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을 꿈꿨던 선거법의 종착지는 ‘획일성’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 우리나라에 정당은 몇 개인가요?
“글쎄요. 제가 아는 건 민주당이랑 한국당, 아니지… 미래통합당, 그리고 호남3당(민생당), 정의당 정도네요. 그런데 사실상 두 개 아닌가요.”
- 그럼 본인을 대변하는 정당은 몇 개인가요?
“하하하… 기자님도 아시면서. 우리나라에 그런 게 있을 리가요.”
역대 최고 비율에 달한 무당(無黨)층. 그들은 정당에 대한 지식을 묻는 질문에는 곧잘 답했지만, 정작 본인이 지지하고 싶은 정당을 묻자 쓴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2020년 3월 기준, 8개의 원내정당과 31개의 원외정당이 국회 안팎에서 활동하고 있다. 이에 더해 창당을 준비하는 33개의 위원회까지 합치면, 한국에서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모인 단체가 72개나 된다. 하지만 여기서 살아남는 정당은 고작 8개, 그중에서도 사실상 거대 양당뿐이다.
지난 2019년 동‧식물국회라는 최악의 평가 끝에 통과된 선거법은, 바로 이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다름 아닌 ‘다양성’이다. 양당의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다양한 정당에게 국회의 문을 열어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정치권이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를 앞두고 국민에게 건넨 선물은 실망스러웠다. 300석 의석 중 비례대표 의석은 한 석도 늘지 않았고, 군소정당의 원내 진입(봉쇄조항)은 현행 그대로 3%로 유지됐으며, 일종의 패자부활전이라 불렸던 석패율제는 도입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달라진 건 연동률 50% 캡에 제한된 30석뿐이었다.
크게 달라지지 않은 조항에도 불구하고, 선거법 개편에 희망을 갖고 출범한 정당과 창준위가 생겼다. 그들의 목표는 지역구 1석이 아니다. 정당 득표율 3%에 따른 비례대표 4~5석이 목적이다. 여성을 정치 세력화하기 위해 출범한 여성의당,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출범한 결혼미래당이 그 대표적 예다.
그러나 다양성에 대한 한국 정치권의 꿈틀거림은 처참하게 짓밟힐 위험에 처했다. 이는 ‘획일성’으로 돌아가려는 위성정당 덕분이다. 당시 자유한국당은 선거법 개정안 논의를 거부하는 과정에서 위성정당 창당을 경고한 바 있다. 이후 미래한국당이란 이름으로 통합당의 위성정당이 탄생됐다.
이를 비난하던 민주당마저 비례용 연합정당에 따른 손익을 따지기 시작했다. 초기에는 연합정당 합류를 두고, 부정적인 입장의 원내 소수 정당(민생당‧정의당‧민중당)과 긍정적인 입장의 원외정당(녹색당‧미래당)의 입장이 갈렸다. 4일 녹색당마저 ‘명분 없는 선거연합은 참여하지 않겠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여전히 진보 진영에서는 명분과 실리 사이에서, 명분을 내뱉으면서도 실리를 엿보고 있다.
한때 다양성을 꿈꿨던 선거법 개정의 종착지는 획일성이었다. ‘우리나라에 당신의 정당이 있나요?’라는 질문에는 다양한 답변 대신 어색한 침묵만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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