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국 “YS 결단으로 87체제 쟁취, 이제는 내각제” [풀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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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YS 결단으로 87체제 쟁취, 이제는 내각제” [풀인터뷰]
  • 정세운·윤진석·정진호·김자영 기자
  • 승인 2022.11.11 20:21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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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국 전 국회의원 (국민의힘·5선)
​​​​​​​직선제 쟁취한 87 체제… 선진국 가는 계기 돼
87체제, 시민의 힘 결집해낸 지도자 있어 가능
민추협-신민당 승리로 87 변곡점 만든 데 동의
군정 종식 못 이뤘다면 미얀마 사태처럼 됐을 것
87체제 한계, 올오어낫싱…승자독식 진영싸움만
국민 위한 정치 가려면 다당제 필요, 내각제 가야
3당 합당 후 내각제 합의는 시기상조였다고 판단
리더 앞장서기엔 국민 불신 커, 학계·언론 나서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세운·윤진석·정진호·김자영 기자]

정병국 전 의원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 87체제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이 지난 8일 시사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시사오늘 권희정 사진기자
정병국 전 의원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 87체제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이 지난 8일 시사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시사오늘 권희정 사진기자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 87년 체제가 큰 역할을 했다는 데 대해 동의합니까.”
 

질문의 시작이었다.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사랑방에서 상도동계 막내 격인 국민의힘 정병국 전 의원(5선)을 만났다. 

사랑방은 그의 사무실이다. 모교인 성균관대학교 근처에 있다. 이화동 벽화마을은 천사의 날개 그림으로 유명하다. 그 벽화 맞은편으로 경사진 계단이 거의 직각처럼 세워져 있다.

낑낑대고 올라가다 보면 사랑방 도착. 대문 앞 주소엔 ‘두 번째 계단 집’이라고 적혀 있다. 허름하니 작은 구옥을 개조했다.

‘눈 오고 비 오면 힘들겠다.’ 생각도 잠시, 안으로 들어가니 입이 쫙 벌어진다. 전망이 예술이다. 요즘 말로 ‘뷰 맛집.’ 

기자들과 인사한 뒤 손수 커피를 내왔다. 맛있다. 

 

1. 선진화의 단초


“동의합니다.” 

정 전 의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민국 선진화에 87체제의 공(功)이 크다는 말이었다. 

“경제적으로만 발전했다고 해서 선진국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요. 부강한 중동 국가들을 선진국이라 말하지 않잖아요. 선진국은 민주화와 산업화가 동시에 이뤄지고, 문화가 자유롭게 꽃피는 나라여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직선제를 쟁취한 87체제가 선진국으로 가는 계기가 됐다”고 언급했다. 경제적으로도 “자유시장경제 체제가 잘 돌아가면서 급격한 성장을 이뤘다”고 평했다. 결과적으로 “산업화와 민주화가 동시에 이뤄진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한 나라가 됐다”는 얘기였다. 

 

2.  6·29가 오기까지 


1987년 당시 그는 민주화 운동가였다. 성균관대 재학 시절 학생 운동한 것부터 따지면 40여 년 됐다. 10·26이 터진 뒤 신군부에 대항하다 도피 생활도 많이 했고 고초도 치렀다. 개인적으로도 87체제에 대한 감회가 남달랐을 법했다. “당시 어땠습니까.” 소회를 묻자 눈빛은 벌써 1987년 즈음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소위 넥타이 부대 등을 포함해 너나 할 것 없이 거리로 나왔잖습니까.” 6월 항쟁 기간을 말했다. “나는 6월 23일 을지로와 퇴계로 사이에서 검거됐어요.” 이야기는 그날로부터 출발했다. 

잠시 정 전 의원 시각으로 풀어본다. 
 

# 장면 1. 
6월 23일 을지로


그날도 시위를 했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혼자 버스를 타려고 걷는데 이례적으로 조용했다. 그때 “정병국 씨.” 갑자기 누가 뒤에서 불렀다. “왜요.” “경찰인데 잠깐만 봅시다.” 수배를 당하던 신세라 올 게 왔구나 싶었다. “내가 뭐 때문에 당신을 따라가야 해. 영장 갖고 왔어?” 핏대를 세우고 노려봤다. 반항하자 검은 승용차 안에서 세 명이 뛰어내렸다. “못 가!” 나는 가로수를 끌어안고 버티기에 돌입했다. 악을 썼더니 사람들이 몰려왔다. “왜 그래요?” 무슨 일인지 물어왔다. “시민 여러분, 이 폭력 경찰의 현장을 보십시오. 저를 납치해가려고 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웅성대며 모여들었다. 

