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에 빨대 꽂혀 고통받는 바다코끼리에 경각심…생분해성 빨대 제조”
“자연에서 만들어져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 만들고파”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빨대, 꼭 필요한가요? 되도록 안 썼으면 좋겠어요.”
친환경 생분해성 빨대를 제조하는 디앙 김지현 대표의 말이다. 친환경 행보로 유명한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가 ‘이 재킷 사지 마세요(Don't but this jacket)’라는 문구를 광고 카피로 사용해 화제가 된 일이 떠올랐다.
김 대표는 자신이 빨대 제조업에 종사하고 있지만 지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고 말한다. 만약 사용하게 된다면 ‘재생가능’한 제품이어야 하고, 재생이 어렵다면 ‘생분해’ 가능한 소재를 사용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시사오늘>은 지난 8일 을지로의 한 카페에서 김지현 대표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김 대표는 아버지의 플라스틱 빨대 사업을 이어받아 2010년 시장에 뛰어들었다. 그러다 5년 전 코스타리카 연안에서 바다코끼리가 코에 꽂힌 빨대로 고통스러워하는 영상을 보고 경각심을 느낀다. 고민 끝에 만들어진 게 디앙의 생분해성 빨대다.
“빨대 제조업에 종사하면서 제품을 깨끗하게 만드는 데 주로 노력을 기울였거든요. 그런데 바다코끼리의 영상을 보며 그간 만들기에 급급했지 폐기나 선순환에 대해 생각을 하지 못한 점을 의식하게 됐어요. 이젠 자원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선순환 과정을 만드는 게 기업의 역할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디앙 빨대의 경우 식물 전분에서 추출한 원료로 만든 PLA(Poly Lactic Acid)를 주성분으로 한다. 토지에 매립하면 일정 시간이 흐른 후 분해된다.
김 대표에게 회사명인 디앙의 뜻을 묻자 본래 사명이었던 동일프라텍의 D와 입으로 빨대를 ‘앙’하고 문다는 뜻을 이어붙여 만든 이름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디앙의 최종 목표는 ‘자연에서 만들어져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김 대표는 최근 제품에 사용된 생분해 소재를 다시 수거해 다시 퇴비로 만들고 이를 농업에 다시 활용하는 방법을 고안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빨대뿐 아니라 컵, 홀더, 커트러리, 접시 등 제품 다양화에도 힘쓰고 있다.
“자식 같은 제품이니 애물단지나 천덕꾸러기 취급받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맞는 자리에 가치있게 쓰이길 바랍니다.”
- 디앙만의 차별화된 강점은 무엇인가요.
“빨대는 기구로 분류돼지만 ‘식품’이라고 생각하고 만들고 있어요. 음료보다 입에 먼저 닿는 게 빨대잖아요. FSSC22000 식품안전경영시스템 인증을 받아서 소비자들이 ‘디앙이라면 안심하고 쓸 수 있다’는 신뢰를 가질 수 있게 노력했습니다.”
김 대표는 인터뷰 중간에 빨대가 만들어지는 공장 CCTV 화면을 보여줬다. 언제 어디서든 내보일 수 있는 공장 환경, 위생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졌다.
“국내에서 환경표지 인증(EL724)을 받았고, 국내 제조사로선 최초로 유럽 생분해 인증 기관 TUV의 오케이 컴포스트(OK Compost industrial) 인증도 받았죠. 국내에서 제조하기 때문에 매장이 요청하는 사이즈, 구경에 맞춰 커스터마이징 된 빨대를 즉각 만들 수도 있습니다.”
- 친환경 제품을 사용하는 매장도 늘어나는 추세인 듯 합니다. 트렌드 변화를 예상하셨나요.
“많은 사람들이 환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소비자가 ‘나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관련 제품을 찾자 유통사에도 수요가 생긴 거예요. 시민의식의 변화가 밑에서부터 위로 올라온 거죠. 세계적인 추세가 ‘친환경’으로 이동하고 있었고, 우리나라도 분명이 친환경 제품을 찾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종이로 대체하던 생분해성 소재로 대체하던 플라스틱은 이제 그만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사업을 하는 동안 가장 힘들었던 때가 있다면요.
