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는 출근한 상태로 퇴근할 권리가 있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조서영 기자]
3월 12일 쿠팡 김씨(46)
5월 4일 CJ대한통운 정씨(42)
7월 5일 CJ대한통운 서씨(47)
8월 16일 CJ대한통운 이씨(46)
10월 8일 CJ대한통운 김씨(48)
10월 12일 한진택배 김씨(36)
10월 12일 쿠팡 장씨(27)
10월 20일 로젠택배 김씨(50)
10월 20일 CJ대한통운 강씨(39)
올해만 10여 명의 택배 노동자들이 세상을 떠났다. 이들의 안타까운 죽음 뒤엔 대부분 ‘과로’가 있다. 그러나 심각성에도 불구, 실태조사가 이뤄진 적이 없어 정확한 통계를 알지 못한다. 때문에 각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제각기 다른 수치를 사용하고 있다.
김태완 전국택배연대노조 위원장은 지난 8월 “충격적인 사실은 노동부가 현재까지 택배 노동자들의 과로사 사망사고에 대해 한 번도 통계를 공개하거나 공식적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는 것”이라 지적했다. 김 위원장에 따르면, 산업 재해로 인정되지 않은 노동자까지 더하면 알려지지 않은 죽음은 더 많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이 20일 고용노동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올해 8월까지 5년여 동안 사망한 택배 노동자 가운데 14명만이 산재를 인정받았다. 이는 지난 5년간 매년 2.8명의 죽음만이 겨우 산재로 인정받았다는 의미다. 산재 인정은 CJ대한통운이 3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우체국택배와 한진택배가 2명으로 뒤를 이었다.
청년들이 택배 노동자들의 죽음에 목소리를 낸 이유
2030 정치공동체 ‘청년하다’를 포함한 10개 단체는 24일 <과로사 택배 노동자 추모-대학생 행진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한진택배 본사 앞에서 집결해 CJ대한통운 본사까지 행진을 이어갔다. 이들은 ‘주 71시간 노동은 살인이다’는 문구가 붙여진 택배 상자를 가슴에 품고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강민진 청년정의당 창당준비위원장은 “저와 청년정의당은 살아남은 자의 몫을 다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며 “사람의 목숨이 어떠한 이윤이나 비용보다 크고 무겁게 다뤄지는 노동현장을 위해 원내외를 종횡무진하며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라 말했다.
“이 분들의 죽음이 갑자기 찾아오진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증상이 있었을 것이고 ‘더 이상 버틸 수 있을까’, ‘이러다 죽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드는 나날이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고 살기 위해서 그 죽어가는 몸을 이끌고 택배 노동에 나서서 자기 몸의 몇 배나 되는 상자들에 짓눌렸던, 그 사람들이 그런 나날을 보내며 죽어갔을 걸 생각하면 너무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다.”
더불어민주당 청년위원장을 맡고 있는 장경태 의원 역시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에 관심을 가져왔다. 장 의원은 1호 법안으로 ‘택배산업 안심·안전법’을 입법하고, 지난 8월 ‘최저유통비책정위원회(가칭 최저택배위원회)’ 신설을 주장했다.
정의당 류호정 의원은 지난 9월 택배 노동자의 복장을 갖춰 입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는 릴레이 1인 시위를 했다. 류 의원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물량 증가와 새벽 배송은 배송 노동자들을 산업재해로 내몰고 있다”며 “일하다가 죽을 수 있는 노동현장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엘리베이터가 없는 곳의 4층과 5층 계단 사이에서, 심장을 부여잡고 직접 차를 몰고 간 병원에서, 터미널에서, 자택에서…. 그리고 수도권뿐만 아니라 광주, 김해, 경북, 대구, 부산 등. 이렇듯 택배 노동자들의 죽음은 장소와 지역을 가리지 않았다.
이들의 연령대는 주로 30·40대다. 수년 째 반복돼온 보상 없는 분류 작업과 긴 근무 시간에 대한 대안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죽음은 반복될 것이다. 그리고 그 죽음은 지금의 10·20대에게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김영민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에게 지난해 9월 ‘청년이 노동하기 좋은 세상’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적어도 노동하다 죽지 않는 세상”이라 답했다. 김 사무처장은 “노동이란 돈을 받고 노동력을 파는 것뿐”이라며 “기본적으로 일터 내에서 개인의 존엄과 인격을 지켜낼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노동하기 좋은 세상이 아니겠냐”고 말했다. 이제 우리 모두 일터에서의 죽음이 당연하지 않는 세상을 꿈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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