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판 경제로 중산층 늘리는 비전 제시”
“억울한 사람이 없는 세상 만들고 싶다”
“실현 전과가 족쇄 돼 계속 발목 잡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한국경제당은 4‧15총선에서 중산층을 늘리는 ‘발판 경제’를 비전으로 내놨다. 정부 산하 조직의 희망청을 신설해 어려움에 처한 개인이나 기업이 도약할 수 있도록 방법을 알려주고 지원하는 것이 핵심이다. 조금만 도움을 주면, 사회적 약자나 사업 실패자, 전과자 등 삶의 재기를 꿈꾸는 사람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텐데, 하는 바람이 모아져 한국경제당을 창당하게 됐다는 최종호(50) 사무총장.
여기에는 그의 뼈아픈 경험이 녹아있다. 뺑소니 사고로 모친을 잃고 직접 범인을 잡았지만 선처하게 된 사연, 정작 본인은 “잘 알지도 못하는 신문광고 대금 미지급 건으로 실형을 살고부터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전과로 발목이 잡힌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억울한 사람이 나오지 않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정치 결심의 이유를 전하는 최 사무총장은 보여지는 것과 진실의 이면은 또 다르다고 강조한다. 21대 총선에서 비례대표 4번으로 출마하게 되자 자신에 대해 전과자라는 딱지만 무성한 것에 소명할 기회를 갖고 싶다는 간절함이 담겨 있는 듯했다.
인터뷰는 당 소개부터 개인 얘기로 옮겨갔다. 지난 2일 여의도 사무실에서 가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1. 한국경제당
- 한국경제당은 어떤 정당인가.
“노선으로 치면 실용 중도다. 한국경제당은 문재인 정부의 지나친 친중 행보에 반대한다. 경제를 살리는 정당을 지향한다. 진보, 보수보다 중요한 것이 먹고사는 문제다. 이념 논쟁을 지양하고 경제를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선경후이(先經後理)의 정당이 되겠다.”
- 지난 2016년에는 친반기문 정당을 표방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원래는 반기문 전 사무총장을 지지하기 위해 창당했던 건가?
“처음 창당(당시 친반통일당)했을 때는 반기문 총장을 지지했다. 국회의원들이 만들거나 포함되지 않은 정당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지지 정당이었다.”
- 미래통합당을 탈당한 이은재 의원이 기독자유통일당에서 한국경제당 대표로 추대되고 비례대표 1번이 됐다. 어떻게 영입하게 된 건가.
“결이 맞았다. 정치는 행정이 중요하다. 이 대표는 행정에서 탁월한 경륜을 가진 분이다. 건국대 행정대학원 원장을 오래 했다. 총리 산하에서도 행정관리 경력이 풍부하다. 적임자라고 생각했다. 가슴이 따뜻하고 좋은 분이다. 능력도 있고 뛰어나다. 삼고초려해서 모시게 됐다.”
- 단기간 당적을 두 번이나 옮긴 것에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이 대표는) 미래통합당을 탈당하기 전에는 당적을 옮긴 적이 없다. 원래 기독자유통일당에서 비례로 영입했던 건데 종교 문제로 어쩔 수 없이 옮긴 것 아닌가. 뒤늦게나마 경제를 위해 한뜻으로 힘을 모을 수 있게 돼 다행이다.”
- 한국경제당은 현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 자체가 틀렸다고 생각한다. 이에 반대한다. 재난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방법 역시 틀렸다. 남미 식 포퓰리즘이 엿보인다. 그렇다고 베네수엘라와 똑같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문 정부의 정치‧경제 정책 방식을 놓고 베네수엘라나 베트남에 비교하는 일각의 시각도 있지만 그리 될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동의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나라 경제를 보면 일본식을 쫓다가 어느 순간 유럽식을 쫓아갔다. 한국식 경제에 맞는 해법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 당이 제시하는 경제 해법은 뭔가.
