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과 들러리 세력 ‘예산안+선거법 야합’
'초대형 거품 예산' 미래세대 짐 지워
‘행정부 시녀’된 汎여당, 무너진 ‘협상 정치’
국민 92%, “이념 갈등 심각” "민생(民生) 외면"
한국당, 비쟁점법 우선 처리 동참해야
'먼지와의 전쟁'도 발목 잡은 국회
무법 폭주 국회, 여야 부끄럽지 않나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내년도 국가 예산이 파행으로 처리되고 말았다. 국회의 파행운영 행태가 실로 우려된다. 나라 살림살이에도 후유증이 클 전망이다. 초대형 거품 예산을 거의 원안대로 일방적으로 밀어붙인 더불어민주당도, 이를 결과적으로 방치한 자유민주당도 모두 책임을 져야 한다.
초법적인 임의기구가 예산안 심사절차를 훼손, 졸속처리 했다는 비판에서 국회는 자유로울 수 없게 됐다.
3권 분립과 국회의 기능 및 존재에 대한 비판론이 대두할 정도다. 민주주의 퇴행에 대한 우려까지 제기시켰다. 대법원 코드화에 더해 국회마저 ‘행정부 시녀화’의 길로 들어서고 만 형국이다. 예산 수립 및 심의ㆍ집행 과정의 근본적 개혁이 요구된다.
예산안을 제1 야당을 제외하고 속기록도 남지 않는 ‘깜깜이’ 심사로 처리했다는 것은 국민들을 무시하는 행위다. 여당이 군소야당과 총선용 예산을 담합한 것이란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내년 예산은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10.6%) 이후 10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늘어났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이 ‘초슈퍼 예산’ 시대에 돌입한 것이다. 민주당이 총선을 염두에 두고 만든 거품 예산을 거의 그대로 밀어붙인 셈이다. 국회선진화법 이후 예산안을 여권이 일방 처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수입은 무시한 채 지출 규모를 9% 이상 ‘슈퍼 팽창’으로 편성한 내년도 예산은 우리 경제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 분명하다. 나랏빚이 모두 698조원에 달하는데 문재인 정부 들어 3년 만에 예산이 112조원 급증했다. 재정을 거덜 낼 판이다.
민생(民生)만 골병
지금, 한국에선 정부가 포퓰리즘 정책을 내놓으면 국회는 이를 막는 것이 아니라 한술 더 뜨고 있다.
한국 경제는 저성장의 깊은 수렁에 빠져 있다. 여기서 나오려면 모든 분야에서 혁신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기존 사업자들의 눈치를 보고 낡은 법과 규제에 얽매여 혁신 성장을 가로막는 잘못을 범할 여유가 없다. 그럼에도 국회가 '오늘'같은 자세를 보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여야가 양보 없는 대치를 이어가면서 민생만 골병이 들고 있다.
예산안 처리는 올해도 법정시한을 넘겼고, 어린이보호구역에 과속단속 카메라 설치를 의무화하는 ‘민식이법’은 물론 데이터 관련 산업의 육성을 목적으로 한 ‘데이터 3법’ 등은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여야가 21대 총선을 의식해 표 계산에만 몰두할 뿐 민생은 안중에도 없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어느 때보다 선심 예산 나눠 먹기가 기승을 부린 것으로 관측된다. 야당 의원들까지 제 지역구 관련 예산을 늘리려 했다. 이 탓에 국회에서 한때, 예산이 정부안보다 오히려 10조원 이상 불어나는 기현상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국회 무용론(無用論) 대두
20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는 결국 파행으로 막을 내렸다. 새해 예산안이 자유한국당의 강력한 반발 속에 통과되는 등 마지막까지 극심한 정쟁으로 얼룩졌다.
예산안을 두고 여야가 극심하게 대치하다 막판에 졸속 처리하는 해묵은 관행은 올해도 되풀이됐다. 정국은 급속히 경색될 전망이다. 자유한국당은 “예산 폭거가 진행됐다”며 원천 무효를 주장했다.
정국은 한 치 앞도 볼 수 없게 됐다. 당장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에 오른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검찰개혁 법안의 처리를 둘러싸고 심한 충돌이 예상된다. 20대 국회가 가장 큰 기능인 예산안 심사도 제대로 하지 못함에 따라 국회 무용론이 대두될 수밖에 없게 됐다.
민주당이 군소 정치세력을 끌어모아 내년 예산안을 강행 처리한 것은 실로 심각한 일이다. 적자 국채 60조원이 포함된 513조원 규모의 초대형 내년 예산안이 국회 심의 과정에서 거의 수정되지 않은 채 겨우 1조2000억원만 삭감하는 수준으로 사실상 확정됐기 때문이다.
