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창 조각가 ‘형상과 현상, 성스러움에 대하여’ 展 [이화순의 오늘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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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창 조각가 ‘형상과 현상, 성스러움에 대하여’ 展 [이화순의 오늘의 작가]
  • 이화순 칼럼니스트
  • 승인 2024.01.26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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聖과 俗 경계 없앤 전시, 2월 4일까지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서
보광 스님, 원종현 신부님 동반 관람한 ‘동반작가’전  
레퀴엠 음악 속 아들 주검 껴안은 검은 聖母와 부처 등 25점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이화순 칼럼니스트]

ⓒ 사진제공 = 이후창작가
이후창 작가의 ‘형상과 현상-피에타(Pieta)’ ⓒ 사진제공 = 이후창작가

“검은 성모와 금빛 유리 조각 예수 ‘피에타’가 궁금한가요?” 

모차르트의 레퀴엠 음악이 장중하게 흘러나오는 가운데 번쩍이는 미러볼 조명 아래 황금빛으로 빛나는 유리조각 아들의 주검을 껴안은 처연한 잿빛 성모(聖母) 마리아. 3000년만에 핀다는 우담바라가 핀 스테인리스스틸의 부처 머리….

천주교 성지라는 종교적 성격 때문에 충분히 조명받지 못한 명소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에 검은 성모마리아가 황금 유리 예수를 품에 안은 특별한 ‘피에타’가 있다. 유리와 금속 등 소재로 독창적 작품을 추구하는 이후창 초대전 <형상과 현상, 성스러움에 대하여>의 메인 작품. ‘형상과 현상-피에타’는 기대 없이 들어선 관람객들을 강력하게 사로잡는다.

어두운 특별 공간 맨 아래에서 파티장 높이의 ‘형상과 현상-피에타’. 바티칸 성베드로 성당에서 미켈란젤로의 피에타에 환상을 품었어도 좋다. 이후창 작가의 피에타는 그만의 매력이 출중하다. 모차르트의 미완성 장송곡 ‘레퀴엠 d단조 K.626’으로 가득 찬 공간을 조심조심 내려가면 천정의 미러볼 조명을 받으며 회전하는 피에타를 만나게 된다. 잿빛 성모마리아가 거울 유리 조각으로 된 아들 예수를 품에 안은 모습이다. 360도로 천천히 회전한다.

이후창 작가가 작품 ‘형상과 현상-피에타’ 앞에 서있다. ⓒ 사진제공 = 이화순 칼럼니스트
이후창 작가가 작품 ‘형상과 현상-피에타’ 앞에 서있다. ⓒ 사진제공 = 이화순 칼럼니스트

아들 주검을 안아주는 어머니는 모든 빛을 흡수하는 검은 흑연 소재여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서양의 백인 여성을 모델로 한 미켈란젤로의 성모마리아와 달리 이후창의 피에타 주인공은 검은 어머니다. 처연하고 아름다운 어머니를 만들기 위해 스티로폼을 깎아 코팅제로 코팅한 후 흑연가루를 녹여 여러겹을 붓칠하는 과정을 거쳤다. 황금빛으로 보이는 거울 유리 조각을 표현하기 위해 작가는 유리를 직접 조각낸 후 공업용 실리콘으로 하나하나 붙여 만들었다. 예수는 온몸이 피범벅이 되어야 했지만 피 대신 빛을 뿜어대며 세상을 구원하는 모습이다.  

아들보다 몸집도 작아야 할 어머니 뒷모습은 마치 아버지 같기도 하다. 인간과 신의 경계를 넘어선 아들의 주검을 안은 어머니. 어머니의 표정은 지극한 슬픔과 달관 그 어디쯤인지 심연을 알 수 있는 표정이다. 이곳에선 조용히 한참 머물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된다. 계단 이곳저곳에 관람객들이 조용히 작품을 음미하고 있다.

피에타를 보기 위해 먼저 지나쳐온 곳으로 돌아가니 스님과 신부님이 함께 작품 앞에 같이 있었다. 조계종 호계원장과 동국대 총장을 거친 보광스님(청계산 정토산회주)과 원종현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관장 신부님, 오원배작가(동국대명예교수)였다. 예술 앞에 모두 관람객일 뿐이었다.    

금속성 부처 머리에 3000년에 한번 핀다는 우담바라가 피어있는 작품 ‘형상과 현상-우담바라’. 차가운 광택의 스테인리스스틸 소재 부처 머리에서 가지가 뻗어 나오고 그 가지들에서 꽃을 피운 형상이다. 