“해법은 두 가지다. 첫째는 발판 경제를 통해 중산층을 늘리는 비전 제시다. 소득 5분위 계층을 기준으로 설명하면 3분위가 2분위로, 2분위가 1분위로 떨어지는 등 계층 하락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를 완화하고 계층 상승을 유도하는 징검다리 정책이 필요하다. 이름 지은 것이 발판 경제다. 광고 보면 ‘거꾸로 타는 보일러’라는 말이 있지 않나. 상식의 전환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정책을 응축한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핵심 공약은 희망청 설치다. 미래창조과학부 산하 등에 ‘희망청’을 신설해 실패한 개인이나 기업인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계층 상승의 발판을 만들겠다는 취지다. 물고기를 잡아주는 것이 아닌 낚시하는 법을 알려주듯 재기하는데 필요한 실질적 방법에 대해 지원해줄 수 있는 청 단위의 조직을 마련할 계획이다.
둘째, 경제 성장을 뒷받침할 절제된 정부로서의 효과적인 정책 수반과 실용적으로 일할 수 있는 작은 정부로서의 해법 제시를 내놓고 있다. 그러려면 시스템 개혁과 규제 철폐가 돼야 한다. 새로운 전문가들과 정책이 수혈돼야 한다. 현안에 따라 작은 정부, 큰 정부를 오가는 탄력적 유연화 정책도 필요하다. 코로나 19 정국에서는 작은 정부보다는 경기부양책과 긴급 지원이 투입되도록 정부가 나서 줘야 하지 않겠나.”
- 목표 득표율과 의석수는 어떻게 되나.
“비례대표 9번이니까 9%다. 연동형 비례제 등 상대 당 득표율 조건을 봐야겠지만 대여섯 석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 (2일 기준) 한 여론조사기관의 비례 정당 지지율 조사에서는 1.7%정도 얻었다. 여타의 인지도를 쌓아온 제3의 정당들에 비춰 크게 밀리지 않는 모습이다.
“(재창당해) 나오자마자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경제 문제가 심각하고, 이를 풀어줄 만한 당에 민심이 모아지는 것이 아니겠나. 최대 현안이 경제인만큼 한국경제당에 힘을 모아 달라.”
2. 개인 얘기
- 고향인 대구에서 뺑소니 사고로 모친을 잃은 후 직접 범인을 잡아 화제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사회 진출을 준비하던 때였다. 아버지는 목을 수술해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러던 중 청천벽력 같은 사고 소식을 들어야 했다. 새벽기도를 하러 나간 어머니가 뺑소니 차량에 치여 숨지고 만 것이다.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범인이라도 잡아 어머니의 한을 풀어드리자, 안 그러면 평생의 멍에로 남을 것 같았다. 장례식을 마친 뒤 대학 후배들과 전단지를 돌려가며 목격자를 찾아 나섰다. 다행히 단서가 발견됐고, 20여 일만에 뺑소니 범을 붙잡을 수 있었다.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코너에도 소개될 만큼 반향을 불러일으킨 일이었다. 인천지방경찰청 내 최초로 뺑소니 전담반이 생기는 계기를 줬다.”
- 그런데 선처했다고 들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듯하다.
“딱한 사정 때문이었다. 가족들이 용서를 구하러 왔다. (뺑소니 범은) 새벽까지 일해 가족을 부양했다. 딸 하나와 노모가 있었다. 어렵게 살았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 ‘감옥에서 1년, 2년 더 사는 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다음날 처벌 불원서를 써줬다.”
- 사업체를 운영하던 중 신문광고대금 7600만 원 미지급으로 실형을 산 것이 맞나?
“당시 나는 전도유망한 업체의 대표이사이자 최대주주였다. 국내 최초로 IPTV의 전 단계인 쌍방향TV기술을 가진 핀란드의 ‘사락사’사와 계약을 체결하고 신기술을 준비 중이었다. 회사를 키우기 위해 공모도 했고, 신문광고도 게재했다. 정상적인 거래 4억 여 원도 다 지급했다.
