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미국의 학자들은 이미 ‘학교는 죽었다.’ (에버트 라이머 저) ‘탈학교사회’(이반 일리치 저)등과 같은 책을 써서 근대 학교제도의 위기를 신랄하게 비판한 적이 있다.
우리나라 교육도 본래의 목적을 상실한 지 오래다. 전인교육이라는 교육 본래의 이념은 사라지고, 입시와 출세를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인식할 정도이다. 입시제도는 유능한 학생의 선발기능 이외에 고등학교 교육의 방향과 형태에 주는 영향, 대학졸업 후 사회적 지위의 분배 등 중요한 사회적 기능도 수행한다.
학벌주의는 교육뿐만 아니라 사회 문화 정치 경제의 전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학벌을 획득하는 것이 성공인 상황에서는 학부모와 청소년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학벌 추구에 전념할 수 밖에 없다.
최근 정두언 의원을 중심으로 시작된 사교육의 폐해가 외국어고등학교(이하 ‘외고’라 함) 폐지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다. 외국어 전문가로 육성해야, 어학 영재 키워야 하는 데 제 목적대로 안했다고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외고 출신들이 외국어를 바탕으로 한 진학률이 낮고 다른 전공을 하고 있다고 해서 강제적으로 학생들의 미래를 제어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학 선택권은 학생들에게 있다.
외고는 그동안 높은 수준의 교육의 양과 질을 얻기 위해서 외고 입학을 위해서 공부를 함으로써 학생들에게 높은 수준의 동기부여를 이끌어 낼 수 있으며, 우수한 인재를 선발할 수 있는 하나의 장치로 자리 잡았다. 외고 등 특목고가 그동안 수월성 교육을 통해 학력의 하향평준화를 개선하고 교육 경쟁력을 높이는 데 기여해 온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정 의원을 비롯한 외고 폐지론자들은 외고를 없애면 사교육이 대폭 줄어들 것이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까. 외고문제가 사교육문제로 등식화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나라는 외고 진학이 아니라도 사교육을 받고 있다. 공교육이 제 기능을 발휘하는 데 경제적 부담이 되는 사교육을 받을 필요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과외제도, 사교육 자체를 받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부모나 학생들의 학습 의지를 사교육 병폐와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강제적으로 없앨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외고가 문제가 되는 것은 외고 출신들이 소위 명문대 진학률이 높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에 진출해서도 법조계, 의학계 등 고소득층 직업에 진출하는 것이 많다. 특정고교가 사법시험에 많이 합격한다고 문제를 삼을 수 있는가?
지금의 외고 이전에 경기고, 경북고가 사법고시, 행정고시에 많이 합격하고 판검사와 고급 관료들을 많이 배출했다. 우리가 그 학교들을 잘못되었다고 한 적은 없다. 학교 성적이 낮은 고등학교를 질책하고 비판해야 마땅하다. 일반 학교 능력과 수준을 높여야 한다.
‘엘리트 학교`는 어느 시대,어느 곳에서나 존재한다. 미국의 경우도 공교육의 정상화를 기치로 내걸고 있지만 필립스 엑시터 아카데미,앤도버 등 명문학교는 버젓이 존재하고 있다. 영국의 이튼스쿨도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명문학교이다.
사교육문제가 일부 문제가 된다고 해서 외고를 폐지하자고 한다면, 더 나아가서는 외고 출신들이 입학하는 명문대를 없애자는 주장 또한 나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외고 출신들이 명문대에 진학하는 진학률이 낮고 취업률이 낮다면 외고에 진학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사교육문제의 병폐를 외고에 전가하거나, 외고문제에서 그 해결책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외고는 우리 교육의 일부일 뿐이다.
외고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이 아니라, 우리 교육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문제는 외고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학력사회인 우리나라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학력사회가 사라지지 않는 한 명문대학을 지향하는 학부모들과 학생들의 열망은 사라지지 않으며, 사교육문제 또한 쉽게 해결되지 않는다.
사교육문제가 생기면 상대적으로 학교교육을 중심으로 한 공교육 정상화와 비중 확대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심지어 일선 학교에서 과외나 학원의 선행학습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학교 수업을 등한시하는 것이 없는 지를 뒤돌아보고, 그 개선책을 찾아야 한다.
무엇보다 대학입시제도를 손질해야 한다. 그동안 시험성적 위주의 학생선발이 가져온 폐해를 막지 않는 한 사교육문제의 폐해는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 대학처럼 학교 성적 이외에도 지원자의 학업 성취 능력을 확인하는 입학사정관(Admissions Officer)제도를 우리도 확대 적용할 필요가 있다.
입학사정관 제도는 양적 자료에 의한 기계적인 학생선발이 아니라 입학사정관이 학생들의 다양한 경험과 배경을 고려하여 개인의 종합적인 측면을 평가한 선발 제도라는 점에서 우리의 입시제도와는 매우 차별화된 제도이다.
단 한 번의 시험으로 한 학생의, 한 인간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은 너무나 잔혹하다. 미국도 고교 성적에 따라 학교가 결정되는 것은 우리와 같으나 대학 재학 성적이 우수할 경우는 도중에 보다 우수한 학교로의 편입이 가능하며, 전공 학과를 입학 시에 반드시 정하지 않아도 되며(특수한 일부 학과는 예외) 비록 선택된 전공이라 할지라도 합리적인 이유만 있으면 얼마든지 바꿀 수가 있다.
시대상황의 변화를 대학 입시에 반영해야 한다. 학생의 시험 성적은 학생 개인의 능력이 아닌 부모의 능력에 따라 좌우되는 시대다. 부모의 경제력과 학생의 성적이 상관관계가 있다는 사실이다.
학생의 성적은 학생의 능력 이외에 부모의 경제력이 반영됨으로 이를 대학 입시에 반영해야 한다. 미국의 하버드대학이나 예일대 등 대학 입시에 입시사정관을 두어 시험 성적 이외에 대학생으로써 학업을 할 수 있는 가를 판단하는 것이 좋은 예이다.
미국 대학은 단순히 내신과 수학능력시험(SAT또는 ACT) 점수가 몇 점 더 높은가에 의해 합격여부가 결정되기 보다는 주어진 여건과 환경 내에서 얼마만큼 잘하는가가 중요한 판단기준이다. 그러나 우리의 대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신과 수학능력 시험 점수이다.
미우라 아츠시(三浦 展)가 던지는 충격적인 메시지가 담긴 자녀교육서『부모의 격차가 아이의 미래를 결정한다』는 제목이 사실이다. 통계를 제시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처럼 소득이 높을수록 사교육을 더 받고 있으며, 사교육을 받은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성적이 높다. 부모의 소득수준이 높거나, 학력이 높을수록 자녀의 학업성적이 좋으며, 성적이 좋은 학생일수록 사교육 참여비율이 높게 나타난다.
사교육문제 해결은 강제적이거나 강압적인 방법이나 수단으로는 해결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 심정은 누구나가 다 똑같다. 그러나 사교육을 받고 싶어도 경제능력이 없는 학부모들이 많고, 또한 부모 능력에 따라 경제적인 대물림이 이어진다는 것은 잘못되었다.
문제는 공교육 활성화만이 살 길이다. 경제적인 환경과 여건이 부족하고 교육기회에서 소외된 어려운 학교에 국가예산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교육환경 개선과 학습기회 제공 등 상향식 교육 평준화에 초점을 두어야 한다. 교사의 능력을 키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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