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제20대 대선 승자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완승은 아니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막판 추격이 거셌다. 윤 당선인의 ‘정권 심판론’에 맞서 들고 나온 ‘정치 교체론’이 힘을 발휘했기 때문이다. 어떤 측면에서, 이번 선거 결과는 정치 개혁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얼마나 거대한지를 보여준 것이기도 했다.
3월 22일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북악정치포럼’을 찾은 김관영 전 의원의 진단도 비슷했다. ‘정치 개혁 전도사’로 알려진 김 전 의원은 대한민국이 ‘갈등의 시대’에서 벗어나려면 정치 교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후보와 김동연 새로운물결 대선 후보가 합의했던 정치개혁안을 중심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했다.
“제왕적 대통령제가 불행한 역사 만들어”
“저는 대한민국이 직면한 가장 큰 위기가 갈등의 위기라고 생각합니다. 세대·젠더·이념·지역·계급 등등. 이런 갈등을 치유하고 통합시키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은 앞으로 나아가기 힘들 거예요.”
김 전 의원은 현재 우리나라가 처한 각종 사회 문제의 기저에 ‘갈등’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를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정치 개혁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수많은 갈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 첫걸음을 정치 교체로 봅니다. 지금 우리 정치를 ‘87년 체제’라고 하는데요. 1987년에 수립된 이 체제는 ‘대통령을 내 손으로 뽑게 해 달라’는 요구에 부응한 형태입니다. 모든 권력 구조는 그대로 놔두고 대통령 선출 방식만 직접 선거로 바꾼 거예요. 그러니까 대통령에게 엄청난 권한이 집중돼 있죠.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대통령 자신이 구속되거나 아들이 구속되거나 하는 흑역사가 반복됐습니다. 대통령이 지나치게 큰 권한을 갖고 있으니 주변 사람들에게도 유혹이 끊이지 않습니다. 이걸 통제할 방법이 없어요. 그러니까 정권이 바뀌면 불행한 일이 계속되는 겁니다.”
역사를 돌아본 그는 역대 대통령의 불행한 운명을 ‘개인’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로 파악했다.
“비슷한 일이 계속 반복되면 이건 개인의 캐릭터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그럼 이 시스템을 어떻게 바꿔야 하느냐.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을 통제할 수 있는 체제를 만들어야 합니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바꾸기 위한 헌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은 말만 책임 총리지 실제로는 대통령이 모든 권한을 갖고 있어요. 장관도 대통령이 임명하고 대법원장도 대통령이 임명합니다. 여당도 청와대가 통제합니다. 실질적인 삼권 분립이 이뤄지지 않아요. 사법부는 독립돼 있어야 하고 국회는 행정부를 감시·감독해야 하는데 대법원장도 국회도 대통령 눈치를 봅니다. 이래서는 안 됩니다.”
대통령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김 전 의원은 한편으로 대통령 중임제의 필요성도 역설했다.
“1987년에 가장 화두가 됐던 게 대통령 임기를 5년으로 하고 두 번은 못하게 했던 겁니다. 워낙 독재 시기가 길었으니까요. 대통령은 무조건 한 번만 하자고 하는 게 논의의 핵심이 됐죠. 그런데 이제 시대가 바뀌었습니다. 5년은 너무 빨리 지나가요. 대통령이 소신 있게 일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가기가 어렵습니다. 임기를 1년 단축해서 4년으로 하고, 대신 한 번 더 할 수 있는 길을 터놔야 합니다.”
“민생 문제는 초당적으로 논의해야”
대통령제를 톺아본 김 전 의원은 곧이어 선거제도로 시선을 돌렸다. 대통령 권한 분산 못지않게, 다원주의를 담보할 수 있는 선거제 개편이 이뤄져야 정치가 바뀐다는 주장이었다.
“양당 기득권 정치를 타파하기 위한 선거제도 개혁도 필수입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 국회의원 면책 특권 폐지, 국민 소환제 도입, 한 지역구 3선 초과 연임 제한 같은 게 제가 제안하는 제도입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각 정당이 얻은 전체 득표수만큼 의석을 가져가는 겁니다. 예를 들어 어떤 정당이 전국적으로 5%의 득표를 했다고 칩시다. 그러면 300석 중의 5%인 15개 의석을 가져가야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선거제도에서는 한 명도 당선이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전체 유권자로부터 5%의 득표율을 얻었으면 적어도 5%는 대변할 수 있도록 의석을 부여하자는 게 연동형 비례대표제입니다.
이렇게 해야 소수의 이익이 대변되고, 국민들도 소신 투표를 할 수 있게 됩니다. 특정 계층을 대변하는 정당도 생겨나고요. 그래야 국회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할 수 있는데, 지금은 대한민국 전체의 3%가 같은 생각을 갖고 있어도 그들의 목소리를 대신 내줄 수 있는 국회의원이 없어요. 그러면 그 사람들이 거리로 나가게 됩니다. 자기 의견을 국회에서 대변할 수 있는 국회의원이 없으니까 거리로 나가는 거예요.”
마지막으로 김 전 의원은 진영을 뛰어넘는 ‘통합’을 말했다. 진정한 정치 개혁을 위해서는 진영을 초월한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문재인 정부가 비난받는 것 중 하나가 자기 진영의 사람들로만 자리를 채운다는 겁니다. 인재 풀이 좁다는 뜻이죠. 진보 진영뿐만 아니라 합리적 보수, 중도 진영에 있는 많은 전문가들까지 포함해서 일을 제일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뽑았다면 문재인 정부의 성과가 훨씬 좋았을 겁니다. 이재명 후보가 국민 통합 내각, 국민 통합 정부를 약속했던 이유죠.
비슷한 맥락에서, 초당적 민생 정책 협의 테이블도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부동산 정책, 교육 정책도 같이 바뀝니다. 보수 정부일 때는 공급을 왕창 늘리고 세금을 깎아줍니다. 진보 정권은 고액의 세금을 물리고 수요를 억제합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엄청난 차이가 났죠.
교육 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조국 사태’가 벌어지고 나서 갑자기 정시 비율이 늘어납니다. 입시 제도도 바뀝니다. 이러면 국민들은 굉장히 혼란스럽습니다.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정책이 큰 폭으로 변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선진국은 대통령이 바뀐다고 내 삶과 관련된 정책이 급변하지 않아요. 이건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중요한 요건입니다.
그래서 저는 부동산 정책이나 교육 정책은 여야가 합의해서 중장기 로드맵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정치적 이해관계나 진영 논리를 뛰어넘는 독립적 의사결정 체계를 만들자는 거예요. 그리고 정권이 바뀌더라도 중장기 로드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도록 하면 국민들도 예측이 가능해집니다. 예측이 가능해야 국민들도 거기 맞춰서 인생 계획을 짤 수 있습니다. 그래야 국민이 편안하고 행복한 선진국이 될 수 있습니다. 저는 이걸 해내야 한다고 생각하고, 민주당이 실천하는지 안 하는지를 열심히 지켜볼 생각입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