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순자 자유기고가)
오는 6월 21일은 일 년 중 해가 제일 길다는 하지(夏至)다. 나는 하지를 맞이하면서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옛 추억 한 토막의 얘기를 하려고 한다.
그 옛날 농촌에서 부엌마다 까만 무쇠솥을 걸어놓고 밥도 짓고 국도 끓여 먹던 때 얘기다. 우리집은 집터가 넓었다. 앞뜰 건너편으로는 봄철에 감자를 심었다.
이맘때 하지가 닥치면 시골에서는 ‘햇감자 붕알’을 따줘야만 감자가 굵게 만들어진다는 얘기가 있었다. 그런 밤톨만한 감자를 옛날에는 하지 때 볼 수 있어 ‘하지 감자’라고 불렀다.
어머니는 감자밭 머리맡에 심어놓은 야들야들하고 연하디연한 조선 아욱을 따서 다듬고는 감자밭에서 따온 밤톨만한 ‘하지 감자’를 식구 숫자대로 까서 넣고 조선 된장을 풀어 감자 아욱국을 끓였다.
하얀 쌀밥에 감자 아욱국이 어찌나 맛있던지 잊을 수가 없다. 요즘은 가끔 아욱국 생각이 나서 마트에 가면 뻣뻣한 줄거리에 손바닥처럼 넓적넓적한 잎이 달린 외래 아욱밖에 없다.
연하면서 잎이 자그마한 조선 아욱은 찾아볼 수조차 없다. 아무래도 생산성이 떨어져 농민들이 심지 않는가 보다. 또한, 요즘은 ‘하지 감자’란 말도 없어졌다. 하지가 아직 멀었을 때부터 마트에 가면 이미 주먹만 한 햇감자를 무더기 쌓아놓고 팔고 있다.
시대는 자꾸 변해 가는데, 음식들이 그리울까? 그 옛날 감자가 여물어 갈 때면 강낭콩도 여물어서 밥에 넣어 먹곤 했다.
특히 여름 장마가 질 때면 엄마는 큰 가마솥에 감자를 삶고 그 위에 밀가루 반죽을 얹어 강낭콩을 올려 익혔다. 그다음 큰 주걱으로 감자와 밀가루 반죽, 강낭콩을 으깬 뒤 적당히 소금간을 쳤다. 그 맛이 어찌나 고소하고 맛있었는지 모른다.
감자를 썰어 넣고, 숟가락으로 떠넣어 끓였던 수제비나 손칼국수 맛은 또 어땠던가? 모두 그립고 추억의 맛이다. 그런 음식들을 해주던 어머니도 그립다.
※ 시민 기고는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을 쓰는 이순자 씨는 서울 양천구 신월동에 사는 77세 할머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