비공식 기구 '깜깜이 심사'
예산안 내용상의 문제점도 간단치 않다. 내년 4월 총선을 의식한 선심성 예산의 성격이 매우 강했지만 전혀 시정되지 못했다. 올 10월까지 정부 누적 재정적자가 45조5000억 원으로 2011년 통계 작성 이후 가장 심각한 상황인데도, 흥청망청이다.
이대로 가면, 내년 정부 통합재정 수지는 72조원 적자를 기록하고, 국가부채는 8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2023년에는 국가채무가 1074조 원에 달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사상 최대 규모인 512조3000억원의 슈퍼 예산이 일방 처리됐기 때문이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가 아닌 4+1 협의체란 비공식 기구를 통해 '깜깜이 심사'를 한 것은 물론 의결 전에 예산 증감 내역이 공개되지도 않았다.
민주당이 교섭단체인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의 원내지도부를 배제한 채 ‘4+1 협의체’라는 단체를 만들어 예산안 처리를 밀어붙인 것은 의회 민주주의를 흔드는 폭거다. 한국당이 “여권이 예산안을 날치기 처리했다”고 강력 반발하면서 정국은 꽁꽁 얼어붙었다.
여야가 이제는, 기존 입장에서 한 발짝씩 물러서야 해법이 도출될 수 있다. ‘사상 최악의 국회’라고 손가락질을 받는 20대 국회가 마지막 정기국회까지 빈손으로 끝낸다면 무슨 낯으로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할 건가. 여야가 이번에도 구태를 되풀이한다면 국민의 혹독한 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최악의 오명 20대 국회
문제는 앞으로도 경색 정국이 해소될 여지가 거의 없다는 것이다.
여야가 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된 이른바 패스트트랙 법안 처리를 두고 또다시 극한대치로 치닫고 있다.
대결의 축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다수 블록과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위주의 상대적 소수 세력이다. 이들이 격렬하게 다투는 패스트트랙 법안은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골자로 한 선거법 개정안, 그리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 법안이다.
이 과정에서 국회는 극렬하게 대치할 게 뻔하다. 식물국회, 동물국회라는 국민적 비판에 다시 직면하게 된다.
여야 모두 ‘국민의 뜻’을 운운하지만 정작 민생 정치는 실종된 상태다. 20대 국회를 ‘최악의 국회’로 꼽으며 여야 공히 ‘물갈이’에 총선 성적이 달렸다는 전망이 나오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범여권의 패스트트랙 추진 과정에서 발생한 물리적 충돌로 60여명의 한국당 의원이 국회선진화법 위반으로 고발됐고, 소속 의원 삭발과 당대표의 청와대 앞 단식 등 극한 투쟁으로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실종됐다.
당리당략만이 판을 치는 것이 우리의 정치다. 한국 사회가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활성화해야겠으나, 타협과 협력이 가장 취약한 곳이 정치권이다. 정치권은 갈등 조정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반성하고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마지막 순간까지 최악의 오명을 달고 정치 무대에서 사라지는 20대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심정은 실로 착잡하기만 할 것이다.
심각한 후유증 우려
예산안 일방처리의 후폭풍이 거셀수 밖에 없다. 이른바 ‘4+1 협의체’라는 정체불명의 기구도 그렇거니와 예산편성이 정치적 흥정 대상으로 전락해 심각한 후유증이 우려된다.
‘4+1 협의체’는 예산안을 주무를 법적 근거도 없다. 헌법 존중과 법치, 국회의 행정부 견제라는 민주주의 기본 전제를 여당이 앞장서 무너뜨렸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일방 처리된 내년 예산에는 ‘민식이법’ 같은 민생 법안이나 세계무역기구(WTO) 개도국 지위 포기 관련 예산 등도 들어가 있긴 하지만, 상당액이 협상 과정에서 포함시킨 여야 실세들의 지역구 챙기기용 ‘쪽지’ ‘짬짬이’ 예산이다.
국회는 심의 과정에서 기본 의무를 팽개치다시피 했다. 민주당은 자유한국당을 배제한 채 범여권 군소정당들과 함께 예산안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상임위와 예결특위를 거친 뒤 여야 교섭단체 원내지도부 합의를 통해 본회의에서 처리했던 관행까지 무너져 버렸다.
‘4+1 협의체’, 법리 논란 불가피
내년 예산안은 지난 10일 저녁 파행을 거듭한 끝에 일방 처리됐다. 본회의 시작 후 28분 만에 정부 원안에서 고작 1조2075억원을 줄인 512조2505억원의 ‘초슈퍼예산’이 확정된 것이다.
