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으로 최대혼란, 원점에서 黨 재건 과제
전면 쇄신만이 살길...차라리 해체 선언을
환골탈태 대신 자중지란, 민심은 더 멀어진다
주류와 세대교체로 보수 재건 새 기초 놓아야
결론은 뼈를 깎는 근본 체질 혁신 뿐
40대 새 보수리더십 순산(順産) 기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미래통합당의 미래가 암울하다.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벼랑 끝으로 몰렸다. 비상대책위 구성마저 계속 진통이다.
심한 내분 양상을 빚어온 '김종인 비대위'로의 전환 여부는 새 원내대표가 선출된 뒤에 처음부터 다시 논의될 전망이다. 김종인 비대위 출범이 사실상 무산되면서 통합당은 당분간 지도체제를 놓고 계속 내홍에 휩싸일 것으로 보인다.
통합당은 총선 참패 후 내홍을 수습하지 못하면서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었다. 지도부와 중진은 물론이고 원외 그룹, 김종인 비대위원장 내정자까지 뒤엉킨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양상을 보이면서 최소한의 수습책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계속 표류하는 제1야당을 대하며 보수 지지층은 물론 일반 국민들도 수심이 크다. 통합당의 지도 체제 공백이 불가피하게 됐기 때문이다. 당내 의견을 수렴하고 절차를 시행할 구심점조차 없는 백가쟁명 상태다.
거여(巨與) 앞에서 일심동체가 되도 부족할 판에 지리멸렬한 모습을 보면서 국민들은 또 한 번 실망했다. 자중지란하는 통합당의 모습은 깊은 성찰을 통해 하루빨리 전열을 정비하기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를 정면으로 외면하는 처사다. 보수 야당의 진정한 새 출발을 바라는 국민을 또 한 번 배신하는 행위다.
중진들 조직적 반발 산물
‘김종인 체제’ 출범을 둘러싼 내분은 통합당의 상황 인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상대책위 구성이 계속 진통인 것은 당권과 차기 대선 후보를 노리는 중진들의 조직적 반발이 이유로 보인다. 김종인 비대위 출범을 반대해 온 당내 중진들의 집요한 사전 작업의 산물이다. 배가 가라앉고 있는데, 좋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다투는 것과 다를 게 없다.
비대위 체제를 선택한다면, 위원장에게 실질적 권한을 주는 것이 당연하다. 원점에서 재건한다는 비장한 노력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김 전 위원장은 총선 전후 인터뷰 등에서 ‘파괴적 혁신’을 강조했고, 차기 대선후보 경선까지 전권(全權)을 갖겠다는 뜻도 밝혔다. 또한, 당을 혁신하려면 비대위원장이 2년 뒤 대선을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임기와 실질적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도 했다.
이와 함께 차기 대권 구도와 관련, 김 위원장이 1970년대생 경제 대통령론을 말하며 "지난 대선에 출마한 사람들 시효는 끝났다"고 하자 기존 대권 주자들은 반발했다.
결국, 통합당은 당내 중진들의 반발로 ‘김종인 비대위’를 4개월짜리 ‘관리형 비대위’로 전락시켰고, 김 위원장은 수용을 거부했다.
강력한 리더십 필요
통합당은 전국 단위 선거에서 4연속 패배했다. 다시 태어나지 않으면 보수 정치의 존립 기반조차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
그런 면에서, 김종인 비대위로 갈 수밖에 없는 당위성은 여기저기서 감지되고 있다.
당내 반대가 적지 않지만, 통합당 내에 김 전 위원장만큼 혁신을 이끌 만한 인물이 없는 것은 냉정한 현실이다. ‘늙고 낡은 불통 당’ 이미지를 벗는 것이 화급한 과제다.
8월 안에 치러야 하는 전당대회 전까지 당의 총선참패를 추스르며 재건의 토대를 다질 과도기적 비대위는 불가피하다. 공중분해된 당 지도부의 복원과 참패 요인 분석, 근본적 혁신과 세대교체라는 절체절명의 과제가 비대위에 달려 있다.
국민은 이번 총선에서 보수 정치세력에 유례없는 패배를 안겼지만, 보수의 가치를 지지하는 목소리 역시 엄존함을 확인시켰다.
이제는, 시대정신을 제대로 담아내는 보수 정당을 구축해야 한다. 당을 해체하고 재창당하는 수준의 혁신을 해나가야 한다. 지역 색채를 벗어던지고 이념적 지평을 실용주의적 중도로 과감히 넓혀 중도층에 다가가야 한다.
