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살아있는 권력형 비리 의혹을 수사해야 하는데, 그 권력부에서 인사권을 쥐고 있다면 정치적 독립은커녕 정치검찰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 우리나라는 검찰 인사권을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이 쥐고 있다. 때문에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독립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검사에 대한 인사권을 검찰총장에게 이관시켜야 한다는 제언이 줄곧 제기돼오곤 했다.
그래도 나아진 것이 있으니 검찰총장과 사전 협의하에 검사 인사를 단행하도록 하는 제도를 법으로써 명문화해 놓은 점이다. 검찰청법 34조 1항에 대한 얘기다. ‘검사의 임명과 보직은 법무부장관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한다. 이 경우 법무부장관은 검찰총장의 의견을 들어 검사의 보직을 제청한다'고 나와 있다.
언제 만들어졌나. 노무현 참여정부 때 만들어졌다. 검찰에 대한 정부의 부당한 지휘감독을 방지하기 위해 법으로 준수하라고 제정해놓은 것이다.
하지만 이 조항은 참여정부를 계승한다는 문재인 정부 들어와 법 취지에 맞지 않게 무시되고 있는 중이다.
배성범 서울중앙지검장,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 박찬호 대검 공공수사 부장, 강남일 대검차장, 이원석 대검기획조정부장, 조남관 서울동부지검장, 윤대진 수원지검장 등. 모두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 중인 윤석열 사단으로 불린다. 대다수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 의혹, 청와대 감찰 무마 논란과 하명 수사 및 선거개입 등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리 의혹 등을 수사하는 지휘부들이었다.
문제는 지난 8일 이들이 돌연 한직으로 좌천됐다는 점이다. 윤 총장은 자신의 참모급 간부들이 좌천된 것을 뒤늦게 알았다고 한다. 법에 적시된 대로 검찰총장의 의견을 사전에 듣고 진행된 것이 아닌 것이다.
만약 절차를 어겼다면 직권남용에 해당된다. 위법성 도마에 오를 수밖에 없는 충분한 소지인 것이다.
법무부에서는 추미애 장관이 1시간가량 의견을 듣기 위해 시도했으나 윤 총장이 이에 응하지 않았다며 위법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있다. 오히려 인사 의견을 내라고 했는데 내지 않은 점에서 윤 총장이 인사권자의 명을 거역한 거라는 게 추 장관의 설명이다.
그러나 고작 한 시간이라는 말미는 궁색한 변명으로 들린다.
과거 故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영전인사 논란이 있을 무렵 민주당이 반발했던 사례를 되돌아보면 더욱 그렇다.
지난 2009년 야당 시절 민주당은 검찰총장 인사청문회가 열리기 일주일 전 서둘러 검사 인사를 단행한 이명박 정부를 향해 “뭐 그리 급해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엉터리 검찰인사를 해치웠느냐”며 “검찰청법을 위반한 명백한 불법 인사”라고 질타한 바 있다. 당시 법무부는 총장 직무대행인 대검찰청 차장검사의 의견을 청취했다며 해명했지만 민주당은 검찰총장으로부터 의견을 듣지 않았다는 점에서 법에 어긋난다며 강하게 반발했던 것이다. 그에 비춰 집권당이 된 지금 한 시간 이상도 못 기다린 작금의 모습은 내로남불이 아닐 수 없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수사가 끝난 것도 아니고, 수사의 칼끝이 청와대를 향하고 있던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윤석열 사단의 핵심부를 돌연 교체해버린 거니, 역대 초유의 검찰 학살이라는 비난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실정이다.
미국의 경우 워터게이트 사건을 수사 중인 검사를 잘라 지탄받던 닉슨 대통령은 결국 탄핵에 이르게 됐다. 용수철은 누르는 힘이 클수록 튕겨 오르고 그 힘도 커지는 법이다. 보복 인사성 권력 남용에 의한 오만과 독선이 도를 넘을수록 역풍의 세기 또한 강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일 게다.
현재 자유한국당에서는 추 장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대검에 고발한 상황이다. 그러나 직권남용 논란은 추가로 잇따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전망이다.
검사 출신의 박인환 전 건국대 교수는 지난 9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이번에 윤 총장의 손발에 해당하는 사단장급인 검사장을 좌천시켰다면 앞으로는 실제 직접 조사에 뛰어드는 평검사들을 교체시킬 수 있다”고 내다봤다.
보통 2차 검사 인사는 2월 중 진행된다. 박 전 교수는 “그때 윤석열 사단의 하부조직마저 다 잘라낸다면 수사 자체가 전면 올 스톱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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