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자리 참사' '고용 질' 역대 최악
61조 재정 투입 대가가 '비정규직 폭증'
일자리와 소득분배, 갈수록 악화
정책 오류, 정확한 현실 인식 중요
재정만능·퍼주기...남미 몰락국가 교훈을
노동 이중구조 경직성 쇄신 개혁 시급
구직활동 지원금, 생활보조금 왜곡 사용
기업 규제 풀어 일자리 확대 유도 관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국가적으로 '문재인 경제'의 추락이 확연한 가운데 핵심 현안이자 최대 민생(民生) 과제인 '일자리 대책'이 막대한 재정 투입에도 불구, 사실상 실패한 것으로 드러났다.
통계청 발표는 충격적이다. 비정규직 근로자 수와 비율이 역대 최고로 치솟았다. 2004년 관련 통계작성 이후 사상최대 수준이다.
'비정규직 제로(0)'를 국정 과제 1호로 추진한 문재인 정부에서 정반대로 정규직이 줄고 비정규직이 폭증하는 역설적인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부 고용정책의 총체적 실패를 의미한다.
문 정부의 중간 성적표라는 측면에서 보면 처참하기까지 하다. 비정규직이 지난해(3만6000명)의 무려 10배를 웃돌았다. 연간 비정규직 증가 규모가 1만~3만 명 내외였다는 것을 고려하면, 올해 증가 폭은 가히 폭발적 수준이다. ‘고용 참사’에 가깝다.
전체 임금노동자에서 차지하는 비정규직 비중(36.4%)이나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평균임금 격차(143만6000원) 등이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자리의 질도 뒷걸음친 것으로 나타났다. 그동안 '고용의 질이 나아졌다'고 주장해온 정부의 말을 무색하게 만든다.
이같은 현상은 민간 기업부문의 고용이 계속 급감했기 때문이다. 정부의 일방적인 친노동 정책이 시장을 왜곡하고 부작용만 양산한 셈이다.
사회 안전망 근간까지 흔들어
60조원이 넘는 일자리 예산에다, 자연재해 등 긴급 상황에 쓰게 돼 있는 나라비상금(예비비)까지 '일자리 정책'에 털어 썼지만, 그 대부분이 비정규직 일자리다. 고용 회복은 눈속임 통계에 지나지 않는다. 일자리 창출에 올해 23조원 등 3년간 61조원을 쏟아부은 대가가 비정규직 폭증이라니 황당할 따름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고용의 양과 질이 개선됐다" "정책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런 오류에 따른 정책 실패와 한국경제의 난관은 이제 사회 안전망의 근간까지 흔들기에 이르렀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내년 고용보험 적자가 1조4436억원에 이르고, 2024년에는 마침내 기금 고갈 사태까지 맞을 것으로 전망했다. 7년 연속 흑자는 옛말로 변했다. 최저임금을 크게 올린 상황에서 최악의 실업사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보험기금조차 미래를 장담하기 힘든 지경에 빠지고만 형국이다.
결국, 그동안의 정부 '일자리' 정책은 '비정규직 급증'이라는 부메랑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모든 문제를 세금으로 해결한다는 '만사세통'(萬事稅通)이 가져온 업보(業報)로 볼 수밖에 없다. 국회에 제출된 내년 일자리 관련 예산도 대부분이 단기성 일자리 늘리기 위주로 편성, 비정규직 비중 감소는 앞으로도 여전히 상황호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은 한국 경제의 어려움에 대해 세계 경제탓을 하지만, 올해 세계경제성장률(3.0% 전망)과 한국성장률(2.0% 전망) 간 격차는 외환위기 이후 가장 크다. 잘못된 진단은 병을 키우고 치료 시기까지 놓치게 만든다. 경제도 마찬가지다.
시스템 붕괴 우려
지난 2년여 동안, 정부의 이같이 잘못된 진단과 반기업 정책은 정규직이 많은 제조업 일자리를 18개월 연속 감소케 했다. 이로 인해 경제의 허리이자 사회의 주축인 30~40대 일자리는 24개월 연속 줄어들었다. 주 36시간 이상 일하는 풀타임 일자리는 2년 새 무려 118만개가 사라졌다. 실로 참담한 현실이다.
