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안지예 기자]
구자학 아워홈 명예회장이 향년 92세로 별세했다. 구 회장이 세상을 떠난 가운데에도 자녀간 경영권 갈등이 계속되면서 '아워홈 제2막'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걷히지 않고 있다.
‘사업보국’으로 종합식품기업 일궈
故 구자학 아워홈 회장은 아워홈을 매출 1조 원의 종합식품기업으로 키워낸 인물이다. 구 회장은 1930년 7월 15일 경남 진주에서 姑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셋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한창 산업화가 진행되던 당시 “나라가 죽고 사는 기로에 있다. 기업은 돈을 벌어 나라를, 국민을 부강하게 해야한다”는 '사업보국'(事業報國) 일념으로 산업 불모지를 개척했다. 특히 구 회장은 건설, 화학, 전자 등 다양한 산업 현장에서 뛰었다. 그는 1960년 한일은행을 시작으로 호텔신라, 제일제당, 중앙개발, 럭키(現 LG화학), 금성사(現 LG전자), 금성일렉트론(現 SK하이닉스), LG건설(現 GS건설) 등에 몸담았다.
무엇보다 기술력을 중요시했던 구 회장은 “남이 하지 않는 것, 남이 못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회장은 1981년 럭키에서 당시에 없던 잇몸질환을 예방하는 페리오 치약을 개발했으며, 1983년 국내 최초로 플라스틱 PBT를 만들기도 했다. 1985년에는 화장품 ‘드봉’을 해외에 수출했고, 1989년 금성일렉트론에서는 램버스 D램 반도체를 개발했다. 1995년 LG엔지니어링에서는 굴지의 일본 기업들을 제치고 일본 플랜트 사업을 수주했다.
이후 구 회장은 2000년 LG유통(現 GS리테일) FS사업부(푸드서비스 사업부)로부터 분리 독립한 아워홈의 회장으로 취임해 20여 년 동안 아워홈을 이끌었다. 그동안 아워홈 매출은 2125억 원(2000년)에서 2021년 1조7408억으로 8배 이상 성장했다. 사업 포트폴리오도 다양해졌다. 단체급식사업과 식재유통사업으로 시작한 아워홈은 현재 식품사업, 외식사업과 함께 기내식 사업, 호텔운영업까지 영역을 확장했다.
LG 핵심사업 기반을 다진 경영자가 LG유통에서 가장 작은 아워홈 사업부를 분사 독립할 때 주변에서는 의아해 했지만, 구 회장은 음식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 미국 유학 중엔 현지 한인마트에 직접 김치를 담가 용돈벌이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LG건설 회장 재직 당시엔 LG유통 FS사업부에서 제공하는 단체급식의 개선할 점이 많다고 느꼈다고 한다. 구 회장은 2000년 아워홈 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맛과 서비스, 제조, 물류 등 모든 과정에 관여했다.
구 회장은 “국민 생활과 가장 밀접한 먹거리로 사업을 영위하는 식품기업은 막대한 사회적 영향력과 책임감을 동시에 짊어져야 한다”는 철학을 바탕으로 아워홈을 경영했다. 와병에 들기 전 아워홈 경영회의에서 구 회장은 “요새 길에서 사람들을 보면 정말 크다. 좋은 음식 잘 먹고 건강해서 그렇다”며 “불과 30년 사이에 많이 변했다. 나름 아워홈이 공헌했다고 생각하고 뿌듯하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매 경영권 다툼 매듭은 언제
구 회장은 자녀들의 경영권 다툼을 매듭짓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현재 아워홈은 장남인 구본성 전 부회장(이하 구본성) 대 막내딸인 구지은 부회장(이하 구지은) 구도로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이 수년째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구지은을 중심으로 한 이사회가 구본성을 몰아냈다. 구본성이 지난해 보복운전 혐의로 유죄를 받고 회사로부터 횡령·배임 혐의로 고소까지 당하면서 회사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게 명분이었다. 당시 구본성은 보유 주식을 전량 매각하고, 경영에서 물러나겠다고 했지만 최근 임시주주총회를 소집하는 등 남매 간 갈등이 다시 발발했다. 구본성은 원활한 매각 작업을 위해서라는 이유를 들었지만, 구지은 측은 명분 없는 경영 복귀 시도라고 비판했다.
일각에선 구 회장이 생전 자녀들에게 주식을 골고루 배분한 게 경영권 분쟁의 씨앗이 됐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난해 말 기준 아워홈 주주 현황을 보면 구본성 38.56%, 구지은 20.67%, 구명진 19.60%, 구미현 19.28% 순으로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이중 구미현씨는 지난해 구지은 편에 서 구본성을 해임했으나, 최근 들어서는 다시 구본성 쪽에 서는 등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며 경영권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업계에선 구 회장의 별세를 계기로 양측 사이에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겠느냐는 추측도 있지만, 돌아가는 상황은 정반대다. 장례 방식을 두고도 구본성과 구지은 측의 의견 대립이 있었기 때문이다. 구본성은 구 회장의 장례를 가족장으로 치르려고 한 반면, 부인인 이숙희 여사와 구지은, 구미현, 구명진 등 세 딸은 회사장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이다. 결국 구 회장이 창업주인 데다 지난 20여 년간 아워홈을 이끌어왔다는 점을 고려해 회사장을 치르기로 양측은 합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故 구자학 회장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오는 15일이다. 장지는 경기도 광주공원묘원이다. 장례위원장은 강유식 LG 고문이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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