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심판론은 허상이다 [주간필담]
스크롤 이동 상태바
정권심판론은 허상이다 [주간필담]
  • 정진호 기자
  • 승인 2024.02.28 13:1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총선은 지역단위 소규모 선거…정권심판론 바람에 큰 영향 안 받아
1992년 이후 8차례 선거서 6차례 여당 승리…야당 승리는 2차례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발언하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최고위원회의를 마치고 밖으로 나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연합뉴스

선거 때가 되면 관습적으로 등장하는 용어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정권심판론’입니다. 말 그대로 투표를 통해 정권을 심판하자는 논리인데요. 대통령 지지율이 낮을 때 야당이 흔히 들고 나오는 주장입니다.

이번 총선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9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경제 상황이 너무 안 좋다. 이 경제 파탄, 민생 파탄의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면서 “이번 선거는 이 정부의 민생 파탄, 경제 무능, 국기 문란을 심판하는 선거”라고 말했습니다.

홍익표 원내대표도 20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윤석열 정부를 비난하며 “많이 부족하지만 대한민국이 직면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 세력은 민주당뿐”이라고 지지를 호소했습니다. 모두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야당에 표를 달라는 논리입니다.

이처럼 야당이 정권심판론에 매달리는 건 윤석열 정부에 대한 부정 평가를 득표로 환원하기 위함입니다. <한국갤럽>이 20일부터 22일까지 실시해 23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은 34%로 나타났습니다. 부정평가는 58%였습니다. 만약 민주당이 정부에 대한 부정 평가를 자신들의 지지율로 치환할 수 있다면 총선은 해보나마나일 겁니다.

그러나 정권심판론이 정말 선거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습니다. 우선 총선의 성격 자체가 문제입니다. 사실 총선은 지역단위 선거입니다. 한정된 지역에 사는 15만~20만 명의 유권자가 한 명의 국회의원을 뽑습니다. 때문에 유권자들은 전국적 이슈만큼이나, 우리 지역에 나온 후보가 내 삶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를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삼습니다.

한 다리 건너 나와 인연이 있는 사람인지, 우리 지역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 집 앞에 버스 노선을 하나 더 놔줄 수 있는지가 중요하지, 정권을 심판하기 위해 상대 당에게 표를 던지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대통령선거라면 현 대통령에 대한 평가가 투표 기준이 되겠지만, 총선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정세운 시사평론가는 지난 20일 <시사오늘>과 만난 자리에서 “정권심판론이라는 게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소규모 선거인 총선의 특성상 승패를 가를 정도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지는 모르겠다”며 “총선은 대통령의 인기보다는 후보 개인의 이미지나 역량, 조직력이 중요한 선거”라고 했습니다.

실제로 얼마 전 <시사오늘>과 만난 국민의힘 지지자는 “국민의힘 후보는 A 고등학교 출신인데 민주당 후보는 B 고등학교 출신이더라. 내가 B 고등학교 출신이니까 이번에는 민주당 찍으려고 한다”면서 “지금까지 B 고등학교 출신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었는데, 이번에 한 명 나오면 얼마나 좋겠나”라고 말했습니다. 지지 정당보다 후보와의 인연이 투표 기준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역사적으로 봐도 정권심판론의 ‘승률’은 높은 편이 아닙니다. 양당 체제가 자리 잡은 1992년 제14대 총선 이후 우리는 8번의 총선을 치렀습니다. 이 중 여당은 6번의 선거에서 원내 제1당이 됐습니다. 야당이 이긴 건 2차례뿐이었고, 그마저도 여당에 불과 1석 앞선 아슬아슬한 승리였습니다. 거의 모든 선거에서 야당이 정권심판론을 들고 나왔다는 걸 상기하면, 정권심판론의 성적표는 그리 신통치 못합니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도 지난달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2004년 이후 치러진 5번의 총선 중 4번을 집권 여당이 승리했다. 2016년만 유일하게 여당(새누리당)이 패했는데 단 1석 차이였다”면서 “총선에서 정권심판론이 크게 작동한다는 믿음은 착각”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심지어 제17대 총선과 제19대 총선 당시 대통령이었던 노무현·이명박은 ‘인기 없는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총선은 여당이 크게 이겼습니다. ‘탄핵 역풍’이니 ‘박근혜 덕’이니 하는 분석이 뒤따랐지만, 이유가 무엇이건 이 통계가 갖는 함의(含意)는 다르지 않습니다. 선거에서 정권심판론은 절대적 변수가 아니며,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변수라는 점입니다.

때문에 야당이 승리하려면 정권심판론에 기댈 것이 아니라, 공천과 캠페인을 통해 국민에게 ‘감동과 희망’을 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실제로 2016년 더불어민주당의 승리는 이해찬·정청래·김현·전병헌·강기정 등을 컷오프한 과감한 공천, 기업인 출신인 양향자·김병관 등의 영입이 상징하는 이념적 확장 의지,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자멸’이 합쳐진 결과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역사를 돌아보면, 그야말로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인간이 할 일을 다하고 하늘의 명을 기다린다는 뜻)의 자세를 보인 야당만이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습니다. 과연 더불어민주당은 ‘승리의 법칙’을 따르고 있는 걸까요. 남은 선거전을 지켜보는 관전포인트입니다.

* 본 기사에 인용된 여론조사의 자세한 조사개요와 결과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http://www.nesdc.go.kr)를 참조하면 된다.

담당업무 : 국회 및 국민의힘 출입합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