통계청의 이번 '일자리' 통계는 결과적으로 ‘비정규직 제로’를 앞세운 현 정부의 정책 실패를 여실히 말해 준다. 정부는 애초 공공부문 비정규직 줄이기를 마중물 삼아 민간의 비정규직 축소로 확대해 나간다는 구상이었지만, 민간기업은 고사하고 공공부문조차 ‘무늬만 정규직’ 등의 비난에 직면해 있다.
미·중 무역전쟁이 촉발한 글로벌 경제 불안과 수출 감소, 한일 무역 갈등, 세계 경제의 기관차인 중국 경제의 감속 등 안팎의 악재는 기업의 고용이 개선되기 어려울 여건에 있었음에도, 정책은 그렇게 '반기업'으로 흘러왔다.
저성장 속에 기업이 감당할 수 없는 과잉 노동정책의 대가는 너무도 광범위하고 파괴적이다.
일자리 정책실패의 원인은 자명하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친(親)노조 정책을 펴온 정부가 그 부작용을 ‘노인 알바’ 등 공공일자리를 늘려 정규직 감소를 땜질해 온 결과다. 투자·소비 부진 속에 자영업이 초토화됐고, 주력산업 구조조정과 견디다 못한 중소·중견기업의 탈(脫)한국 러시도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최저임금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으로 고용이 줄자 ‘비정규직 제로’를 천명한 정부가 나서 비정규직을 늘렸으니, 이쯤 되면 소득주도 성장 정책 기조의 비현실성이 드러나고 만 셈이다. 정부가 근로자 고용 주체인 기업의 기를 살리는 쪽으로 일자리 정책을 전환하지 않고, 세금으로 단기 일자리 늘리기에만 치중하는 한 '일자리 참사'는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최근 국제적으로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 남미 좌파벨트의 몰락은 우리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문 정부 이후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같은 공공부문 비대화, 확장일변도의 정부 지출을 보면, 아르헨티나의 대중영합적 정책과 겹치는 부분이 적지 않다. 공정거래위원회와 국민연금 등을 내세운 일련의 반(反)기업·친노조 정책도 마찬가지다.
시스템 붕괴는 그만큼 무섭다. 페르난데스 전 대통령의 8년 집권기(2007~2015년) 때만 돌아봐도 공무원 수는 두 배로 늘어났고, 지급 조건 완화로 연금 수급자도 두 배로 불어났다. 현금 살포성 복지, 극심한 저출산의 와중에 미래 세대 부담을 키우는 재정만능주의 경향의 우리 정부와 별반 다를 바 없다. 포퓰리즘 후유증은 그렇게 깊고도 길다.
한국의 경우 민간 기업들은 이미 투자와 연구개발을 가로막는 규제 완화를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달 "각종 규제로 인해 손발이 묶인 상황이 전혀 개선되지 않고 있고, 정치도 계속 끝없는 대립의 연속"이라며 "경제가 버려지고 잊힌 자식"이라고 개탄했다. 업계의 비명을 외면하기엔, 우리 경제가 처한 상황은 참으로 엄혹하다.
단기 일자리만 대폭 증가 악순환
한국 일자리 실상은 실로 참담하다. 통계청 통계와 관련, 정부가 지난 6월까지 공공 부문 비정규직 15만7000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을 감안하면, 민간 부문에서는 비정규직이 그보다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작년 대비 23만8000명 증가한 20대 비정규직에서 그 일단이 확인된다.
이같은 현상은 국가 재정으로 떠받치는 단기 일자리가 대폭 늘어난 결과로도 풀이된다. 정부가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단기 일자리를 대폭 늘린 것이 비정규직 급증에 큰몫을 했다. 지난 8월 60세 이상 비정규직은 전년 동월보다 28만9000명 늘어났는데, 이는 같은 기간 39만1000명 증가한 60세 이상 취업자의 73.9%를 차지했다.
정부가 세금을 투입해 억지로 만드는 일자리는 대부분 비정규직 혹은 자투리 업무다. 30~40대 일자리가 줄고 60대 이상 일자리만 늘어나는 것이 단적인 예다.
