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패권 경쟁 격화, 세계 공급망 재편…韓 정밀 대응 필수”
“한국, 메모리 반도체 제조 뿐 아니라 패키징해야 부가가치↑”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 김자영 기자]

대한민국에서 반도체 산업 지위는 막강하다.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 메모리 반도체 등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정도의 기술력을 갖췄다. 우리나라 수출 지표상, 다른 산업과 비교해도 반도체 수출 비중도 극명히 높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다. 미·중 기술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세계 공급망이 재편되고, 무역 지형이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국가들은 반도체 설비투자에 보조금 지급 경쟁까지 펼치며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한국이 고래 싸움 속에서 길을 잃지 않고 반도체 강국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선 철저한 생존 전략 수립·실행이 필수적이다.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지난 7일 국민대학교 북악정치포럼 연단에 서서 “소련이 최고 기술력을 자랑하는 1957년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발사하고서 34년 뒤 1991년 12월 26일 붕괴했다. 리더가 누구냐에 따라 흥망성쇠가 급변하는 국제 정세를 나타내는 사례”라며 반도체 공급망이 재편되는 이 시기에 한국이 정밀하게 대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을 지낸 박영선 전 장관은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선임연구원으로 ‘반도체 무기화와 세계 패권’을 주제로 연구를 해왔다. 지난 1월엔 반도체 산업 지각변동 속 한국의 생존전략을 탐색한 책 <반도체 주권국가>를 냈다. 국내에서 유일한 반도체 전문 정치인이라 할 수 있다. <시사오늘>은 박영선 전 장관의 강연을 들어봤다.
“美, 코로나19 이후 자국에서 반도체 제조 필요성 느껴”
“신자유주의 기반 자유무역에서 ‘보호무역주의’로 변화”
“그린이코노미, ‘높은 울타리, 작은 마당’ 전략 구사할 것”

미국은 한국전쟁(65만 톤), 태평양전쟁(50만 톤)보다 훨씬 많은 폭탄 86만4000톤이 투하된 베트남전에서 패했다. 미 당국은 패배를 극복하고 싶었다. 패인 중 하나는 현저하게 낮은 미사일 명중률(9.2%)이었다. 미국은 100발 중 9발만 타격하는 재래식 무기론 다음에도 승리가 어렵다고 봤다.
이후 미국은 ‘다르파’(DARPA,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프로젝트 등 기술 개발에 매진해 재래식 무기에 센서와 통신 기능을 부착한 유도 무기 개발에 이른다. 현 반도체 기술 발전의 시초라 할 수 있다. 미국의 미사일 명중률은 1991년 걸프전에서 59.1%로 올라갔다. 베트남전 이후 약 25년 만에 이룬 변화다.
1970~1980년대만 해도 반도체 주권은 미국의 손에 있었다. 하지만 2024년 현재, 미국은 반도체 패권 전쟁에서 중국의 위협을 받고 있다. 그사이 어떤 변화가 있었던 걸까.
반도체 제품은 설계-제조-패키징-테스트 등 단계를 거쳐 생산된다. 미국은 그간 ‘설계’ 분야에만 치중하고 제조·후공정은 동북아시아 지역에서 하도록 했다. 경제적 효율성을 위한 선택이었다. 메모리칩·프로세서칩·최첨단칩 등 제조 및 후공정은 한국·대만·일본·중국·싱가포르 등 동북아에 집중됐다.
박 전 장관은 “미국이 코로나19를 거치며, 설계뿐 아니라 제조도 자국에서 해야겠다고 느끼고 새로운 반도체 서플레이체인을 만들려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전 장관은 미국이 건설적 관여정책(Cosntructive Engagement)이라는 이름으로 상호 의존적 관계를 유지해 온 중국에 대해서도 다른 태도를 취할 것이라 봤다. ‘시장은 항상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자본을 배분하고, 성장은 불평등을 없애고, 경제 성장은 민주화와 개방으로 이어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는 제이크 설리번 미 국가안보보좌관의 지난해 4월 브루킹스 연구소 연설이 중국을 겨냥한 말이라 주장했다.
박 전 장관은 “최근 소련 멸망 이후 미국 정책이 성공했는가를 두고 학계 내에서 그렇지 않다는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힘으로 밀어붙인 민주주의, 세계화 전략으로 밀어붙인 자유무역주의, 기후위기 대처에 미흡했던 것, 중국 성장을 등한시한 것 등이 현재 상황에 이르게 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고 덧붙였다.
박 전 장관은 미국이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자유무역 정책에서 보호무역주의 기조로, 오일이코노미에서 그린이코노미로, ‘높은 울타리, 작은 마당’과 같은 경제 안보 전략으로 한 발짝씩 옮겨갈 것으로 전망했다.
박 전 장관은 “반도체는 팀 스포츠로, 한 나라가 설계와 제조, 패키징을 하고 소재 부품을 다 만들 수 없다”며 “반도체 패권을 쥐는 나라에 따라 구조가 바뀌는데, 지금이 거대한 팀 스포츠의 구조가 바뀌는 대전환기로, 정밀한 전략 구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칩 워>(Chip War)의 저자 크리스 밀러와 나눈 대화도 소개했다.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만 가지고는 안된다. 대만과 싱가포르가 맡은 패키징을 해야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게 대화의 결론이었다며 다각도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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