시민들이 빙 둘러서자 난처해진 경찰들이 “이놈이 강간범이에요.” 거짓말로 모함했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한 사람한테 “이 번호로 전화해서 내가 잡혀갔다고 전해 줘요” 번호를 알려줬다. 어떻게든 내가 검거됐다는 것을 동지들에게 알려야 했다. 그래야 다른 동지들도 알리바이를 만들 수 있었다.

 

#장면 2. 
같은 날 남산 1호 터널 벤치


경찰 두 명이 양팔을 움켜쥐더니 차에 태웠다. 꼬불꼬불한 길을 지나면서 ‘남산으로 끌려가는구나. 안기부다.’ 생각했다. 들어가자마자 취조실이 있는 지하로 끌려갔다. “이 x, 악질이야” 각목으로 개 패듯 맞았다. 며칠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어느 날인가 최루탄 가스가 안으로 들어왔다. 연기 사이로 매캐한 공기가 느껴졌다. 부장이라는 사람이 오더니 “넌 재수가 좋았어”라고 말했다. 안기부라는 것을 감추려고 자기들끼리 “부장님” “계장님” 호칭을 쓸 때였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뭔가를 직감했다. “무슨 일 있어요?” “너는 알 거 없어.” 옷을 입으라더니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남산 1호 터널 위였다. 벤치로 데려가면서 담배 한 개를 건네왔다. “안 펴요” 외면했다. “세상살이가 다 그런 거다.” 목소리가 달래듯 부드러웠다. 나중에 알았지만, 그날은 6·29 선언이 이뤄진 날이었다. 내가 나가면 변호사 접견이 가능하니, 고문한 것을 폭로할까 봐 회유하려던 거였다. “내일 사우나 가지 않겠나.” “미쳤소?” 안 간다고 했다. 

 

시사오늘은 YS 서거 7주기를 맞아 87년 체제의 성과 이를 실질적으로 이끈 주역 YS에 대해 조명하고자 한다. 사진은 6월 항쟁 당시 시청 광장에 시민들이 운집해 있다.ⓒ연합뉴스
시사오늘은 YS 서거 7주기를 맞아 87년 체제의 성과 이를 실질적으로 이끈 주역 YS에 대해 조명하고자 하는 관점에서 상도동계 막내 격인 정병국 전 의원을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은 6월 항쟁 당시 시청 광장에 시민들이 운집해 있다.ⓒ연합뉴스

 

#장면 3. 
어느 날, 야전 침대 위


밤인지 낮인지도 모르고 잠을 잤다. 재우지 않는 고문도 부지기수여서 잠이 고팠다. 시간 감각이 없을 때였다. 며칠이 지났는지도 몰랐다. 누군가 나를 깨웠다. 야전 침대에 누워있는데 옷을 벗으라고 했다. ‘또 시작이구나.’ 다시 고문하는 줄로만 알았다. 엎드려 있는데 007 가방 같은 것을 열었다. ‘전기고문 하는 것인가.’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런데 나온 건 돼지 비곗덩어리였다. 손으로 잡고는 내 몸 구석구석 올려놨다. 하루 정도 지나니 비계는 시퍼렇게 변해 있었다. 온몸이 멍투성이였는데 그것들을 모조리 빨아들였다. 고문의 흔적을 없애려는 거였다. 

 

#장면 4. 
6·29 이후 서대문 구치소


멍이 사라지자, 서대문 구치소로 보냈다. 그제야 6·29 선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긴장하고 들어갔더니 옥사는 좌우로 나뉘어 있었다. 한쪽은 정치범들 있는 독방, 다른 쪽은 잡범들이 들어가 있었다. 마주 볼 수 없게 엇갈려 놓은 구조였다. 난데없이 어디선가 “열렬히 투쟁했던 정병국 동지가 오늘 입소했습니다” 들뜬 목소리가 들려왔다. ‘탁탁’ ‘탁탁탁!’ 독방에 있던 한 명 한 명이 플라스틱 밥그릇을 철창에 쳐대기 시작했다. 마른 바닥을 발로 쳐가며 노래를 불러댔다. 절로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뜨거운 환영식이었다. 