통계청의 ‘9월 고용동향’ 자료에서도 제조업 일자리가 11만1000명(2.5%) 줄었고, 고용의 중추 연령대인 30, 40대 일자리는 19만2000명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신 60세 이상은 38만명, 50대는 11만9000명 늘었다. 이는 안정적인 제조업 일자리가 줄어드는 공백을 정부가 단기 일자리 사업 등을 통해 늘린 노인 일자리로 메우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킨다.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니 취업난이 심각해지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 노인 일자리 같은 초단기 일자리를 늘리니 비정규직이 늘어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60세 이상 비정규직 근로자가 25.4%인 193만8천 명으로 가장 많았다.
정부는 이번 조사 때부터 국제노동기구(ILO)의 권고를 받아들여 기존보다 조사 기준을 강화하면서 과거에 포착되지 않았던 35만~50만 명이 추가로 포함됐다고 급증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이를 고려한다고 해도 최소 36만7천 명의 비정규직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측 설명을 감안한다고 해도, 올해 비정규직 증가폭은 폭발적 수준으로, 총 750만명에 육박하기에 이르렀다.
지난 2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일자리 정책이 효과를 내고 있다"는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의 말은 하루 만에 거짓이 되고말았다.
민간기업 일자리 능력 추락
더욱이, 이는 지금껏 정부 통계가 비정규직의 현실을 제대로 포착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정부 통계가 일부 정규직에 포함시키는 임시일용직을 비정규직으로 분류한 노동계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비정규직은 정부 집계보다 200만명이나 많다.
정부의 조사 방법 운운은 변명일 뿐, 고용의 질이 악화하는 추세도 확연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평균 근속 기간 차이가 더 벌어지고 월급 격차가 확대된 것이 이를 방증한다. 정규직 평균임금은 316만 5000원으로 1년 전보다 15만 9000원 뛴 반면 비정규직은 172만 9000원으로 8만 5000원 오르는 데 그쳤다.
또한, 인구구조 변화나 여성의 사회적 진출에 따라 60대 이상이나 여성 비정규직 취업이 증가했다는 정부측 강조점을 납득 못 할 바는 아니지만, 저임금 직종인 숙박ㆍ음식업, 보건ㆍ복지서비스업 위주로 고용이 늘어난 것을 볼 때 일자리의 질과는 상관이 없다.
국정의 근간이 되는 경제정책 실패가 드러난 마당에 정부가 비정규직 급증을 국제노동기구(ILO) 기준 적용 탓으로 돌리는 것은 구차하다. 이는 세계 수준에 뒤지는 노동정책의 후진성을 실토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한마디로, 비정규직 폭증의 표면적 이유는 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정책 여파로 일자리 참사가 벌어지자 다급해진 정부가 세금을 쏟아부어 휴지 줍기 등 노인 중심으로 초단기 일자리만 늘린 결과다. 그러나 근본 원인은, 문 정부 들어 친노조 정책을 강화하고, 강성 노조에 휘둘려 정규직 과보호 정책을 펼치면서 민간기업들이 한번 뽑으면 물릴 수 없는 정규직 채용을 주저하고 비정규직을 확대한 결과로 볼 수 밖에 없다.
앞으로도 문제다. 정부가 2017년 7월 발표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 따라 공공부문에서 비정규직 약 20만5천명을 2020년까지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사업이 진행 중이며, 지난 6월 기준으로 약 89%인 18만2천여명에 대해 정규직 전환 결정이 이뤄졌음을 감안하면 민간기업의 일자리 창출 능력이 급속하게 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짜 일자리 100만개 급조
대기업들은 정부가 일자리를 늘리라고 채근할 때마다 한쪽으론 채용을 늘리는 척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인력을 줄이거나 정규직을 비정규직으로 돌리고 있다.
한번 채용하면 되돌리기 어려우니 정규직 채용을 꺼리는 것은 당연하다. 정규직이 많은 제조업 분야와 30·40대 연령층에서 일자리가 줄어들고 있는 것은 그런 사정을 반영한다.
지난 9월 신규 취업자 중 경제 허리인 30대와 40대 일자리는 1년 전보다 19만 명 줄었다. 60세 이상이 38만 명으로 이를 빼면 전체적으로는 오히려 3만 명 줄었다. 60세 이상은 용돈 벌이용 세금 ‘알바’가 대부분이다.
