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과 국’이 세계 음식 된다니… [金亨錫 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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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국’이 세계 음식 된다니… [金亨錫 시론]
  • 김형석 논설위원
  • 승인 2023.10.08 13: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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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볶이, 냉동김밥까지 미국 시장에서 인기”
“비싼 값 내고 상추쌈 우걱우걱 먹는 뉴요커들”
“된장과 마늘도 서양 입맛에 침투 중”
“‘프랑스 음식 패권 끝냈다’는 성급한 보도까지”
“대장금 메뉴와 국밥 혼재한 한식문화 정립해
…넉넉한 나눔의 식문화까지 보급했으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형석 논설위원]

사진은 지난 5월 30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킨텍스에서 열린 2023 서울국제식품산업대전에서 캐나다 참관객들이 떡볶이를 맛보고 있는 모습. ⓒ 뉴시스
‘미쉐린 가이드 뉴욕’에서 별 한 개 이상 받은 식당 72곳 중 한식당이 9곳이라고 전해진다. 사진은 지난 5월 30일 오전 경기 고양시 일산서구 킨텍스에서 열린 2023 서울국제식품산업대전에서 캐나다 참관객들이 떡볶이를 맛보고 있는 모습. ⓒ 뉴시스

나물 반찬에 토란국, 산적 등 모처럼 잘 차려진 한가위 밥상을 물리고 보니 반가운 뉴스가 하나 눈에 띄었다. 포식한 후라서 그런지 먹는 것에 관한 뉴스.

“한국 음식이 ‘프렌치’ 요리의 패권을 끝냈다”라는 <뉴욕타임스> 기사다. 반갑기는 하지만 선뜻 믿기 어려운, 다소 과장된 것 같은 기사. 그런데 검색해 보니 과장만도 아닌, 요즘 젊은이들 말로 ‘레알(real)’에 가까운 얘기다.
 
한식이 대세라는 ‘증거들’

밥 잘 먹고 나서 굳이 그 기사의 진위 파악에 나선 건, <뉴욕타임스>라는 신문이 믿을 만도 하거니와 그 신문이 굳이 한식에 관해 과장 보도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뉴욕타임스>는 기사에서 ‘한식이 세계 식당가에서 대세를 이루고 있다’며 ‘한식이 프랑스 요리의 패권을 끝냈다’고 덧붙였다. 한 면 전체를 할애한 ‘한국 레스토랑이 뉴욕 파인 다이닝(fine dining)을 재창조한 방법’이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에서다. ‘파인 다이닝’은 맛 서비스 가격 등 모든 면에서 최고 수준인 식당을 말한다.

저럴 정도라면 아무래도 우리만, 아니 필자만 잘 모르고 있었던 것 아닌가 싶어 한식 관련 다른 기사들을 좀 더 자세히 검색해 봤다. 한식이 과연 세계인의 입맛을 잡아가고 있는지를….

‘미쉐린 가이드 뉴욕’에서 별 한 개 이상 받은 식당 72곳 중 한식당이 9곳, 프랑스 식당이 7곳이라고 전해진다. 프랑스 미쉐린 가이드가 프랑스 식당보다 한식당을 더 많이 꼽았다? 뉴욕의 한식당 꽃뿐만 아니라 샌프란시스코의 쌀, 베를린의 고추가루, 벨기에의 마루 등등이 셰프들 사이에서 최고의 한식당으로 꼽혔다.

한국에서 ‘정식당’으로 성공한 임정식 셰프가 2011년 뉴욕에 낸 첫 한식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 ‘정식’이 고급 한식당 원조 격이 됐다고 한다. 싸이의 ‘강남스타일’ 등을 통해 한국 문화가 서서히 미국인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시점에 미국에 진출해 성공의 틀을 잡아놨다는 것. 이후 ‘뉴욕서 먹히는 한식 파인 다이닝’의 감을 잡은 젊은 한인 셰프들이 저마다 방식으로 한식을 업그레이드시켰다고 전해진다.

