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기현 법무법인 대한중앙 대표변호사)
지난달 존슨앤드존슨의 대표 상품인 베이비파우더를 비롯한 탤크 함유 제품을 사용하다 난소암에 걸린 여성 등 원고에게 존슨앤드존슨이 약 2조5000억 원을 배상하라는 미국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민사 책임에 징벌적 성격을 가미해, 실제 손해보다 많은 배상액을 인정하는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금액의 손해배상 판결로, 미국에서는 고액의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제도가 굉장히 보편화돼 있다. 흡연피해자의 배우자와 아들에게 24조 원의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한 레날드 담배소송 역시 대표적 사례다.
징벌적 손해배상이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악의를 품고 비난받아 마땅한 무분별한 불법행위를 한 경우 민사재판에서 가해자에게 징벌을 가할 목적으로 부과하는 손해배상으로, 실제 손해액을 훨씬 넘어선 많은 액수를 부과하는 제도다. 즉 가해자의 비도덕적·반사회적인 행위에 대해 일반적 손해배상을 넘어선 제재를 가함으로써 형벌적 성격을 띠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어디서부터 나온 것인지 살펴보려면 함무라비 법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도둑이 소나 양, 당나귀, 돼지, 염소 중 하나라도 훔쳤더라도 그 값의 열 배로 보상해 줘야 한다. 도둑이 보상해 줄 돈이 없다면 사형당할 것이다.’라는 구절에서 징벌적 손해배상의 유래를 찾을 수 있을 정도로 그 뿌리가 깊다.
대륙법계의 우리나라는 민·형사 책임이 이원화돼 있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있다. 또 기업에게 너무 큰 책임을 지우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에 반대의 목소리도 나온다. 다만 가습기 피해 사건, BMW 리콜 사태 등 기존의 손해배상제도로는 불법행위의 재발을 억제하는 기능의 한계를 느끼고 하도급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인정보보호법, 특허법, 제조물책임법 등 16여 개의 다양한 개별 법률에 관련 규정을 둠으로써 손해액의 3배의 책임을 인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 아직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적용된 판결은 많지 않다. 외국과 비교할 때 비슷한 사고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액의 차이도 현저히 크다. 2014년 미국에서 10대 소년이 차량 부품 결함으로 인해 사망한 사건에서 미국 법원은 현대자동차가 759억 원의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우리나라는 징벌적 손해배상액을 실제 발생한 손해액의 3배로 제한하기 때문에 미국과 같은 큰 금액의 배상판결이 나오기 어렵다.
물론 피해액의 10배까지 손해배상액을 늘리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일반조항을 둬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 대두되고 있지만, 입법부가 이를 주저하는 것은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란 이름 아래 비례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은 판결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민사재판에서 법관이 기업의 잘못에 대한 책임의 크기를 판단해야 한다. 따라서 형벌은 책임에 비례한다는 형법상 대원칙이 민사재판에서 고려될 지 미지수며, 형벌의 의미를 갖는 만큼 엄격한 기준의 정립이 우선돼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에서 기업의 ‘고의’와 ‘과실’을 구분하지 않는 것이다. 형사책임상 ‘고의’와 ‘과실’은 확연히 구분된다. 과실로 인한 결과에 대해서는 과실범 규정이 있는 경우에만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내가 실수로 뒷사람의 팔을 쳤더라도 형법상 과실폭행죄가 없기 때문에 처벌받지 않는다. 그러나 민사상 책임에 있어 고의와 과실은 동등하게 평가된다. 따라서 소비자의 손해 발생 원인이 기업의 과실로 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법원은 이를 고려하지 않고 손해배상액을 산정해도 무방하다는 것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충분히 억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과실로 인한 피해 발생조차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장치라고 이해한다면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다. 다만,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이나 스타트업 또는 벤처기업의 경우 기업의 존립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점에선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문제다. 더욱이 징벌적 손해배상 소송의 의미가 일반 대중들에게 부정적인 이미지로 각인되는 만큼, 소송에 휘말린다면 책임이 없더라도 기업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는다.
악덕 기업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을 묻는 것은 타당하다. 제조물 책임법의 개정을 가져온 옥시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249명의 사망자와 1500여명에게 후유증을 안겨줬다. 기업의 계속된 불법행위와 발생된 손해에 대해 회피하려는 태도 등을 고려할 때 가습기 살균제의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경제활동 속에서 기업으로 인한 여러 가지 문제는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기 위해 민사재판에서 형벌적 기능을 하는 판결을 내리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기업의 행위의 성질 △기업이 야기하거나 야기를 의도한 소비자에 대한 손해의 성격과 정도 △기업의 재력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적절한 판단을 위한 구조를 만드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 본 칼럼은 본지 편집자의 방향과 다를 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조기현 변호사
- 법무법인 대한중앙 대표변호사
- 서울지방변호사회 기획위원
-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법률고문
- 제52회 사법시험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