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국민의당 안철수 대선 후보가 결국 ‘완주’를 선택했습니다. 안 후보는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더 이상의 무의미한 과정과 시간을 정리하겠다”며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와의 야권 단일화 결렬을 선언했습니다. 지난 13일 윤 후보에게 여론조사 국민경선 방식의 단일화를 전격 제안한 지 일주일 만입니다.
안 후보가 완주를 결심하게 된 배경에는 단일화에 대한 국민의힘의 소극적 태도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안 후보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제 제안을 받은 윤 후보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가타부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며 “지난 일주일간 무대응과 일련의 가짜뉴스 퍼뜨리기를 통해 제1야당은 단일화 의지도 진정성도 없다는 점을 충분하고 분명하게 보여줬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단일화가 성사되지 못한 책임은 제1야당 윤 후보에게 있다”고 강조했죠.
그렇다면 왜 국민의힘은 단일화에 소극적이었을까요. 여러 분석이 나오지만, 근본적으로 ‘단일화가 윤 후보에게 크게 득 될 게 없다’는 판단을 내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오마이뉴스> 의뢰로 <리얼미터>가 13~18일 실시해 20일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윤 후보는 42.9%의 지지율을 얻어 38.7%를 획득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를 오차범위 밖에서 앞섰습니다.
이처럼 안 후보와의 단일화 없이도 윤 후보 단독으로 승리가 가능한 상황에서, 여론조사 국민경선이라는 ‘위험한’ 방식으로 단일화에 임할 필요가 없다는 게 국민의힘 측의 생각이었습니다. 혼자서도 얼마든지 승산이 있는 1위 후보가 3위 후보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면서까지 단일화에 임할 이유는 없다는 거죠.
무엇보다도 안철수라는 선택지가 투표용지에서 사라지는 게 유리한 일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국민의힘 내에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앞선 <리얼미터> 조사에서 안 후보는 보수에서 4.5%, 중도에서 12.4%, 진보에서 5.3%의 지지를 얻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데이터로만 봤을 때, 현재 안 후보는 보수보다 진보 지지율을 더 많이 잠식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여기에 12.4%의 중도층 가운데도 민주당을 찍을 수 없어서 안 후보를 택한 중도 진보가 적지 않다고 보면, 안 후보가 갖고 있는 지지율이 해체될 경우 윤 후보 못지않게 이 후보 지지율도 상승할 여지가 있습니다. 즉 ‘중도’라는 안 후보의 특성상 단일화가 반드시 윤 후보에게만 득이 되리라는 보장이 없고, 그렇다면 굳이 지금의 ‘유리한 판’을 흔들 필요가 없다는 거죠.
안 후보와의 야권 단일화가 ‘진보 결집’의 명분을 줄 우려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윤 후보와 안 후보가 손을 잡고 ‘보수 단일대오’를 이루면 이 후보와 정의당 심상정 후보에게도 ‘진보 단일대오’에 대한 압력이 가해질 가능성이 컸으니까요. 정의당이라는 정당의 특성상, 심 후보는 안 후보와 달리 지지율의 ‘순도(純度)’가 높은 편입니다. 보수와 진보가 섞여 있는 안 후보 지지율이 이 후보와 윤 후보에게 나눠 흘러들어가는 것과 달리, 심 후보 지지율은 이 후보에게로 집중될 수밖에 없는 구조죠. 만약 야권 단일화가 ‘진보 단일화’를 촉발한다면, 종합적으로 이득을 보는 쪽은 윤 후보가 아니라 이 후보가 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여러 변수를 고려했을 때, 국민의힘은 후보 간 담판을 통한 단일화만을 ‘수용 가능한 방식’으로 간주하고 있었을 공산이 큽니다. 반대로 국민의당이 여론조사 국민경선 방식을 고수하거나 무리한 요구조건을 내걸 경우, 국민의힘은 협상 테이블을 떠나 ‘표를 통한 단일화’ 쪽을 선택할 준비가 돼있었습니다. 과연 국민의힘의 이 같은 판단은 옳았을까요. 3월 9일 대선 결과가 궁금해지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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