그런데 나중 되니 내가 모르던 서비스 광고와 대포 광고까지 청구가 들어오는 것 아닌가. 당연히 모르는 일이니 지급할 수 없다고 했다. 급기야는 전혀 알지도 못하는 신문광고대금 7600만 원 미지급 건으로 갑자기 구속이 되고 말았다. 판결문도 신문광고 대금으로 돼 있었다. 정작 나는 광고 나간 것을 알지도, 계약한지도 몰랐다. 내가 결재한 것이 아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으로 실형을 받게 된 것이다.”
- 이해가 안 간다.
“회사가 어려워진 틈을 타 아이템을 뺏으려는 일부 세력이 모함을 한 것이었다. 영업소에서 고소하게 했고, 사실과 다르게 거짓 진술을 했다. 줄 의사도 능력도 없으면서 신문광고를 의뢰했으니 기망한 것이라며 사기로 내몬 것이다. 내가 인지하지도 못하는 광고 건을 두고서 꼼짝없이 당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하지만 정말로 내가 나쁜 사람이었다면 주주들이 먼저 고소를 했을 거다. 그러나 그들 중 누구도 고소를 하지 않았다. 너무 억울했다. 열흘 간 잠도 못 잤다. 민사상 다툼이 있을 수 있는 내용임에도 실형 1년 6월을 선고하더라. 만약 내가 억울하게 구속되는 일이 없었으면 이후에 전과가 생길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 그건 왜 그런가.
“실형 전과가 족쇄가 돼 나중에도 계속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벌금으로 끝날 것도 더 무겁게 내려지고, 사업으로 고소가 들어오거나 시시비비 건의 소지가 있으면 실형의 전력을 문제 삼아 전과의 꼬리표가 얹어졌다. 억울한 일들이 너무나 많았다.”
- 예를 들면 어떠한 일들인가.
“길에서 폭행을 당하는 여성을 돕다 처벌을 받은 적이 있다. 데이트 폭력이었다. 남자를 가로막았고 여자를 폭행하지 말라고 했다. 오히려 나는 맞기만 했다. 경찰이 오니까 상대 남이 내가 자신을 때렸다고 거짓 진술하더라. 여자는 남자 친구 눈치를 보는지 말을 못 하고 있었다. 나는 아니라고 했지만 경찰이 믿어주지 않더라. ‘당신, 실형 전과 때문에 어쩔 수 없다’면서….
한 번은 선거 관련 사업을 하던 중 실형 전과로 인해 황당하게 전과가 씌워진 경우도 있었다. 재물손괴와 건물 침입으로 벌금을 받게 됐는데 자초지종은 이랬다. 모 지역의 후보가 건물주와 협의가 됐다며 현수막을 달아달라고 하더라. 나는 계약서를 토대로 협력업체를 보내 현수막을 설치한 죄밖에 없었다. 그런데 건물주가 나중에 추가 현수막 게시금을 요구하며 고소를 해온 것이었다. 나는 그 건물에 가보지도 않았지만 대표이사다 보니 어찌됐든 벌금을 맞게 됐다. 2008년 공직선거법으로 입건이 됐을 때는 판사가 아무리 봐도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다고 한 적도 있었다.”
- 모든 게 억울하단 얘긴가.
“그것은 아니다. 지금처럼 잣대가 강하지 않을 때였지만 음주운전 전력에 대해서는 할 말이 없다.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술을 안 마시던 나였지만, 세상을 자포자기 비슷하게 하던 때가 있었다. 아무리 노력해도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것만 같았다. 다 포기하고 싶었다. 음주운전은 그때 저지른 실수였다. 고개 숙여 반성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다수는 처음의 실형이 없었다면 18범이라는 눈덩이처럼 불어난 전과를 갖지 않고 살아갈 확률이 훨씬 높았을 거다. 그래서 아까 그런 말을 한 거다.”