건물을 모두 부수고 신축하는 자세로 통합당을 재건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김 위원장의 추진력이 절대 필요하다. 자중지란에 빠진 통합당을 추스르려면 김 전 위원장처럼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 요청된다.
선거 직전에 공천을 끝내놓고 김 전 위원장을 영입했던 만큼, 이제라도 제대로 된 기회를 주고 성과를 엄정히 평가하면 될 일이다.
발상의 전환을
중요한 것은 일대 혁신을 소신 있게 밀고 나갈 비대위원장의 실행계획, 실천의지, 정치수완 같은 덕목이다. 그런 맥락에서 본인의 고사에도 불구하고 '김종인 카드'는 여전히 유효하고 강력해 보인다.
지금 국민들은 미래통합당을 지켜보고 있다. 통합당을 찍은 41%는 물론이고 여당을 찍은 49%도 주시하고 있다.
김종인 비대위는 당 분란 수습과 함께 일개 정당의 변화를 뛰어넘는 보수 정치세력 재건이라는 막중한 책무를 안게 됐다.
비상체제를 가동해 패인(敗因)을 통렬하게 분석하고, 그 위에서 어떤 정당을 만들지 설계해 당원과 보수층은 물론 국민의 신뢰를 호소하며, 그 다음에 새 지도부와 차기 대선 후보 선출을 염두에 둔 정치 일정을 진행하는 방안이 돼야 한다.
이념과 정책 재조정도 중요하지만, 시급한 것은 통합당의 주역을 새로운 인물로 바꾸는 정치적 세대교체다.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생각도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젊은 세대를 당 전면에 내세우는 발상의 전환을 할 때가 됐다. 과거에 매몰되지 말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젊은 보수'들, 당 활로 열도록 해야
인적쇄신이 역시 중요하다. 지금처럼 영남·60대·다선 중심 체제로는 통합당이 전국 정당과 미래 대안세력으로 거듭날 수 없다.
김 위원장은 당이 다음 대선을 치를 수 있게 준비하는 것을 비대위 목표로 삼고서 '1970년대생 중 경제를 공부한 사람'이 차기 대선 후보가 되는 게 좋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킹메이커를 자임하고 나선 그의 머릿속에는 애초 홍준표 전 대표와 유승민 의원 등 기존 잠재후보군은 원천 배제되어 있다는 의미다. 지난 대선에서 이미 심판이 끝났고, 차기 본선 경쟁력도 없다고 보는 셈이다. 방향은 일단 정확하다.
사실, 시대적 요구인 세대교체를 주저하고 과거에 머문다면 미래를 기약하기 어렵다.
1987년 토니 블레어 노동당에 정권을 뺏긴 영국 보수당은 2005년 38세 데이비드 캐머런을 당수로 추대해 부활했고, 2010년과 2015년 연속 집권에 성공했다. 특히 당 청년국을 재조직한 '젊은 보수주의(Young Conservatism)'라는 단체를 통해 지지층을 2030 유권자들까지 확산시켰다.
통합당도 김종인 비대위 깃발 아래 똘똘 뭉쳐 재기를 노려야 한다. 당을 바꾸겠다는 결심으로 깃발을 든 '젊은 보수'들이 비전과 패기로 당의 활로를 열도록 해야 한다. 김종인 비대위의 '40대 보수리더십' 순산(順産)을 기대한다.
새로운 '보수' 가치 추구를
보수 정당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합리적 보수와 온건 중도층을 아우르는 보수의 가치를 추구해야 한다.
통합당 비대위 체제는 단지 수단이며 서막에 불과하다. 결국 웰빙당, 꼰대당, 부자당, 냉전수구당의 낙인을 지울 만큼 깊고도 넓은 당의 일대 혁신을 통해 민심을 되돌리는 것이 관건이다.
중도 견인을 통한 외연 확대 지향을 명확히 하고 그에 걸맞은 따뜻한 보수, 평화 보수, 실용 보수로 거듭나는 것이 필요하다. 인물과 태도, 정책에서 환골탈태해 새롭게 태어나면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
튼튼한 안보를 바탕으로 잘사는 나라를 만든다는 보수의 이념을 새 세대의 유연한 시각으로 제시하면서, 새로운 보수가 어떻게 국가와 사회를 지키고 발전시킬지 희망을 보여주면 국민은 다시 지지를 보내게 될 것이다.
