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기현 법무법인 대한중앙 대표변호사)
의료계 내 상급자가 인턴이나 레지던트를 폭행하거나 갑질하는 등의 사례들을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수련 병원 내에서 발생하는 상급자로부터의 신체·정신·재산상의 피해는 꾸준히 언급되는 주제다 보니, 국가 차원의 방지 노력 역시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오랜 관행을 짧은 시간 안에 바꾸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이는 게 사실이다.
때문에 지난해에는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과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인 '전공의법' 개정이 이뤄졌다. 해당 법안은 전공의의 △최대 근무시간 제한 △휴식시간 보장 △폭력 피해자 보호 등 수련환경 개선을 골자로 한다.
세부적으로 전공의의 근로·수련 시간이 주 80시간을 초과해서는 안되며, 연속해서 36시간을 초과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연속 수련 후에는 최소 10시간의 휴식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이 외에도 수련 병원 내에서 폭행 등 부당하게 피해를 입은 사실이 신고 될 경우 보건복지부장관이 직접 해당병원에 사건의 경위조사, 피해자 보호, 가해자 징계 등 처분을 명령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과는 여전히 괴리가 커 보인다. 수련 병원 입장에서는 전공의들의 줄어든 근무시간에 대한 재정적 지원이나 인력 보충안이 마련되지 않아 현 근무체제를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지난해 가천대학병원 전공의가 당직실에서 숨진 채로 발견되면서 조작된 당직표를 사용해 온 사실이 드러났다. 수련평가위원회에 제출하는 허위 당직표1, 병원장에게 제출하는 허위 당직표2, 실제 근무상황을 담고있는 당직표3 등 총 세 가지 당직표를 사용해 근로시간을 준수하고 있는 것처럼 활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병원 내 전공의 처우개선이 더뎌지는 배경에는 선호과, 비선호과 양극화 현상도 한 몫 한다. 성형외과, 정형외과 같이 다수의 학생들이 선호하는 과의 전공의들은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피해사실을 짚고 넘어가기 어렵다. 본인의 자리를 대체할 수 있는 인력이 많아서다. 반대로 극심한 전공의 기피현상을 겪고 있는 외과, 흉부외과의 경우에는 전공의의 근무시간 공백을 간호사와 교수, 전임의들이 담당하게 되다보니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수련 환경 개선'이라는 개정안의 궁극적 목적이 달성되지 못한 셈이다.
학과 양극화현상은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공공의대 설립 문제와도 이어진다. 공공의대를 설립해 10년 동안 지방 근무를 강제하는 식으로 지방의사 수를 늘리는 것은 일회성 인력 공급에 그칠 수 있다. 10년 지방근무를 마친 의사들이 의료수가가 높은 과, 인프라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수도권 지역으로 이전하게 된다면 지역·학과 양극화 현상은 늘어난 인력만큼이나 심각해지게 된다. 결국 의료수가 증가, 의료 과잉이라는 부수적인 문제까지 낳을 수 있다. 현실적인 지원책이 선행되지 않은 탁상공론식 정책만으로는 수 십 년간 이어져 온 관성을 쉽게 바꿀 수 없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직업선택의 자유가 있다. 생명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다른 직업보다 높은 주의의무를 가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과도하게 높은 도덕적 잣대를 근거로 한 객관성이 결여된 입법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공공의대 설립, 의과대학 정원증원, 전공의 특별법 등 전공의들의 근로 환경과 국민의 복지를 개선하고자 하는 입법적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특정 사건이 발생하고 난 이후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식의 입법은 보여주기식의 유명무실한 법으로 남을 뿐이다. 또 다른 문제 양산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현장의 현실적 상황을 충분히 파악해야 한다. 근본적인 원인을 살피고 해결해야 의료계의 처우 개선과 환자 진료의 질을 높이는 결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 본 칼럼은 본지 편집자의 방향과 다를 수도 있음을 알려드립니다.
조기현 변호사
- 법무법인 대한중앙 대표변호사
- 서울지방변호사회 기획위원
- 대한공중보건의사협의회 법률고문
- 제52회 사법시험합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