내년에도 경기 반등 가능성이 낮은 가운데 일자리 사정이 나아질 것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정부가 그동안 추진해 온 ‘비정규직 제로’ 정책은 무색해질 수 밖에 없다. 오히려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만으로 임금과 처우 등에서 차별받는 상황을 시정하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할 필요가 있다. 경제 현장에서는 인력을 계약·임시직 형태로 탄력 고용하는 ‘긱(Gig)경제’가 화두로 떠오르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문 정부는 세금을 퍼부어 만든 가짜 일자리만 대거 늘였다. 정부 부처와 지자체가 총동원돼 휴지 줍기, 태양광 패널 닦기, 강의실 전등 끄기 같은 월 20만~30만원짜리 초단기 일자리를 급조한 끝에 지난 1년간 100만개의 가짜 일자리가 생겨났다.
경제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
미증유의 고용 참사가 발생했다면 조속히 원인을 진단하고 처방에 나서야 옳다. 정부와 여당은 거꾸로 한다. 문 대통령은 지난주 국회 시정연설에서 “우리 경제의 견실함은 우리 자신보다 오히려 세계에서 더 높이 평가하고 있다. 소득 여건과 일자리의 질이 개선되고 있다”고 강변했다.
문 정부가 '비정규직 제로'를 최우선 국정과제로 내세웠음에도 정규직이 늘지 않고 비정규직만 폭증한 것은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현 정부는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인상하고 근로시간을 단축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을 쉽게 하는 '양대 지침'은 폐지해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악화시켰다. 그로 인해 올해 세계경제포럼(WEF) 국가 경쟁력 평가에서 우리나라가 종합 13위를 차지했지만, 노동 분야에서는 해고 비용 순위가 114위에서 116위로 떨어지고 고용·해고 유연성 순위도 87위에서 102위로 뒷걸음질했다.
당초 문 대통령이 취임 이틀 후인 2017년 5월 12일 인천국제공항공사를 방문, ‘공공기관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자 경제계는 비명을 질렀다. 당시 김영배 한국경영자총협회 부회장이 “민간부문으로 파급될 게 걱정된다”고 했다가 집권세력에 뭇매를 맞고 회장·부회장이 동반 사퇴하는 소동도 있었다. 그러나 2년 반 전 ‘비정규직 0’에 대한 우려와 경고가 현실화했음이 이번 정부 통계로도 확인된 것이다.
선의로 시작한 공공기관 중심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이 경제 현실과 동떨어진 일자리 정책으로 전락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곳곳에서 파열음
무리한 정규직화 정책은 곳곳에서 파열음을 낳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를 비롯한 여러 공기업에서 친인척 채용 비리가 터졌고, 한국도로공사 등에서는 본사 직고용을 주장하는 요구로 몸살을 앓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는 제대로 된 성찰 없이 재정 확대만 강조한다. 병인(病因)은 외면한 채 대증 요법에만 매달리는 격이다.
현실을 도외시한 데 따른 업보다. 실제로 문 정부 들어 저성과자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을 쉽게 하는 ‘양대 지침’은 폐지됐고,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정책도 시행이 예고돼 있다. 갈수록 드세지는 강성노조 위세로 한국 대기업 대졸 초임 연봉이 일본보다 31%나 높아진 현실에서 기업들이 정규직 채용을 늘리는 건 모험이 됐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직종이 크게 다양화하는 데 따라 일자리 유연화 필요성도 커지는 상황에서 ‘비정규직=악(惡)’으로 보는 시각 자체가 난센스다. 4차산업혁명 시대에 세계 102위 수준인 고용경직성(세계경제포럼 평가 결과)을 고집한다는 건 사실상의 국가 자살 행위다.
비정규직 비중이 20%를 웃도는 나라들의 공통점은 노동경직성에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해고와 임금 조정이 유연한 영국은 비정규직 비중이 5.5%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 정부는 이런 사실을 철저히 외면했고, 노동개혁은 ‘금기어’로 치부했다. 이전 정부에서 어렵사리 도입한 성과연봉제를 생산성과 괴리된 호봉제로 되돌렸고, 그 대안으로 공약한 직무급제 도입은 없던 일로 만들었다. 저성과자 해고지침도 폐기했다. 주 52시간 근로제, 정년 추가 연장, 해고자 노조 가입 허용 등 내놓는 정책마다 하나같이 상위 10%인 대기업·공기업 정규직 노조에 혜택이 돌아가는 것들뿐이다. 정부 정책 오류의 '구멍'이 확연하다.