자중지란은 국민 배신
그런 면에서, 최근 통합당 내분 상황은 역대 최악의 선거 패배를 겪고도 반성은커녕, 주도권 챙기기에만 몰두하는 현주소만큼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김종인 비대위는 한나라당 시절인 2010년 이후 통합당의 8번째 비대위다. 선거에 질 때마다 어김없이 비대위 카드를 꺼내들었지만, 2012년 19대 총선을 앞두고 출범한 ‘박근혜 비대위’ 외엔 뚜렷한 성과를 낸 적이 없다. 근본적인 체질 개선 없이 위기모면용에 그쳤기 때문이다.
궤멸적 패배를 딛고 환골탈태해야 하는 지금, 다른 대안도 제시하지 않은 채 자중지란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보수야당의 진정한 새 출발을 바라는 국민을 또 한번 배신하는 행위다.
지금처럼 당내 잡음이 터져나온다면 차기 대권은 어림도 없다. 갤럽 여론조사 결과 당 지지율이 22%까지 떨어진 사실을 엄중히 받아들여야 한다. 이번에도 달라지지 못한다면 통합당에는 미래가 없다.
나쁜 정치 행태
사태의 발단은, 반대하는 다수의 중진이 김 전 위원장을 향해 원색적인 비방을 퍼부으며 반발 기류를 형성시켰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상임전국위원회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 차기 전당대회 일정(8월31일)을 삭제하기 위한 당헌 개정이 불발됐고, 김종인 비대위는 시한부 ‘반쪽짜리’가 되고 말았다.
4개월 임기의 관리형 비대위로 결론 났고, 김 위원장은 이를 거부했다. 관리형 '단명 비대위원장'은 결코 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일부 중진들은 뒤에서 조종해 상임전국위원들의 회의 참석을 막았다. 가장 나쁜 정치 행태다. 그런 사람들이 ‘중진’이라며 설치는 정당은 희망이 없다.
중진들이 반대하는 이유는 뻔하다. 김 전 위원장의 주장처럼 비대위가 무기한 전권을 행사하게 되면 자신들의 당내 입지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김 위원장의 반발로, 당분간 통합당은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 할 판이다. 쇄신의 기회로 여겼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마저 당내 중진들의 반발에 밀려 사실상 무산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근본적 수술 불가피
전국 단위 선거에서 4연패한 정당은 정치적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근본적 수술이 불가피하다.
지난 총선을 통해 국민이 통합당에 던진 메시지는 분명하다. ‘늙은당’, ‘꼰대당’, ‘웰빙당’으로는 절대 안 되니 뼈를 깎는 반성과 함께 변화와 혁신에 나서라는 것이다.
지금은 이런저런 조건을 달지 말고 ‘김종인 비상대책위 체제’에 모든 것을 맡기고 수술대에 오를 때다.
그래서, 중요해지는 것은 당심도 얻고 민심도 환기할 비대위 진용을 갖추는 일이다. 김종인 개인의 정치 경험과 카리스마에다, 당의 변화 가능성을 기대하게 할만한 비대위원 면면의 역량이 포개져야 한다.
주류 세력 교체가 동반되지 않는 노선 재정립이 사상누각임도 분명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지금 통합당은 충청권 지역당이던 자민련에 비견되어 '영남 자민련' 소리를 듣는 현실을 두려운 마음으로 직시해야 한다.
고 김종필 전 총리의 개인 지지세와 지역주의로 버틴 자민련은 시대 흐름에 뒤처지며 당세가 약화하여 창당 11년 만인 2006년 사라졌음을 기억해야 한다.
마지막 기회
‘강한 정부여당’을 견제하려면 그에 못지않은 ‘강한 야당’이 필요하다. 그래야 국정의 균형이 유지된다. 하지만 지금의 통합당에 이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당의 조기 수습을 위해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들어선다면, 그에게 전권을 주고 당 해체에 버금갈 정도의 대대적인 혁신에 나서야 한다.
김종인 비대위는 통합당이 거듭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당의 노선과 정책 방향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가 주어졌다. 당 쇄신의 가시적 성과물도 내놓아야 한다.
180석 초거대 여당을 견제하려면 국민의 확고한 신뢰를 다시 얻는 일이 화급하다. 차라리 중진들을 배제하고 이번에 당선된 초선 58명(미래한국당 포함)과 재선 의원, 선전한 3040 후보 및 신인들을 중심으로 신당(新黨)을 만드는 것이 더 나아 보인다. 1987년 민주화 국면에서 ‘이민우 총재’ 기득권 고수 때문에 상도·동교동계가 신당을 만든 선례도 있다.