이후창 작가의 ‘12지신 오벨리스크’ ⓒ 사진제공 = 이후창 작가
이후창 작가의 ‘12지신 오벨리스크’ ⓒ 사진제공 = 이후창 작가

그 옆에는 다양한 크기의 유리공을 탑처럼 쌓아 올린 ‘12지신 오벨리스크’가 서있다. 12개의 길고 짧은 유리 오벨리스크는 옥빛, 붉은빛, 아이보리 빛 형형색색 전시장을 환상적인 컬러로 물들인다. 작품 색깔이 카멜레온의 보호색처럼 다채롭게 변하는 것이다. 유리 기둥 꼭대기에는 올해의 띠 ‘용’을 비롯해, 쥐 소 호랑이 토끼 등 12개의 띠별 동물 형상 오브제가 붙어있다. 

‘형상과 현상-반가사유상’ ⓒ 사진제공 = 이후창 작가
‘형상과 현상-반가사유상’ ⓒ 사진제공 = 이후창 작가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대변하는 듯한 ‘12지신 오벨리스크’ 옆에는 균열한 몸체의 금속 반가사유상이 오벨리스크를 머리에 이고 있다. ‘형상과 현상-반가사유상’이다. 빨간빛, 푸른빛 이 점멸하며 반가사유상의 균열한 틈새로 강렬하게 쏟아진다.

반가사유상이 석가모니가 태자였을 때 인생의 덧없음을 사유하던 모습에서 비롯된 것을 생각해 보면, 이 작품은 오벨리스크와 함께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인생의 덧없음에 대한 작가의 사유를 따라가게 한다.

보광 스님에게 작품 감상 소감을 넌지시 여쭈었다. “좋은 작품입니다”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원종현 관장 신부님은 말을 아꼈다.  

이후창 작가는 서소문성지역사박물관 동반작가로 선정돼 2년여간 꼬박 이번 전시 준비에 매달렸다고 한다.

“불상과 반가사유상, 피에타, 십이지신 등이 있죠. 작품은 종교를 초월한 형상들이지요. 그리고 그들 위에 조명이 있어요. 빛의 변화에 따라 일루전의 형상들이 변하죠. 원효대사가 해골에 담긴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는 이야기 같은 거죠.”

종교인, 비종교인을 떠나 ‘모든 것의 원인은 내 속(마음)에 있다’는 원효대사의 깨달음을 메시지로 전하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당신 안에 답이 있다’ ‘행이건 불행이건 모든 것은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거울은 깨지기 쉬운 점 등 여러 가지 면에서 사람과 속성이 닮아서 전시에서는 거울의 속성을 잘 표현하고자 한다”는 작가는 “이번 전시를 통해 형상과 현상을 통해 성스러움의 본질에 대한 저 나름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만들어 보았다”고도 한다. 

성(聖)과 속(俗)의 이분법도 사절한다. 세상의 모든 것은 결국 어떻게든 연결되어 흐른다는 자연의 섭리와 이치를 작품을 통해 관람객에게 전달하고자 한다. 

이후창 작가는 홍익대학교 조소과 박사과정을 졸업했고, 국내외에서 40여 회 개인전과 500여 회 그룹전을 진행했다.

미국Art New York, Art Palm Springs, CONTEXT Art Miami 및 중국, 홍콩, 대만, 싱가포르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2011년에는 제11회 하정웅 미술상을 수상했고, 2017년 ‘서울 국제 조각 페스타’ 관람객 투표에서 ‘최고 인기 작가상’에 뽑혔다. TV인기드라마 ‘호텔델루나’ ‘달의 연인-보보경심려’ ‘남자친구’ 등 여러 작품에서 비주얼 아트디렉터로 일찌감치 대중과도 눈맞춤을 했다. 전시는 2월 4일까지다. 

이화순 칼럼니스트는…

에이앤씨미디어 대표이자 아트&미디어연구소 소장, 현대정책연구원 전문위원이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객원교수, 평창비엔날레 홍보위원장, 순천만국제자연환경미술제 홍보위원을 역임했다. 

안산문화재단 이사, 서초문화재단 비상임이사, 음성품바축제 연구위원, 서울교통공사 문화예술철도 자문위원을 지냈다. 예술경영 석사, 경영학 박사. 스포츠조선 문화경제팀 팀장, 시사뉴스 문화 경제 국장·칼럼니스트로, 아트플래너, 아트컬럼니스트, 아트컨설턴트로도 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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