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 “한글 서투른 경우 있어…자막 봐도 헷갈려”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유채리 기자]
2022년 연말을 맞아 여러 시상식과 축하 무대가 방송됐지만 주요 방송사 특집 프로그램에서 수어가 제공되지 않았다. 이에 장애인을 위한 방송 접근성이 확대돼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2일 <시사오늘> 취재 결과, KBS·MBC·SBS 연말 특집 프로그램들에 폐쇄자막은 송출됐지만, 한국수어는 편성되지 않았다.
폐쇄자막이란 청각장애인을 위해 실시간으로 음성이나 오디오 신호를 자막으로 표시해주는 것이다. 방송법 제69조 8항에 따라 지상파 방송사업자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인정하는 방송시간 중 폐쇄자막방송을 100% 제작·편성해야 한다. 전체 방송에 의무적으로 폐쇄자막을 달아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한국수어방송은 7%만 규정돼있다.
한국수어는 청각장애인들이 사용하는 ‘보이는 언어’다. 물론 청각장애인 중 자막을 이해할 수 있는 이들도 있지만, 수어가 있을 때 보다 정확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고 작은 자막 크기를 보완해주기 때문에 보다 수월하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번 KBS 가요대축제, 연기대상, 연예대상과 MBC 방송연예대상, 연기대상, 가요대제전, SBS 연기대상, 연예대상, 가요대전 등 모두 9개 연말 특집 프로그램에 수어는 송출돼지 않았다. 연기대상과 연예대상은 시상식이기 때문에 진행자와 시상자, 수상자의 발언이 중요하다. 그러나 현재처럼 자막으로만 발언이 송출될 경우, 청각 장애인이 내용을 이해하기 수월하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있다.
하상필 한국농아인협회 과장은 “듣지 못하다보니까 한글을 모르고 서툰 경우가 있다. 자막이 나와도 단순하게 예능 스타일로 나온다면 짧은 단어는 알겠지만, 수상소감이 돼서 발언이 길어지다 보면 자막을 봐도 헷갈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수어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문화기본법 제4조에 따르면 ‘국민은 성별, 종교, 인종, 세대, 지역, 정치적 견해, 사회적 신분, 경제적 지위나 신체적 조건 등에 관계없이 문화 표현과 활동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하고 자유롭게 문화를 창조하고 문화 활동에 참여하며 문화를 향유할 권리를 가진다’고 명시돼있다. 자막이 제공된다고 해서 장애인들이 충분히 문화를 향유한다고 말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은 “연말 시상식 같은 경우에는 축제이고 축하하는 시간이다. 그런 시간에 모두가 포함될 수 없다는 것은 내가 이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함께 문화나 미디어를 누릴 수 없는 사람이라는 증거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사람들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모르고 무슨 뜻인지 모르고 그게 중요 뉴스나 연말 축제 등에서도 일어난다면 사회와 세상에서 (장애인들이) 다른 사람에게 접근할 수 없고 동등한 권한과 권리를 가지고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또 수어방송 등 장애인방송 의무편성비율이 7%인 것도 연말 특집 프로그램에 수어 편성을 어렵게 만든다. 시정연설, 재난방송 등 우선순위에 따라 편성하거나 방송사 차원에서 자체적으로 편성해 의무편성비율을 달성했을 때, 강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장애인방송 의무편성에 대해 비율만 법제화돼있고 어떤 프로그램에 편성해야하는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 등은 없는 실정이다.
물론 수어를 편성하는 게 무조건 방송 접근성을 높이는 것은 아니다. 음악프로그램은 수어를 입히는 것이 오히려 시청에 방해된다는 의견이 있다. 이에 대중가요 방송 같은 경우, 방송통신위원회의 예외인정프로그램에 포함된다. 또 비장애인이 시청할 때 화면이 가려지는 등 불편이 있을 수 있다.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당장 수어 편성을 확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이와 관련해 의무적으로 비율을 정해놓기보다 원하는 프로그램을 자유롭게 시청할 수 있도록 확대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상필 과장은 “5, 7, 10% 비율보다는 그분들이 원하는 프로를 (볼 수 있다는 게) 중요하다. 예를 들어 1박 2일을 보고 싶은데 12시에 하는 다큐멘터리에 수어 통역을 넣고 ‘편성했다’고 하면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장애인방송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행정지도 이런 독려를 통해서 적극 권장 해야겠으나 의무성과 강제성이 현재로써는 없다”고 말했다.
최항섭 국민대 사회학과 교수는 “법적인 차원과 별도로 한국사회에서 신체장애가 있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이 하나의 사회적 규범으로 자리 잡아야 한다”며 “이런 것들이 개선돼야 실질적인 복지 선진국가로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연말 시상식의 경우, 한해의 어떤 문화계 활동을 총 정리하는 자리인 만큼 사실 장애인을 포함해 모든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애착을 보이는 프로그램이다. 어떻게 보면 평등권 등에 있어서 모든 장애를 가진 분들이 이런 걸 접할 수 있게 하는 게 의무인데 이를 간과했다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장애인 방송 관계자는 “방송법, 그 하위에 장애인 방송 고시 등이 있는데 여기에 의거해 양적인 부분에 치우쳐있는 부분이 있다”며 “장애인 방송 관련자인 방송사업자, 당사자 대표 등이 의견 수렴 간담회를 상시 혹은 주기적으로 개최해 의견 수렴을 적극적으로 할 예정이긴 하다. 실효성 있는 가이드라인 개정 또는 장애인 방송, 방송 접근권 향상을 위해 노력하려고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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