찬 선배가 ‘너 때문에 떨어졌다’고, 제가 표를 깎아 먹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니, 그러는 본인은 아무 연고도 없이 노원구에 등장해서, 아버지 성이 노 씨고 어머니 성이 원 씨니 ‘내가 노원구의 아들이요’ 하던 사람인데 말이지요. 하하.”
이처럼 유쾌한 그의 강연은 ‘정치의 미래: 공존, 공동체, 공감’을 주제로 90분간 활발하게 진행됐다. 스스로 결정했다는 강연 주제처럼, 그는 중간 중간 청중에게 퀴즈를 던지는 등 화자와 청자가 함께 호흡하는 ‘공감의 강연’을 이끌어냈다.
“기후변화 아니고 기후위기… 한국, 빈부격차 해결해야 환경문제 집중가능”
김성환 의원은 “오늘은 우리 정치가 어느 방향으로 가는 것이 미래에 맞는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며 세 가지의 ‘미래정치 키워드’를 제시했다. 바로 공존, 공동체, 공감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자본주의 진영은 공산화를 막기 위해 경제적 격차를 줄일 만한 여러 활동에 나섭니다. 국가가 나서서 세금을 굉장히 많이 걷고, 그 돈으로 사회 복지 체계를 만들었어요. 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소득세 최고세율이 얼마나 되는지 아세요? 무려 91%였습니다. 유럽 얘기가 아닙니다. 1000만 원 벌면, 910만 원을 세금으로 냈던 시절이 미국에도 있었단 말이지요. 이때의 키워드는 ‘정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다 1980년대, 영화배우 출신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부터 국가 효율성을 위해 세금을 줄이기 시작합니다. 약 36%까지 최고세율을 줄이고, 국가가 하던 일을 시장에 맡겨요. 그 시대를 우리는 ‘신자유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때의 키워드는 ‘시장’이겠지요.
그런데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이런 방식으로 세계 경제를 이끌어가기 어렵겠다는 정치·경제학자들이 고민이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지금, 1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야할까요? 저는 정부도 시장도 아닌, 정부와 기업과 시민사회 전부가 공동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공동체’가 새 시대의 키워드라고 생각합니다.”
김 의원은 이 ‘공동체 정신’으로 인류가 당면한 환경문제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환경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선 복지문제가 우선 해결돼야 한다고 우선순위를 짚었다.
“UN은 2015년 인류의 공존을 위협하는 가장 시급한 문제가 ‘환경문제’라고 발표했습니다. 유럽에선 기후변화라는 온건한 표현보다는 ‘기후위기’라는 표현까지 쓰고 있는데요. 그런데 이 기후위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나라들은 죄다 유럽 선진국들입니다. 복지가 잘 돼있고, 구성체 내 사회적 평등 수준이 높은 나라들이요. 그러니까 지구 걱정이 가능한 거죠. 아프리카 같은 여러 나라들이, 당장 먹고살기도 힘든데 무슨 기후변화 걱정을 하겠습니까.
우리나라도 마찬가집니다. 경제 수준으로 보면 유럽 못지않게 높아졌는데, 기후 위기 문제를 절박하게 안 봅니다. 왜일까요? 경제격차, 빈부격차가 큰 나라들이 대체로 그렇습니다. 환경 의제들이 경제 의제보다 뒤로 밀릴 수밖에 없어요. 물론 빈부격차는 세계적인 문제입니다. 대부분의 나라 상위 1%가 나머지 99%보다 돈을 많이 법니다. 그런데 선진국은 그걸 세금으로 환원할 수 있는데, 우리는 세금도 조금 내요.
즉 기후위기와 양극화 심화, 이게 지구의 숙제입니다. 그런데 심지어 한국에는 두 가지 문제가 추가돼요. 남북문제와 수도권·지방의 격차 문제입니다. 전 세계적으로 딱 두 나라, 한국과 일본만 수도권 집중 현상이 심각한 편입니다.”
“전 세계 부 상위 0.1%에 집중… 빈부격차, 세금 더 걷어 해결해야”
이어 김 의원은 ppt화면에 세계의 경제격차 추이를 집약한 그래프를 띄웠다. 그는 양극화의 심각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문제 해결 방안과 관련해 여러 유럽 사례들을 제시했다.
“이 그래프를 한번 보십시오. 우리나라 포함해서, 전 세계 상위 40%는 거의 큰 변화가 없습니다. 그런데 세계 상위 1%만 계속 부를 축적해가요. 그 중에서도 0.1%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부가 더 쏠립니다. 세계의 부가 자본과 토지를 가진 극소수에게만 집중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문제를 가장 강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죠.