지난해 ‘정식’과 함께 한식당 중 유일하게 별 2개를 받은 아토믹스(Atomix) 박정현 셰프는 뉴욕 ‘정식’ 창립 멤버 중 한 명. 지난 6월 발표된 ‘2023 월드 베스트 레스토랑 50′(W50B) 순위에서 세계 8위, 미국 1위에 올랐다. 1인당 375달러(약 50만 원)짜리 고급 코스요리를 선보였으며 한국식 젓갈로 맛을 낸 갈치, 와규 등 10가지 코스가 쌈장과 같은 한국식 소스와 등장한다. 뉴욕 파인 다이닝의 대표 주자 ‘퍼세(Per Se, 미쉐린 별 셋)’의 390달러짜리 코스와 맞먹는 가격이다. 이 식당에서는 놀랍게도 된장소스 생선요리도 내놓는다. 상추쌈을 우걱우걱 먹는 서양인들의 식사 풍경이 쉽사리 상상되지 않는다. 아참, 그러고 보니 TV 먹방 프로그램을 통해 밀라노에서 상추쌈을 맛있게 싸 먹는 현지인들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축구 스타 리오넬 메시가 지난달 리그 우승 자축 파티를 마이애미의 한식당 ‘꽃(COTE)’에서 열었다고 한다. 한글로 ‘꽃’이라고 간판을 붙인 이 식당은 한국 고깃집을 현지인들이 먹기 쉽게 재해석해 큰 성공을 거뒀다. 미국 주요 도시에서 저마다 유치 경쟁을 벌일 정도라고 한다. 일본의 ‘와규’가 세계 입맛을 잡은 데 이어 ‘한우’가 와규 시장을 접수할 날이 올까. 실제로 방한 외국인 중에서 한우를 제1의 한국 관광상품으로 꼽는 사람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배 채우기 식문화로 여겨지던 한식이 세계 미식을 선도하는 고급 요리로 위상을 정립한 건 사실인 듯하다. 며칠 전 레스토랑 ‘쌀’에서 식사했다는 20대 여성은 “두 명이 코스 주문하고, 와인 한 병 먹었더니 1000달러 넘게 나왔다”고 말했다는 한 신문 기사도 보인다.

늘어나는 한식 수요에 식재료 수출까지 증가

낙지 요리, 생선회, 홍어찜, 흑돼지 요리는 이제 서울에서도 손쉽게 먹을 수 있다. 유통과정이 단축되고 음식 재료 보관기술이 좋아진 덕분이다. 손맛 잘 내는 요리사들의 서울 진출이 활발해진 것도 한몫했다. 당연히 지방 현지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식재료들의 판매량이 늘어났다.

지구촌 중심도시 뉴욕에서는 각국의 다양한 요리가 선보인다. 프랑스, 이탈리아, 일본, 중국요리 등이 일찌감치 뉴요커들의 입맛을 사로잡았다. 프랑스·이탈리아 요리에 쓰이는 해산물과 밀, 누들 등의 대미 수출 물량이 무시 못 할 정도였다. 요즘 한식당이 활발해지면서 한식 재료 현지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2009년 한국쌀가공식품협회가 8억 원을 들여 ‘떡볶이 R&D센터’를 열고 ‘떡볶이 세계화’를 선언했다. 자칭 음식 전문가란 사람들은 “떡의 끈적한 식감을 외국인은 싫어한다”며 한식의 세계화를 부정적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BTS가 떡볶이 먹는 영상을 올리자, 이내 떡볶이가 젊은이 중심의 세계음식이 됐다. 지난 3월 NBC 뉴스는 ‘떡볶이(Tteokbokki)가 미국 시장을 점령했다’고까지 보도했다. 음식 전문가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가게 하고 십여 년 걸려 성공한 사례다.

미국 대형마트 ‘트레이드 조’가 출시한 냉동식품 김밥까지 한식 붐에 가세했다. 올 9월 중순까지 쌀 가공식품 수출액이 1억4500만 달러로 지난해 대비 두 자리 상승세를 보였다. 경북 구미 중소기업이 생산하는 230g짜리 냉동 김밥은 3.99 달러짜리 초도 물량 250톤이 미국에서 순식간에 매진됐다. 채식주의자들이 열광하며 “10점 만점에 15점”이라고 극찬한다고 전해진다.

