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양극화·지정학적 충돌보다 더 큰 위협이 기후 리스크”
“기후위기 극복하려면 정치 문화 바꿀 혁신적 솔루션 필요”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정진호 기자]
지난 5월 8일. 영국 <가디언>은 ‘기후변화에관한국가간협의체(IPCC)’ 보고서 작성에 참여하는 전 세계 전문가 843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응답자 중 약 80%는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기온 상승폭이 최소 2.5도를 넘길 것으로 예상했다.
심지어 응답자 절반가량은 기온 상승폭이 3도를 돌파할 것이라고까지 내다봤다. 이 경우 세계 인구 약 10%가 사는 도시가 물에 잠기고, 생물종 50% 가까이가 멸종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연구 결과다.
그렇다면 왜 인류는 ‘종말로 가는 열차’를 멈추지 못하고 있을까. 앞선 조사에 참여한 응답자의 75%가 그 원인으로 ‘정치적 의지 부족’을 꼽았다. 인류가 이미 기후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도, 더 많은 부를 축적하기 위해 녹색 전환에 실패하고 있다는 게 이들의 지적이다.
이에 <시사오늘>은 5월 28일 국민대학교 정치대학원 ‘북악정치포럼’을 찾아 ‘기후위기시대와 정치의 역할’을 주제로 한 김상협 대통령직속 탄소중립 녹색성장위원회 공동위원장의 강연을 들어 봤다. 김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에서 대통령실 미래전략기획관실 선임비서관과 녹색성장환경비서관, 대통령실 녹색성장기획관을 역임했고, 윤석열 정부에서 대통령직속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환경 전문가’다.
“기후 시스템 무너지는 티핑 포인트 코앞으로 다가와”
먼저 김 위원장은 기후문제의 현황과 기후위기 시대를 대비하는 글로벌 동향을 짚으며 강연을 시작했다.
“최근 세계기상기구의 발표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기온 상승폭은 1.5도가 마지노선이라고 합니다. 1.5도가 티핑포인트라는 거죠. 티핑포인트란 뒤로 돌아갈 수 없는 임계점을 말합니다. 산업화 이전 대비 지구 기온 상승폭이 1.5도에서 2도를 넘어가면 지구 생태계가 자동 복원되는 시스템이 망가져버린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미 1.43도가 올랐다는 발표가 나왔습니다. 이전에는 2050년이 되면 1.5도가 깨진다고 했었는데, 그 예상마저 무너지고 있습니다. 제가 얼마 전 조선일보 아시안 리더십 컨퍼런스에서 세션을 했는데, 기후 과학자들 대부분이 21세기 말이면 3도 안팎까지 오를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금 바다에서 이상 신호가 보이고 있습니다. 바다는 지구의 열을 식혀주고 흡수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 바다의 온도가 역대 최고로 올라가고 있어요. 바다가 이렇게 더웠던 적이 없습니다. 지구 곳곳이 그렇고, 우리 남해도 기록을 경신했어요.
더 위험한 건, 바다가 열을 토해내는 작용을 한다면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겁니다. 처음 겪어봤기 때문에 세계 최고 기후과학자, 해양과학자도 알 수가 없어요. 기우(杞憂)로 끝나면 좋겠는데, 기후 시스템이 무너지는 시간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때문에 안토니우 구테흐스(Antonio Guterres) 유엔사무총장은 ‘기후 지옥’, ‘집단 자살’, ‘끓고 있는 지구’ 같은 과격한 말을 쏟아내면서 기후 문제의 심각성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다보스포럼도 세계의 가장 큰 리스크로 기후변화를 꼽았어요. 경제의 양극화, 금융시장의 불안, 지정학적 충돌 등등보다 기후 리스크를 더 심각하게 보고 있는 거죠.
이런 이유로 탄소중립, 녹색성장은 글로벌한 메인스트림이 되고 있습니다. 이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재선이 되면 현재 4000억 달러 정도인 녹색 산업 투자 규모를 1조 달러까지 키우겠다고 공언했습니다. 유럽연합도 맞불을 놔서 1조 유로로 규모를 키우고 있고요. 일본도 150조엔, 달러로는 1조 달러에 육박하는 돈을 투자하고 있습니다. 중국 역시 중국판 녹색 성장을 하겠다고 하면서 재생에너지와 전기차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는 중입니다. 2000년 전후로 이른바 ‘닷컴 붐’이 불지 않았습니까. 그거보다 훨씬 큰 판이 벌어지고 있는 겁니다.”
“‘저탄소’ 대전제 아래 각국에 맞는 에너지 믹스 구축해야”
이어서 김 위원장은 한국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언급했다.
