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이정표 - 왜 YS 민주세력인가 ② 枯死作戰 어둠과 빛 [이병도의 秘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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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이정표 - 왜 YS 민주세력인가 ② 枯死作戰 어둠과 빛 [이병도의 秘錄]
  • 이병도 주필
  • 승인 2024.07.13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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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이병도 주필]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 일등공신이라 불리는 최형우 전 장관은 YS와 함께 민주화 대장정을 함께한 인물이다.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는 YS에 대해 1987년의 6월항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이 나라 민주주의를 마침내 쟁취해 냈다는 것은 역사가, 온 국민이, 그리고 온 세계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독재 정권에 맞서 강경 투쟁을 벌인 YS와 최형우 전 장관, 김수한 전 국회의장, 이민우 의원 등ⓒ사진제공=김영삼민주센터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 일등공신이라 불리는 최형우 전 장관은 YS와 함께 민주화 대장정을 함께한 인물이다. 사단법인 김영삼민주센터는 YS에 대해 1987년의 6월항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이 나라 민주주의를 마침내 쟁취해 냈다는 것은 역사가, 온 국민이, 그리고 온 세계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 밝혔다. 사진은 독재 정권에 맞서 강경 투쟁을 벌인 YS와 최형우 전 장관, 김수한 전 국회의장, 이민우 의원 등ⓒ사진제공=김영삼민주센터

어둠이 깊어질수록 빛은 더욱 광채를 발한다. 인간세상에서 권력쟁취를 위해 온갖 술수와 수단이 작동하고 충돌하는 ‘정치의 세계’는 더욱 그렇다.

역사의 교훈은 선명하다. 멀리 갈것도 없다. 우리 민족사에서 고려의 멸망과 5백년 왕업 조선조 개국의 전환기, ‘정치’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다. 기아와 도탄에 빠진 백성들, 권문세족들의 극심한 부패와 발호, 외세의 잇딴 침공 등 최악의 혼돈기였다. 엄혹한 왕조문화 시대 고려왕조 권력 기득권을 지켜내려는 수구 정치세력의 온갖 방어망 구축 동원으로 ‘어둠’은 깊을대로 깊어져 있었고, 이에 맞서 항구적 새 세상을 열어가려는, 이성계를 중심으로한 개혁 신진세력의 지혜와 승부수는,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광채를 발하는 ‘빛’이었다.

결코 간단한 혁명 자체가 아니었다. 그 이면의 인간 대 인간, 소통과 결척, 사상 대 사상의 격렬한 내부 진통을 딛고 5백년 조선왕조의 탄탄한 기반을 구축해낸 교두보가 됐다. 당시 한반도 민족의 희망이자 ‘이정표’였다.

한민족 현대사, 민족정기 자체를 유린하고 짓밟은, 포악한 북한 공산정권의 횡포는 물론 남한내부 권력부패와 군사 쿠데타 독재, 정경유착 및 잇딴 反국민적 집권연장 시도로 점철된, 일그러지고 혼탁한 정치의 세계에서 이땅에  진실하고 항구적인  ‘자유민주’의 ‘꽃’을 피워내려는, YS 정치세력이 보여준 승부수와 지혜에 얽힌 내막(內幕)은 오늘의 정치혼돈에 많은 시사점을 던진다. 향후 민족미래에 희망을 밝히는 이정표가 될만하다. 민족정기인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충효(忠孝)에 연결된다.

박정희 장기집권의 인권탄압이 최악으로 치달은 유신정권의 10.26 붕괴에 이어, ‘서울의 봄’을 무참히도 짓밟아버린 전두환 군사정권의 5공화국, 그리고 전두환과 노태우가 이땅 수십년 군사권력의 철옹성 기득권을  유지하기위해 꺼내든 제6공화국 시나리오 및 정치자금 부패 등 온갖 수단책에 얽힌 비화(秘話), 그리고 이를 뚫고 확고한 자유민주 시대의 여명(黎明)을  밝혀 내려는 YS의 지도자 자세와 상도동 세력(YS 민주세력)의 숱한 막후투쟁 진실은, 오늘 혼돈의 정치시대에 그야말로 많은 경고와 교훈을 남긴다.