“2018년에 개발을 시작해서 2019년에 제품을 출시했는데, 개발할 땐 시장이 ‘친환경 제품’을 반길 거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에 힘들진 않았어요. 출시하면 고객들이 제품을 바로 알아봐 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출시하고 보니 제품이 좋다고는 하지만 바뀌지 않더라고요. 시장을 다시 개척해야 한다는 게 힘들었고, 지금도 과정 중에 있습니다. 이제 규제가 시작됐으니 전체적으로 바뀌지 않을까 생각해요.”
김 대표는 제품을 홍보하는 중에 ‘그린워싱(친환경적이지 않지만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위장환경 주의’를 가리키는 단어) 아니냐’, ‘일부는 플라스틱이 섞이지 않았느냐’는 오해를 받을 때 속상했지만 발로 뛰고 설명해가며 길을 터왔다고 했다.
“최근에 ‘온도, 분해 기간 등 퇴비화 조건에 맞지 않으면 안 썩는 거 아니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실제로 상온에 두면 180일 안에 썩지 않지만 2년 정도 지나면 부스러지거든요. 지금도 빨대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분해가 일어나고 있어요. 세간의 오해는 해소하고 싶습니다. 디앙 제품의 경우 1년 지난 제품들은 다 폐기하는 게 일이에요. 일반 플라스틱과 달리 유통기한이 있어서 물성이 변하거든요.”
- 해외 수출도 하고 있습니다. 디앙 제품이 선택되는 이유는 뭐라고 보시나요.
“우선 K-컬처, K-푸드 등 한국 제품에 대한 신뢰성이 해외에서 높아요. 이건 시대를 잘 탄 것 같아요. 그리고 유럽에서 인증을 받았잖아요. 품질을 인정받은 거죠. 다른 나라 제품을 쓰다가 잘 부서지는 것을 경험한 경우가 있더라고요. 디앙 제품은 깨지지 않아요. 위생에 대한 자부심도 높습니다.”
- 가장 보람찼던 때는 언제인가요.
“우연히 카페에 갔는데 거기서 디앙 제품을 발견했을 때. 모르는 척 제품 어떠냐고 묻고 점주와 이야기하는 순간이 너무 행복해요. 지금 일회용품 사용 단속 계도 기간이라 안 쓴다고 과태료가 부과되는 건 아니거든요. 지금 사용하시는 분들은 환경을 지킨다는 자부심을 갖고 ‘우리 카페에서 부터라도 시작해야지’라는 의지가 있는 분들이에요. 변화를 이뤄가려는 사람들만의 동지 의식이랄까요. 그런 게 느껴져서, 기분 좋게 대화 나눌 때 참 행복합니다. 80세가 되어서도 내가 만든 제품을 쓰는 고객과 이야기 나누는 게 꿈이에요.”
- 앞으로 디앙을 어떤 회사로 키우고 싶나요.
“우선 생분해 소재 시장을 형성하고 확장하고 싶어요. 다음으로 정부 정책에 따라 제품이 정의가 되기도, 불법이 되기도 하거든요. 정부 과제도 진행하고 연구 개발을 해서 정의가 되게끔 노력하려고 합니다. 또 해외에 진출해 제품을 알리고 싶습니다.”
-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미래의 창업주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스스로 확신이 있으면 끝까지 밀어붙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나는 열심히 했는데 정책이 또는 사람들의 의식이 뒷받침돼주지 못할 때 어려움을 겪거든요. 그런데 스스로 내가 만든 제품에 대한 확신을 갖고 밀고 나가면 회사의 콘셉트가 되고 주력 상품이 되고 자연스레 이미지 브랜딩이 되잖아요. 어떤 산업이든 본인이 하는 사업에 대한 어려움은 언제든 찾아와요. 이리저리 휘둘리면 일 못해요. 그걸 극복할 수 있는 건 자기 ‘업’에 대한 확신인 것 같아요.”
좌우명 : 생각대신 행동으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