그래서 스위스에선 2013년 말에 국민투표를 하나 합니다. 한 회사에서 임금이 12배 이상 차이 나는 게 과연 옳은 것이냐는 문제의식이었죠. 사내에서 가장 월급을 적게 받는 사람의 봉급과, 가장 많이 받는 CEO의 봉급이 12배 이상 차이는 나지 않게 하자는 투표였는데, 결국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스위스 안에 있는 다국적기업이 다 도망갈 수 있다는 주장이 우세했을 거라고 봅니다.
빈부격차를 대체 어떻게 줄여야할지, 저도 참 고민스럽습니다만 유럽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유럽 복지국가들은 사람들의 오해와는 다르게 경제 분야에서 제약이 별로 없고 자유로운 편입니다. 세금 내기 전까지는 다른 나라들처럼 빈부격차가 심해요. 많이 버는 사람은 많이 법니다. 대신 세금을 굉장히 많이 내서, ‘공동 운영’으로 가는 겁니다. 세금 많이 걷으면 사람들이 다 도망갈 것 같죠? 아닙니다. 오히려 그 나라에 대한 자부심이 더 높아져요. 그런데 한국은 지니계수를 보면 알 수 있듯 세금을 너무 적게 걷어요. 상대적으로 세금 후의 빈부격차가 큽니다.”
“인간, 이대로 살다간 멸종해… 한국, 중국보다 목표도 낮고 노력도 덜해”
김성환 의원은 자타공인 ‘친환경 정치인’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친환경에너지 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다. 노원구 하계동에 시범적인 ‘노원 에너지 제로 하우스’를 지었고, 지금도 수소 에너지 활성화를 위해 원내외에서 애쓰는 중이다.
“엊그제 지구를 위해 아내 반대를 무릅쓰면서 전기차로 바꿨다. 친환경 정책 만들면서 말만 하고 실천은 안 하면 되겠느냐”는 김 의원. 그는 기후변화가 인간의 멸종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하면서, 지구 공동체의 적극적인 대응을 강조했다.
“보통 지구에서 생명체의 70%정도가 사라지는 일을 ‘대멸종’이라고 합니다. 과학자들은 지구에 총 5번의 멸종위기가 왔었다고 추측해요. 6700만 년 전 운석 충돌로 인한 공룡 멸종 시기가 마지막 5번째 멸종시기지요. 지금 학자들은 여섯 번째 멸종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불러올 멸종을요. 5번째 멸종과의 차이점은 공룡은 멸종할 줄 몰랐겠지만, 우리 인간은 이대로 가면 멸종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선택했다는 겁니다.
기후위기로 인한 인간 멸종을 막기 위해, 1992년 브라질 리우에서 최초로 회의가 열립니다. 선진국들이 모여 의무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 총량을 정했어요. 그런데 조지 부시(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여기서 탈퇴해버려요. 여차저차 이산화탄소 배출 1,2위를 다투는 중국과 미국을 겨우 설득해서 2015년 파리 기후협약을 맺어요. 단, 의무는 아니고 자율성을 띕니다. 각자 목표 감축량을 세우고 그걸 지키자는 내용이었죠.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마저도 탈퇴해버렸지만요.
아무튼 한국도 자체적인 노력을 해야 합니다. 에너지효율 건물들을 짓고, 재생에너지를 사용하는 전기차나 수소차로 바꿀 필요가 있어요. 여기서 딜레마가 하나 있지요? 원자력발전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참고로 원자력 발전은 기후에 직접 영향을 주진 않습니다. 그런데 일본 후쿠시마처럼 한번 터지면 끝이라고 볼 수 있죠. 그래서 유럽처럼 안전하게 바람과 태양으로 전기에너지를 생산해야 한다는 겁니다.
대한민국은 참 에너지 물 쓰듯 쓰는 국가에요. 가장 많이 쓰는 곳이 어딘 줄 아세요? 당진에 있는 현대제철입니다. 철을 녹이는 모든 작업을 전기로 하거든요. 또 시멘트 업계도 전기를 굉장히 많이 씁니다. 근본적으로 한국은 에너지를 무한정 생산하고 무한정 소비하고, 또 그걸 폐기하고 다시 생산하는 나쁜 습관에 익숙합니다. 여기서 창피한 것이, 우리가 중국보다 목표도 낮고 노력도 덜 한다는 거예요. 중국 시진핑 주석은 약 40분에 걸쳐 ‘생태문명’이라는 새로운 제안을 한 적이 있어요. 그 이후로 중국 가보셨나요? 북경에 오토바이는 이미 100%전기로 바꿨습니다. 중국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충칭도 100% 전기오토바이에요. 새로 허가받은 자동차의 80%는 전기차고요. 부끄러운 일이죠?”
김 의원은 앞서 설명한 양극화 문제, 나아가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지방정부와 주민자치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최근 행정학 경향은 과거의 큰 정부, 작은 정부에서 벗어나 지방정부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중앙정부는 큰 방향만 설정하되, 그 실천은 동네나 마을에서 주민들이 스스로 하도록 기다려주자는 것이지요. 이 지방자치가 결국 우리 모두의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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