 

3. 87체제의 동력


정병국 전 의원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 87체제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이 지난 8일 시사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시사오늘 권희정 사진기자
정병국 전 의원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 87체제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이 지난 8일 시사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시사오늘 권희정 사진기자

하하하. 여기까지 회고하는 모습에 쾌활함이 넘쳤다. 고생한 시절도 지나면 무용담이 된다. 불의 앞에 목숨 내놓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청춘의 한때, 6·29라는 환희에 얽힌 경험담이고 보니 벅참이 더 큰 듯했다. 

“구치소에는 얼마 동안 있었나요?” “3개월 보냈어요.” 재판받아 집행유예로 나가는 데는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체제를 바꾸는 게 매우 어려운 일이잖습니까.”
운을 떼며 다음 말로 이어갔다. 

- 87체제를 만든 동력은 어디에 있었다고 봅니까.

“시민의 힘입니다. 또 이를 결집해낸 정치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봅니다.”

뒤이어 시대정신에 대해 부연해 나갔다.
“우리 옛날식 인사가 ‘식사하셨습니까’ 였잖습니까. 산업화 이전까지만 해도 먹는 게 제일 중요하고, 이를 해결하는 게 최우선 과제였어요. 굶는 사람이 그만큼 많았습니다. 어르신들 뵈면 ‘식사는 하셨습니까’ 한 거예요.”

고개가 끄덕여졌다. 

“민주주의는 일종의 사치였어요. 밥 먹게 해주는 사람이 최선의 지도자였던 겁니다. 잘 살아서 배부르게 밥 좀 먹고 싶은 마음이 컸던 거지요.” 달라진 것은 국민소득 3000불을 넘기면서였다. “배고픔에서 벗어나니 인간의 기본적 욕망인 자유에 대한 갈구가 생기게 된 겁니다.”

커피 한 모금을 들이켰다. 

“비로소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이 끓고 있을 때 양김(김영삼·김대중)을 중심으로 한 민주세력이 그것을 끄집어내는 작업을 한 거예요. 끊임없는 탄압을 이겨내고 마침내 87체제를 획득한 겁니다.”

- 국민과 리더의 역할에 대한 비중을 나눈다면 몇 퍼센트일까요.

“국민이 51%라면 49%는 리더의 몫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면서 민주화 운동가 출신의 아웅산 수지 국가 고문을 만났을 때 일을 전했다. “기나긴 투쟁 끝에 집권하게 됐지만, 군사독재 세력과 공존하고 있더라고요. ‘아, 이건 아니다. 분명히 무너진다’….”

지난해 군부 쿠데타로 아웅산 수지는 축출됐다. 

 

4. 결단의 정치인 YS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는 YS에 대해 1987년의 6월항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이 나라 민주주의를 마침내 쟁취해 냈다는 것은 역사가, 온 국민이, 그리고 온 세계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독재 정권에 맞서 강경 투쟁을 벌인 YS와 최형우 전 장관, 김수한 전 국회의장, 이민우 의원 등ⓒ김영삼민주센터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는 YS에 대해 1987년의 6월항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이 나라 민주주의를 마침내 쟁취해 냈다는 것은 역사가, 온 국민이, 그리고 온 세계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독재 정권에 맞서 강경 투쟁을 벌인 YS와 최형우 전 장관, 김수한 전 국회의장, 이민우 의원 등ⓒ김영삼민주센터

- 87체제가 뿌리내릴 수 있게 된 데에는 YS의 결단이 한몫했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동의하나요.

“하나회를 척결했지요. YS 명분은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거였잖습니까. 군사독재 세력의 뿌리를 뽑는 것. 더는 얼굴을 내밀 수 없게 하는 것. 이를 위해 3당 합당을 한 거였잖아요. 정치적 타격이 얼마나 클지 알면서도 자신을 던진 겁니다. 실제 대통령이 되고 나서 진짜 호랑이를 잡은 것 아닌가요.”

그 결과 “완전한 민주주의를 만들고 지금까지 평화적 정권교체가 가능해졌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개혁의 기반 위에서 DJ(김대중)도 있었고 노무현 전 대통령도 있게 된 겁니다. 만약 YS가 근본적으로 뿌리 뽑지 않았다면 다시 군정이 반복됐을 겁니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인지 양미간을 찌푸렸다. 역으로 “아웅산 수지가 국민을 대변해 집권하고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군사 세력을 뿌리 뽑았다면 쿠데타가 있었을까….” 아쉬움을 내비쳤다. 