통합당은 작은 이익을 버리고 보수 재건에 집중해야 하며 개혁을 추진할 체제를 속히 구축해야 한다.
김종인 비대위 체제가 맞부딪힐 현실적 난관은 계파 싸움을 제압하는 일이 될 것이다.
일단 방향이 정해지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기득권은 모두 내려놓는 것은 가장 먼저 전제돼야 할 일이다. 대안도 없이 비상 체제를 흔들기만 한다면 수습은 더 늦어질 뿐이다.
주류교체 세대교체 동시에 이뤄져야
당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려면 우선 사람부터 대폭 교체해야 한다.
통합당을 움직이는 핵심 당원들의 평균 연령은 60세가량이고 지역은 영남권이 50%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젊고 참신한 정치인들이 전당대회에 나서더라도 쉽게 지도부가 되기 어려운 구조였다.
이번 비대위는 통합당이 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무엇보다 전면적인 세대교체가 이뤄져야 하고, 비대위 구성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되어야 한다.
지도부 몇 사람만 교체할 게 아니라 핵심 당직은 물론, 당의 전체 조직에 주류교체와 세대교체가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특히 그 과정에서 지역적 색채나 우파 이념에 경도되지 않은 초선 의원들을 중용해 새로운 주류로 키워낼 필요도 있다.
당장 중요한 것은 당심도 얻고 민심도 환기할 비대위 진용을 갖추는 일이다. 당 안팎의 원심력을 억제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려면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 비대위원장 개인의 정치 경험과 카리스마에다, 당의 변화 가능성을 기대하게 할만한 비대위원 면면의 역량이 포개져야 한다. 외부의 합리적 보수나 중도 성향 인사들도 적극 영입해야 한다.
보수의 품격과 유연성을 회복하는 것도 시급하다. 중도층 이탈로 선거에 참패하고 골수 지지층만 남는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통합당 내부는 우경화·특정 지역화가 심해졌다. 싸움에만 능하거나 혁신의 요구를 거부하는 보수와는 선을 그어야 한다.
젊은층과 중도층으로 외연 확장을
이번 4 ·15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은 보수가 더는 우리 사회의 주류가 아니라 비주류로 밀려났음을 알려줬고, 30~40대 젊은이들이 통합당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는 것도 확인시켰다.
20~40대 젊은 층의 통합당 지지도는 한 자릿수에서 10% 초반에 머문다. 이번 총선 때 "문재인 정권이 잘못한 게 보여도 통합당이 지적하고 비판하면 짜증부터 났다"는 젊은 유권자가 적지 않았다.
변하지 않는 통합당에 대한 거부의 의미가 깊게 담겨 있다. 구태의연한 자세로 민심을 얻는다는 것은 이제 불가능하다. 830세대(1980년대생, 30대, 2000년대 학번)를 전면에 내세우자는 여론이 빗발치는 것 역시 환골탈태해 새롭게 변화하는 통합당의 모습을 보고 싶기 때문이다.
20∼40대 젊은층과 중도층으로의 외연 확장은 오래전부터 당의 핵심 과제로 제기됐지만 이번 총선에서도 한 치도 개선되지 않았다.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변화에 둔감한 당의 체질을 바꾸기 위해서도 젊은 세대 중용은 필수적이다.
통합당도 영국 보수당처럼 깜짝 놀랄 만한 과감한 세대교체에 나서야 지금의 위기를 돌파할 수 있다. 당 안팎에서 제기되는 40대 기수론도 이 같은 인적쇄신과 맞닿아 있다.
젊은 세대가 당에서 자력으로 성장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탄핵 찬반과 특정 인맥에서 자유로운 초선들이 전면에 나서고, 중진들은 열린 자세로 병풍 노릇을 하면 된다.
중도층 흡수 대선주자 관건
총선에서 나타난 유권자들의 표심은 중도보다는 극우에 더 다가가 있던 통합당의 이념적 정체성을 강하게 거부한다는 것이었다. 앞으로 당의 이념적 노선 자체를 보다 중도쪽으로 이동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노선과 정책 방향을 근본적으로 재설계해야 한다. 성장하면 과실이 돌아온다는 케케묵은 ‘낙수론’, 국가의 복지 기능 확대 문제를 퍼주기 시각으로만 접근하는 행태는 기득권층의 대변자로만 인식될 뿐이다.
국가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경제성장은 당연히 최우선 목표지만, 당장 하루하루가 살기 힘든 서민층에는 와 닿지 않는 그들만의 이야기일 수 있다.
