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역정, 정치역정서 모두 자수성가
민주당 권력 구도 재편 신주류 신호탄
거침없는 대선 킥과 달리 리스크 ‘과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조서영 기자]
그는 왜 민주당 대선후보가 됐나? 시대 흐름부터 본다. 신기한 일이다. 국회의원을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대선주자들이 여야 막론 1·2위다. 얼마 전까지도 이런 말이 있었다. ‘민주당 대선후보 중 국회의원 출신이 아닌 이는 없었다. 이재명이 안 되는 이유다.’
공식은 깨졌다. 더불어민주당 본선 후보로 이재명 경기지사가 선출됐다. 국민의힘은 경선 진행 중이라 단정하기 어렵지만, 정치 신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유력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들 모두 기존의 정치 논리로 읽히지 않는 인물들이다.
1. 왜 아웃사이더인가?
미국의 트럼프와 샌더스, 프랑스의 마크롱하면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아웃사이더들의 반란이다. 그 바람이 시간차를 두고 이곳에서도 현실이 되고 있다. 세계사적 흐름의 연속성임을 방증한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저변의 불신은 커질 대로 커져 왔다.
2012년 안철수 신드롬을 기억할 것이다. 정치권 밖의 인물임에도 정치권 인사들을 압도했다. ‘박근혜·문재인’을 따돌렸다. 새정치 열망이 몰고 온 현상이었다. 정치 혐오가 그만큼 컸다. 내부에서의 자성의 목소리도 높았다. 새정치를 연호했다.
다만, 그것이 권력의 중심부를 뒤바꿔 놓지는 못했다. 2017년 장미 대선 때도 제3지대(아웃사이더) 바람은 매서웠지만, 당선은 안 됐다. 세계는 이미 트럼프-마크롱을 배출했지만, 우리는 거기까지 도달하는 데 한계를 보였다. 그러나 내년 대선을 앞두고는 달라졌다. 여당도 야당도 기성의 주류 정치 엘리트들을 위협하는 아웃사이더 판이 형성됐다. 변방의 장수들이 권력 중심부로 들어온 것이다.
2. 공정과의 연계성
시대정신과도 연결된다. 돌아보면 당대의 최우선 과제가 늘 시대의 정신이 돼 왔다. 일제 강점기 때는 광복이 그러했다. 1950년대 전쟁 시대 이후는 배고픔에서 탈출하는 것이 그 시절 가장 큰 바람이었다. 이 갈망이 모여 산업화가 출현했다. 중산층이 많아지면서 민주주의를 열망에도 힘이 붙었다. 수많은 인파가 독재 시대를 종식 시키기 위해 거리로 쏟아졌다.
신자유주의 시대를 거쳐서는 양극화 문제가 대두됐다. <88만 원 세대>라는 책이 화제가 됐고, 최근에는 영화 <기생충>이 할리우드까지 강타했다. 그러면서 생긴 것이 공정에 대한 화두였다. 동반성장연구의 대가 정운찬 전 총리는 과거 ‘안철수 현상’에 대해 “공정에 대한 국민의 갈망이 열풍의 근원”이라고 진단했다.
헬조선과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를 지나면서도 공정은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을 대변했다. 이재명 지사 역시 ‘촛불 정국’ 때 공정 키워드를 어필했다. 그가 주장하는 기본소득 또한 공정경제의 일환이다. ‘조국 정국’과 ‘인국공 사태’가 오면서는 윤석열이라는 이름이 공정의 아이콘으로 부상했다. 저마다 다른 문제 인식에서 출발했지만, 공정이 낳은 현상이라는 데는 공통적이다.
‘어떻게 해도 안 돼.’ 불공정하게 느낄수록 사회 기저층에서 체감하는 정치 불신은 크다. “차라리 전쟁이라도 났으면 좋겠다”는 시민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이재명 지사를 지지했다. 이 사회가 이대로는 안 된다고 했다. 나라를 뒤집어놔야 한다고 했다.
판을 뒤집으면 어떻게 되나. 주객이 전도된다. 그러한 기회가 열린다. 주류가 비주류로, 비주류가 주류가 될 수 있다. 변방이 중심이 되고 중심이 변방으로 밀려날 수 있다. 한마디로 기득권이 뒤바뀐다. 그렇게 판이 바뀌려면 정치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결론에 서게 된다. 민주당을 예로 들면 비기득권 주자가 주도권을 잡아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이 되는 것이다.
3. 비주류의 주류화
이 지사의 승리는 이 같은 흐름에서 볼 필요가 있다. 그는 당내는 물론이고 인생부터 비주류로 통했다. 1964년 10월 23일 경북 안동 청량산 자락,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을에서 5남 4녀 중 7번째 아들로 태어났다. 경주이씨 41대손이다. 스스로 흙수저가 아니라 무수저라고 할 만큼 어린 시절 가난했다. 보통의 성격은 아니었던 듯하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으로부터 많이 맞았다고 한다. 자신도 커서 선생님이 돼 학생들을 때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는 얘기가 전해지고 있다.
