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정부부터 ‘중대선거구제’ 도입 논의 이어져…결과는 유야무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2024년 총선을 1년 앞두고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한창입니다. 선거제 논의를 위해 19년 만에 전원위원회도 열렸습니다. 나흘 동안 100명의 의원이 발언대에 올라 의원 정수 축소 문제부터 도농복합형 중대선거구제, 개방명부식 대선거구제, 비례대표제 변경 등 다양한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김진표 국회의장과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중심이 돼 관련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는데요. 선거제 개편 이야기는 정권마다 끊임없이 제기된 만큼 이를 환영하는 목소리도 있고, 현역 의원 등 기존 기득권의 이해관계가 얽혀있기에 변화가 이뤄지지 않을 거란 부정 섞인 관측도 다수 존재하는 상황입니다.
현행 소선거구제는 승자 독식 구조를 낳는 문제점을 갖고 있습니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거대 양당이 극한 정치 대결을 벌이는 악순환 원인으로 소선거구제가 꼽히기도 합니다. 사표(死票)가 다수 발생하고, 유권자의 사표 방지 심리가 작동해 군소정당 후보 당선 가능성이 작아지고, 제3지대가 설 자리가 없어진 결과 양당제로 굳어질 가능성이 커져서입니다.
그렇다면 소선거구제는 언제 도입됐을까요? 대한민국은 1987년 6월 ‘대통령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지만, 정권은 군부가 이어받습니다. 민주화 운동의 양대 거목이었던 김영삼(YS)과 김대중(DJ)이 분열해 노태우가 13대 대통령에 당선돼서인데요. YS(28.03%)와 DJ(27.04%)가 받은 표를 합치면 노태우(36.64%)를 이길 수 있었기 때문에, 야권에 지지를 보냈던 국민들은 실망했습니다.
대선 패배 후 야권은 대선 4개월 뒤 치러질 총선을 위해 통합 논의에 돌입합니다. YS는 1988년 2월 조건 없는 야권 통합을 위해선 자신이 물러나야 한다는 판단하에 통일민주당 총재직에서 사퇴합니다. DJ의 평화민주당과 야권 통합기구 합동 회의를 갖는 등 총선 전 통합하기로 의견을 모았는데요. 여기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무조건 통합을 주장한 민주당과 달리, 평민당은 ‘소선거구제 합의 후 통합’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여당인 민정당과 YS의 민주당은 전국정당인 만큼 1위 아닌 2위도 당선되는 중선거구제가 유리할 것으로 봤고, 평민당은 호남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는 만큼 소선거구제를 도입해야 승산이 있을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YS 측근 김덕룡이 “소선거구제를 받으면 통일민주당이 제2야당으로 추락할 수 있다”며 반대했지만 YS는 ‘군정 종식을 위한 야권 통합이 꼭 필요하다’며 양보했습니다. 1971년 이후 17년 만에 소선거구제가 부활했고, 당초 약속한 야권 통합은 무산됐습니다.
통합 협상 최종안에 도장을 찍기로 한 3월 19일, 회동 장소에 평민당 인사는 없었고 느닷없이 다른 사람들이 몰려들어 소란을 피우는 일이 발생해 협상이 중단됐기 때문입니다. DJ의 바람대로 평민당은 70석을 얻어 제1야당으로 올라섰습니다. 반면 민주당은 득표율 2위임에도 불구 59석을 얻어 제2야당으로 떨어집니다.
그렇게 1988년부터 지금까지 소선거구제로 총선이 치러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권마다 선거제 개편 필요성이 대두됐습니다.
1999년 DJ의 새정치국민회의와 김종필(JP)의 자유민주연합은 중대선거구제를 적극 검토했습니다. 연합공천을 통해 호남과 충청권에서 큰 승리를 거두고, 야당에 유리한 영남에서도 일부 당선자를 낼 수 있을 거란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는 중대선거구 도입에 비판적이었습니다. 당시 야당에서 호남 의원이 등장할 가능성은, 여당이 영남 의원을 낼 가능성보다 낮게 관측됐습니다.
이 총재는 1999년 10월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중선거구제의 폐해를 읊은 뒤 “여권이 추진 중인 중선거구제는 총선에서 야당을 분열시키고 거대 여당을 만들겠다는 정략적 발상에 지나지 않는다”며 경고의 말을 전했습니다.
차기 여권의 유력 대선주자 중 한 명이었던 이인제는 ‘양당 제도 구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중대선거구제 도입은 다당제 등장, 내각제로의 권력구조 개편과 관련 있습니다. 15대 대선에서 신당을 창당해 출마했음에도 19.2% 득표율을 얻은 그는 이회창 대항마가 본인이라 자신했을 겁니다. 다당제와 내각제의 등장을 반기지 않았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부터 중대선거구제·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을 통한 지역주의 정치 극복을 공약했습니다. 2005년 야당에 대연정까지 제안하지만,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는 “중대선거구제나 독일식 비례대표는 여소야대를 고착시킨다”, “대통령제하에선 소선거구제가 맞다”며 소선거구제 유지를 고수했습니다.
지난 21대 총선을 앞두고도 사표 다수 발생, 득표수와 의석수 간 괴리, 민의 왜곡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선거제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바른미래당·민주평화당·정의당·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선거제 개편안과 공수처 설치 등을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하는 것을 두고 극한 대치를 벌입니다. 나경원 당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가 쇠 지렛대(일명 빠루)를 들고 반대에 앞장선 사진이 당시 패스트트랙 정국이 얼마나 혼란했는지를 나타냅니다. 이후 거대 양당이 더불어시민당·미래한국당이란 위성정당을 창당하며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무력화했습니다.
이렇듯 선거제 개편은 정권마다 등장했고, 매번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무산됐습니다. 총선을 1년 앞둔 지금도 과연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날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연초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 검토 필요성을 말해 잠시 주목을 끌었지만, 여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물려 있는 만큼 양측이 합의할 안을 도출하기 어려울 거란 전망이 나옵니다.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18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중대선거구제 이야기를 꺼내긴 했지만, 선거제 개편은 의원들이 결정하는 일이다. 현실적으로 위성정당 폐지하고 비례대표 수를 늘리거나 줄이는 등 정도의 변화가 일어날 것 같다. 혁명적일 정도의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한, 개혁이 어려울 것”이라며 “수도권과 호남, 영남 지역 의원마다 이해관계가 다르다. 의원들의 이기주의를 보면 본인 지역구를 줄이는 데 합의하기 어려울 거다”라고 전했습니다.
여야간 대립이 날로 심화되는 상황입니다. 정치권에서 왜 저런 선택을 했을까 의문이 든 적 한 번쯤 있을겁니다. 이들의 선택은 과거 정치 경험으로부터 얻어진 학습효과 아닐까요. ‘김자영의 정치여행’은 현 정치 상황을 75년 간의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를 비춰 해석해봤습니다. <시사오늘>은 17번째 주제로 현행 소선거구제 도입 배경과 도입 이후 이뤄진 개편 논의를 살펴봤습니다. 금요일에 찾아뵙겠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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