차기 대권 전략도 관심사일 수 밖에 없다. 대선주자들을 외부에서 적극 영입해 당내 주자들과 경쟁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 통합당이 유권자들한테 재신임받기 위해선 결국 중도층까지 흡수할 수 있는 대선주자를 세우는 일이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2년 후 대선 승리를 위해 40대의 경제를 잘 아는 젊은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소신을 밝혀왔다. 스스로 통합당의 재탄생을 위해 불쏘시개가 되겠다고 했다.
수권정당 재도약은 전국적 대중정당의 지위를 회복할 만큼 당이 지지를 복원할 수 있을 때라야 가능하다. '40대 경제 기수'도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당심과 민심의 일치를 담보하는 경선 제도를 갖추고 당내 치열한 노선 경쟁과 권력 투쟁을 거쳐야만 비로소 경쟁력 있는 후보를 기대할 수 있다.
진정한 참회와 변화는 뒷전
현재 통합당은 지난 총선에서의 궤멸적 참패로 보수 정치 세력 자체가 와해될 위기에 봉착했는데도 이를 수습할 의지도, 능력도 없어 보인다.
선거 패배의 교훈을 찾는 대신 자중지란만 일으키고 갈팡질팡하는 통합당을 보면, 이런 정당이 수십년 간 우리 사회의 정치권력을 독점해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지경이다.
총선 패배 후 혼란에 빠진 당을 추스르는 일을 놓고 이런저런 의견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의견들이 당을 살리기 위한 논의가 아니라 세력 다툼에 기반하거나 밖에서 무책임하게 흔드는 방식이어선 안 된다.
이미 차기 원내대표와 당권·대권 경쟁을 염두에 둔 행보도 시작됐다. 이런 현상을 탓할 순 없지만, 국민 입장에서는 황당한 일이다. 이번 패배는 사실상 ‘제2의 탄핵’을 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임에도 진정한 참회와 변화는 뒷전이기 때문이다.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김 위원장 공격은 누가 봐도 도를 넘었다. 홍 전 대표는 27년 전 동화은행 비자금 사건까지 들먹이며 김 위원장 흠집내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노욕에 찌든 부패 인사’라는 극단의 표현도 마다하지 않는다. 노골적 인신공격이다.
홍 전 대표가 이렇게까지 나오는 이유는 뻔하다. 자신의 향후 행보에 김 위원장이 걸림돌이 된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5선이 되는 정진석 의원은 “홍 전 대표가 생각 없이 쏟아내는 막말이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며 “공인으로서 최소한의 금도조차 없는 그가 우리 당의 미래가 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한국 정치의 비극
비대위가 무산되는 과정이 보여주는 낡은 행태는 실로 문제다. 당의 환골탈태 가능성을 찾아볼 수 없다. 비대위 자체와 김종인 개인에 대한 반발이 쏟아졌다. 상임전국위를 무산시킨 당 안팎의 세력도 존재한다. 유승민 의원 등 영남권 출신 인사들의 김종인 체제 비토도 끊이지 않는다.
통합당 내홍은 현역의원·당선인 여론조사에서 ‘비대위 43% 대 조기 전당대회 31%’로 갈리면서부터 예고됐다.
일부 중진들은 대안 제시도 없이 비대위 출범을 흔들었다. 당의 미래와 쇄신을 위한 고언과 비판이 아니라 이해관계를 바탕에 깐 반대였다.
자신들의 당대표 출마, 대선 출마 등 향후 정치 행보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는 김종인 비대위원장 선임을 두고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혀왔다. 이로써 통합당은 21대 총선 패배 뒤 당을 수습할 수 있는 동력마저 상실한 상태로 빠져 들었다.
전국위에 앞서 열린 당선자 총회에서도 난상토론이 벌어졌으나 의견을 모으는 데 실패했다. 총선 참패의 직격탄을 맞은 당 지도부 공백 상태가 자중지란으로 번지는 형국이다.
대표적으로, 조해진 당선인은 “비대위원장을 맡는 조건으로 무제한 임기와 당헌·당규를 초월하는 전권을 요구하는 것은 오만한 권위주의”라고 김 전 위원장을 신랄하게 공격했다. 반면 김희곤 당선인 등은 “당 재건을 위해서는 비대위가 전권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배가 가라앉을 판인데 기득권을 놓고 싸우는 한심한 모양새다.