“한국이 이런 글로벌 환경에 대응하려면 ‘ABCD’를 잘해야 합니다. ABCD란 Advanced Bio Climate Digital의 약자입니다. 바이오, 기후와 에너지, 디지털까지 세 가지 흐름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해요. 특히 기후는 지속성이 큰 변화 요인이기 때문에 비중이 압도적으로 큽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가 제일 중점을 둬야 하는 부분은 에너지 믹스를 균형 있게 가져가는 겁니다. 간단히 얘기하면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다 중요하다는 거예요. 언젠가부터 재생에너지냐 원전이냐가 약간 진영 대결처럼 돼서 한쪽은 재생에너지를, 다른 한쪽은 원전을 강조하는데요. 답은 분명해요. 둘 다 중요합니다. 저탄소 또는 탄소 중립 체제로 가기 위한 인프라가 무엇이고 투자는 어떻게 돼야 하는지가 중요하지, 재생에너지냐 원전이냐를 두고 논쟁하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보통 환경에 대해서는 독일을 많이 참고하는데요. 많은 환경단체들이 독일의 환경에 대해 배워왔기 때문에 ‘독일이 정답이다’라고 얘기하는 분들이 많아요. 저도 독일을 좋아하고 존경하지만, 그것만 정답이라고 보는 건 잘못입니다. 독일은 탈원전 때문에 석탄을 못 줄이고 있어요. 그래서 가스에 의존을 많이 했는데, 러시아 문제가 생기니까 휘청거리죠.
오히려 우리랑 가까운 건 영국입니다. 영국은 석탄을 확 줄이고 해상 풍력과 원전을 키워가고 있어요. 저탄소로 간다는 대전제 아래서 각국에 맞는 에너지 믹스가 중요한 겁니다. 세상에 완벽한 에너지라는 건 없습니다. 재생에너지도 약점이 있고 원전도 약점이 있어요. 상황에 맞춰서 에너지 믹스를 가져가야 합니다.
외교적인 움직임도 필요합니다. 한미일의 전략적 관계 속에서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와 같은 국가들과 ‘녹색 동맹’을 해야 합니다. 여러분 혹시 파리협약 6조에 대해 들어보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파리협약 6조는 다른 나라 탄소 배출을 줄여준 걸 우리나라 배출을 줄인 것으로 인정해주는 제도입니다. ITMO(internationally transferred mitigation outcome)라고 하는데요. 에너지 산업 구조의 특성상 한국은 탄소감축 기준을 국내에서 다 맞출 수가 없어요. 탄소를 줄이기 위해서 제철업 문 닫고 반도체 생산 안 할 수 없잖아요. 국내 감축에 대한 부분은 조금 완화를 해주는 대신 국제 감축을 많이 이끌어내도록 하는 거죠.”
끝으로 김 위원장은 정치권에 기후 관련 정책의 연속성을 주문하면서 강연의 문을 닫았다.
“2008년에 이명박 정부가 녹색 성장이라는 걸 했습니다. 기후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어렵지만 의미 있는 길을 가서 미래에 다가올 엄청난 기회를 우리가 선점하자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당시 탄소 배출권 거래제도도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도입했고요. 녹색 기술에 대해서도 연간 3조 원 가까이 투자를 했습니다.
그리고 GGGI(Global Green Growth Institute·글로벌녹색성장기구)라는 국제기구를 우리 손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48개 회원국이 가입돼 있어요. 또 당시 그린 뉴딜을 해서 일자리 창출 효과가 컸다는 건 데이터로 입증돼 있습니다. IMF 자료를 보면 한국이 녹색 분야에 투자를 집중했음에도 글로벌 금융위기 때 가장 먼저 경제를 회복했고, 온실가스 감축과 경제성장이 탈동조화되는 현상이 나타났고, 녹색 기술 경쟁력도 굉장히 빨리 올라갔다고 돼있습니다. 그런데 이게 다음 정부로 넘어가지 못했어요.
미국의 아주 유명한 외교 분야 씽크탱크 카운슬 온 포린 릴레이션스(Council on Foreign Relations)가 낸 책에 보면, ‘한국의 정치 문화는 지난 정부가 한 것을 깎아내린다’는 말이 나오는데요. 사실 이건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선거를 치르는 많은 나라에서 일어나는 현상이에요. 미국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 정부 정책의 대부분을 부정하고, 또 부정하려는 시도를 했잖아요. 기후위기를 극복하려면 전 세계적으로 이런 정치 문화를 바꾸는, 혁신적인 솔루션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현실, 새로운 도전 속에서 기존 질서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좌우명 : 인생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