박정희 유신정권의 격렬한 야당탄압 시대인 지난 79년 신민당과 국회 출입을 시작으로, 93년 YS 문민정권 탄생에 이르기까지 YS 상도동과 민주정치 세력을 출입, 취재했던 필자는 이제, 오늘의 한반도 정치왜곡 사태를 맞아 당시 제대로 보도하지 못했던 취재수첩을 토대로 정경유착과 부정부패, 인권탄압 등 깊고 넓게 뿌리내려 있던, ‘어둠’의 군부통치 문화 기득권 몸부림 내막과 이 견고한 벽에 맞서 투명한 민주화시대를 열기위해 고뇌하고 충돌하는 YS세력의 막후투쟁에 얽힌 진실들을 있는 그대로 독자와 국민, 그리고 역사앞에 공개키로 했다. 이 작업은 이 땅 언론인으로서 마지막 의무이기도 하다는 생각이다.

3·4·5·6공 군부정권의 권력 기득권 연장 복안은 집요하고 치밀했다. 그 이면에는 ‘검은 돈’의 막대한 정치자금과 정국전체 미래까지 포괄하는 막후 시나리오가  자리했다. 핵심은 YS 고사(枯死) 또는 최소한 그 세력의 실질적 분해였다.

노태우 정권의 6공화국 이후 정국전체를 뒤흔들어 놓은 갈등구조는 기본적으로 5.6공화국 군부세력이 다음 7공화국에서 전두환 노태우에 대한 정치보복을 원천 차단하고, 정치권의 실세로서 정국 주도력을 계속 유지, 제3공·4공·5공·6공에 이어 권력의 기득권을 계속 행사해야 한다는 시각에 주안점을 두고 문제를 풀어가려한 데서 발단됐다.

막후의 실상에서 보면, 노태우의 6공화국 집권에 결정적 역할은 돈과 권력의 현실적 힘을  갖고 있었던 5공화국의 전두환 세력이 해냈다.

5공 핵심 인사들이 노태우의 집권을 보는 시각은 명료했다. 장세동(안기부장)은 “5공은 물이고 6공은 배다. 물 없는 곳에 어떻게 배가 뜨겠는가”라고 했고, 실세인 허문도는 “전두환 대통령은 난세를 치세로 바꾼 위인이다. 노태우 대통령은 그 후계자다”라는 말을 서슴치 않았다.

5공 핵심의 이같은 표현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렵지만, 6공의 태동이 공동  운명적 위기론 속에서 5공의 절대적 지원 없이는 불가능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지원의 요체는 정경유착의 ‘검은자금’으로부터 비롯됐다. 전두환은 재임중 조성한 비자금을 상당부분 노태우에게 대통령 선거 전과정에 걸쳐 전달했다. 퇴임때 남은 자금 또한 노태우에게 거의 모두 넘겨 줬다는 것이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전두환이 6공 탄생의 13대 대선기간중 조달한 정치자금은 대략 2천억 원 선으로 알려진다. 재계의 한 정통한 소식통은 “대통령 선거와 노대통령의 집권과정을 거치면서 전 전대통령이 그동안 비밀리에 모아둔 정치자금 가운데 한차례에 2천억 원씩, 두차례에 걸쳐 모두 4천억 원을 노대통령에게 주었다”고 전했다.

이 자금의 상당액은 대선 당시 노태우의 사조직으로 가동되던 박철언의 월계수회와 노태우의 동생 노재우가 운영하던 태림회 등으로 살포돼 나가 노태우를 당선시키는 ‘실탄’으로서의 역할을 해낸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노태우는 전두환이 건네준 자금중 1천5백억 원을 취임후 있었던 13대 총선에서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임기 초반부터 재벌들에게 손을 벌리면 대통령으로서의 권위가 손상되고, 눈앞에 닥친 총선을 제대로 치르지 못할 경우 정권유지에 어려움이 가중될지 모른다는 전두환측의 깊은 배려였다는 것. 전두환은 이런 과정을 통해 노태우에게 그동안 조성한 비자금을 거의 인계했다는 전문이다.