그나마 있던 밭마저 부친의 노름으로 날린 뒤에는 철거민 정책이 이뤄지던 경기도 성남으로 터전을 옮겨야 했다. 아버지는 청소부로, 어머니와 여동생은 시장통에서, 이 지사는 중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공장에 취업했다. 작업반장으로부터 구타를 당하기 일쑤였다. 야구 글러브를 만들던 공장에서는 프레스에 손목이 끼는 사고를 당해 평생의 장애를 앓았다. 자살시도를 두 번이나 할 만큼 불행한 시절이었다.
암울했지만, 힘이 되는 말이 있었다. ‘점쟁이가 넌 커서 대성할 거라’던 말을 어머니가 자주 했다고 한다. 스스로 암시로 여기고, 이 악물고 공부했다. 검정고시를 거쳐 1982년 중앙대 법학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강연에 감화돼 인권변호사의 길을 택했다. 성남시립병원 설립 추진 무산을 계기로 정계에 입문했다. 열린우리당이 첫 무대였다.
2006년 성남시장 선거 및 2008년 분당갑 국회의원 도전서 연거푸 낙선하는 등의 실패도 겪었다. 정치는 운이라는 말이 있다.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는 재작년 본지 인터뷰에서 “정치는 9할이 운”이라고 했다. 이 지사 역시 두 번의 낙선 이후부터는 운이 따랐다.
정세운 정치평론가는 최근 대화에서 “2010년 지방선거 때 민주당 소속으로 다시 성남시장 선거에 도전할 당시를 보면 한나라당 현직 시장이던 이대업 후보가 무소속으로 출마해 삼파전이 돼 어부지리로 이 지사가 승리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후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해 성남시 부채를 갚고, 청년 배당 3대 정책 등 복지예산을 확대해 이재명식 열린 시정을 표방하며 호응을 얻어나갔다”고 했다. 그를 열성적으로 지지하는 손가혁(손가락혁명군)이 생겨난 계기가 됐다.
2015년 차기 대선주자 1% 지지율로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탄핵 정국 때는 사이다 발언으로 전국적 인기를 끌었다. 장미 대선에서는 당 경선 과정에서의 거친 언행으로 친문(문재인)과 대척점에 서기도 했다. 실패 후에는 경기도지사 출마로 선회해 성공했다. 역시나 이재명표 도정을 이끌었다. 다시 대권에 도전해 지금에 이르렀다. 인생역정, 정치역정서 모두 자수성가를 이뤄낸 것이다.
4. 민주당 권력 재편의 신호탄
변방의 장수가 민주당 기수가 될 수 있던 데에는 당내 변화를 바라는 열망이 큰 몫을 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권력 구도가 세대교체되기를 바라는 이들이 적지 않다. 여기에는 대한민국의 기득권을 몰아내려면 당내 주류부터 물갈이해야 한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민주당은 역대 대선 전후로 세력 교체의 변천사를 겪어왔다. 1987년 통일민주당을 깨고 나간 평화민주당에서부터 민주당 역사를 찾는다면 김대중(DJ) 동교동계로 비롯된 힘의 기울기는 노무현 대통령 때 친노세력으로 이동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되면서는 친문으로 분화했다. 현재는 이재명이라는 대선후보 중심으로 개혁성향의 신진 세력과 정통 비주류 인사들이 결합 돼 새로운 권력 재편 현상의 신호탄을 맞고 있다.
노웅래 민주연구원장은 관련해 민주당이 신주류 중심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지난 5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나라가 변화하고 혁신해 따뜻한 사회가 되는 데 앞장서려면 당내 신주류가 부상해야 한다”고 했다. “민주당이 변화를 선택해야 정권 재창출이 물 건너가지 않는다”는 이유다.
