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인영 기자]
일본에서 자주 사용되는 ‘블랙기업’이라는 단어가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 단어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와 논란이 되고 있다.
‘블랙기업’이란 일본에서 노동자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는 기업을 칭하는 단어로, 악질적인 기업을 알기 쉬운 단어로 불러 노동자들이 이를 쉽게 공유할 수 있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최근 일본에 거주하는 흑인들이 ‘블랙(Black)’이라는 단어의 쓰임에 대해 불만을 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차별을 조장하는 단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뉴욕에서 2004년 일본으로 이주한 아프리카계 미국인 작가 바이에 맥닐씨는 “2008년 블랙기업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지만 그 뜻을 정확히 몰랐다”고 전했다. 영어로 블랙기업이라고 하면 흑인 사회를 위해 흑인이 영위하는 사업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에서의 블랙기업은 장시간 노동, 임금체불, 성희롱 등의 문제를 일으킨 불법 악성 기업을 가리키는 단어다. 이에 맥닐 씨는 “블랙이라는 말은 흑인 차별에 사용돼왔다. 물론 영어로도 ‘블랙리스트’ 등 부정적인 표현이 있지만, 문제를 인지하고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있다. 그러나 일본은 그렇지 않아서 마음이 아프다”고 전했다.
일본에서는 노동 문제에 대한 사회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좋은 기업을 ‘화이트 기업’으로 부르자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단어에는 ‘검정=악, 흰색=선’이라는 이미지가 담겨있다. 이에 일본에 거주하는 흑인들이 모인 페이스북 그룹 등에서는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모모야마가쿠인대학(桃山学院大学)의 오나베도모코(尾鍋智子)국제 교양학부 교수는 “일본에서 태어나 성장하고 근무하는 흑인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일본식 영어는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때 일본에서는 목욕탕 형식의 유흥업소를 일컫는 ‘터키탕’이라는 단어가 존재했다. 그러나 1984년 한 터키 유학생이 “터키에 대해 이상한 이미지를 갖게 하고 불쾌하다”고 정치인 등에 건의해 명칭이 바뀐 바 있다. ‘블랙기업’역시 같은 맥락에서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블랙기업이라는 단어를 주로 사용하며 노동 운동에 힘써온 사람들은 ‘블랙기업’이라는 단어에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2012년부터 악질적인 기업을 선정해 발표하는 ‘블랙기업대상’ 실행위원회는 “일본에서 사용하는 ‘블랙’이라는 단어는 흑인을 차별하는 사회적·정치적 단어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블랙기업이 문제라면 속내가 다른 사람에게 사용하는 ’속이 까맣다(腹黒い)’와 같은 일본식 표현도 모두 바꿔야하냐”며 일본어 표기를 변경할 계획은 없다고 전했다.
또한 블랙기업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미디어에 자주 노출시킴으로써 노동문제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다는 의견도 있다.
최근 한국 기업들 사이에서도 ‘블랙리스트’ 등의 단어를 쓰지 않는 등의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세계의 인권에 대한 관심이 나날이 높아져가는 가운데, 일본도 용어 변경을 시작할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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