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R “화장품 제조사의 7.2%인가 전체 생산의 96% 담당해”
제조사 같으면 기초화장품 기능 같은 경우 많아…마케팅 차이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나영 기자]
화장품 책임판매업체가 3만 개에 이르는 가운데 이들 제품의 96%는 제조사가 같은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전문가들은 “결국 마케팅 차이”라고 입을 모은다. 뷰티 브랜드는 점점 다양해지지만 화장품의 성분이나 제품력, 기능 등에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다는 의미다. 일각에선 건전한 산업 발전을 위해서는 기업 수가 줄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1일 피부기반기술개발사업단(NCR)의 ‘한국 화장품 기업 현황 및 생산실적 분석’에 따르면, 국내 화장품 책임판매업체는 2022년 기준 2만8015개에 달한다. 2013년 1895개였던 것과 비교하면 9년 동안 15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이들 중 생산 실적을 보고한 곳은 1만110개다. 10개 중 3.6개 업체만 생산 실적을 보유한 것이다. 아울러 전체 화장품 제조사의 7.2%인 664개 업체가 총 생산의 96%를 담당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화장품 업체가 많아진 이유는 자체 생산을 하지 않더라도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시장 환경 때문이다. LG생활건강과 아모레퍼시픽 등 대형 기업은 자체적으로 연구개발을 거쳐 화장품을 생산하지만, 다수의 중소 브랜드는 한국콜마, 코스맥스와 같은 제조업자 개발생산(ODM) 업체를 통해 상품을 찍어낸다. 생산 능력을 갖춘 제조사가 제품의 개발부터 생산 및 패키징까지 모두 담당하고, 뷰티 브랜드는 유통망을 통해 화장품을 판매하는 방식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개인이나 작은 기업도 어렵지 않게 화장품 브랜드를 만들어내는 추세다. 당장 사회관계망서비스(SNS)만 보더라도 여러 인플루언서가 자신이 만든 뷰티 브랜드를 내세워 판매하는 경우를 심심찮게 볼 수 있고, 올리브영에는 전체 입점 브랜드의 70~80%가 중소 브랜드다.
대표적인 ODM 기업인 한국콜마와 코스맥스의 호실적이 이를 방증한다. 한국콜마는 지난해 연결 기준 2조1000억 원대 매출과 1400억 원대 영업이익으로, 최대 실적을 달성할 전망이다. 같은 기간 코스맥스 역시 매출이 1조8000억 원대, 영업이익은 1200억 원대로 급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들은 화장품 생산 라인을 갖추지 않고도 ‘마케팅만 잘하면’ 높은 판매고를 올릴 수 있다고 본다. 한 ODM 기업 관계자는 “지난 몇 년 동안 주름 개선에 효과가 있는 스틱 형태의 ‘멀티밤’이 유행했다”며 “여러 기업에서 한 ODM 업체에 생산을 맡긴다”고 전했다.
이어 “같은 제조사에서 생산할 경우 A 기업이나 B 기업이나 성분, 기능 등에서는 큰 차이가 없는 경우도 많다”면서 “A 기업 제품 가격이 더 비싼데도 판매량은 훨씬 높은 걸 보면 결국 마케팅 싸움인 것 같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제품 획일화 및 소기업 편중 현상이 산업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한다. NCR의 보고서에서는 화장품 판매업체가 증가하는 것을 두고 “소규모 업체의 난립으로 산업 기반이 취약해질 수 있다”며 “외형적으로는 화장품 기업이 성장하는 것 같은 착시현상을 일으킬 수 있으나 실질적으로는 오히려 건전한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부정적인 신호가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소기업이 자연스럽게 도태되도록 해 기업 수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색조 화장품은 색상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전체 화장품 중 50%가 넘는 기초화장품의 경우 기능 차이가 거의 없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상황을 아는 소비자들은 브랜드 이름보다 제조사를 먼저 확인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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