- 역사적으로 큰 변혁은 선거에서 비롯됐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87체제를 만들어낸 변곡점은 YS가 민추협을 발족해 만들어낸 신민당의 12대 총선 돌풍이 아니었나 싶은데요. 

“국민적 열망이 YS라는 지도자와 맞아떨어진 거지요. 다른 야당 지도자들은 타협하거나 현실에 순응했지만 YS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YS를 결단의 정치인이라고 하는 이유 아니겠습니까.”

대표적으로 양김을 비교해 나갔다. “군사독재 정권하에서 두 분 모두 탄압을 받았잖아요. 신군부에서 다 망명하라 했고 외국으로 나가라고 요구하기까지 했어요. DJ(김대중)는 받아들여 미국으로 갔고, YS는 ‘죽으면 죽었지 난 안 간다, 내가 왜 가나’ 그래서 단식에 들어가게 된 거예요. 여기서 YS의 엄청난 지도력이 드러난다고 봅니다.”

 

5. 민주주의 위기


정병국 전 의원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 87체제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이 지난 8일 시사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시사오늘 권희정 사진기자
정병국 전 의원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 87체제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이 지난 8일 시사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시사오늘 권희정 사진기자

 

하지만 “저평가 받고 있지요” 씁쓸함을 드러냈다. 민주주의의 연속성을 생각할 때 문민정부의 공이 크다는 평가다. 87년 상도동계 입문한 정 전 의원은 14대 대선을 거쳐 문민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YS 비서관으로 지냈다. 

“또 어떤 업적을 꼽고 싶나요.”

물었다. 

“풀뿌리 민주주의의를 완성했지요. 당내 인사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면적 지방정치를 한 것. 그 이전에는 도의원만 직접 선거를 치르다가 개혁 이후 기초단체장까지 모두 선거로 뽑았잖아요. 역대 어떤 대통령도 YS만큼 개혁한 사람이 없어요. 모두 YS가 만든 개혁을 기반으로 살을 덧붙이고 만들었던 거죠.”

금융실명제도 들었다. “비밀리에 만들어서 전광석화처럼 이뤘잖아요.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대한민국은 헤어 나올 수 없었을 거예요. MB 정부때 금융위기로 마이너스 성장이 3년 갈 거라고 경고했지만 1년 만에 끝났습니다. 대한민국이 가장 먼저 극복했고, 벤치마킹 대상이 됐죠.”

YS가 개혁한 금융실명제 때문에 단기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다는 분석이었다. 그런 일들이 “선진국으로 가게 된 요인”이 됐다는 관점이었다. 그러나 지금처럼 저성장 국면이 계속되고 경제가 침체되면 민주주의 위기가 또 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 어떻게 보나요. 

“그렇게 보지는 않아요.”

고개를 저었다. “산업화 시대에는 고도성장을 할 수밖에 없어요. 중국이 그렇잖아요. 조금만 바꿔도 경제 규모가 작으니까 몇 배가 뛰죠.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면 성장이 낮아질 수밖에 없어요. 3만 불 시대가 오면 성장률 3%만 넘어도 고도성장입니다. 규모가 크기 때문이죠. 성장이 멈춘다고 민주주의 위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탄생했던 것이나 진영 갈등으로 치닫는 것을 보면 민주주의가 한계에 봉착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는데요. 

“전 세계적으로 보면 민주주의에 한계는 있는 것 같긴 합니다.” 

동의했다. “다만 민주주의 자체의 한계라기보다는 선거제도라든지 정당제도 같은 정치 체제의 문제가 아닌가 싶어요.” 

 

6. 체제의 한계


단적으로 대통령제를 지목했다. “OECD, 즉 선진국 중에서는 대통령제를 채택한 나라가 미국과 한국밖에 없어요.”

“그게 문제라고 봅니까.”

87체제의 한계로 보는지가 궁금했다 

“1987년 체제, 6공화국 헌법을 만들 때 가장 중점적으로 고려한 것은 어떻게 해야 ‘장기집권, 독재 세력이 나오지 않게 할 것인가’였어요. 5년 단임제로 만든 이유도 선거를 통해 정권이 자주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서잖아요. 하지만 대통령제하에서는 0.73% 차로 이겨도 모든 것을 가져가요.”

