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10월 21일. 청와대에서 열린 종교지도자 초청 오찬간담회가 끝난 뒤 정치권에서는 한바탕 설왕설래(說往說來)가 펼쳐졌다. 간담회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국민통합이라는 면에서는 나름대로 협치를 위한 노력도 하고, 많은 분야에서 통합적인 정책을 시행하면서 노력을 해왔지만 크게 진척이 없는 것 같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었다.
야당에서는 문 대통령이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명 강행으로 국론을 분열시켜 놓고, 그 책임을 야당에 떠넘긴다고 비판했다. 반면 여당에서는 야당이 지지 세력 결집을 위해 국론을 분열시켜 문 대통령의 국민통합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고 반발했다. 그러나 사실 이 논쟁에서는 승자가 존재할 수 없다. 국민통합이라는 개념의 정의(定義)가 명확하지 않은 까닭이다.
‘여러 요소들을 조직해 하나의 전체를 이루는 일’이라는 통합의 사전적 의미를 적용하면, 국민통합이란 ‘5000만 명의 국민들을 조직해 하나의 전체를 만드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개인을 전체의 일부로 귀속시키고 집단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전체주의가 아닌 한, 국가가 국민들을 ‘하나의 전체’로 만들기는 불가능하다.
특히 ‘국가의 주권이 국민에게 있는’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개인의 의사가 존중돼야 하므로, 모든 국민이 일치단결해 하나의 목표를 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렇게 보면, 결국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통합은 ‘모든 개인의 이해관계가 합치하는 지점을 찾아내는 일’에 가깝다.
문제는 모든 개인들의 의견이 모이는 단 하나의 지점이 존재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 임명건만 보더라도, 우리 사회는 ‘임명 찬성’과 ‘임명 반대’로 나뉘어 극한 대립을 벌였다. ‘임명도, 사퇴도 아닌 중간값’이 존재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모든 사람들이 만족할 수 있는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통합은 결국 대화와 설득이라는 도구로, 각자의 의견이 100% 반영되지는 않더라도 수용 가능한 수준에서 합의를 도출해내는 일이다. 물론 수없이 다양한 생각이 존재하는 현실에서, 대다수 국민이 수긍할 만한 합의점을 찾는 일은 힘들고도 지루한 과정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지난(至難)한 과정을 거쳐야만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가능해지고, 사회적 공감대의 바탕 위에서 정책을 집행해야 국민적 갈등을 최소화할 수 있다. 어렵고 더디다는 이유로 다수결 원칙만 들이대면 국민은 분열한다. 반대로 답답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일지언정, 대화와 설득으로 끝끝내 공감대를 만들어낸다면 국민통합도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이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국민통합 논쟁’의 판결을 내려 보자. 권력을 가진 문재인 정부가 자신들만이 옳다는 생각으로 반대파를 무시한 채 ‘밀어 붙이기’만 했다면, 국민통합을 위한 노력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어렵고 더디더라도 대화를 통해 반대파를 설득하려고 했다면, “국민통합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해왔다”는 문 대통령의 주장에 한 표를 던질 수 있을 것이다. 과연 국민들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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