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입성한 ‘사이다’ 이재명의 고민 [취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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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입성한 ‘사이다’ 이재명의 고민 [취재일기]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3.01.31 18: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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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가 리더십과 정치인 리더십은 달라…‘추진력’ 이미지 잃지 않고 여의도 안착할 수 있을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행정가로 정계에 입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아직 여의도 정치에 익숙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합뉴스
행정가로 정계에 입문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아직 여의도 정치에 익숙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는다. ⓒ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이 깊은 고민에 빠졌습니다. 정당 지지도가 정체 상태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9월 이후, 민주당 지지도는 <한국갤럽> 기준 30~35% 박스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통령 직무 수행에 대한 부정 평가가 과반을 훌쩍 넘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제1야당인 민주당이 ‘대안 세력’으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대통령 직무 수행 부정 평가 55%과 민주당 지지도 32%(1월 17~19일 수행, 20일 공개 <한국갤럽> 조사)의 격차는 어디서 비롯됐을까요. 이재명 대표의 ‘사법리스크’가 원인이라는 게 일반적 해석입니다. ‘당의 얼굴’인 당대표가 갖가지 의혹으로 언론에 오르내리고 검찰에 불려 다니는 게 민주당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해석에는 맹점이 있습니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제20대 대선 직후 EAI(동아시아연구원)를 통해 ‘부동산 정책과 후보자 도덕성 : 2022년 대통령 선거에서 이슈가 미친 영향은 무엇일까?’라는 리포트를 발간했습니다. 여기에는 어떤 이슈가 투표에 큰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가 실렸는데요. 내용이 꽤 흥미롭습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이 대표를 뽑은 사람들의 63.1%는 ‘후보의 능력과 경력’을 투표 이유로 꼽았습니다. ‘후보의 도덕성’이 이유라고 답한 사람들은 1.4%에 불과했습니다. 반면 윤석열 대통령에게 투표한 사람들은 20.1%가 ‘후보의 도덕성’을 지목했습니다. ‘후보의 능력과 경력’을 이유로 든 사람은 13.7%에 그쳤습니다.

결국 사람들이 이 대표에게 기대했던 건 ‘도덕성’이 아니라 ‘능력과 경력’이었다는 이야기입니다. 바꿔 말하면 대선 과정에서, 아니 민주당 경선 과정에서부터 불거졌던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는 게 민주당 위기의 본질이 아닐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이 대표가 당대표로서 능력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게 민주당 위기의 근본 원인일 수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능력과 경력’으로 대통령 문턱까지 다다랐던 이 대표가 당대표로서의 능력에 의심을 받고 있는 이유는 뭘까요. 지난해 이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 여부가 논란거리로 떠올랐을 당시, 당대표 자리가 오히려 이 대표의 대선 재도전에 불리하게 작용할 거라는 관측을 내놓은 몇몇 정치 관계자가 있었습니다. 지난 30일 그들을 다시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행정가와 정치가는 근본적으로 요구되는 능력이 다르다. 행정가는 ‘보스’에 가깝다. 수직적인 공무원 조직에선 상급자가 지시하고 하급자가 복종하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정치가는 ‘리더’다. 지시하는 사람이 아니라 설득하고 타협하는 사람이다. 일이 되게 하려면 다른 의원들을 설득하고 대통령이나 국민의힘과도 타협해야 한다.

이재명이라는 사람이 가진 최고의 장점은 추진력이다. 상대가 뭐라고 하든 밀어붙여서 결과로 말하는 게 ‘이재명 스타일’이다. 이게 가능했던 건 이재명이 행정가로 정치에 입문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시장이나 도지사나 자기 관할 내에서는 하고 싶은 일이 있으면 할 수 있었던 자리다. 이재명 특유의 쇼맨십에 이런 권한이 더해져서 지금의 이재명이 나온 거다.

그런데 당대표가 돼서 결과를 내놓으려면 반대파도 설득하고, 여당과도 협상해야 한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있다. 하나는 이재명이 국회 경험이 없다는 거다. 반대파를 설득하고 타협해 본 경험이 없다. 일이 되게 하는 게 이재명 스타일인데, 아마 국회에서는 일이 되게 하는 것 자체가 어려울 거다.

설사 일이 되게 한다고 해도, 이재명의 이미지에 흠집이 난다. 정치인 이재명의 강점은 반대하는 상대를 쓰러뜨리면서 목표를 이루는 시원시원함인데, 당대표가 되면 양보와 타협을 해야 목표 근처에라도 갈 수 있다. 반대파를 무너뜨리면서 목표를 이뤄내는 이재명의 이미지에 타격이 갈 수밖에 없다. 내가 보기에 이재명은 도지사에서 바로 대통령으로 갔어야지, 국회를 거쳐서는 안 되는 캐릭터다.”

요컨대 ‘대화와 타협’이 필요한 국회에서는 이 대표의 최대 장점인 ‘추진력’이 제대로 발휘되기 어렵고, 이는 ‘이재명’이라는 브랜드 가치의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입니다. 실제로 이 대표는 취임 후 ‘세력 넓히기’에는 성공한 반면, 성남시장·경기도지사 시절 보여줬던 ‘생활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는 반감됐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때문에 민주당 지지도를 반등시키고 이 대표가 다시 한 번 대선 무대에 서기 위해서는 ‘추진력’이라는 상징자본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정치력’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과연 이 대표는 양립이 어려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대권 재도전’ 기회를 거머쥘 수 있을까요.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담당업무 : 정치부 기자입니다 (대통령실 출입)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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