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청와대 마인크래프트’, 그리고 ‘저녁이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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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청와대 마인크래프트’, 그리고 ‘저녁이 있는 삶’
  • 박근홍 기자
  • 승인 2020.05.06 15: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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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 존중'한다던 文정부…노동자들은 일주일 밤을 샜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박근홍 기자]

어린이날 청와대 랜선 특별초청 영상 캡처 ⓒ 대한민국청와대 유튜브
어린이날 청와대 랜선 특별초청 영상 캡처 ⓒ 대한민국청와대 유튜브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여사는 어린이날을 맞아 '마인크래프트'라는 온라인 게임 속에 구현된 청와대로 어린이들을 초청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어린이날을 즐겁게 보내지 못하는 어린이들을 위해 가상 공간을 마련한 것이다. 이른바 '어린이날 청와대 랜선 특별초청' 행사다.

이날 청와대가 유튜브 등에 공개한 행사 관련 영상을 살펴보면 게임 속 캐릭터로 분한 문 대통령과 김 여사는 "여러분들이 잘 참아준 덕분에 우리는 코로나를 이겨내고 있다. 어른들도 처음 겪는 코로나를 이기기 위해 애쓰고 있다. 함께 조금만 더 힘을 내자"며 "우리 국민 모두는 코로나를 이기는 영웅이다. 오늘의 자랑스러운 여러분을, 우리를 기억하자"고 말했다.

취지는 참 좋다. 매년 청와대에서 열리던 어린이날 야외행사 대신 온라인 공간을 꾸며 코로나19 사태를 잘 이겨내고 있는 어린이들에게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게임을 통해 대통령 내외가 직접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그들의 마음을 위로했다. 또한 해당 게임 유저라면 누구나 즐길 수 있도록 청와대 마인크래프트 맵을 오픈소스로 공개해 4차 산업혁명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대한 우리나라의 비전이 밝음을 만방에 알렸다.

하지만 어두운 면도 포착됐다. 지난 1일 문 대통령은 근로자의 날(노동절)을 맞아 SNS를 통해 "산업재해는 성실한 노동의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 어떤 희생에 못지않게 사회적 의미가 깊고 가슴 아픈 일이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 산재를 줄이는 데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노동을 존중하는 사회가 돼야 함께 잘살 수 있다. 우리 경제가 상생으로 활력을 찾고 희망을 만들 수 있도록 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안전한 일터', '노동 존중'이라는 문 대통령의 근로자의 날 메시지에 가려진 현 정부의 민낯이 공개되는 데에는 불과 4일밖에 걸리지 않았다. 어린이날 행사 관련 영상이 공개된 날, 청와대 관계자는 "청와대 마인크래프트 맵 제작 인력만 30명 넘게 달라붙어서 일주일 넘게 밤을 새 영상을 제작했다. 아이들에 대한 고마움을 어떻게 정성스럽게 표현할까 고민했고,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선택해 정성을 많이 들였다"고 설명했다.

이번 어린이날 행사는 청와대와 한 국내 스타트업의 협업으로 마련됐다고 한다. 안전한 일터를 만들고, 노동을 존중하겠다던 문 대통령의 공언이 사실 허언이었음을 나흘 만에 청와대 스스로 입증한 셈이다. 행사를 기획·준비한 청와대 직원들, 그리고 맵을 제작한 스타트업 노동자들은 일주일 넘게 밤을 새면서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설사 그들이 기쁜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밤을 새며 작업을 진행했을지언정, 원청인 청와대는 그들에게 안전한 근무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았을까.

2018년 노동시간을 주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시행됐을 당시 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국민 삶이 달라지게 됐다. 이제 OECD 최장 노동시간과 과로사회에서 벗어나 인간다운 삶으로 나아가는 대전환의 첫걸음을 내딛게 됐다. 주 40시간 노동제를 시행할 때도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주5일 근무 정착으로 우리 경제와 국민 삶에 매우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정부·기업·노동자 등 사회구성원이 함께 부담을 나누며 조기에 안착시키기 바란다. 또한 이는 일과 생활의 균형, 일과 가정 양립을 얻을 중요한 기회다. 일하는 사람이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을 갖고 부모가 아이를 함께 키우는 것은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일이다."

문 대통령의 이런 발언과는 달리 '인간다운 삶', '저녁이 있는 삶'이란 우리 국민들에게 여전히 요원한 것 같다. 노동자들이 일주일 밤을 새 만든 가상공간에서나 있을 수 있는 '꿈만 같은 삶'이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중심으로 산업계 전반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隨緣無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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