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미래 권력은 현재 권력의 여집합이라는 말이 있다. 실제 역사를 돌아봐도, 유권자는 현 정권이 만족시키지 못한 가치를 가진 인물을 차기 지도자로 선택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런 의미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시대가 원한 대통령이었다고 할 만하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고 결과는 정의로울 것’이라던 취임사와 달리, 문재인 정부는 임기 내내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논란에 휩싸였다. 위법·편법·초법적 행태가 끊이지 않았음에도, ‘내 편’이 저지른 반칙엔 한없이 너그러웠다. 이른바 ‘조국 사태’는 그 정점이었다.
이러다 보니 국민은 ‘공정’을 차기 대통령의 제1가치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 편 네 편’ 가리지 않고 권력에 칼을 들이대 온 윤 대통령이 유력 대권 후보로 떠오른 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윤 대통령의 등장은 진영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달라는 국민의 요청이었던 셈이다.
공정이라는 상징자본을 등에 업은 윤 대통령은 정치 입문 254일 만에 대권을 거머쥐었다. 문제는 취임 이후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의 안티테제(Antithese)로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대통령은 심판자가 아니라 해결자다. 이제 국민이 윤 대통령에게 요구하는 건 ‘불공정했던 전 정부를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공정한 사회를 만들 것인가’다.
윤 대통령은 법치(法治)를 공정 회복의 방안으로 제시했다. “예측 가능한 합리적인 사회가 돼야 공정한 경쟁이 가능해지고 사회 구성원 역시 열정을 쏟아 부을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상식과 법치 확립이 시급하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하지만 공정에 대한 대중의 기대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언젠가부터 우리나라는 부모가 가진 지위와 특권이 자녀에게 세습되는 신분제 사회로 바뀌어가고 있다. 부모의 경제력 차이가 자녀의 교육 격차로 이어지니 계층이동도 거의 불가능하다. 부모가 누구냐에 따라 개인의 미래가 달라지는 현실 속에서, 형식적 공정을 보장해 실질적 공정을 이뤄내겠다는 ‘순진한 믿음’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윤 대통령은 여전히 이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공정이라는 시대정신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가 없다. 이는 “정부가 국정을 어떻게 끌어가겠다고 하는 미래에 대한 확실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대한민국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에 대한 비전 제시가 없다”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의 비판과 궤를 같이 한다.
국민은 윤 대통령을 통해 문재인 정부의 불공정을 심판했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그 근원에는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절박함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제 윤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불공정에 대한 심판이 아니라, ‘어떻게 경제적·실질적 공정을 담보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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