국회는 이날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4+1(더불어민주당·바른미래당·정의당·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합의한 512조3000억원 규모의 수정 예산안을 상정, 통과시켰다. 한국당이 격렬하게 반대했지만 4+1협의체가 수의 힘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예산안의 법정시한(2일)을 지키지 못한 국회가 예산결산특위를 패스해 ‘4+1 협의체’의 심사로 예산안을 확정한 건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예결위가 엄존하는 상황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그 근원적인 법안의 취지를 벗어난 일이다. 더욱이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는 4+1협의체가 수정안 작성의 주체가 된 것은 법리적 논란이 불가피하다. 여기에다 이 협의체는 예산 증감과 관련한 아무런 자료를 남기지 않았다는 소식이다. 의결 전에 증감 내역이 의원들에게 제공되지 않았다는 사실, 부수법안 통과에 앞서 예산안이 처리됨으로써 세입 확정 없이 예산안을 통과시킨 결과가 됐다는 점 등에서도 불법성이 제기된다.
'4+1 협의체'에는 제대로 된 교섭단체가 민주당뿐이다. 제1야당인 한국당이 배제됐다. 6석의 정의당에다 4석의 민주평화당, 창당도 안 한 호남 지역 의원들의 모임 대표가 들어가 있다. 교섭단체 자격을 갖춘 바른미래당은 원내대표가 "4+1은 사설 모임에 불과하다"며 반대하자 당 대표가 멋대로 다른 의원을 내보냈다고 한다. 그야말로, 제멋대로다.
특정 후보자에게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괴물처럼 만들었다는 '게리맨더링'은 있었지만, 집권당 입맛에 맞게 법안을 통과시키려고 특정 정당 일부 세력, 창당도 안 한 의원 모임 등을 끌어들여 법안과 예산을 다루는 괴물 같은 협의체를 만든 일은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당 배제는 국회를 보이콧했으니 자업자득인 면이 없지 않아도 문제가 있다. 논의과정도 비공개였다. 한국당 소속 김재원 예결위원장이 “기획재정부 공무원들이 4+1 협의체의 예산안 심사작업에 협력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주장한 배경이다.
한국당은 ‘예산안 날치기’라며 30분 넘게 격렬히 반발했다. 최악의 20대 국회가 마지막 정기국회까지 변칙으로 얼룩진 꼴이다. 한국당은 예산안 표결에 앞서 내년도 예산안을 500조원 미만으로 잡은 자체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정부가 ‘부동의’ 의견을 내면서 표결도 거치지 못하고 폐기됐다.
수(數)에 의한 폭주 용인
국회의 이 같은 일방적 처리가 관행화하면 협상의 정치는 실종되고, 수(數)에 의한 폭주를 용인하는 계기가 되어 나갈 것이다.
예산안에 대한 국회의 감시와 견제는 국회의 중대한 존립 이유 중의 하나다. 야당의 반대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했다고 ‘들러리 정당’을 세워 야합해서는 안 된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헌법은 제54조 3항에서 ‘준예산’까지 규정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정부 셧다운’까지도 감수하면서 막판까지 협상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회의 이번 예산심의는 절차도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 상임위와 예산결산특위 심사도 사실상 없었다. 민주당이 범여권 군소 정당들을 끌어모아 법적 근거도 없는 '4+1 협의체'라는 것을 만들어 예산을 심의했다. 이 협상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됐다. 회의록도 남기지 않고 논의 내용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깜깜이 통과’라는 비판을 자초했다.
과거 독재 정권 때 예산을 날치기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지만 적어도 무엇을 줄이고, 어떤 것을 늘렸는지는 야당에 알려줬다. 그런데 이번엔 예산 증감 내용조차 야당에 알려주지 않은 채 예산안을 통과시켰다는 것이다. 나라와 국정이 점점 더 무도한 방향으로 가는것 같다.
‘4+1 협의체’라는 표현으로 여·야의 광범위한 협력으로 포장해 강행 처리의 정당성을 과시하려 하지만, 말장난에 불과하다.
군소정당들을 운명공동체로
문제는 내년 총선을 염두에 둔 각종 선심성 사업으로 인해 예산이 과도하게 불어났다는 사실이다. 현금성 복지를 늘리고 단기 알바 일자리를 95만개나 만드는 한편 실업자와 빈곤노인 생계를 뒷받침하는 데 전체 예산의 35%가 책정됐다. 국회의 현미경 심사가 꼭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국회 심의 과정에서 내년 예산은 정부안 대비 9조1,000억원이 감액되는 대신, 정부안 제출 이후 ‘현안 대응 소요’ 등을 이유로 7조9,000억원이 증액됐다.
그 여파로 내년에는 복지 관련 예산이 약 1조원 줄고, 지역별 선심 사업에 필요한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이 9,000억원, 농림ᆞ수산ᆞ식품 예산이 5,000억원 증액된 ‘총선용 예산’이 되고 말았다. 꼭 필요한 복지 관련 예산이 찔끔 인상되는 바람에 어린이집 급식ㆍ간식비 최저 기준이 올해 1,745원에서 1,900원으로 오르는 것에 그친 것은 비난받아 마땅한 대표 사례가 될 것이다.
