盧-MB 정부 얽힌 舊怨…2018년 MB “정치적 보복 의심” 주장으로 이어져
신율 “인권엔 숫자 중요치 않아…정치 보복 악순환 고리, 끊기 쉽지 않을 것”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문재인 전 대통령은 최근 윤석열 정부의 서해 사건 수사에 대해 두 차례 입장문을 발표하며 “도 넘지 말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냈다. <시사오늘>은 정권 교체기에 되풀이된 전직 대통령들의 성명서를 통해 현 정부와 전 정부 간 갈등을 다시 짚어봤다.
서훈 전 안보실장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첩보 삭제 혐의로 구속
文 “정권 바뀌자 부처 판단 번복…대통령이 최종 승인한 판단”
尹, 6개월 전 “과거 일 수사하지, 미래 일 수사할 수 없지 않냐”
문재인 전 대통령은 윤석열 정부에서 이뤄지고 있는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수사에 대해 두 차례에 걸쳐 성명을 발표했다.
검찰은 지난달 29일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 전 실장은 지난 2020년 9월 22일 해양수산부 공무원 故 이대준 씨가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피살됐을 때, ‘자진 월북’으로 사건을 정리하고 이와 배치되는 첩보는 삭제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다.
문 전 대통령 첫 번째 입장문은 이로부터 이틀 뒤인 지난 1일 측근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의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됐다.
문 전 대통령은 성명에서 “서해 사건은 당시 대통령이 국방부·해경·국정원 등 보고를 직접 듣고 그 보고를 최종 승인한 것”이라며 “대통령은 이른바 특수정보까지 직접 살펴본 후 그 판단을 수용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서 전 실장에 청구한 구속영장에서 문 전 대통령은 관여한 바 없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는데, 직접 나서서 ‘대통령이 승인한 판단’이라고 강조한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10월 감사원의 서면 조사 통보에 “대단히 무례한 짓”이라고 불쾌감을 표시한 데 이어, “부디 도를 넘지 않길 바란다”는 이례적 표현을 사용했다.
“정권이 바뀌자 대통령에게 보고되고 언론에 공포됐던 부처 판단이 번복됐다. 판단 근거가 된 정보와 정황은 달라진 것이 전혀 없는데 결론만 정반대가 됐다. (중략)
안보 사안을 정쟁 대상으로 삼고, 오랜 세월 국가 안보에 헌신해온 공직자들의 자부심을 짓밟으며 안보체계를 무력화하는 분별없는 처사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 부디 도를 넘지 않기를 바란다.”
- 2022년 12월 1일 발표된 ‘서해 사건’에 대한 문재인 전 대통령 입장문 中
지난 3일 새벽, 법원은 10시간 넘는 심사 끝에 서 전 실장에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틀 뒤인 지난 5일, 문 전 대통령이 직접 페이스북에 글을 올려 입장을 밝혔다. 이번엔 서 전 실장이 ‘연륜과 경험을 갖춘 자산, 북한 전문가’인 점을 강조했다.
“서훈 실장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정부의 모든 대북협상에 참여한 최고의 북한전문가, 전략가, 협상가다. (중략)
서훈처럼 오랜 연륜과 경험을 갖춘 신뢰의 자산은 다시 찾기 어렵다. 그런 자산을 꺾어버리다니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 2022년 12월 5일 작성된 문재인 전 대통령 페이스북 글 中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관련 공방은 지난 6월 16일 정권이 교체되고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이 정보 공개 소송 항소를 취하하고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6월 17일 출근길 문답에서 ‘민주당에서 전 정부 관련 수사에 대해 정치보복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떤 생각이냐’는 취재진 질문에 “우리나라에서 정권이 교체되고 나면 형사사건 수사는 과거 일을 수사하지 미래 일을 수사할 수는 없지 않냐. 다 과거 일부터 수사가 이뤄지고, 조금 지나고 나면 현 정부 일도 수사가 이뤄지고 하는 것. 민주당 정부 때는 안 했느냐”라며 “정상적 사법 시스템을 자꾸 정치 논쟁화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내가 선거 때도 이 부분은 대통령이 되면 억울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유족도 만났다”는 말도 덧붙였다.
야당은 ‘달라진 사실은 없는데 정부가 바뀌며 부처 판단이 번복됐다’며 ‘전 정부에 대한 전방위적 정치보복’이라는 주장을 냈다.
