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열린우리당, 다시 민주당으로 [한국정당사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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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열린우리당, 다시 민주당으로 [한국정당사⑯]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3.11.09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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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대 총선 이후 연전연패…대통합민주신당 거쳐 다시 통합민주당으로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제17대 총선 이후 모든 선거에서 연전연패한 열린우리당은 결국 구 새천년민주당 세력과 다시 힘을 합쳐 통합민주당으로 재탄생한다. ⓒ시사오늘 정세연
제17대 총선 이후 모든 선거에서 연전연패한 열린우리당은 결국 구 새천년민주당 세력과 다시 힘을 합쳐 통합민주당으로 재탄생한다. ⓒ시사오늘 정세연

제17대 총선 승리로 열린우리당은 과반 의석을 가진 여당이 됐습니다. 노무현 정부와 열린우리당 앞에는 탄탄대로가 놓인 것 같았죠. 그러나 이때부터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우하향하기 시작합니다. 2004년 총선 이후 치러진 8번의 선거에서 내리 패했을 정도입니다. 특히 2006년 지방선거에선 16개 광역자치단체장 중 겨우 2석을 얻는 데 그쳤습니다. 제17대 총선이 처음이자 마지막 승전보였던 셈입니다.

열린우리당에는 몇 가지 불안요소가 존재했습니다. 우선 노무현 당시 대통령의 ‘당정 분리’에 대한 신념 때문에 정부와 당의 관계가 단절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당정 분리는 여당의 정치적 자율성을 제고하기 위한 장치지만, 이것이 극단적으로 흘러가자 여당이 정부의 결정에 어떤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한 채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당내에서 지나치게 많은 이견이 표출된 것도 문제였습니다. 당시 열린우리당은 ‘원노 친노’인 천정배·정동영·신기남에 김한길 등의 온건보수파, 일부 동교동계, 386세대 운동권 출신 등이 모두 모인 정당이었습니다. 이념적 동일성이 약했죠. 여기에 전체 152석 중 108명이나 되는 초선 의원들이 제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다 보니 당내 갈등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이런 위기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탄탄한 지지 기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창당 과정에서 의도적으로 호남을 배제한 열린우리당에는 지역 기반이 없었습니다. 열린우리당이 내세운 전국정당화는 ‘좋을 때’ 전 지역에서 표를 얻는 기반이 됐지만, ‘나쁠 때’ 그 어떤 지역도 열린우리당을 지켜주지 않는 원인이 됐습니다.

이런저런 이유로 열린우리당은 제17대 총선 승리 이후 치러진 각종 재보궐선거와 2006년 지방선거에서 모두 참패하게 됩니다. 지방선거 패배 직후엔 노무현 당시 대통령 지지율도 20%대로 추락했죠. 이러자 당내에서는 ‘더 이상 열린우리당 간판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위기감이 확산됐고,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에 접어들자마자 탈당 러시가 시작됩니다.

2007년 1월. 천정배계로 분류되는 임종인의 탈당을 시작으로 2월에는 김한길계 20여 명이, 6월에는 임종석·우상호 등 초재선 386 의원 17명이 대거 탈당했습니다. 곧이어 당의 ‘기둥’이었던 정동영과 김근태도 당을 떠났죠. 특히 정동영은 열린우리당 창당 주역인 ‘천정신(천정배·정동영·신기남)’ 중 한 명이자 양대 계파(정동영계·김근태계) 수장 중 한 명이었던 만큼, 그의 탈당은 열린우리당의 와해를 상징하는 사건이나 다름없었습니다.

2007년에만 천정배·김한길·임종석·우상호·김근태·정동영·문희상 등 유력 정치인들이 모두 떠난 열린우리당에는 46명의 의원들만이 남았습니다. 반면 열린우리당 탈당 인사 80여 명과 민주당 출신인 김효석·이낙연·채일병·김홍업·신중식 5명은 한나라당을 떠난 손학규 전 경기지사와 손을 잡고 대통합민주신당을 창당합니다. 이로써 대통합민주신당은 일약 원내 제2당으로 올라섰고, 열린우리당은 제3당까지 추락하고 맙니다.

그리고 대통합민주신당 창당 후 보름이 지난 8월 20일. 완전히 힘을 잃은 열린우리당은 대통합민주신당과 합당합니다. 당대당 통합의 모양새를 갖추려 했지만, 대통합민주신당이 열린우리당의 자산과 부채를 승계하는 사실상의 흡수합당이었죠. 이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열린우리당은 창당 3년 9개월여 만에 간판을 내리게 됩니다.

그러나 대통합민주신당의 생명력 역시 길지 않았습니다. 수차례에 걸친 탈당으로 눈을 가렸을 뿐, 사실 대통합민주신당은 ‘도로 열린우리당’이나 다름없는 정당이었기 때문입니다. 중앙위원회에는 손학규 세력인 선진평화연대와 시민사회세력인 미래창조연대가 과반의 지분을 갖고 있었지만 ‘도로 열린우리당’ 이미지를 벗기에는 역부족이었습니다.

당연히 국민들은 제17대 대선에서 노무현 정부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대통합민주신당에게 물었고,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로 나선 정동영은 역대 최다표 차(531만 7708표) 패배라는 ‘흑역사’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결국 대통합민주신당은 새천년민주당 후신인 민주당이 중도개혁통합신당과 통합해 만들어진 중도통합민주당과 합당을 결의, 통합민주당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새천년민주당이 열린우리당과 갈라진 지 4년 3개월 만에 구 새천년민주당 세력이 다시 모인 셈입니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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