- 실질적으로 유권자의 45%만 관리하면 집권을 이어갈 수 있게 된 상황이 제도적 맹점이긴 합니다. 

“그렇죠. 올오어낫싱(All or Nothing)이죠.”

승자독식의 문제를 꼬집었다. 

“철저한 편가르기가 시작돼요. 문재인 전 대통령만 해도 더 교묘한 방식으로 편 가르기 정치를 했잖아요.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닌 민주당의 대통령, 그것도 부족해 ‘문빠’ 대통령이 됐잖아요. 진영 논리에 의해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고 말이죠.”

갈수록 내전 양상이 커지고 있다. “그나마도 미국은 연방제여서 우리와는 상황이 달라요. 걱정하는 부분은 우리나라에서도 트럼프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정병국 전 의원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 87체제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이 지난 8일 시사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시사오늘 권희정 사진기자
정병국 전 의원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 87체제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이 지난 8일 시사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시사오늘 권희정 사진기자

 

정 전 의원이 20대 의원 때다. 당시 국회에서는 여야가 합의해 사절단을 만들어 미국에 간 적이 있었다. 45대 미국 대선 후 트럼프가 처음 당선된 후였다.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들어보니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보수든 진보든 다 똑같다’ 이렇게 표현하더라고요. 가식이고 위선이라는 거예요. 트럼프는 솔직하다며 차라리 낫더라는 거지요.”

우리도 그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며 말을 이었다. “이번을 보면 여야 모두 정치하지 않았던 분들이 대통령 후보로 선택된 거잖아요.” 국민의힘은 검찰총장 출신의 윤석열 대통령이, 더불어민주당에서는 당시만 해도 여의도 정치와 거리가 멀었던 경기지사 출신의 이재명 의원이 후보였다. 

“‘정치인들은 다 싫다’는 국민 마음이 반영된 거라고 봐요. 이도 저도 다 아니다 싶으면 강력하고 권위적인 사람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렇게 갈 가능성도 있고요.”

- 리더 부재의 문제일까요.

“리더십보다는 사회 현상의 문제라고 봐요.” 

몸을 앞으로 내밀며 “리더십의 권위가 어디서 나올까. 생각해 보세요.” 침을 삼킨 뒤 “국민적 지지에서 나오지만, 그것을 가능하게 만드는 게 정보라고 보거든요.”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지도자가 많은 정보를 갖고 있을 때 권위에 도전하기가 쉽지 않아지죠. 무서우니까. 하지만 지금은 국민이 더 많이 갖고 있잖아요.”

예로 SNS 등을 들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무슨 얘기를 해도 믿지를 않는 거예요. 나보다 나은 사람이라야 존경하거나 경외감을 느낄 수 있는데, 똑같으니까 권위가 설 수 없지요.”
한편으로는 이런 모순도 전해졌다. “국민들은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기를 기대하는 측면이 있어요. 사고가 나거나 태풍-홍수가 와도 ‘우리 대통령이 덕이 없어 그렇다’고 하는 겁니다. 왕조 시대 때부터 쭉 내려왔던 잠재적 의식들이 그렇게 만드는 거지요.”

 

7. “의원내각제가 대안” 


이 때문에 “대통령제가 한계를 보임에도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지적이었다. 듣다 보니 이런 반론이 절로 고개를 들었다.

- 짧은 시간 안에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경제 발전도 이뤄졌는데, 일부서 87체제의 문제로 보는 게 아닌가 하는 시각도 있는데요. 이렇게 87체제가 과소평가되고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87체제의 한계’가 다 됐다는 시각에서 얘기되고 있을 겁니다. 6·29 선언 후 체제가 수용된 지 35년이 지났습니다. 강산이 세 번 변했고, 한 세대가 바뀌었어요. 산업화와 민주화, 선진화로 이어지는 엄청난 시너지를 일으켰지만, 시효를 다했다는 말 아닐까요.”

- 어떤 체제가 현 상황을 타개할 방법이라고 봅니까. 

“의원내각제로 가야 합니다.”

단언했다. 

“다원화된 현대 사회, 기술이 발달된 4차산업 혁명 시대에는 내각제 형태가 대안이라고 봅니다. 사회가 커지고 기술이 발달하고, 사람마다 우선하는 가치가 다 다른데, 두 정당이 소화한다는 건 이제 불가능해졌어요. 정당이 많을수록 좋다고 봅니다.”

