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텔링] 김종인이 서쪽으로 간 까닭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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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텔링] 김종인이 서쪽으로 간 까닭은?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0.11.04 18: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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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폄하 이미지 지워 중도층에 어필…서울시장 보궐선거 위한 포석이라는 평가도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호남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시사오늘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호남 공략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시사오늘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다시 한 번 광주로 향했습니다. 김 위원장은 3일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일을 맞아 광주를 방문, 행정부시장과 기초단체장들을 만나 정책을 협의하고 지역 중소기업인들과 간담회를 진행했습니다. 김 위원장이 광주를 찾은 것은 지난 8월 19일 이후 두 번째고, 호남행으로 따지면 지난달 29일 전북 전주 방문 이후 닷새 만입니다.

이처럼 김 위원장이 호남에 공을 들이자, 보수진영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옵니다. 호남에 신경을 쓰느라 ‘텃밭’인 영남을 홀대하고 있다는 겁니다. 무소속 홍준표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호남에 가서 벼락치기 공들인다고 서울 호남 분들이 보궐선거 때 우리당으로 즉시 돌아오겠나”라며 “김 위원장이야 그냥 나가버리면 그만이지만 이 당을 지켜온 우리들만 또다시 형극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는 김 위원장의 호남행이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입을 모읍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우선, 새누리당과 자유한국당을 거치면서 보수정당에 씌워진 ‘극우(極右)’ 이미지를 바꿀 수 있는 선택이라는 평가입니다. 사실 새누리당과 자유한국당이 극우보수 이미지를 갖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군부독재정권을 옹호하고 5·18을 폄하하는 듯한 언행이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특히 한국당 시절에는 국회의원들의 입을 통해 “5·18은 폭동”(이종명 전 의원), “5·18 유공자라는 괴물집단에 의해 세금이 낭비되고 있다”(김순례 전 의원), “5·18은 우파가 결코 물러서면 안 되는 문제”(김진태 전 의원) 등의 발언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이러다 보니 한국당은 중도보수에게서마저 외면당하는 ‘그들만의 정당’으로 전락했고, 중도보수가 이탈하면서 당의 색채는 더더욱 극우로 기울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됐습니다.

김 위원장의 호남행은 바로 이런 색채를 바꿀 수 있는 행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입니다.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해 무릎을 꿇는 건 단순히 호남 민심을 잡겠다는 차원이 아니라, 국민의힘이 ‘정상적인 정당’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는 상징적 이벤트라는 겁니다. 대한민국 선거의 승패를 가르는 것이 결국 ‘중도층의 민심’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호남에 공을 들이는 건 곧 국민의힘의 이미지를 바꿔 중도층을 끌어들이기 위한 포석이라는 거죠.

다른 하나의 이유는 좀 더 실리적입니다. 1960년대부터 이뤄진 우리나라 산업화 과정에서 가장 큰 발전을 이룬 곳은 영남이었습니다. 미국·일본 등과의 교류가 대부분이었던 당시 상황상 부산항은 ‘물류의 중심지’가 될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럽게 부산에서 가까운 영남이 ‘제조업의 중심지’로 발돋움했기 때문입니다. 이에 영남 출신들은 굳이 서울로 올라오지 않더라도 고향 근처에서 얼마든지 일자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반면 산업화의 주변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호남 출신들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향해야 했고, 수십 년에 걸쳐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서울 인구 중 호남 출신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더 높아졌습니다. 1987년 제13대 대선 당시 노태우(대구·경북), 김영삼(부산·경남), 김종필(충청), 김대중(호남)이 모두 출마해 각자 자기 지역을 가져가면 수도권에서 가장 지지율이 높은 후보인 DJ 본인이 당선될 수 있다던 ‘4자 필승론’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이론이었죠.

실제로 지난 2010년 <프리미엄조선>이 통계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서울 인구 955만 명 중 호남 출신은 150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정확한 조사 결과는 아니지만, 지금은 서울 인구 중 호남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훌쩍 넘겼다는 말도 나옵니다. 이러다 보니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대선 전초전’으로 보고 있는 김 위원장으로서는 호남 표심을 잡는 데 ‘올인’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라는 해석도 설득력을 얻습니다. 서쪽으로 향하는 김 위원장의 ‘광폭 행보’는 과연 위기의 보수를 구원할 수 있을까요.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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