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文의 길’ 따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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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文의 길’ 따를 수 있을까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3.08.14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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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노·도덕성·PK출신 ‘3박자’ 갖췄던 文…비노·사법리스크·TK출신 李의 미래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전혀 다른 환경에 놓여 있다.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문재인 전 대통령과 전혀 다른 환경에 놓여 있다. ⓒ연합뉴스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나라에선 여덟 명의 대통령이 배출됐다. 그 중 직전 대선에서 2위에 그친 후 바로 다음 대선에서 당선된 케이스는 세 번 있었다. 제14대 대통령 김영삼, 제15대 대통령 김대중, 제19대 대통령 문재인이 그들이다.

이 가운데서도 문재인 전 대통령의 성공은 특기(特記)할 만하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도 대권 재수 과정에서 ‘가시밭길’을 걸었던 건 마찬가지지만, ‘보스 정치’ 시대였다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 환경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반면 문 전 대통령은 정당 민주주의가 정착된 상황에서도 5년 동안 자신의 세력을 유지했고, 최종적으로 대권까지 거머쥐었다. 매 선거 때마다 대통령 후보가 바뀔 정도로 ‘신선한 인물’에 대한 갈망이 큰 대한민국 정치에서, 문 전 대통령의 성공은 독특한 데가 있다.

문재인의 세 가지 무기

이처럼 문 전 대통령이 ‘대권 재수’에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세 가지 요인이 작용했다. 첫 번째는 ‘주류’였다는 점이다.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후, 폐족(廢族) 위기에 몰렸던 친노(親盧)는 화려하게 부활했다.

이들은 2012년 제19대 총선을 앞두고 야권 통합에 참여하면서 민주통합당을 장악해나갔다. 2012년 1월 15일 열린 대표 경선에서는 ‘친노 직계’인 한명숙 전 국무총리가 1위를, ‘친노 비주류’인 문성근 전 시민통합당 공동대표가 2위를 차지했을 정도였다.

이후 민주당은 문 전 대통령이 ‘대주주’인 ‘친노 정당’이나 다름없었다. 안철수 의원과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 등이 도전장을 던졌지만, ‘비주류’인 이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었다. 민주당 탈당 당시 안 의원이 ‘친노 패권주의’를 지적했던 건 이런 이유였다. 문 전 대통령이 5년이라는 시간을 뛰어넘을 수 있었던 비결은 민주당의 구조 그 자체에 있었던 셈이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정치는 ‘영원한 적도 동지도 없는’ 세계다. 문 전 대통령이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경쟁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면, 친노도 ‘포스트 문재인’을 찾아 뿔뿔이 흩어졌을 공산이 크다.

그러나 문 전 대통령에겐 5년이라는 긴 시간을 버틸 수 있을 만큼 값진 자산이 있었다. 하나는 도덕성이었다. 두 차례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 문 전 대통령은 단 한 번도 도덕성에 의심을 받은 적이 없었다. 정치력과 권력 의지에 의문을 던지는 사람은 있었을지언정, 그가 ‘도덕적 인물’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목소리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와 대선에서 두 번 맞붙었던 국민의힘 인사들조차도 ‘지나친 완고함이 나라를 망칠 것’이라고 우려했을 뿐 ‘결벽증’에 가까운 그의 도덕성을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이는 주류 세력의 대주주인 문 전 대통령이 다른 대권 경쟁자들의 추격을 허용하지 않는 결정적 요인이었다.

다른 하나는 지역성이다. 민주당의 전통적 선거 전략은 ‘영남 출신 민주당 후보’를 내세우는 것이다. 영남 정치인을 내세워 영남 표 일부를 분산시키고, 호남의 압도적 지지를 더하는 게 민주당의 ‘필승 공식’이었다. 때문에 부산 출신인 문 전 대통령은 자신보다 경쟁력 있는 영남 후보가 등장하지 않는 한, ‘비교우위’에 설 수 있는 강점을 갖고 있었다.

이재명의 세 가지 약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문 전 대통령과 유사한 면이 있다. 직전 대선에서 석패(惜敗)했고, 이를 기반으로 차기 총선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타이밍에 당대표 자리에 올랐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차기 대권을 노리는 이 대표가 문 전 대통령의 ‘로드맵’을 그대로 따르려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러나 이 대표가 처한 환경은 문 전 대통령과 전혀 다르다. 우선 이 대표는 여전히 민주당의 ‘주류’라는 느낌이 약하다. 친문(親文)이 마땅한 대권주자를 띄우지 못한 탓에 이 대표가 ‘빈틈’을 파고든 형상이다. 여전히 민주당 인사들이 문 전 대통령이 거주하고 있는 평산마을을 찾아 사진 한 장 찍는 데 목을 매고 있다는 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런 상황에서 친문이 차기 대권주자를 발굴하는 데 성공한다면, 이 대표의 영향력은 급속히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 과거 문 전 대통령이 친노라는 든든한 기반 위에서 ‘당권 회수’ 타이밍만을 재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 대표는 당의 지분 구조를 친명(親明) 위주로 재정립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김은경 혁신위’가 무리를 하면서까지 공천 룰 손질에 나선 건 이 대표의 고민이 어디 있는지를 명징(明澄)하게 보여준다.

도덕성 논란에 휩싸여 있다는 점도 문제다. 반문(反文)이 내세울 수 있는 명분이 ‘친노 패권주의’ 정도였던 반면, 반명(反明)이 ‘이재명 체제 불가론’을 만들어낼 재료는 차고 넘친다.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조사가 민주당 지지율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분위기가 조성될 시, ‘이재명 체제’가 차기 총선까지 지속되기는 쉽지 않다.

‘대선 경쟁력’에 대한 의심도 이 대표가 넘어야 할 산이다.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민주당은 영남 출신 후보를 앞세워 호남의 압도적 지지 위에 영남의 이탈표를 얹는 방식으로 대선을 치러왔다.

하지만 지난 대선 당시, 이 대표는 경북 안동 출신임에도 대구에서 21.60%, 경북에서 23.80%를 얻는 데 그쳤다. 제19대 대선에서 문 전 대통령이 얻은 표(대구 21.76%, 경북 21.73%)와 거의 차이가 없는 수준이다.

지역주의가 부활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제21대 총선을 봐도, 민주당은 부산·경남에서 7명의 당선자를 배출한 반면 대구·경북에선 말 그대로 전멸(全滅)했다. 민주당 입장에선 이 대표가 ‘영남 표 분산’이라는 제1과제를 수행할 수 있는 후보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생길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지난주 <시사오늘>과 만난 국민의힘 관계자는 “사법리스크도 사법리스크지만, 이 대표는 TK(대구·경북) 출신의 비문(非文)이라는 엄청난 약점을 갖고 있다”면서 “4년 동안 친노·친문이 또 다시 대권주자를 만들지 못하는 이례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 대표가 대권에 재도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과연 이 대표는 당권 장악과 사법리스크 돌파라는 난제(難題)를 해결하고 ‘문재인의 길’을 따를 수 있을까.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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