왜 이런 무리수를 뒀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들러리 군소정당들에 ‘당근’을 주면서 ‘4+1’로 선거제 개편과 공수처 설치 법안을 강행하기 위한 ‘예행연습’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군소정당의 실세들에게는 지역구 예산을 알뜰하게 챙겨줬고, 선거구 하한선을 편법으로 낮춰 현역 지역구가 사라지는 것도 예방할 것이라고 한다. 군소정당들을 범(汎)여권 운명공동체로 꽁꽁 묶어두려는 의도로 비친다.
선거법과 공수처법 향배 주목
사실, 국회의 이번 예산심의 파행은 제1야당 책임이 없다고 할 순 없지만, 압도적 책임은 온갖 불법성을 무릅쓰고 밀어붙인 자칭 ‘4+1 협의체’라는 ‘범(汎)여당’에 있다. 이들은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수사권 등을 묶어 정치적 '거래'를 해왔는데, 예산안 보조 일치를 계기로 한 배를 타게 됐다. 선거제도 개편안과 공수처 신설 등도 조만간 그렇게 처리하려 들 것이다.
마지막 정기회를 끝낸 20대 국회는 이들 법안을 다루려고 휴지기 없이 11일부터 곧바로 12월 임시회에 들어갔다. 법안 처리를 서두르는 민주당 의원 전원의 소집 요구에 따른 것이다.
내년 4월 15일로 예정된 총선의 예비후보 등록이 오는 17일 시작되므로 선거법 개정만큼 시급한 대형 의제가 따로 없다. 오랜 기간 검찰 개혁의 주요 수단으로 여겨진 공수처 설치 법안 역시 그 운명을 다퉈야 하는 진실의 순간을 맞고 있다.
관건은 역시 한국당이 선거법과 공수처법 등에 대해 대안을 내놓고 협상에 응하느냐다.
그러나, 민주당은 예산안 처리 때처럼 4+1 협의체를 가동해 이들 법안 처리를 밀어붙일 태세다. 한국당은 국회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무기한 농성에 들어갔다. 예산안 처리에 이어 패스트트랙 법안까지 일방 처리되면 그야말로 파국이다. 민주당이 한국당에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는 합의 노력을 해야 한다. 한국당도 새로운 원내지도부가 선출된 만큼 투쟁만 할 것이 아니라 협상에 임해야 한다.
'국민 혈세'를 야합 수단 악용
정부와 여당은 사상 최대 예산을 편성하면서 경기 활성화의 마중물로 쓰겠다고 밝혔다. 그래놓고 정작 기업 활동을 지원하는 산업·중소·에너지 분야는 오히려 줄였다. 국민의 혈세를 쌈짓돈으로 보고 이권을 관철하기 위한 야합의 수단으로 악용했다는 얘기다.
당초, 정부가 제출한 513조원 규모의 내년 예산안은 총선을 염두에 둔 선심성 거품으로 가득했다.
기업 활동을 뒷받침해 청년들이 선호하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지는 못하고 세금으로 공무원 자리를 늘려 청년실업을 해결하겠다는 발상부터 잘못됐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임기 중 공무원 12만 명 감축을 추진하는 반면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내 공무원 17만 명 증원에 목을 매고 있는 양상이다. 두 대통령이 나란히 임기 반환점을 돈 지금 프랑스는 '경제 모범국'으로 거듭난 것과 달리 한국은 경제가 '폭망' 수준이다. 국가 지도자가 무슨 일을 하느냐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갈라지는 또 하나의 대표적 사례다.
내년 예산의 지출 구성을 보면 확대된 액수의 절반 이상이 노골적인 현금살포식 복지 지출이다. 이런 식으로는 재정 확대가 경기 회복의 마중물이 아니라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공산이 크다. 지출을 늘리더라도 국제통화기금(IMF)의 권고처럼 구조개혁과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데, 다시 말해 경제 체질을 강화하는 데 사용해야 미래를 기대할 수 있다.
따라서, 어느 때보다 국회의 견제와 심사가 필요한 매표 예산안이었다. 그러나 여당은 수정안 접수 2시간 만에 심사도 없이 강행 처리했다.
예산안 처리의 헌법 시한과 국회선진화법 취지를 지키려는 여당의 고심을 이해할 수는 있다. 그러나 제1·2 야당을 팽개치고 군소 정치세력들을 모아 예산안은 물론 선거제도 개편까지 묶어서 처리하려는 것은 과거 독재(獨裁)정권 시절에도 없던 일이다.
