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기현 법무법인 대한중앙 대표변호사)
최근 캐리어에 갇혀 사망한 천안 아동학대 사건과 위험한 지붕을 건너 탈출해야만 했던 창녕 아동학대 사건이 뉴스를 통해 전해지면서 우리에게 큰 충격을 안겨 주었다. 작은 캐리어에 갇혀 의식을 잃었던 아이는 병원에 이송된 지 이틀 만에 사망했고, 지붕을 타고 집을 탈출했던 창녕 아이는 아버지의 학대로 손가락 지문이 남아있지 않았다.
천안 아동 학대 사건의 경우, 사망하기 한 달 전 의료진의 아동학대 정황 신고로 아동보호 전문기관의 가정방문 조사 및 담임면담, 경찰에 정보공유까지 이루어졌지만 ‘가정기능 강화’라는 지극히 행정적인 결론만 나왔다. 창녕 아동 학대 사건 역시 위기아동 대상으로 등록돼 있었지만 아이를 실제로 만나거나 집을 방문해 가정상태를 확인하는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코로나로 인한 가정방문 자제 공문이 내려와 담당자 방문이 여의치 않았다는 게 그 이유다.
창녕 피해아동의 담임선생님은 학습 꾸러미를 전달하러 집을 3번이나 방문했지만 피해아동의 친모는 그 때마다 집에 생후 100일이 갓 지난 아기가 있어 코로나19 감염이 우려된다며 집 앞에 두고 가라고 요구해 피해아동을 한 번도 보지 못하고 돌아갔다.
몇 번이나 피해 아동을 구조할 기회가 있었음에도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데 분노한 국민들은 아동보호기관이나 담임선생님의 가정방문 시 아동학대가 의심되면 강제로 집으로 들어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건을 감정적으로 본다면 충분히 나올 수 있는 말이지만, 위헌의 소지가 다분한 말이기도 하다.
아동학대가 의심돼 집을 살펴보고 싶더라도 부모가 허락하지 않는다면 아동보호 전문기관이 수사기관에 의뢰한 후 영장을 발부받아 조사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내 집 현관문을 강제로 열고 수색하는 것은 나의 의사에 반해 신체와 주거의 자유를 제한하는 ‘강제처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인 검찰과 경찰은 피의자에 대한 압수 수색을 진행 할 때는 반드시 법원으로부터 사전영장을 발부받아야 한다. 이것을 헌법 제12조 제3항에 규정돼 있는 ‘영장주의’라고 부른다.
영화를 보다 보면 검사가 영장이 기각됐다는 소리를 듣고 욕을 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한다. 수사기관은 영장 없이 국민들의 주거나 신체를 수색할 수 없다. 독립된 기관인 법원의 판단에 따라 수사기관에게 아주 제한적인 장소와 시간에서 수색할 권한을 주는 것이다. 따라서 검사가 피의자를 기소하려고 증거를 수집하기 위해 집을 뒤져보고 싶은데 법원에서 영장을 발부해 주지 않는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영장 기각이란 소리에 욕을 하는 것이다.
이렇듯 국민의 신체와 주거의 자유는 엄격한 절차 아래서만 제한돼야 한다. 때문에 행정기관인 공무원이나 민간 기관인 아동보호 전문기관에게 아동학대로 의심되는 가정을 수색할 수 있는 권한을 주자는 주장은 영장주의에 위배되는 말이다. 아동학대의 의심이 있다는 정황만으로 공무원이나 아동보호전문기관이 마음대로 문을 따고 들어올 권한을 주게 된다면 모든 부모들을 잠재적 학대자로 보는 것이기도 하다.
위의 두 사건으로 인해 아동학대 방지를 위한 ‘즉각 분리 제도’, ‘전수조사 실시’ 등 특별 대책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아동학대 관련 정책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그때그때 간극을 메우는 식으로 이뤄진다. 아직 메워지지 않은 간극도 있어 학대 의심, 신고, 조사, 수사까지 연결이 매끄럽지 않다.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가이드라인이 명확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기관끼리 사안의 심각성을 판단하는 기준도 다른 것 같다.
각 지역아동센터는 가정 내 학대 등을 이유로 보호를 필요로 하는 아동들을 선정해 ‘위기아동’으로 관리한다. 그러나 아동학대를 전담하는 공무원들의 직제는 만들었지만 정식으로 공무원을 충원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전국에 아동보호 전문기관은 200여 곳이 있지만 민간 기관으로 조사, 행정조치, 공공자료 접근, 경찰 협조 등의 부분에서 미흡한 점이 많다.
이런 상황에서 늘어나는 아동학대 사건을 근절하기 위해 아동보호기관에 새로운 권한을 부여하기보다는 현재 존재하는 아동보호 정책의 빈틈을 찾는 것이 시급해 보인다. 물론 이런 담론은 사회 속에서 학대 아동에 대한 관심을 가지는 것에서 시작해야 할 것이다.
초등학생 때 같은 반 학생 중에 매일 같은 옷에 제대로 씻지도 않고 가방도 없이 맨발로 학교에 오는 아이가 있었다. 아직 어렸던 학생들은 그 친구와 가까이 하지 않았다. 담임선생님도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가끔 얼굴에 멍이 들어올 때도 있었는데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 친구는 분명히 가정 내 아동학대에 방치되어 있었을 것이다. 가정을 제외하곤 가장 가까운 집단인 학교에서도 방치되고 있었다.
그 친구의 소식은 전혀 모른다. 아마도 자신이 당하는 것이 학대인지도 모른 채 자랐을 수도 있다. 아동학대 근절을 위한 국가기관의 작용이 원활히 이루어지기 위해선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거나 국가기관에 권한을 부여하기보다는 먼저 피해아동에 대한 우리의 관심이 필요하다.
※ 본 칼럼은 본지 편집자의 방향과 다를 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조기현 변호사
- 법무법인 대한중앙 대표변호사
- 서울지방변호사회 기획위원
-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법률고문
- 제52회 사법시험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