5. 본선 경쟁력과 영남후보론
정권 재창출이냐, 정권교체냐를 두고 여야는 치열한 내전 중에 있다. 양 진영의 구심력이 커질수록 승리를 향한 절박감은 더욱 절실하기 마련이다. 내전 또한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민주당의 승리 공식은 본선 경쟁력이 높은 쪽을 선택하는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박상병 인하대 교수는 지난달 초 대화에서 “될 사람 밀어주는 분위기가 민주당 대선 경선 판도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전망했다. “민주당 지지자들에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못 지켰기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고 하는 강한 상처가 남아 있다”며 “어떻게든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것이 제일 컸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본선 경쟁력 때문에 영남 후보론이라는 전통적 문법이 통했을 거라는 진단도 나온다. 정세운 정치평론가는 “그동안 민주당은 영남 후보를 내세워 본선에서 이기는 전략을 구사해 왔다”는 말부터 전했다. “이 지사가 ‘노무현·문재인’ 대통령과 같은 PK(부울경) 지역이 아닌 보수당 전통 텃밭인 TK(대구경북) 출신이어서 영남표를 얻는 것은 미지수다. 그럼에도 호남의 지지를 받는 영남 후보에 부합하는 후보는 맞다. 이낙연 전 대표보다 선택을 더 많이 받은 이유가 됐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6. 비적자와 반문 이미지
역대 여당에서 통용되던 비적자 본선행도 이번 역시 유효했다는 평가다. 정세운 평론가는 “87 체제 이후 단 한차례도 여권 내 적자에서 대선주자가 나온 적이 없다”고 한 바 있다. 노태우 정부 때는 적자인 박철언 전 장관이 아닌 YS(김영삼)가, 문민정부 때는 최형우·김덕룡 대신 이회창 총재가, DJ(김대중) 정부에서는 한화갑 전 의원 대신 노무현 후보가, 참여정부에서는 친노에서가 아닌 정동영 후보가, 이명박 정부에서는 친이 대신 박근혜 후보가 본선에 오른 바 있다는 것이다.
故정두언 전 의원은 지난 2018년 대화에서 “대통령이 되려면 현 대통령과 붙어야 한다”고 했다. 결국, 각을 세울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대권후보가 되려면 대통령하고 붙어야 한다. 각을 세워야 한다. 자기들끼리 깨갱하면 안 된다. 정동영 의원이 과거 대권후보 될 때 청와대 들어가서 ‘권노갑’ 몰아내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이회창 대표는 YS와 부딪쳐서 대권후보가 됐다. 마찬가지로 ‘문재인’하고 각을 세워야 한다. 그 정도 담력을 가져야 국민이 아 지도자구나. 판단을 한다.”
-정두언, 2018년 <시사오늘>인터뷰 중-
이 지사는 한때 비문으로 인식돼왔다. 문 정부 내내 특별히 각을 세워온 것이 아님에도 이전의 이미지가 따라붙어 왔다. 친문과의 차별화를 이뤄내는데 좋은 조건이 돼줬다고 판단된다. 오히려 본선 경쟁력을 높이는 데 유리한 조건이 됐을 거다.
7. 뜻밖의 기회
공교롭게도 친노, 친문의 적자라 불리던 유력 대선주자들이 중도에 낙마 돼 온 것 역시 이 지사의 대권 행을 순조롭게 한 격이 됐다. 김영환 전 의원은 이달 초 만남에서 이 지사가 민주당 대세가 된 데에는 ‘안희정 날아갔고, 김경수 패퇴됐고. 조국이 빠져나갔기 때문”이 크다고 봤다. “앞의 대선주자들이 다 좌절되면서 기회가 온 것”이라는 얘기였다.
지금까지는 거침없는 대선 킥이었다. 하지만 리스크가 많다. 그의 발목을 잡는 악재가 될 수 있다. 검사 사칭, 친형 정신병원 강제 입원, 형수에 대한 욕설 논란, 조폭과 함께 찍은 사진 논란, 철거민에 욕설 논란, 도정 홍보비 논란, 이천 화재 당일 떡볶이 먹방 논란, 지역화폐 논란 등이 잇따르며 꼬리표가 되고 있다.
가장 크게는 스스로 설계자로 밝힌 대장동 개발을 둘러싼 의혹이 여러 문제와 연결된 화약고가 되고 있다. 지사직 사퇴 없이 국정감사를 돌파하는 정공법을 택했지만, 첩첩산중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지난 10일 50.29%로 과반을 힘겹게 넘기는 수준에서 민주당 최종 경선의 승자가 된 것 역시 아쉬움을 남기고 있다. 집계 과정상의 무효 논란까지 이어져 원팀으로서의 균열도 우려됐다.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다.
‘이재명 경선 캠프’에서도 승리를 자축하는데 앞서 조심스러워하는 분위기다. 한 관계자는 12일 통화에서 “내부에서 답변하는 게 부담스럽다”며 “현직의원 선에서 답변하는 게 맞을 것 같다”는 말로 자체 승리 요인을 분석하는데 주저했다.
캠프에서 대변인을 맡았던 박성준 의원도 통화에서 “선출 승리 이유는 민감한 금기어”라는 말부터 했다. “후보 수락 연설문에서 답변할만한 내용을 인용하는 게 제일 나을 것 같다”는 취지로 답을 대신했다.
앞서 이 지사는 서울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최종 경선 결과 발표를 들은 후 "기득권의 잔치, 여의도 정치를 혁신하겠다”며 사자후를 터트렸다. “변화와 개혁을 완수하라는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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