결국, 예산안의 변칙 처리는 여야 정쟁의 결과물인 셈이다. 100일에 이르는 정기국회 회기가 결코 짧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선거법 개정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 등 패스트트랙에 오른 법안을 둘러싸고 여야가 충돌하는 바람에 시간을 다 까먹었다.
의장에 취임하면서 '타협과 협치'를 얘기했던 문희상 국회의장은 예산 부수법안을 먼저 처리하고 예산안을 처리해야 하는 안건 상정 순서까지 뒤바꿔 범여권의 일방 처리를 도왔다. 세입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세출 규모부터 법으로 통과시킨 셈이다. 과거 날치기 때도 지켜왔던 최소한의 규칙마저 깨뜨린 것이다.
'떡고물'로 날치기 통과…실세 의원들 한통속
문재인 정부는 한국을 상대로 수출 규제에 나선 일본, 대통령을 비판하는 야당에 대해 "무도(無道)하다"고 비판해 왔다.
그러나, 여당이 예산심의 과정에서 제1야당을 제쳐놓고 일방 처리하는 것은 물론이고 일방 처리할 내용조차 알려주지 않고, 일방 처리가 방해받을까 봐 국회의 관행도 무시한 것이야말로 무도한 행태다. 군사정권에서나 있었을 일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관련 의원 개개인들이 정부 입맛대로 예산안을 처리해주는 대가를 받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정치권이 한통속으로 떡고물을 받아 챙기면서 날치기 통과를 눈감아준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사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자기 과시성 지역구 예산 챙기기에는 여야 모두 한통속이었다. 여야 실세 의원들은 지역구 민원 예산을 챙겼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지역구인 세종시의 교통안전 환경개선사업 예산은 정부안보다 5억1,200만원, 정동영 평화당 대표 지역구의 지역 사업 예산은 당초보다 30억원 늘어났다.
날치기라며 반발했던 한국당 의원들도 마찬가지다. 예결위원장인 김재원 한국당 의원의 지역구 관련 예산은 무려 100억원 이상 증가했고, 예결위 한국당 간사인 이종배 의원 지역구의 민원성 예산도 5억원 이상 증액됐다. 장석춘 의원(구미을)은 예산안 처리 1분 뒤 ‘구미에 295억원 로봇인력 양성기관 유치된다’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뿌리기도 했다. 예결위 민주당 간사인 전해철 의원(안산 상록갑)은 정부안에는 없던 신안산선 2단계 사전 타당성 조사 예산을 2억원 증액했다. 또 신안산선 복선전철사업에 정부안 908억원에서 50억원을 추가로 따냈다.
더 가관인 것은 4+1 협의체에 참여한 멤버일수록 제 잇속을 더 많이 챙겼다는 사실이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의원은 군산시 옥서면 농어촌도로 등 지역구 사업에 670억원을 추가로 확보하는 등 남다른 예산 확보 능력을 발휘했고 조배숙 민주평화당 원내대표는 예정에 없던 미륵사지 관광지 조성 예산만 7억원을 따냈다. 유성엽 대안신당 창당준비위원장도 고창 동학농민혁명 성지화 사업 등의 명목으로 실속을 챙겼다.
전례없는 파행으로 얼룩
사실, 20대 국회는 전례없는 파행으로 얼룩져 왔다.
정부예산안이 법정시한 내에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게 비단 올해만은 아니다. 5년 연속이다. 그러고 보면 20대 국회는 정부예산안 처리에서 단 한 번도 헌법을 준수하지 않았다.
국회법에 따르면 정부가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하면 각 상임위원회 예비심사, 예산결산특별위원회의 본심사를 거쳐 예결위 산하 예산안등조정소위원회(소위)가 수정안을 마련한다. 수정안은 예결위 전체회의를 거쳐 본회의에서 최종 확정된다.
지난해에도 여야는 예결위 소위에서 예산안에 합의하지 못하자, 예결위 여야 간사만 참여하는 ‘소소위’를 임의로 구성해 간신히 합의해 수정안을 마련한 바 있다. 언론 등은 이 소소위는 법적 근거가 없고 비공개로 진행된 탓에 ‘밀실 심사’라고 비판했다. 여야 의원들의 민원성 ‘쪽지 예산’이 횡행했던 것은 물론이다.
20대 국회의 의정활동 성적은 18.6점으로 나타났다. `시민의 방송'을 표방한 tbs의 의뢰를 받은 여론조사 전문 `리얼미터'가 실시·분석한 결과다. 기준 점수가 `100점 만점'이라니 일반적인 낙제점에서도 먼 `바닥 수준'이다.