동의를 구하듯 “전 세계적으로도 내각제 하는 나라들이 잘살고 있잖아요. 독일의 메르켈 전 총리가 18년 집권했지만, 독재자라고 얘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어요.”

- 내각제를 하기에는 국회의원들의 수준이 낮다는 여론도 큰데요.

“그건 단면만 보는 거죠. 국회의원들이 왜 저런 행태를 보이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지금은 자기가 말한 것이나 한 행동에 관해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공천제 때문이죠. 양당 체제에서는 공천만 받으면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보거든요. 일단 공천받는 게 더 중요한 겁니다. 국민을 위한 게 아닌 공천권자를 위해 정치하는 구조죠.”

이 점을 짚으며 “내각제를 하게 되면 국민을 위한 정치 체제로 바뀔 수 있다”고 강조했다. 

 

8. 3당 합당 후 내각제 불발 잘 된 것


정병국 전 의원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 87체제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이 지난 8일 시사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시사오늘 권희정 사진기자
정병국 전 의원은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데 87체제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정 전 의원이 지난 8일 시사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다.ⓒ시사오늘 권희정 사진기자

 

공천 문제가 나오니, 그가 관심을 두고 있는 블록체인 정당 얘기로 화제가 전환됐다. 정 전 의원은 블록체인 기반의 디지털 정당을 통해 공천 및 정치자금법 문제 모두 개혁할 수 있다고 봤다. ‘당원들에 대한 토큰제 지급 방안’을 활용한 투명한 운영 방식도 흥미로웠다. 관련 얘기는 훗날 좀 더 들어보기로 하고 다시 내각제 대화로 돌아왔다. 

- 대통령제에서 내각제로 체제를 변환한 국가가 있습니까.

“글쎄요.”

고개를 갸웃했다. “과거 독일도 대통령제 요소가 강한 측면이 있었지만, 히틀러가 독재적으로 지배하면서 2차 세계대전 후 바뀌지 않았나 싶네요.”

우리나라도 2공화국 당시 잠깐이지만 내각제가 채택되긴 했다. 5·16쿠데타가 발발하면서 체제 유지는 되지 못했다.

- 만약 쿠데타가 없었다면 잘 정착될 수 있었다고 보나요.

“그랬다고 봅니다.”

- YS가 3당 합당할 당시 민정당·공화당과 의원내각제에 합의했지만 불발시켰지 않습니까. 그때 내각제로 갔으면 더 좋은 나라가 될 수 있었다는 말인가요.

“시기상조죠.”

잘라 말했다. 

“상황을 살펴봐야 합니다. 당시 내각제가 됐다면 독재 잔재, 군부 세력을 청산할 수 없었을 겁니다. 나눠 먹기 식으로 됐을 거예요. YS의 엄청난 결단이 여기서도 드러나죠.”

- 권력구조 개편은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일이라고 보는데 어떻습니까.

 “나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이번에 당선되는 대통령은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내후년 총선까지 2년간 집권한 뒤 개헌을 통해 ‘의원내각제’를 선언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 권력의 속성상 실질적으로 그런 결단을 내리긴 어렵지 않을까요. 본인도 막상 대통령 되면 생각이 달라질 수 있다고 보는데요.

“나라면 합니다.”

시원한 대답에 일동 하하. “권력구조 개편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하는 입장에서는 ‘꿩 먹고 알 먹는 격’이잖아요.” 좌중의 웃음 사이로 정 전 의원이 설명을 이어나갔다. “첫째, 한계에 다다른 정치권 시스템을 바꿔 역사에 남는 대통령이 될 수 있다. 둘째, 나만 잘하면 계속 수상을 하며 집권을 이어갈 수 있다(웃음).”

- 차라리 개헌 운동을 펼쳐보는 건 어떻습니까.

“국회에서 개헌안을 만들어서 추진해야 하는데, ‘저x들이 자기 권한은 더 늘리기 위해서 저런다.’ 국민들이 ‘안 된다’ 할 겁니다.”

 

9. 정치권만으로는 어려워


정치인들 주도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판단이 보태졌다. 하지만 87체제가 만들어지기까지를 거듭 복기하며 정치 지도자의 역할에 대해 묻고 싶었다. 