구직활동 지원금 사용 혼란
이같은 오류는 청년들의 취업활동을 돕기 위해 올해 5월부터 지급된 청년구직활동지원금의 사업 효과 분석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이 지원금은 만 18∼34세의 저소득층 청년이 취업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정부가 월 50만원씩 6개월 동안 클린카드 형태로 지급했다.
하지만 7월 말 기준 1∼3기 선정자 3만2000여명의 클린카드 결제 내역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상당액이 식비와 물품구매 등 생활비로 충당됐기 때문이다.
평균 사용 횟수에서 식비가 33.3%로 가장 많았다. 이어 소매유통(27.4%), 인터넷구매(13.3%) 순이었다. 결제금액으로는 인터넷구매 86억여원, 식비 55억여원, 소매유통 37억여원이었고 학원비는 16억여원에 그쳤다.
지난 6월 국회 제출 자료에서도 선정자들이 에어컨(50만원 상당), 닌텐도 게임기(40만원), 한약(39만원) 구입 등에 결제한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물론, 구직활동 범위를 정확히 구분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눈먼 돈’ 쯤으로 인식되는 도덕적 해이와 정부 정책의 오류 경향이 여기에서도 확인되고 있는 셈이다.
현실 인식과 솔직한 자성 급선무
일자리 정책과 관련, 정부가 재정 투입을 통해 노인 일자리을 늘인 것이 노인 빈곤 해결에 큰 도움을 줄수는 있다. 하지만, 정부가 비정규직 감소를 국정 핵심 과제로 내걸었다면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드는 것이 기본이 돼야 한다.
민간기업의 기를 살려 투자 의욕을 높이고 이를 통해 고용을 늘리는 선순환에 집중돼야 할 것이다. 특히 미래 먹거리를 창출하는 혁신 성장이 궤도에 오르도록 정책적 지원을 다 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정부는 재정 투입에만 매달린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급기야 지자체와 교육청에도 “가용 예산을 전액 집행한다는 각오로 특단의 노력을 해 달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정작 경제를 살릴 기업 규제 혁파나 고비용구조 개혁에 관해서는 말 한마디 없다. 이제라도 정책 기조를 전면 수정해야 한다.
경제 침체 국면에서 재정 투입은 필요한 일이지만, 우물을 파려면 물이 나올 만한 곳을 파야 한다. 좋은 일자리는 결국 민간이 만든다. 지금이라도 명확한 정책 전환을 통해 민간 경제 활력을 높여야 할 것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정부가 고용률이 높아졌다고 주장하는 것은 비경제활동인구의 급증과 경제활동인구로 볼 수 없는 15~19세 인구 급감이 가져온 착시에 불과하다. 소득 분배가 개선됐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 올해 2분기 소득5분위 배율(상위 20%의 소득을 하위 20%의 소득으로 나눈 값)은 5.3배로 2003년 이후 가장 악화됐다.
진단이 정확해야 기업 투자를 일으켜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정책 쇄신도 가능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정확한 현실 인식과 솔직한 자성이 급선무다.
전문가 진단 실행에 옮겨야
그런 점에서 전문가 진단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대통령 직속 4차산업혁명위원회는 지난 25일 '대정부 권고안'을 발표하고 주 52시간 근로제, 대학 등록금 동결, 데이터 규제 등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회 위원장은 획일적이고 일률적인 정책을 비판하며 "가장 큰 문제는 '나를 위해 일할 수 있는 권리'조차 국가가 막고 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경제 활력이 둔화되고 있는 원인을 날카롭게 짚은 권고안이다. 정부와 국회뿐 아니라 노동계와 이익단체도 깊이 새겨들어야 할 내용이다.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인공지능(AI)을 활용할 신산업의 법적 토대가 될 개인정보보호법, 정보통신망법, 신용정보법 등 데이터 3법이 국회에서 낮잠을 자는 현실도 비판했다.
