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인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7인의 역대 대통령 평가를 해보는 의미 있는 판이 열렸다. 2022년 대선특별기획 ‘기적의 나라 대한민국, 7인의 대통령’ 이라는 제목의 세션이다.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과 시대전환 조정환 의원의 공동 주최로 6월 8일부터 7월 20일까지 매주 1회 오후 7시 여의도 하우스카페에서 진행된다. 대한민국 대통령 7인의 분투사 속에서 이 시대의 과제와 지도자의 덕목을 찾고 시민과 함께 기억과 망각의 역사를 넘어서고자 마련됐다.
각 세션은 △이승만(6월 8일) △박정희(6월 14일) △전두환(6월 22일) △김대중(6월 29일) △김영삼(7월 6일) △노태우(7월 13일) △노무현(7월 20일) 순이다. ‘역사는 그들을 왜 선택했고, 그들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시사오늘>이 따라가 봤다. <편집자 주>
1. 근대화 혁명 vs 쿠데타
‘故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 혁명인가 쿠데타인가.’ 여기 한 교수는 “5·16 하루만 쿠데타, 나머지는 혁명”이라고 평했다. 서울대 환경대학원 전상인 교수는 한국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대안을 모색해온 학자로 꼽힌다. 그는 지난 14일 ‘7인의 대통령’ 2번째 세션 주제를 맡았다.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공과(功過) 평가 및 재조명의 자리였다.
'박정희'라는 인물에 앞서 사전 배경부터 설명했다. 세계 근대화 흐름에 대해서다. "16세기 이후 거대한 사회 변동을 통칭해 근대화라고 얘기한다"고 정의한 그는 크게 자생적, 식민지, 제3세계, 파시즘, 농민혁명과 공산주의 등으로 나뉜다고 했다.
한국도 근대화를 거쳤다.
“가히 한국의 근대화를 저는 ‘근대화 혁명’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말하자면 압축 근대화를 겪은 나라입니다. 미국의 경영학자 피터 드러커는 ‘한국은 불과 30년동안 속도와 깊이에 있어서 역사상 전례가 없을 정도로 근대화를 이뤘다’고 극찬했습니다.”
대한민국이 환골탈태하기까지 그 중심에는 ‘박정희’가 있었다고 전 교수는 지목했다. 전 교수는 “박정희 대통령이 비록 독재자라는 평가를 받기는 하지만, 통상적인 정치가가 아니었다”는 점을 전제했다.
“저는 그에게 어떤 이름을 붙여주고싶냐면, 한국 근대화의 MP(마스터플래너)였다고 이름 붙여주고 싶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대한민국 근대 혁명의 총괄 계획가, 최상의 플래너였습니다. 박 대통령은 굉장히 전략적이었고, 종합적인 안목을 가졌어요 이 세상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할 줄 알았습니다. 프로페셔널한 지식을 갖췄고, 전문성이 있었지요. 그래서 저는 (1961년) 5·16 단 하루는 쿠데타였고, 나머지 18년 집권은 장기적인 혁명이라고 생각합니다.”
흔히들 ‘박정희’에 대해 국가주도주의 통치를 해왔다고 평한다. 반(反)자유시장경제적이었다는 지적이 들려오는 이유다. 강연을 듣던 중 이같은 물음표가 머리 위로 솟았다. 마침 전 교수가 답을 내놨다.
“‘박정희’는 시장 경제를 하지 않았습니다. 왜냐. 당시 한국은 시장경제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시장을 왜곡한 게 아니라, 시장을 만들었습니다. 5개년 경제개발계획 등을 통해 시장을 만든 것입니다. 당시는 국가 발전의 종잣돈도 없었습니다. ‘박정희’는 차관을 통해 재원을 조달했고, 경제성장을 주도했습니다. 산업단지를 만들고, 도로를 깔고, 공장을 지었습니다. 연평균 성장률이 8.5%를 넘어 두 자릿수 이상이 될 때도 있었습니다. 상당 부분 민생고를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박정희 업적’ 중 가장 높게 평가받는 경제성장에 대해 설명한 것이다. 다음으로 ‘박정희로 인한 세계화’도 전상인 교수가 힘줘 언급한 대목이다.
“이승만 대통령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거치며 대한민국은 경제적으로 산업화 시대를 맞아 세계의 창을 열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 ‘박정희’를 통해 우리는 대륙에서 해양으로, 글로벌스탠더드의 길을 걸었습니다.”
2. 지도력과 박정희
그러면서 강조한 것이 ‘지도력’이다.
“세계에서 강대국을 이룬 위인들은 대부분 ‘지도’를 통해 '상상력'을 넓혀온 엄청난 지도력의 소유자들이었습니다. 이승만·박정희 두 대통령은 ‘지도’를 볼 줄 아는 리더였습니다. 우리가 어디쯤 있고 어디로 빠져나오면 되는지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후의 대통령들은 지도력이 낮다고 생각합니다.”