3세대 한식 메뉴와 나눔의 미학도 기대하며

한식 세계화에 BTS나 싸이 등 젊은 연예인들이 기여한 바가 크다. 훈장이라도 줬으면 좋겠다. 비틀스, 숀 코너리 등 연예인에게 훈장과 기사 작위까지 줬던 영국의 경우를 참고삼아 볼 만하다.

그들 인기에 힘입어 “마늘 냄새 난다”고 구박받던 한국 음식이 세계음식으로 부상하고 있다. 70년 전, 많은 한국인의 음식은 미군 부대 뒷구멍으로 나온 재료로 끓인 부대찌개, 심지어 음식 찌꺼기들을 넣어 끓인 꿀꿀이죽 등이었다. 아이들이 미군 지프차를 뒤따라가며 “기브 미 쪼꼬레또(Give me chocolate)!”를 외치던 가난한 나라였다. 한식 세계화를 제2한강의 기적으로 불러 이상할 게 없다.

이민 1세대가 한인타운에서 교포 고객 중심으로 끓여 내던 곰탕집이 한입 김밥과 한식 코스 등으로 진화하며 ‘프랑스 음식 패권까지 끝냈다’는 평가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제 한식의 도전은 3세대로 진화해야 한다. 이미 미국에 진출한 돼지곰탕, 김치만두, 수제비, 양념갈비 등에 이어 대장금 메뉴와 포장마차 메뉴까지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세계시장에 선보일 차례다.

김치와 함께 한식 필수 메뉴인 국과 탕은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장터국밥, 냄새나는 홍어애탕과 청국장 등 찌개류. 임금이 선농단에서 백성과 함께 끓여 먹었다는 설렁탕, 궁중음식인 신선로. 국(탕)과 밥은 그런 점에서 한식 대표 메뉴로 더욱 조화롭게 키워낼 만하다.

떡·강정류·약과·수정과·식혜·화전·오미자·화채 등 디저트 분야는 맛뿐만 아니라 색깔과 맛의 조합 측면에서 세계 일류 디저트로 꼽을만하다. 관련 문헌은 우리의 ‘디저트’에 대해 ‘식사 때 여러 종류의 반찬을 먹느라 어지러워진 기운을 평화롭게 해준다. 또 단맛으로 위장의 기운을 느슨하게 풀어 주어, 남은 식욕과 공복감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한다’고 적어놓고 있다. 매우 과학적이다. 식후 기분 전환이나 입안을 깨끗하게 해주는 걸 넘어 형식의 완결미까지 갖췄다.

하나 더! 우리 먹거리 전통은 나눔의 미학까지 보여준다. 과객(過客)에게도 밥상을 차려내 주었다. 6·25 전쟁 후 어려웠던 시절에도 깡통을 들고 문 앞에 찾아온 아이들에게 밥을 나눠줬고 문 앞에서 목탁을 두드리는 동냥 스님에겐 쌀 한 숟갈이라도 보시하는 전통이 이어졌었다. 맛있고 조화로운 한식보다 훨씬 더 값진 상생의 문화유산이다.

대장금 메뉴와 장터국밥, 완벽한 디저트까지 합쳐진 3세대 한식 메뉴. 그리고 아름다운 먹거리 나눔 문화의 재생을 기다려 본다.

김형석(金亨錫) 논설위원은…

연합뉴스 지방1부, 사회부, 경제부, 주간부, 산업부, 전국부, 뉴미디어실 기자를 지냈다. 생활경제부장, 산업부장, 논설위원, 전략사업본부장 등을 역임했다. 

정년퇴직 후 경력으로 △2007년 말 창간한 신설 언론사 아주일보(현 아주경제) 편집총괄 전무 △광고대행사 KGT 회장 △물류회사 물류혁명 수석고문 △시설안전공단 사외이사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외이사 △중앙언론사 전·현직 경제분야 논설위원 모임 ‘시장경제포럼’ 창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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