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도시 난개발 조장’으로 방향 틀었다 [金亨錫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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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도시 난개발 조장’으로 방향 틀었다 [金亨錫 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3.07.07 17: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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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부터 지자체장 개발제한구역 해제권 확대”
“만연한 포퓰리즘에 총선까지 앞둔 시점에서”
“국토관리는 대개 국가적 안목에 맡겼어야”
“‘그린벨트’는 황폐화 막아온 최소한의 장치” 
“지자체들의 둘레길 조성에 한 가닥 기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사진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6월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국무회의는 지난달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사진은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지난 6월 1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 연합뉴스

이달부터 지방자치단체장의 개발제한구역 해제 권한이 대폭 확대됐다. 곳곳에서 난개발이 기승을 부릴 것으로 보인다. 

국무회의는 지난달 ‘개발제한구역의 지정 및 관리에 관한 특별조치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7월부터 시·도지사가 갖는 개발제한구역 해제 면적 기준을 ‘30만㎡ 이하’에서 ‘100만㎡ 미만’으로 3배 이상 확대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그린벨트’ 규제 완화는 2015년 5월 이후 7년 8개월 만이며 그간 지자체장들이 계속 요구해 온 사안이다. 수도권은 현재대로 30만㎡ 이하로 제한됐다. 하긴 수도권의 난개발은 더 이상 심화할 여지도 별로 없다. 

정치권에 의한 포퓰리즘 전성시대에서 총선을 앞두고 지자체가 각종 개발 민원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벌써 지방 곳곳에서 지자체의 ‘함박웃음’ 소식과 함께 건설업자들과 총선 예비 후보자들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윤 정부는 크게 봐서 ‘개발’과 ‘보전’ 둘 중에서 개발을 택했다. 포퓰리즘 정책은 민주당 전용물인 줄 알았더니 국민의힘 정부도 그에 못지않다.  

박정희의 원려(遠慮), 이후의 포퓰리즘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는 천재 지도자, 아니면 지독하게 공부를 열심히 한 지도자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철강, 비철금속, 기계, 조선, 전자, 화학 공업 등 이른바 중화학 공업화를 추진하면서 국토의 일정 부분 훼손과 공업지대의 대폭 확대가 불가피할 것으로 예측했던 모양이다. 예측까지야 할 수 있다고 해도 예측에 그치지 않고 그를 보완할 대안으로 어디서 가져왔는지 이른바 ‘그린벨트’ 자료를 실무자에게 ‘불쑥’ 내밀며 시행을 지시했다고 한다.
 
1971년 그때까지 우리에게 생소하던 그린벨트 정책 도입을 추진하자 즉각 거센 반대 목소리가 나왔다. 국가가 사유재산인 땅의 개발과 용도를 제한한다니, 당연히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 말로는 개발 제한이지만 실제로는 시골 상태 그대로 낙후되도록 강제하는 개발 금지가 현실이었고, 또 명백한 사유재산 침해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그러나 박정희 치하에서 이 ‘그린벨트’는 거의 완벽한 수준으로 지켜졌고 이후 국가 전체의 급속한 발전 속에서도 도시 환경 보전과 개발 여지를 보존해 왔다는 점에서 후한 평가를 받았다.  

물론 그린벨트가 순조롭게 지켜진 건 아니었다. 그린벨트를 둘러싼 잡음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주무부처인 건설부(국토교통부 전신)에서는 위아래 할 것 없이 대부분 직원이 기피 업무로 치부하고 손 대기를 꺼렸다. 어떻게 처리하든 뒷말만 무성하고 해결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수도권 관련 정책과 함께 그린벨트 업무는 땅과 관련된 업무여서 그만큼 민원도 많았고 비리가 개입될 여지도 많았다. 

그러나 점차 서울을 비롯한 대도시의 대규모 택지개발사업, 공업단지 조성사업에 따라 개발제한구역이 많이 감소해 왔으며 내년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지자체의 해제 권한까지 대폭 확대됨으로써 이제 마구잡이로 해제될 것이 불 보듯 뻔해졌다. 국토교통부는 지방화 시대, 지자체 권한 확대라는 명분 아래 그린벨트 정책의 변화를 꾀한다고 하지만 실은 포퓰리즘 정책으로 봐서 틀릴 게 없다.  

‘개발’과 ‘보전’ 

개발제한구역과 그린벨트는 다른 뜻, 다른 말이다. 

그린벨트는 1942년 영국에서 발표된 도시 계획서의 주요 내용이다. 말 그대로 도시 주변에 ‘녹지대’를 설정해 새로운 토지 이용의 통제, 도시 과잉 인구 분산 따위의 내용을 포함한 것이다. 현재 20여 개 나라에서 시행되고 있으며 그린벨트 정책을 언급할 때 우리나라는 영국의 사례와 함께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나라다. 압축성장 과정에서도 비교적 도시의 난개발을 최소화하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받은 덕분이었다. 