따지고 보면, 이번 예산심의의 '4+1협의체'라는 것 자체도 선거법 개정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정략적 한시적 합종연횡 아닌가. 삭발과 단식 투쟁을 내세우며 장외집회로 국회를 무력하려한 한국당의 행태도 마찬가지다. 대화와 타협의 정치는 실종되고 정쟁만 난무하는 작금의 정치판 현실이 부끄러울 뿐이다.
후반기 막바지까지 20대 국회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마음만 먹으면 막판까지 여야가 합의 또는 정상적 표결로 처리할 수 있는 사안이 부지기수다. 패스트트랙 최장 숙려기간 330일이 지난 유치원 3법 같은 개혁 법안도, 전날 처리되지 않은 예산 부수 법안도 어떤 식으로든 의결하거나 결론 내야 할 안건들이다. 여러 민생·개혁법안은 말할 것도 없다.
‘총선 정치공학’에는 탁월한 여당이 정작 국가 미래를 위한 혁신에는 무슨 노력을 기울였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고도 지지율이 높은 것은 민주당이 잘해서가 아니다. 지리멸렬한 ‘야당 복(福)’을 누리고 있을 뿐이다.
자유한국당 책임론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선거법 개정안과 패스트트랙 법안을 둘러싼 대치로 삭발과 단식으로 이어지는 극한투쟁과 장외집회 등 대화 실종을 자초하면서 국회를 무력화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민생법안까지 볼모로 잡은 한국당의 무더기 필리버스터 신청은 명분도 실익도 없는 정부·여당 발목잡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여론의 지지가 뒷받침되지 못했다. 여론의 지지를 못 받은 투쟁이 성공한 예는 없다.
더욱 가관인 것은 자유한국당 새 원내 지도부의 선거공약이다. 소속 의원들이 ‘패스트트랙 폭력 사태’로 처벌받지 않도록 하는 국회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현재 60여명의 한국당 의원이 국회선진화법 위반으로 고발됐다.
현행 국회선진화법 위반의 경우 500만원 이상 벌금형을 받으면 향후 5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된다. 자신들이 처벌받을 가능성이 커지니 아예 그 법 자체를 바꾸겠다는 황당한 발상이다. 입법권을 갖고 자신들의 보신책을 삼겠다는 것은 일반 상식으로도 이해할 수 없는 ‘특권의식’의 발로다.
국회 민생(民生)경시
현재 국회의 민생 경시는 실로 심각한 수준이다. 민생경시는 여야가 다르지 않았다. 국민 편익이나 미래 먹거리에 대한 고민은 전혀 없었다. 오로지 눈앞에 닥친 총선 표 계산만 있었다.
민주당과 한국당이 대치를 지속하면서 내년도 예산안 심의는 파행을 거듭했고, 데이터3법, 민식이법 등 민생법안은 정쟁의 볼모로 전락해왔다.
특히, 빅데이터 활성화에 필수인 ‘데이터 3법’은 또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으며, ‘일자리 보고(寶庫)’를 키우자는 서비스산업발전법안은 논의조차 안 했다. 주 52시간제 보완입법을 마냥 미룬 탓에, ‘계도기간 1년6개월’이라는 초유의 땜질대책을 낳았다.
추경 편성, 예산 증액 때만 “경제상황이 엄중하다”고 고개를 주억거리다가 기업들이 절실히 원하는 경제입법은 뒷짐 진 채 노동계와 이익집단의 눈치 보기에 급급해한다.
미세먼지 및 타다 금지법은 민생경시의 대표적 사례다.
국회가 기승을 부리는 미세먼지 대책의 법적 근거가 되는 미세먼지저감특별법 개정안을 지난달 7일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심의한 뒤 뭉개는 동안 미세먼지는 끊임없이 기승을 부렸다. 체감 효과를 기대하려면 이를 강제할 수 있는 법률이 필요하다. 그 법률을 만들지 않고 있는 국회는 국민의 건강권과 직결된 먼지와의 전쟁마저 발목을 잡고 있다. 일하지 않는 국회가 우리의 생명을 단축시키고 있는 셈이다.
미세먼지는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으로 예상됐다. 서풍을 타고 중국 먼지가 유입되고 있어서 그렇다. 최근 발표된 한·중·일 미세먼지 공동 연구 결과는 한국 미세먼지의 중국 요인이 32%임을 규명한 바 있다.
‘타다 금지법’과 민생
여당이 주도하고 야당이 묵인해 일사천리로 통과시킨 ‘타다 금지법’(여객운수법 개정안)도 대표적 사례다.
