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 광화문 광장에 모인 촛불의 열기는 이른바 ‘국정농단 사건’에 휘말린 박근혜 당시 대통령을 권좌(權座)에서 끌어내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2달여가 지난 2017년 5월 9일, 국민은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에게 41.08%의 득표율을 몰아주며 그를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 당선시켰다.
그래서 사람들은 문재인 정부를 ‘촛불 정부’라고 불렀다. 그러면서 80%가 훌쩍 넘는, 역대 최고 수준의 지지율을 안겨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자신들의 손으로 탄생시킨 촛불 정부가 자신들의 꿈과 희망을 지켜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하지만 아직 취임한 지 2년도 지나지 않은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은 거의 반토막이 났고, ‘더 이상 정치를 믿지 않는다’는 정치 혐오층은 늘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3월 19일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북악정치포럼’을 찾은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국민을 향해 다시 한 번 호소했다. 대한민국은 변하는 중이라고, 더디지만 계속해서 가고 있으니 조금만 더 믿어달라고, 정치를 포기하지 말아달라고, 정치는 힘이 약한 자들의 가장 강한 무기라고. 아래는 우 의원이 이날 북악정치포럼에서 강연한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정치의 목적은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 해결하는 것”
“나는 전두환 정권 때 학생 운동을 했다. 그런데 당시에 겪었던, 아직까지도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1987년 6월항쟁 때, 우리는 명동성당에 모여서 시위를 했다. 그때 경찰이 들이닥치면, 우리가 제일 먼저 숨었던 곳이 바로 남대문시장이다. 남대문시장으로 뛰어가면 시장 아줌마들이 숨겨주고, 수건으로 최루탄도 닦아주고, 찬물도 갖다주고 그랬다. 학생들이 잘 해서 세상을 꼭 좀 바꿔주라고 위로도 하고 격려도 하고. 그 기억을 잊지 못한다.
하지만 2006년 6월에, 내가 국회의원이 돼서 찾은 남대문시장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강금실 후보 지원 유세를 하려고 갔던 건데, 상인들이 우리 뒤통수에 대고 뭐라고 했는지 아는가. ‘야 이놈들아, 너희들 무슨 낯짝으로 여기 왔어’ 그러는 거다. 그 말을 듣고 모골이 송연해졌다. 민주정부만 만들면 모든 게 잘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거다. 정치의 목표는 민주주의라는 수단을 갖고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잘 해결해야 하는 거지, 그저 민주주의를 이룩하고 민주제도만 만든다고 다 끝나는 게 아니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 해결하려면 구조부터 바꿔야”
“그렇다면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일단 우리 경제를 객관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언론에서는 우리 경제가 어렵다고 진단하고 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지난해 무역수지는 705억 달러로 10년 연속 흑자를 기록했고, 사상 최초로 수출 6000억 달러를 달성했다. 반도체도 세계 최초로 1000억 달러를 돌파했다. 선박수주는 중국을 제치고 1위다. 외국인 투자도 역대 최대고, 세계에서 일곱 번째로 30-50클럽에 가입했다. 30-50클럽은 5000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국가 중에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돌파한 나라를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경제는 잘 나가는데, 왜 국민은 체감을 하지 못할까. 경제 발전과 국민 삶의 질 향상이 잘 연계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나라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OECD 26개국 가운데 세 번째로 높다. 평균이 17.3%인데 우리나라는 23.5%다. 이렇게 일자리가 마땅치 않다 보니까 돈이 조금만 있으면 다 자영업으로 빠져버린다. 그래서 자영업이 OECD 국가 중에서 다섯 번째로 많다. 자영업자가 취업자 전체의 25%나 되고, 저임금 노동자가 17.3%나 되는 굉장히 비정상적인 구조다. 이걸 바꿔야만 경제 발전이 국민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게 된다.”
“평화경제·공정경제·혁신성장으로 성장동력 만들어야”
“이 비정상적인 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우선 평화경제부터 보자. 평화가 경제고 경제가 곧 평화다. 나는 남북문제를 감상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 민족이 살기 위해서는 이 길로 갈 수밖에 없다는 입장에 가깝다. 만약 부산에서부터 시베리아횡단열차를 타고 유럽까지 갈 수 있으면 어떻게 될까. 부산에서 모스크바로 화물을 운송하려면 배로는 한 달이 걸린다. 하지만 동해선과 TSR을 이용하면 2주면 된다. 인천에서 남포까지 컨테이너 하나당 비용이 배로는 800달러 들지만 철도로는 200달러밖에 안 든다. 철도로 가면 제일 싸다. 이러면 우리나라는 물류로 대박이 나는 거다.
두 번째는 혁신성장이다. 4차산업 혁명에 맞는 혁신성장을 해나가야 한다. 기술개발과 R&D, 벤처기업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여기서 바로 공정경제의 필요성이 나온다. 벤처기업에 백날 투자하면 뭐하나. 우리나라 대기업에는 ‘패스트세컨드(Fast Second)’라는 말이 있다. 중소기업 벤처기업이 열심히 해서 시장에 통할 때쯤 되면 기술을 베껴가서나 돈으로 인수해버리는 거다. 그러면 중소기업이 살 수가 없다. 기술을 탈취해버리니까. 평생을 다해서 기술을 만들어도 패스트세컨드로 다 빼앗아가니까 동기가 사라진다. 소송해 봐야 이길 도리도 없고. 기술 탈취를 절대로 못하게 해야 한다. 불공정 문제를 해결해줘야 중소기업이 강소기업이 되고, 벤처기업이 커서 새로운 성장동력이 된다.”
“소득주도성장, 삶의 질 높이는 정책”
“평화경제·공정경제·혁신성장으로 성장동력을 만들어도, 성장 과실이 국민에게 가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래서 소득주도성장이 필요하다. 성장과 분배를 조화시켜야 하니까. 사실 IMF 이전까지만 해도 실질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이 함께 가고 있었다. 하지만 IMF 이후에는 실질노동생산성을 계속 올라가는데 실질임금은 떨어졌다. IMF로 신자유주의가 들어오면서 대기업에게 훨씬 유리한 제도적 기반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실질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의 차이가 벌어지는 걸 해결해야 국민 삶의 질이 높아진다. 그냥 놔두면 양극화가 너무 심해지니까. 그래서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하는 거다. 보통 소득주도성장이라고 하면 최저임금 상승만 있는 줄 알지만, 사실 근로장려금 확대나 아동수당 도입, 복지제도 확충 같은 여러 가지 정책 수단을 갖고 있다.
물론 소득주도성장에 여러 문제가 따르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특히 자영업자들의 형편이 매우 좋지 않다. 하지만 자영업자가 어려우면 이들을 도와주는 쪽으로 가야지, 예전처럼 다시 양극화가 커지는 방식으로 가서는 안 되는 것 아니겠나.
나는 지금이 전환의 계곡이라고 생각한다. 시스템을 바꾸는 새로운 도전에는 반드시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는 게 우리 생각이다. 구조적 전환을 시작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기 때문에 함께 바꿔가야 한다. 구조적 문제는 단기간에 해결하기 어려운 과제다. 하지만 국민 개개인의 삶이 나아지게 하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힘 없고 백 없어도 억울한 꼴 당하지 않고 누구나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는 나라. 반칙과 특권이 없는 더불어 잘 사는 나라. 어느 당이 정권을 잡든 앞으로도 이건 꼭 해나갔으면 한다.”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