그에 비해 개발제한구역은 녹지대와는 큰 상관이 없이 정부가 임의로 줄을 그어 개발을 제한해 놓은, 말뜻 그대로 개발제한구역이다. 어쨌든 한국이 그린벨트 성공 사례로 꼽히는 건 박정희의 공으로 돌려 마땅하다. 

박정희는 중화학공업 육성을 계획하면서 어떻게 그린벨트에 눈을 돌렸을까? 그의 집중력을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공업화 정책, 국가 근대화 작업을 기획하면서 당연히 서구 선진국 케이스를 돌아봤을 테고 고대 로마로부터 이어져 온 근대 도시 발전사를 연구했음 직하다. 본인이 했든, 참모들을 시켜서 했든 간에. 그린벨트 정책과 함께 고속도로 건설, 서울 강남권 개발, 수도권 신도시 개발 등 박정희 정권 때 구상되고 밑그림이 그려졌던 각종 국토 관련 정책들이 그런 짐작을 가능케 한다. 

그 과정에서 박 전 대통령이 눈앞의 개발에만 급급하지 않고 후대를 위한 보전의 가치도 인정하고 실행에 옮긴 셈이니 지도자로서 덕목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이제 바야흐로 개발의 시대를 맞았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까지 주택 공급용 택지 확보와 산업용지 확보 등을 이유로 개발제한구역을 해제하기 시작했다. 특히 박근혜 정부는 2015년 30만㎡ 이하 중·소규모 해제 권한을 지자체로 위임, 박정희의 대업이었던 개발제한구역 해제를 촉진하는 조치를 단행해 눈길을 모으기도 했다.

현재 개발제한구역은 최초 지정 당시의 70% 미만으로 추산되며 이달부터 해제 면적이 더욱 급속히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수도권 지역에서도 개발제한구역 해제 범위를 확대하는 방안을 의원 입법으로 추진 중이라니 그렇게 되면 개발제한구역은 그 뿌리부터 흔들리는 결과를 맞을 수도 있겠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출마자와 각 당은 표를 얻기 위해 개발 공약을 남발하기 십상일 테니 ‘박정희의 저축’은 금세 바닥난다고 봐야 할 거다.

개발론자들이 내세우는 단골 메뉴는 부동산 시장 안정과 주민 생활 향상을 위한 산업시설 유치다. 그러나 2023년의 대한민국에서 그게 납득할 수 있는 주장일까? 

인구 감소 시대를 맞으며 부동산 시장은 수도권의 문제일 뿐이지 지방의 미분양 아파트는 계속 쌓이고 있다. 산업시설? 지난 정부의 지방 활성화를 위한 ‘강제 이주’ 정책에 의해 대형 공기업 등이 지방으로 이전했지만, 이 정부에서도 그런 대이동이 가능할까? 여전히 중앙에 대통령실, 국회, 금융기관, 각종 관련 단체 등이 밀집돼 있는데 민간기업이라고 쉽게 지방 이전을 생각할까? 그래서 개발 논리는 정치권과 이해관계자들의 ‘눈 가리고 아웅’ 식 공약(空約)일 뿐이라는 얘기다. 

혹시 모르겠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나 정치권의 실세들이 총선에 출마할 경우, 해당 지역에 대한 공약은 실현될 수 있을지도…!

정작 이제부터 ‘그린벨트’를 시행할 때

대도시의 허파 기능, 미래세대를 위한 공간 역할을 위해 개발제한구역을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일각에서는 그를 위해 정부가 땅을 사들여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온다. 그러나 정부의 재정 상태로 보아 그건 실현이 거의 불가능하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토지 정책은 변하게 마련이다. 농지의 전용을 억제하기 위한 ‘절대농지’ 지정 제도가 1996년 농업진흥지역으로 바뀌었듯이 개발제한구역도  대폭 완화되는 게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포퓰리즘 여부를 떠나, 개발제한구역의 온전한 존속은 어렵게 됐다는 얘기다. 머지않아 개발이 제한되는 땅은 대부분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개발의 방향을 자연 친화적으로, 말 그대로 ‘그린벨트’ 조성으로 잡는 게 어떨까 한다. 

정치인, 업자, 지자체들에는 결코 기대하기 어려운 주문이지만 요즘 시민들의 트렌드, 생활 습관 등에서 작은 희망을 볼 수 있다. 지자체들이 주민들의 요구에 부응해 경쟁적으로 개발 중인 트래킹 코스, 공원 등을 말하는 것이다. 어느 지방 소도시를 가더라도 걷는 길과 공원 조성에 열심인 모습을 볼 수 있다. 

제대로 된 정치인이라면 몇 푼 안 되는 쩨쩨한 선심형 복지공약보다는 녹지공간(그린벨트)의 대폭 확대에 선거전략의 초점을 맞추는 게 어떨까 싶다.  존경받는 정치인의 길로! 
수준 높은 선거구민들이 당신을 택해줄 것이다. 

김형석(金亨錫) 논설위원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 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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