‘박정희 시대’ 고속성장을 이룬 데에는 운도 작용한 듯 보인다.
“여러분, 컨테이너 박스가 언제 처음 만들어진 줄 아십니까. 1956년 미국에서였습니다. 이것이 만들어지기 전 지금과 같은 무역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이 세계로의 지평을 열자고 마음먹었을 때 컨테이너 시대가 축복처럼 열린 겁니다. 이에 착안해 조선소를 건설했고, 대박을 터트렸습니다. 수출 주도의 산업을 성장시킨 것입니다. ‘도쿄 올림픽’에 자극받은 그는 또 언젠가 해외여행객들이 한국에 올 날을 준비했습니다. 지금의 잠실 88올림픽 부지를 사들인 것이지요. 이 예견은 적중했고, 훗날 88올림픽으로 대박이 난 거 아닙니까.”
‘숙정’ 등 정부 혁신에 나선 점도 ‘공’으로 꼽혔다.
“그 시절만 해도 지방 공무원 형태는 조선시대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나오는 관리들의 부정부패 행태와 비슷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공무원들 임금을 두세배 올렸습니다. 지역 주민들을 쥐어짜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정기적으로 공무원들을 상대로 일제히 정화 운동을 벌였습니다. 부정부패 공무원들을 솎아냈습니다. 전문관료제 발판을 마련한 것입니다.”
전 교수는 “공간 계획, 주거 혁명 역시 박 대통령의 공”이라고 언급했다.
“위대한 문명에는 위대한 도시가 있습니다. 정도전이 조선 한양을 요즘으로 치면 신도시로 키웠다면, 박 대통령은 서울을 대도시로 변화시켰습니다. 기와집을 지으면 20만 호가 맥시멈이지만, 박 대통령은 아파트를 짓는 주거 혁명을 통해 서울을 발전시켰습니다. 한국 근대화 혁명에 필요한 도시 계획으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한 것입니다.”
지금까지 전 교수 설명의 ‘대한민국 근대화 혁명을 이룬 박정희 대통령의 10대 공적’ 중 일부가 소개됐다. 이 외에도 남북 간 체제 우위 입증, 새마을운동 농촌 혁명, 의식 개혁, 과학기술혁명, 녹색혁명 등이 10대 공적 안에 포함돼 있다.
3. 토크빌 효과
아이러니함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일어난 토크빌 효과(Tocquevillean effect)다. 민주화를 이룩한 점이 대표적이다.
“일각서는 박정희 대통령이 아파트를 많이 지어 도시를 망쳐놨다고 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산업화 시대의 경제성장이 중산층을 만들고, 아파트를 가진 이들의 힘이 커지면서 한국의 민주화 요구는 커졌습니다. 넥타이부대가 6월 항쟁 기간 (전두환 정권의) 호헌을 막아냈습니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의도하지 않은 일일 테지만 경제성장의 힘으로 민주화가 이룩된 것이지요.”
사회통합, 국민 통합도 토크빌 효과라고 전 교수는 덧붙였다.
“김영삼 대통령(YS)이 민정당, 공화당과 삼당 통합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DJP(김대중+김종필) 연대를 했습니다. 이미 산업화와 민주화는 통합을 이뤄낸 것 아닙니까? 산업화 세력, 군부 세력, 민주화 세력으로 나눠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사회를 바라볼 땐 균형적인 시각에서 봐야 합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두고 친일했다고 하는데, 그는 일본을 이기는 극일 전략도 펼쳤습니다. 역으로 물어봅시다. 친중 사대주의 정치인들은 문제가 없는 겁니까.”
전반적으로 이번 세션은 ‘박정희 지도력의 재발견’에 초점이 맞춰진 듯했다. 전 교수는 후반부 강연을 갈무리해나갔다.
“박정희, 그는 영웅도 초인도 아닙니다. 독재자인 것은 독재자이죠. 그런데 앞선 공적들에 다 눈 감고 독재자로만 치부하는 것은 또 다른 비약이 아닐까요.”
자세히 다뤄지지는 않았지만, 그는 한국은 모더나이제이션(현대화)을 거쳐 새로운 시빌라이제이션(문명)을 제창할 때가 왔다며 강연을 마쳤다.
뒤이어 토론이 진행됐다. 장기 독재의 문제, 역대 제왕적 대통령제의 한계 등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마지막 청중 질문은 권력구조개편안에 대해서였다. 전 교수는 “저는 열렬한 내각 책임제 지지자”라며 “무능한 대통령은 빨리 내려오게 하고, 유능한 대통령은 독일의 메르켈 총리처럼 장기적으로 국정을 이끌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사회를 본 조정훈 시대전환 대표는 전상인 교수가 꺼낸 문명에 대한 화두를 환기하며 “새 문명은 전 문명이 해결하지 못한 것을 푸는 데 있다. 제게 고민을 안겨준 시간이었다”는 감상평을 끝으로 이번 세션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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