장 위원장은 '배틀그라운드'로 유명한 게임회사 크래프톤의 창업주이자 벤처 주역이다. 그런 만큼 그의 지적에는 경험에서 우러나온 생생한 문제 의식과 절박함이 담겨 있다. 그는 "게임산업만 봐도 한국이 중국에 밀리느냐 마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다"며 주 52시간 근무제 재설계를 요구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주 52시간제를 이유로 출퇴근을 확인하는 회사가 없고 해고와 이직은 일상적이라는 사실도 설명했다. 신용정보법 등 데이터 3법 개정이 몇 년째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실망도 표시했다. 규제 철폐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사실도 강조했다.
문제는 역시 이 자문기구의 권고를 누가, 어떻게 정책으로 현실화할 것이냐는 점이다. 그것을 정책에 반영하지 못하다면 무슨 소용인가. 그는 혁신의 최종 목표가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라고 했는데, 현 정부 목표와 동일하다. 정부는 4차산업혁명위원회 권고를 무겁게 받아들이고 우리 인재들이 마음껏 창의력을 펼치며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데 정책의 최우선 순위를 둬야 할 것이다.
임금·근로조건이 월등한 ‘노조 귀족’이 비정규직 등 ‘노동약자’ 위에 군림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깨지 않는 한 비정규직 문제는 풀 길이 없다.
그런 이중구조의 한 단면은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발표한 한·일 대졸자 임금비교에서도 새삼 확인할 수 있다. 중소기업 대졸초임은 양국이 엇비슷한데 대기업 대졸초임은 한국(약 4223만원)이 일본보다 31%나 높다. 대기업 노조들의 강력한 교섭력과 투쟁적 노동운동에 원인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태로는 사용자가 아니라 노동자가 노동자를 착취하는 ‘노·노 착취’ 구조를 심화시킬 뿐이다.
아르헨티나發 경제불안 경고
그런 관점에서, 심한 경제난을 겪어온 아르헨티나 '페론주의'의 최근 부활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5년 12년 만에 우파가 집권했을 때 ‘포퓰리즘 심판’이라고 했던 세계 언론의 평가를 돌아보면, 70년 된 ‘아르헨티나 병’이 얼마나 깊고 무서운 것인지를 다시 확인하게 된다.
빚더미를 물려받았던 우파 마크리 정부는 공공부문 축소와 긴축재정, 보조금 감축, 친(親)시장 정책을 시도했지만, 긴축도, 구조개혁도 고통스러웠다. 개혁에 소극적인 국민과 더불어 성장력·경쟁력이 고갈된 경제를 4년 만에 살려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1946년 후안 페론 집권 이래 지속된 마약 같은 포퓰리즘이 아르헨티나 국민을 좌경화로 몰아가면서 나약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경제는 앞으로도 다시 ‘마취제 요법’에나 기대게 될 공산이 크다. 결과는 보나마나다. 산업 국유화, 무상복지 강화 등이 현실화되면서 경제는 한층 악순환에 빠지게 될 것이다.
지난해부터 진행돼 온 국제통화기금(IMF)과의 구제금융 협상 방향에 따라 한국을 포함한 신흥국들에까지 아르헨티나발 경제 불안이 나타날 수도 있음을 경고치 않을 수 없다.
기초체력 계속 약화 ... 규제 과감히 풀어야
최악으로 치닫는 일자리 참사의 고리를 끊으려면 현 정권 들어 역주행하는 노동개혁의 불씨를 살리는 일이 시급하다.
정규직 과보호 정책을 접고 파견근로 확대 등 노동 유연성을 키워야 경제가 살아나고 일자리도 늘어난다. 기업이 투자를 늘리고 정규직 고용을 확대하는 선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 실패한 정책을 고집한다면 시장의 보복은 더 큰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일자리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노동 정책도 중소기업·비정규직에게 실질적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정부는 비정규직 대폭 증가라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반면교사로 삼아 고용 불안과 임금 차별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일자리를 줄이기 위한 특단의 대책을 수립해 제시해야 할 것이다.
재정에 의존한 일자리는 재정 투입이 중단되면 사라지고 만다. 정부는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는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하게 풀어 민간 일자리 확대를 유도해야 한다.
이젠 정부도 소득주도성장 정책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 효과도 없고, 지속가능성도 장담하기 어렵다. 이미 저질러 놓고 뒤늦게 해결 방안을 찾고 있는 주52시간 근무제도 마찬가지다.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우리 경제의 기초 체력만 떨어지기 마련이다. 기업들 스스로 투자를 늘리고 생산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