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정세운 기자, 윤진석 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국민의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직을 요구했고, 故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수락했다면 정치지형이 바뀌었을 것이라는 비화가 공개됐다.
민주화운동 시절부터 DJ와 동고동락하며 국민의정부 기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 특별보좌역 단장과 사무총장을 역임한 정균환 전 국회의원(현 민주화추진협의회 공동회장)은 지난 8일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2002년 김대중 대통령의 특명을 받고 박근혜 당시 미래연합 대표와 자주 접촉할 기회가 있었다”며 “동서화합과 국민통합을 목표로 정치를 같이 하자는 대통령의 바람을 전하자, 박 대표가 오케이하면서 그 조건으로 통일부 장관직을 달라고 제안해 왔는데 받아들여졌다면 정치지형이 달라졌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탈당 후 한국미래연합 신당을 이끌던 시절 통일부 장관직을 고리로 김대중 대통령과 손을 잡고 여권발 큰 그림인 국민통합형 정계개편에 동참할 뻔했다가 무산되고 만 비화가 공개된 것이어서 역사적 새로운 증언이 더해질 전망이다. 또, 만약은 없다지만 박 전 대통령이 통일부 장관을 맡고 여권 인사가 됐다면 16대 대선 판도부터 크게 달라지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다.
2002년 초 박 전 대통령은 당지도 체제 문제를 둘러싸고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 갈등을 벌이던 중 탈당해 그해 5월 17일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으나 당세 확장에 한계를 느끼면서 차후 대권 행보를 위해서는 자신을 영입하고자 공들여왔던 여권과 동행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해 통일부 장관을 맡는 조건으로 정 전 의원의 제안을 받아들이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그 기간은 박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회담하는 등 한반도 현안에 관심을 보였던 때로, 통일부 장관직을 희망했던 것으로 보아 남북 현안 문제에 주도적으로 관여해 나가며 장차 대권 진출을 위한 발판으로 삼으려 했을 거로 짐작되고 있다.
정균환 전 의원은 “이에 대통령과 상의한 뒤 말씀드리겠다고 했고, 추후 어르신(DJ)께 보고드렸는데 ‘그건 좀 고민을 해보자’는 답변이 돌아왔다”며 “그러다 중간과정에서 차일피일 시간만 지나고 흐지부지되다 무산된 바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나는 박근혜 대표가 통일부 장관을 해도 괜찮을 거라는 입장을 당시 갖고 있었다. 국민의정부에서 박재규 같은 인사(박정희 핵심 측근의 동생)한테도 통일부 장관을 시켰다. 박근혜 대표라고 못 할 게 없다고 생각했다”며 “만약 그때 장관 자리를 주고 영입에 성공했다면 김대중 대통령이 숙원 해 마지않던 동서화합과 국민통합으로 가는 길의 물꼬가 트였을 거다. 역사가 달라질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이 지금도 너무 아쉽다”고 밝혔다.
정 전 의원에 따르면 DJ는 국민이 똘똘 뭉치려면 결과적으로 동서화합을 이뤄야 하는데 자신을 탄압한 박정희 전 대통령을 용서했다고 말로만 하는 것은 실질적으로 국민 피부에 와 닿기 어렵다고 본 것으로 전해졌다.
김중권 초대 비서실장 임명 등 민정계 영입 등에 노력한 것을 비롯해 박정희 기념관을 세우고 전두환-노태우 사면을 추진하는 등 동서화합에 애를 쓰긴 했으나 그 역시 국민통합까지 가는 데는 역부족이었다고 봤던 듯하다. 이에 박정희의 딸 박근혜를 적극 영입해 정치적으로 함께한다면 국민이 동서화합과 국민통합을 이루려는 자신의 진정성을 알아줄 날이 올 것이라고 기대했던 거로 가늠되고 있다.
DJ 핵심 측근이었던 한화갑 전 새천년민주당 대표도 지난 2020년 <시사오늘>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의정부 기간 국정원1차장을 지낸 라종일 박사에게 전해들은 것을 토대로 “DJ는 대통령 임기 중 영호남 국민통합을 위해 박근혜를 지도자로 키울 생각이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설명인 즉 1998년 DJ는 킹메이커로 유명한 허주(虛舟) 김윤환 전 의원과 권노갑 전 비서실장을 불러 대통령이 돼서도 국민통합을 이루기 어렵다. 박정희의 딸을 지도자로 키워낸다면 국민들도 내 진심을 알아주실 것이다. 정서적 영호남 화합, 국민 통합을 이루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후 허주가 ‘박근혜 키우기’ 에 돌입했고 비밀리에 실행위원회까지 만들었다는 후문이다.
당시 허주가 TK(대구경북) 대표 정치인이자 야당인 한나라당 인사임에도 DJ와 소통할 수 있던 데에는 자당의 이회창 총재와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15대 대선 기간 민정계와 영남 세력들을 총동원해 이 총재를 도왔지만 이후 자신과 TK의원들을 홀대한다며 불만을 드러내던 차였다. 집단 탈당 등 분당 위기론까지 불거지고 있을 무렵이었다.
DJ의 ‘박근혜 키우기’ 구상은 넓게 보면 DJ발 외연확장을 위한 정계개편의 큰 밑그림 중 하나였던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민주당은 16대 총선을 앞둔 1999년부터 본격적으로 정계개편을 위한 여러 단계의 시나리오를 검토하고 있었다. 김종필(JP) 총리의 거부로 자민련과의 합당이 불발되자 구여권 및 야당 인사부터 시민사회 재계 각계 인사, 386운동권 신진 그룹을 대거 영입할 계획을 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한화갑 당시 새정치국민회의(후신 새천년민주당) 사무총장을 통해 외부인사 영입 총괄책임을, 총재특보단장인 정균환 전 의원 등에게는 386 영입 등 분야별 영입을 맡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국민회의 확대 개편 격인 새천년민주당 창당이었다.
정균환 전 의원은 “박근혜 당시 대표를 차기 대통령감으로 DJ가 염두에 뒀는지는 모르는 일이지만 여권에서 그를 영입하기 위해 애써온 것은 맞다”며 “다시 생각해도 통일부 장관직을 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고 거듭 애석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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