한국에선 렌터카 기반 차량호출 서비스인 타다뿐 아니라 택시의 영역을 조금이라도 침범할 수 있는 모든 차량 공유 서비스는 사실상 완전히 금지된다. 법률 사각지대를 활용해 운영한 지 1년여 만에 이용자가 150만 명이 넘고 국민 3분의 2가 지지한 서비스마저 국회가 기어이 불법으로 만들어 금지시키는 나라에서 새로운 모빌리티 서비스를 하겠다고 나설 사업자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소비자 입장에서 타다가 혁신적 서비스인 것만은 분명하다. 기존 택시가 충족시키지 못했던 양질의 서비스로 만족도를 높였고, 택시 업계 고질병인 승차거부와 난폭운전 등 불친절을 개선하는 효과도 있었다. 타다와 택시 간 서비스 개선 경쟁이 이용자 편익으로 이어진 것이다.
그렇지만, 이 정부 들어 타다의 검찰 기소로 신산업 도입 문제를 사법적 판단에 맡기는 나쁜 선례를 남긴 데 이어, 여당이 발의한 이번 개정안으로 기존 법 테두리 안에 없는 혁신적인 새 서비스는 할 수 없다고 아예 대못을 박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로써 한국은 혁신을 장려하기는커녕 법까지 개정해 신산업을 막아버리는 나라가 됐다.
더 한심한 건 야당이다. 시대역행적인 정부와 야당의 타다 금지법에 각을 세우기는커녕 “택시업계의 불만은 바로 표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타다에 손을 들어줄 정치적 실익이 없다”며 대다수 국민의 편익이 아닌 택시업계 편에 서버린 탓이다.
“과거를 보호하는 방법이 미래를 막는 것밖에 없나, 모빌리티를 금지해 국민들이 얻게 되는 편익이 무엇이냐”는 타다 창업자인 이재웅 대표의 절규를 여야 정치권이 이제라도 곱씹어 봐야 할 것이다.
난장판 국회 재현 우려
앞으로의 정국 향배는 실로 주목된다. 예산 일방처리에 이어 민주당은 4+1협의체를 가동, 선거법과 공수처법도 밀어붙일 태세다. 이에 한국당은 필리버스터와 함께 수정안을 대거 제출하며 시간을 끄는 전략을 구상중이다.
이 과정에서 여야는 또 지리한 공방과 극한 대치가 이어질 게 뻔하다.
선거법의 경우, 1987년 민주화 이후인 제13대 총선 직전 여당이 야당의 묵인 속에 단독 처리한 것 말고는 합의로 처리됐다. 당시엔 중선거구 제도에서 소선거구 제도로의 개편이라는 국민적 지지가 있었는데, 이번 연동형 선거제는 그런 정당성조차 없다. 여당은 유정회 시절에도 없던 독주를 멈추기 바란다.
의회민주주의의 기본은 대화와 타협이다. 어느 당도 자기 주장만 관철시킬 수는 없다. 민주당이 제1 야당을 제외하고 선거의 룰을 정하겠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선거법은 한국당과 합의 처리하는 게 옳다.
여야는 패스트트랙을 놓고도 건곤일척 협상을 벌여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당은 법안 자체를 반대해왔다. 특히 공수처법에 대해서는 더욱 강경하다. 접점이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여당이 범여 세력을 규합해 표결처리 하려 한다면, 지난 4월과 같은 난장판 국회가 재현될 것이 뻔하다.
여당은 패스트트랙 법안을 저지하려는 한국당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방해)를 무력화하기 위해 회기를 3~4일 단위로 나누는 ‘쪼개기 임시국회’ 전술까지 검토하고 있다. 헌정 사상 유례없는 편법 전술이다. 한 번 필리버스터에 걸린 법안은 다음 회기 땐 자동 표결해야 한다는 국회법을 이용한 것이다.
타협의 지혜 더 짜내야
이에 맞서, 한국당은 “의회 쿠데타를 막기 위해 결사항전하겠다”면서 의원직 총사퇴까지 거론하고 있다.
당초 한국당은 예산안 합의를 전제로 종전 신청했던 본회의 안건 무차별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철회하기로 했다. 그런데 그 전제가 충족되지 않은 만큼, 앞으로 임시회 본회의가 열리면 필리버스터를 실제 개시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당은 이미 본회의장에서 철야농성을 시작했고, 본회의장 앞 로텐더홀에서 규탄대회를 열어 법안 총력 저지를 다짐했다.
그러나, 한국당도 이제는 여당이 하는 일에 사사건건 반대만 하는 게 능사가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지난 1년간 한국당의 원내 전략 기조는 투쟁 일변도에다 대결 편향적이었다.
국회법에 따른 합법적인 입법 절차를 계속 무력화해선 안 된다. 무작정 반대만 할 게 아니라 대안을 내놓는 게 옳다. 양보할 것은 양보하고 받아낼 것은 받아내는 협상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스스로 고립되지 말고 대안을 가지고 협상에 임해야 한다. 지금은 법안의 핵심적 세부 내용과 처리 여부를 둘러싼 방법론에 관한 원내 전략이 필요한 때다.
