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스팅보트는 2030에게…이준석, 판 흔들 수 있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대선은 ‘후보들의 잔치’입니다. 모든 스포트라이트가 각 당 대선 후보들에게로 쏠리고, 당무도 후보 중심으로 돌아가죠. 하지만 제20대 대선 과정에서는 후보들 못지않게 관심을 받는 당대표가 등장했습니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입니다.
사상 처음으로 ‘30대 제1야당 대표’ 자리에 오른 이 대표는 대선 과정에서도 전대미문(前代未聞)의 행보를 이어갔습니다. 당무를 보이콧하고, 상임선거대책위원장을 사퇴하면서 언론의 헤드라인을 장식한 것만 두 번이었습니다. 복귀 후에도 그는 통상적으로 ‘서포터’ 역할을 해왔던 역대 당대표들과 달리 전면에 나서며 ‘또 하나의 주인공’을 자처했습니다. 당내에서는 ‘이준석 리스크’라는 말이 터져 나왔죠.
하지만 윤석열 후보는 이 대표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외면할 수 없었다는 표현이 적확(的確)할 겁니다. 이번 대선의 승패는 2030세대가 쥐고 있고, 이 대표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정치권에서 거의 유일하게 2030세대의 표심을 움직일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정치적으로 이 대표의 가치는 ‘환경’과 ‘전략’이 합치한 데서 출발합니다. 저성장 양극화로 인한 기회의 실종으로 2030세대는 그 어느 때보다 치열한 경쟁 사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당연히 기회의 평등과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가 화두로 떠오를 수밖에 없었죠.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문제의식은 시대정신을 완벽히 꿰뚫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구성에서부터 이른바 ‘조국 사태’, 인천국제공항공사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LH 사태’에 이르기까지 문재인 정부는 2030세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바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이러자 4050세대와 함께 ‘범진보 진영’으로 분류됐던 2030세대는 조금씩 ‘스윙 보터(swing voter)’로 옮겨가기 시작했죠.
2030세대가 범진보 진영에서 이탈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 이후 형성된 진보 우위의 ‘기울어진 운동장’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었습니다. 4050세대가 더불어민주당을, 60대 이상이 국민의힘을 지지하는 경향이 뚜렷한 상황에서 2030세대의 스윙보터화는 2030세대가 ‘캐스팅 보트(casting vote)’를 쥐게 된다는 의미였으니까요. 즉, 2030세대의 표심이 곧 선거 승패를 좌우하게 된 겁니다.
그러나 기성 정치인들은 이 같은 흐름을 포착하지 못했습니다. 포착했더라도, 2030세대의 마음을 얻어내지는 못했습니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로 확연히 달라진 세대의 행동양식과 사고방식을 기성 정치인들이 수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던 까닭입니다. 바로 이때 2030세대, 그 중에서도 2030 남성들의 시각을 대변하며 급속히 입지를 넓혀간 인물이 바로 이 대표입니다.
이 대표는 전통적으로 ‘젠더 기득권’을 지녔던 40대 이상 남성들의 가치관을 표상하는 기존의 남성 정치인들이나 ‘상대적 약자’였던 여성들의 요구를 전달하는 데 집중한 여성 정치인들이 미처 챙기지 못한 2030 남성을 조직화했습니다. 2030 남성들은 정치권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신들의 목소리를 들어준 이 대표에게 열광했고, 기성 정치인들과 다르게 트렌드에 밝고 인터넷 밈(meme)을 즐겨 쓰며 같은 게임을 즐기는 이 대표와 일체화하는 모습을 보였죠.
이러다 보니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의 목소리를 무시하기 어려워졌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전체 유권자의 약 29%를 차지하는 60대 이상이 국민의힘, 약 38%를 차지하는 4050세대가 민주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상황에서, 2030 남성들에게 압도적 지지를 받는 이 대표는 대선 판도를 뒤흔들 수 있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번 대선에서는 이 대표의 영향력이 더욱 커진 양상입니다. 2030 남성들에게 받는 열광적 지지의 반대급부로, 이 대표는 2030 여성들로부터 적잖은 비토(veto)를 받습니다. 하지만 민주당 이재명 후보 역시 여러 가지 이유로 2030 여성들의 표를 흡수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이 대표로 인해 이탈한 2030 여성들의 표가 민주당으로 흘러가지는 않을 공산이 크다는 뜻입니다. 다른 선거에 비해 이 대표의 힘이 강화될 수밖에 없는 구도입니다.
<오마이뉴스> 의뢰로 <리얼미터>가 1월 16일부터 21일까지 실시해 24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60대(민주당 27.6% 국민의힘 44.1%), 70대 이상(민주당 22.9% 국민의힘 50.3%)과 40대(민주당 46.4% 국민의힘 24.6%), 50대(민주당 42.3% 국민의힘 33.8%)의 지지 성향은 뚜렷하게 구분됐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 대표를 잡는 건 이념적으로는 중도층을, 지역적으로는 충청을 ‘완벽한 우리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과 거의 동일한 효과를 갖습니다. 이런저런 논란에도 정치권이 ‘이준석의 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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