- 주홍글씨처럼 여겨졌겠다.
“어릴 때 (<주홍글씨>책을) 읽은 것 같다. 여주인공에게 (간통을 뜻하는) A라는 낙인을 찍었는데 착하게 살다 보니까 사람들이 나중에 그 A가 천사인 엔젤인 줄 알았다는 내용이었다. 내게도 범죄를 뜻하는 C(crime)라는 낙인이 찍혀 있다. 억울함을 떠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레미제라블>의 장발장 같은 사연을 생각해줬으면 좋겠다. 빵을 훔친 그는 가석방을 어기고 도망을 갔다. 실정법을 어기고 시장도 됐다. 하지만 선을 쌓아 많은 이들로부터 존경을 받았다. 내가 바라는 세상은 전과자라고 해도 흉악범죄, 강력범죄, 성범죄 등 악질 전과가 아니면 파렴치범들과 도매 급으로 치부하지 말고 재기의 기회를 주자는 거다.”
- 다른 얘기지만 이번 총선 출마자 중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들 수가 28명에 이를 만큼 상당하더라. 기소된 처지에서 후보자로 나오는 것이 과연 옳은가, 논란이 되기도 했다.
“눈앞의 잘못이 보인다고 해서 그것이 진실의 이면과 일치하는 것만은 아니다. 나에 대해서도 그렇다. 세금 체납 건만 해도 속사정은 또 다르다. 한번은 경기도교육감 후보자 관련한 선거 사업을 한 적이 있었다. 한 후보자는 수십억 원을 썼지만 15% 득표를 못해 선거 보전을 받지 못했다. 나는 그분의 형편을 고려해 15억 원 중 8억 원만 받기로 했다. 하지만 상황이 어려워지자 그마저도 지급받을 수가 없었다. 결국 나는 회사 협력업체를 정리하느라 도산에 이르렀고, 세금까지 밀리는 신세가 됐다. 그렇다고 악랄하게 받는 업자들처럼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런 속사정을 알아달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언론에서 무조건 전과 18범이라고만 쓰는 게 아니라 소명이라도 들어줬으면 싶다는 거다.
요즘 사회통합이 화두가 되고 있다. 통합이 되려면 너그러운 마음이 필요하다. 똘레랑스(관용)를 베풀다보면 지금보다는 나은 사회가 될 거라고 생각한다. 이재명 경기지사도 전과가 있고, 이광재 전 강원지사, 김종인 전 대표도 감옥에 갔다 왔다. 어느 의미에서는 벽을 넘어선 분들이라고 생각한다. 나 또한 넘어서냐, 못 넘어서나의 차이라고 생각한다.”
-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뭔가.
“지금은 형사조정제도가 생겨서 무분별한 전과자 양성은 전보다 줄어들게 됐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너무나 많다. 힘듦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에 내 형편도 어렵지만 사업하다 실패한 분의 변호사 비용 대납부터 고소인과의 합의 등을 도와준 적도 있다. 진짜 공정과 법치가 강같이 흐르는 세상을 갈구한다. 억울한 사람들이 좀 적게 나오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 이 한 몸을 바치겠다는 각오로 정치에 나섰다. 억울하지 않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가는데 일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전략과 아이디어로 승부한다. 2000년도에 쌍방향 TV 사업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5G 개념을 알았다. IT전문가는 아니지만 세상이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 미래 흐름에 관심도 많고 능력도 있다. 저출산 문제도 부양하는 사람이 적어진다는 쪽으로 논리를 접근하면 답이 안 나온다. 나는 내가 노년이 되면 우리 딸들이 부양을 해줄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 안드로이드나 복제 인간 등이 케어해주지 않겠나. 이런 통찰력을 가진 인재가 필요하고 나도 그중 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경제당도 마찬가지다. 작은 정당이지만 약한 정당은 아니다. 시대를 선도하고 국민 도약의 발판이 되는 정당이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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