민주당 역시 집권당의 무한책임을 가지고서 한국당과의 협상과 합의 노력을 끝까지 지속해야 한다. 예산안마저 제1야당과 합의하지 못한 채 처리해야 했던 대결정치가 왜 초래되었는지 통찰하고 타협의 지혜를 더 짜내야 한다. 그 대상에는 제1야당과의 합의 없는 선거법 개정이 가져올 후유증도 당연히 포함돼야 할 것이다.
'제3의 선택지' 창조적 노력을
선거법은 여야 간에 내년 총선의 규칙을 정하는 룰로, 핵심 쟁점이다. 선거법을 일방 처리한다면 여야 합의로 이뤄져온 역대 선거법 개정 역사를 욕보이는 일이 될 것이다.
공수처법도 여야의 시각차가 여전하며, 특히 공수처장의 중립성 확보 방안은 철저히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만약 여당이 군소야당을 동원해 다수의 힘으로 일방 처리할 경우 정국 파행의 후유증은 오래갈 수밖에 없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여당의 독주가 도를 넘으면 협상과 타협을 통한 의회정치는 실종되고 국정 운영은 파행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선거법은 여당이 당리당략 차원에서 군소정당과 거래하다 보니 정체성마저 불분명해지고 있다. 공수처는 최근 청와대의 선거개입 의혹에서 불거졌듯, 정권의 방패막이로 전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런데도 제1야당을 배제한 채 강행 처리를 밀어붙인다면 정국 파행과 민심 이반 등 심각한 후유증에 휘말릴 수밖에 없다.
여당은 이제라도 선거법과 공수처법을 합의 처리한다는 자세로 진지하게 협상에 나서야 한다. 지금은 국정 책임이 큰 여당의 협상력이 절실한 때다. 제1야당의 원내지도부가 새로 구성된 만큼 제3의 선택지를 찾아보는 창조적 노력을 해야 한다. 끝까지 협상을 포기하지 말고 꽉 막힌 정국을 풀 해법을 찾아내야 한다.
패스트트랙 법안 역시 여야 모두 벼랑 끝 전술을 버리고 반드시 합의안을 만들어내도록 협상력을 발휘해야 할 것이다.
이념 사회갈등 무겁게 새겨야
'국회와 정치권 개혁'에도 모두가 나서야 한다. 우선, 정부의 나랏돈 씀씀이를 견제해야 할 의원들이 자기 표밭 챙기기에만 몰두하는 구태가 더는 반복되지 않도록 시민 감시 활동이 활발해져야 한다.
오늘의 정치권 행보와 관련, 이념 갈등은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최근 삼성경제연구소의 ‘한국 사회 갈등과 경제적 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사회갈등지수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 회원국 중 네 번째로 높고, 연간 관리 비용으로 국내총생산(GDP)의 27%인 246조원이나 쓰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실제로 우리 국민들은 이념 갈등을 가장 크게 우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개한 ‘2019년 한국인의 의식·가치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우리 사회가 겪는 갈등 중 가장 심각한 문제로 진보와 보수 간 갈등을 꼽은 응답자가 전체의 91.8%였다. 이어 정규직과 비정규직(85.3%), 대기업과 중소기업(81.1%), 부유층과 서민층(78.9%) 등의 순으로 갈등이 크다는 게 우리 국민의 인식이다.
이념 갈등은 직전 조사인 2016년만 해도 순위가 다섯 번째(77.3%)에 불과했으나 3년 사이 14.5% 포인트가 오르며 올해는 첫손가락에 꼽혔다.
이 조사 결과를 정치권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 사회는 ‘내 편이냐, 네 편이냐’에 따라 옳고 그름을 달리하는 이분법적 싸움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사회정의, 공익존중이라는 말은 공허해졌다.
국회의원들이 임기 개원식 때 오른손을 들고 읊는 선서문은 `헌법 준수', `직무를 양심에 따라 성실히 수행할 것'이라는 구절로 돼있다. `차기 국회의원 선거 불출마'를 선언한 여야의 젊은 국회의원들이 오히려 더 미덥게 여겨지니 인지상정의 경우다. 오늘의 정치권은 이를 심각히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참된 의회정치로 진전을
여야는 마지막까지 대화와 타협을 포기해선 결코 안 된다. 그래도 안 될 경우 다수결 원칙에 따라 처리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소수 의견을 존중하면서 다수 의견에 따르는 것 그게 민주주의의 요체다.
'누더기' 타협이 아닌 이상은, 언제나 여야 합의로 입법을 완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원내 리더들의 정치력, 그리고 그에 힘입은 참된 의회정치로의 진전을 기대한다. 나라가 더 파국으로 치닫지 않도록 여야가 협상력을 발휘해 유종의 미를 거두도록 해야만 할 것이다.
이병도는…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