- 독재 체제에서 87년 체제로 바뀌기까지 6월항쟁이 있었고 그 이전에 신민당 돌풍, 민추협, 민주산악회, YS 23일 단식 투쟁 등이 있었잖습니까. 전두환 정권에 저항 못 하던 재야 세력이 YS라는 지도자의 결단과 용기에 의해 그 어렵다는 체제 변화를 성공시켰습니다. 

“….”

정 전 의원도 앞서 언급했던 얘기들이었지만, 무슨 말을 종국에 하려는 건가, 잠자코 듣고 있는 눈치였다.

- 아시다시피 내각제로 바뀌어야 한다는 목소리는 2000년대 중후반에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결국 변화되지 않는 이유는 지도자 부재 때문이 아닐까요.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아요.”

동의하기 어렵다는 표정이었다. 

“그 시대와 지금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지금은 민주주의 사회에요. 일반 국민이 자유가 없다거나 탄압받고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1987년 체제 이전의 시대에는 정치권, 언론 등에서 모든 언행을 감시받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숨을 못 쉬게 할 정도였습니다. 물론 지금 역시 국민이 볼 때 답답한 측면이 있겠지만 과거와 같은 억압이 있는 건 아닙니다. 그때처럼 절실할 수가 없는 겁니다.”

- 당시 YS라는 지도자가 국민적 욕구를 분출시키지 않았나요.

“맞습니다. 군사독재의 부정적 면을 접한 국민적 분노나 욕구가 잠재돼 있었고, YS가 거기에 불을 댕겨 준 것이지요.”

- 지금 역시 불을 댕겨줄 리더가 나서준다면….

“불을 댕긴다고 타지 않습니다. 절실하지 않으면 와닿지 않는 겁니다. 내각제 등 정치개혁을 부르짖어도 국민들한테 ‘원 오브 뎀(One of them)으로 비치면 어려운 겁니다.’ 

- 어렵다면, 절충적으로 이원집정부제를 해보는 건 어떻다고 봅니까. 

“절대 반대입니다.”

펄쩍 뛰었다. “오히려 대통령제보다 더 나빠질 거라고 봅니다. 양분된 상태를 내버려 두고 이원집정부제가 됐다고 생각해 봅시다. 대통령은 A당, 총리는 B당이면 두 사람이 싸움의 장수가 돼서 더 극단적으로 싸우게 되지 않겠습니까. 권력만 나눠놓으면 극단적으로 치달을 겁니다.”
그나마 “한 사람이 끌고 가니까 한 방향으로 가는 거지, 이원집정부제로 가면 나라가 두 방향으로 갈 거예요.” 일갈했다. 

- 중대선거구제 등 선거제 개편은요. 헌법을 고치지 않고서도 가능하잖습니까.

“현 대통령제 하에서 다당제를 실시하면 더 나쁜 상황을 불러올 수 있다고 봅니다. 어느 정당도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할 경우, 대통령이 이쪽저쪽 합쳐가며 장난하듯 조종할 위험이 있습니다.”

- 지금으로서 그럼 권력구조를 개편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뭐라고 봅니까.

“학계와 전문가, 언론 등에서부터 먼저 시작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호소하듯 건넸다. 정치권 밖으로 공이 넘어왔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커질수록 개혁파들의 입지는 줄어들고 있다는 무기력함도 엿보였다. 그는 문화체육부 장관 시절 한류의 붐을 다졌고, 16대 원내 입성 후 5선에 이르기까지 남경필·원희룡 등과 함께 정풍 운동을 주도해왔다. 하지만 그때와 상황은 또 달라졌을 것이다. 

훌쩍 시간이 지났다. 잔에 있던 커피도 다 마셨다. 인터뷰는 그렇게 끝을 맺었다.

담당업무 : 정치, 사회 전 분야를 다룹니다.
좌우명 : YS정신을 계승하자.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좌우명 : 꿈은 자산!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담당업무 : 건설·부동산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생각대신 행동으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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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도사 2022-11-12 22:33:26
자유, 번영, 선진화 김영삼과 상도동계가 없었으면 가능했을까?

2022-11-12 18:05:51
지들허네 박정희 대통령이 고속도로 닦을때 불도져 밑에 드러누워서 대중이하고 반대했던게 영샘이 아니냐
대선때 저축은행에서 이조 로비 쳐받고 환율 역으로 방어하다 아엠에프 직행시킨게 영샘이 아니냐 주댕이만 보살이고 지금 이나라를 만든게 지들이라고 생각하는 밥맛없는 반미 친북 운동권 개쉨위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