정경유착의 검은 돈 문화는 이미 깊어져 있었다. 당시로서는 통치권 행사란 미명하에 은밀한 정경유착 자금의 거래와 집행이 극히 자연스런 현상처럼 보였다.

심지어 전두환은 재벌 기업인들과의 청와대  회동때 재벌 순위와 상관없이 각종 기부금과 성금을 많이 내는 순서로 은근히 자리를 배치해 정치자금 납부경쟁을 유발하는 경향까지 있었다. 국제그룹의 양정모 회장이 ‘괘심죄’에 걸려들어 국내 10대 재벌이었던 국제가 돌연 공중분해됐다고 주장하는 시기도 바로 이즈음이었다.

현대그릅 정주영 회장의 증언은 군사정권 때의 정치자금 행태를 비교적 명확하게 밝힌 사례로 기억된다. 정씨는 92년 1월 8일 마침내 분노가 폭발, 3공부터 6공까지  대통령에게 갖다 바친 정치자금 규모를 폭로했다.

“박정희 대통령때 5억 원을 냈다가 나중에 20억 원을 냈다. 전두환 대통령 때는 한번에 30억 원씩 냈다. 노태우 대통령 때에는 처음엔 20억 원, 30억 원씩 냈다가 받는 사람이 섭섭해 할까봐 나중에 액수를 올렸다. 그래서 50억 원을 주다가 2년전 마지막으로 낼때는 1백억 원을 주었다”고 했다.

오랜 군부정권의 뒷편 부정부패와 검은자금 실태는 그러했다. 5·6공 군부 정권의 권력연장을 위한 정치 음모도 그 폐습위에서 시작됐다. 그것은 시대정신의 거부였다. 그리고, 당시 시대정신인 ‘자유민주’ 세력으로의 완전한 교체를 노렸던 중심축인 YS 세력을 거세 또는 사실상 무력화시키려 했다. 치밀하고 원대한 YS 고사(枯死) 시나리오도 본격적인 작동을 시작했다.

역사의 교훈은 분명하다. 혼탁이 극에 달했던 고려말 정치상황, 5백년 왕업 조선 건국의 아버지 이성계는 “정치란 권력이 아니라 (시대정신의) 책임이다”라고 설파했다. 오늘 분열과 대립 혼란의 한반도 정치상황, 이대로는 안 된다. 아직도 모두가 권력싸움 일변도다. 이래갖고는 애국 선열들이 그렇게도 염원했던 민족 미래가 보장될 수 없다.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제대로 극복해 낼 수 없다.

현재의 남북한 정치인들은 민족과 국가를 위한 시대정신의 진정한 ‘책임’이 무엇인지 다시 깊이 되새겨야 한다. 정신을 차려야 한다. 용서와 화해, 통합과 일치로 가야한다. 그동안의 잘못을 역사와 민족앞에 회개하고 모두 함께 다시 일어서야만 한다. 이땅 한반도, 인류에 모범되는 ‘자유민주’의 만개를 위해 다함께 헌신해야 한다. ‘한얼’과 ‘홍익인간’의 민족정기를 반드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인류의 횃불이 돼야 한다.

<YS 枯死 시나리오 부문은 다음호에 계속>

 

 

이병도는…

부산고·서강대 신문방송학과를 졸업, 1979년 동양통신 정치부 기자로 출발한 후 연합뉴스 정치·경제·외신부 기자·차장, YTN 차장, 평화방송(PBC) 정경부장, 가톨릭 출판사 편집주간을 지냈다. 연합뉴스 재직 중에는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으로 일했고, '홍콩 유령바이어 사기사건' 보도로 특종상을 수상했다. 일본 FOREIGN PRESS CENTER 초청으로 자민당을 연구했고, 남북회담 취재차 평양을 방문했다. 저서로는 <6공해제(解題)>,<YS 대권전쟁>,<최후의 승자>,<영원한 승부사>,<대한민국 60년> 등이 있다. 평소 역사주의와 세계주의를 기준으로 한 집필 경향을 보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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