수습되더라도, 김종인 비대위의 앞날은 가시밭길 그 자체다. 일단 그가 원한 '무기한 임기'가 보장되지 않았다. 출발부터 불안한 모습이다. 비토 그룹의 반발과 불만도 김 위원장에게 큰 부담이다. 홍준표(무소속) 전 대표 등 무소속 인사들의 복당 이슈와 원내·외 중진들의 역할론 돌출은 언제건 갈등의 불쏘시개가 될 수 있다.
이미 평가가 끝난 사람들이 자리 욕심을 부리면 추할 뿐이다. 본인만 추해지는 것이 아니라 당 전체를 추하게 만든다.
총선 뒤 보수주의 가치를 재정립하자는 등의 논의가 당 내외에서 나오기도 했지만, 비대위 하나 꾸리지 못하는 정당에게 이런 기대는 연목구어나 다름 없다. 정치적 비전 제시는 고사하고 오직 개인의 정치적 미래에만 집착하는 탐욕만 넘치는 정당이 아직도 제 1야당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 정치의 비극이다. 정말 거듭날 의지가 있다면 기존 구성원이 기득권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대안도 없는 상황
이런 국면에서, 자중지란을 심하게 겪는 통합당에는 전권을 휘두를 수 있다면 김 위원장 같은 인물이 적격이라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결단력이 있는 김 위원장을 중심으로 하루빨리 비대위를 꾸려야 한다는 것이다.
말로는 자력갱생을 거론하면서 실제로 당의 재생 작업을 누가 맡을지를 놓고서는 별다른 대안도 없는 상황이다. 지도부에 제동을 건 3선 당선자 그룹과 홍준표 전 자유한국당 대표 등 원외 그룹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당내에서는 이들이 ‘보수 재건’에 앞장서지 않고 차기 당권 다툼에만 골몰했다는 지적이 많다.
이와 관련, 차기 원내대표 후보군으로 거론되는 일부 중진들은 인터뷰에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조속히 전환해 당 위기를 수습하고 대선을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이들은 김종인 비대위가 차기 전당대회를 준비하는 '관리형'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활동 기간과 권한이 충분히 보장된 '혁신형'으로 가야 한다고도 했다.
김 전 위원장은 비대위를 맡는다면 나락으로 떨어진 제1야당을 일신하기 위해서는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란 견해를 내놨다. 자신의 소신을 펼치기 위해서이지 자리 욕심이 아니라고 했다.
물론, ‘김종인 체제’가 모든 걸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더욱 더 개인적 이해는 접어두고 당을 살리는 데 한방향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 당의 중진이라면 특히 모범이 돼야 한다. 대안도 없이 비대위 체제를 흔들기만 하면 당의 혼란만 가중될 뿐이다.
현재의 분열상황을 보면, 비대위 출범은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우선 당내 이견부터 정리해야 한다. 몇 날 며칠간 난상토론을 벌여서라도 합의안을 도출할 필요가 있다. 당의 방향을 찾으려는 숙고와 토론의 시간이 필요하다. 20대 국회가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도 잊지 않길 바란다.
혁신의 통합당으로 재건을
김종인 비대위가 땜질 기구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통합당 모두가 기득권을 버리고 희생과 헌신의 자세로 새판 짜기에 힘을 모아야 한다. 분란이 이어질수록 민심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다.
선거 4연패를 했지만 대선이 남아 있는 만큼 절망만 할 때가 아니다. 냉정한 자기 진단과 통절한 자성, 환골탈태의 혁신만이 돌아선 국민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국정운영에는 권력을 견제하는 건전한 야당이 반드시 필요하다. 통합당이 내분을 극복하고 ‘강한 야당’을 하루빨리 복원해야 한다.
통합당은 의석 수에선 집권당에 대패했지만, 지역구 득표율 차이는 8%포인트에 불과했다. 국민이 회초리를 때리면서도 재건의 여지는 충분히 남겨 주었다. 무너진 보수를 제대로 일으켜 세워야 국정도 균형 잡힐 수 있다는 사명감으로 뼈를 깎는 쇄신에 나서주길 바란다.
보수를 품격 있고 신뢰받는 세력으로 재건함으로써 건강한 정치 세력으로 거듭나는 건 통합당의 선택지가 아니라 반드시 걸어가야 할 외길이다. '김종인 비대위'가 보수의 품위를 유지하면서 변화와 혁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통합당으로 재건해 주길 요구한다.
1952년 경남 진양에서 출생했고 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한 후 1981년 연합뉴스로 자리를 옮겨 정치부 야당출입 기자로 오랫동안 활동해 왔다. 저서로는, <6공해제>, <97년 대선 최후의 승자는>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