文 정부 ‘적폐 청산’에 다스·국정원 특활비 의혹 수사
MB “盧 전 대통령 관한 정치보복”…文 “분노의 마음”
시계를 돌려 5년 전, 이명박 전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적폐 청산 활동’에 대해 “이게 과연 개혁이냐, 감정 풀이냐, 정치적 보복이냐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2018년 1월 17일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직접 공식 입장문을 발표해 ‘정치보복’, ‘정치공작’이라고 주장했다. 30년 넘게 이 전 대통령을 보좌하며 재산과 가족 등을 관리한 것으로 알려진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이 구속되고 난 다음날이었다. 당시 이 전 대통령과 관련해 국정원 특활비 상납과 다스 실소유주 의혹과 관련해 수사가 이뤄지던 때였다.
“최근 역사 뒤집기와 보복 정치로 대한민국 근간이 흔들리는 데 대해 참담함을 느낀다. 적폐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고 있는 검찰 수사에 대해 많은 국민들이 보수를 궤멸시키기 위한 정치 공작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이라고 보고 있다.
나와 함께 일했던 이명박 정부 청와대와 공직자들에 대한 최근 검찰 수사는 처음부터 나를 목표로 하는 것이 분명하다. (중략) 재임 중 일어난 모든 일의 최종 책임은 나에게 있다. ‘더 이상 국가를 위해 헌신한 공직자들을 짜맞추기 식 수사로 괴롭힐 것이 아니라, 나에게 책임을 물어라’하는 것이 오늘 내 입장이다.”
- 2018년 1월 17일 이명박 전 대통령이 발표한 성명서 中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은 성명에 대해 “이명박 전 대통령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을 직접 거론하며 정치보복 운운하는 데 대해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강한 유감 표시를 했다.
당시 여론도 이 전 대통령이 노 전 대통령 죽음을 거론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 전 대통령은 성명 발표 후 약 2달 뒤 뇌물 수수, 다스 횡령 혐의 등으로 구속이 결정됐다.
친노계인 문 전 대통령으로선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과 관련해 이명박 정부와 구원(舊怨)이 얽혀있다. 문 전 대통령은 회고록 <운명>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 이뤄진 박연차 게이트 관련 수사 등을 ‘참여정부에 대한 증오심과 적대감에서 시작된 정치보복’이라고 규정하면서 “정치 보복의 시작은 참여정부 사람들에 대한 치졸한 뒷조사였다”고 기록한 바 있다.
민주당 MB 기자회견에 ‘전두환 전 대통령 골목성명 2’ 표현
全, 문민정부 5·18, 12·12 수사에 “좌파운동권의 일관된 주장”
신율 “尹 정부 수사, 文 정부 ‘적폐청산’과 유달리 다른 것 없어”
민주당은 2018년 MB 기자회견에 대해 ‘전두환 전 대통령 골목성명 2’라고 표현했다. 골목 성명은 전두환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 운동, 12·12 군사 반란 사건 등과 관련해 김영삼 정부 검찰의 수사가 이뤄질 때 발표한 입장문을 말한다.
1995년 12월 2일, 전 전 대통령은 연희동 자택 앞에서 ‘대국민 성명’을 발표하고 고향 합천으로 내려갔다가 체포됐다.
전 전 대통령은 성명에서 검찰 수사를 ‘좌파운동권의 일관된 주장이자 운동 방향’이라고 표현했다. 전 전 대통령은 “검찰은 대통령 지시 한 마디로 이미 종결된 사안에 대한 수사를 재개하고 있다”며 “이같은 검찰 태도는 진상규명을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현 정국의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어 “이승만 전 대통령부터 현정권까지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인하고 타도와 청산 대상으로 규정한 것은 좌파운동권의 일관된 주장이자 운동방향”이라며 “현 정부는 과거청산을 무리하게 앞세워 이승만 정권을 친일 정불, 356 공화국은 내란에 의한 범죄집단으로 규정, 과거 모든 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검찰 소환 요구에 불응했다.
그리고 2022년, 정권이 교체되고 한 쪽에서는 수사를 촉구하고, 다른 한 쪽에서는 ‘정치 보복’이라고 주장하는 싸움이 이어지고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5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정권교체기마다 이 같은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대통령 서거 당시에도 ‘정치보복’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서 적폐청산 이름 하에 이뤄진 이명박·박근혜 정부 수사, 현재 윤석열 정부에서 이뤄지는 수사도 마찬가지다. 현재 수사가 유달리 다르다고 볼 수 없다. 정치보복이라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하는 건 맞지만 그러기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전했다.
이어 “문재인 정부는 적폐 청산 이름 하에 전직 대통령 관련 사건을 조사했는데, 문 정부에서 일했던 서훈 전 국가안보실장에 대해선 ‘대북 전문가’라며 무리한 수사라고 말하는 건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다. 서해공무원 피격 사건의 경우 사람이 죽은 문제다. 인권에 있어 숫자는 중요한 게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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