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실망, 현실 정치의 벽 느껴… 돌아가고 싶지 않아”
“코로나 팬데믹 후 헌신한 전 직원에 성과금, 업계 최초일 것”
“중소 면세점에 단품목 독점 판매 권리라도 부여되기를 희망”
“안정적 성과로 3년 후 기업공개에 성공해 상장되는 것이 꿈”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윤진석 기자]
면세업계 최초 여성 CEO 출신인 안혜진 ㈜시티플러스 대표는 정치권에 있다가 기업인으로 돌아간 지 1년여를 맞고 있다. 다시 정치할 생각이 있느냐는 물음에 돌아온 답은 NO.
“정치인의 경험이 전무할 때 기대했던 정치권 모습과 2년 8개월간의 경험이 쌓인 이후 눈에 비친 정치권의 모습은 정말 달랐다. 정치인들과 부대끼며 지내다 보니, 이중적인 모습을 지닌 뛰어난 연기자들이 대부분이고 일반인에 비해 대의명분보다 실리를 더 중요하게 여기고 있음을 알게 됐다. ‘국민을 위한 봉사자’가 아니라, ‘국민 위에 군림하는 자’ ‘대접 받으며 사는 최고의 직업인’이야말로 정치인이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스며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남은 인생을 ‘나’를 버리고 완전히 ‘타인(국민)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결기가 서지 않는다면, ‘내일 당장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이상 그럴 일은 결코 없을 것 같다.”
꽤 크게 실망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다른 생각 않고 중소‧중견기업 면세유통사업 분야의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직분에 매진하겠다는 말로 들렸다. 일단 적극적인 경영정상화에 나서 올해부터 흑자로 전환된 것에 만족해하는 모습이다.
안혜진 대표는 지난 14일 서면인터뷰에서 “인천국제공항 내 대기업들과의 경쟁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우리만의 경쟁력 있는 국내 중소·중견 브랜드를 발굴해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국민면세점을 만드는 데 앞장설 것”이라며 “안정적인 성과로 3년 후 기업공개(IPO)에 성공해 국민 누구나 언제든 우리 시티면세점의 주주가 될 수 있도록 상장기업이 되는 게 저와 직원들의 꿈”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 국민의당 대변인을 거쳐 박주선 전 국회부의장을 도와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을 준비했던 것을 끝으로 정치권을 떠난 것으로 알고 있다. 왜 떠난 것인지?
“정치인으로서의 여정을 시작하기 전 중소·중견기업 전문경영인의 삶을 살았다. 정치 입문 직전 몸담았던 기업은 정부가 부여한 특허를 기반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중소·중견 면세 기업이었는데 관세청, 공항공사 그리고 지역 관할 세관 등 공기관들 관리하에서 업무가 진행돼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또한 대기업인 롯데, 신라 그리고 신규로 진입한 신세계와 현대면세점과 같은 규모의 경제를 구축한 대기업들과도 경쟁하며 고군분투해야 하는 나날이었다. 한마디로 규제화된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가 구축된 대기업과 경쟁을 하며 살아남아해 했다.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아무리 달려도 결국엔 결승점에 이르지 못하거나 도중에 쓰러져 도태될 것 같은 위기감 속에서 살았던 것 같았다. 그러다 2017년 사드 사태에 따른 중국 관광객 감소에 따라 면세업계가 침체돼가고 이 상황이 길어지면서 고단함이 극에 달했을 즈음 ‘누군가 작은 중소기업인들의 애환을 헤아리고 부조리 불합리에 맞서 약자들을 대변해야 한다면, 기꺼이 내가 감당해 보리라’는 호기가 생겼다. ‘아직 경험치 못한 정치권이지만 진실하고 합당한 명분으로 무장된 목소리라면 반드시 반영될 것’이라는 순진한 희망을 품게 된 것이다.
개인의 이기심이나 가족 이기주의에서 벗어나 ‘모두가 행복한 세상, 함께 성장하는 기업’을 만들려는 소망으로 헌신하다 보면, 권위에 사로잡혀 있는 정치인들이나 권력을 가진 자들도 스스로를 돌아볼 것이고, 새로운 정치 초년생이지만 국민도 지지와 박수를 보내줄 터이니 ‘남은 인생은 더 의미 있고 뿌듯할 것이라는 섣부른 망상 아니 순진한 환상에 사로잡혀 무모한 도전을 하게 됐다. 그러나 열정과 투지, 확고한 헌신 의지, ‘애국 애민’이라는 대의명분은 한갓 이상주의에 사로잡혀 있는 어리석은 몽상가의 치기로 비칠 뿐임을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느끼게 됐다.”
- 어떤 점에서 그랬던 것인지?
“회한과 자괴감, 상실감이 많았던 정치생활 2년 8개월간의 치열했던 나날들에 대해 토로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너무 많지만, 조금 더 세월이 지나 타인을 의식하지 않고 살아도 될 정도의 노년의 시기에 의원회관 내 작은 사무실에서 좌충우돌 지냈던 대변인의 삶을 담은 책이라도 쓰게 된다면 아마도 3~4권은 족히 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다만 지금은 구체적으로 말하긴 어려운 것 같다. 정치판이라는 특유의 환경은 그 어떤 세상 속 싸움판보다 치열했고, 무리 내 협동심이나 상생과는 거리가 먼, 아마존 정글과 흡사했다. 내가 인정받기 위해 상대를 완전히 짓밟아야 하고, 내 편이 아닌 자들은 혐오감을 가득 채워 적으로 간주하는가 하면, 경쟁의 대상을 끌어내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사람을 영웅시 하고, 시시각각 말과 태도를 바꿔가며 호도하는 기술을 구사하는 정치 9단들의 뻔뻔함을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겠구나 싶었다. 시간이 갈수록 그저 내가 속한 무리의 우두머리를 위한 소모품처럼 사용되고 있는 자신의 삶이 애처로워졌고 자주 삭막한 공허감에 휩싸일 때가 많았다.”
- 조금 더 떠나게 된 구체적인 이슈나 배경에 대해 말해준다면?
“국민의당(안혜진 대표는 2020~2021년 안철수 당시 대표가 창당한 국민의당에서 대변인을 지냈다)이라는 작은 정당 내 상근 대변인직을 수행하면서 전혀 개선될 것 같지 않은 현실 정치의 벽을 절실히 느꼈다. 대변인 직책과 동시에 당내 예결위 간사를 겸했었는데, 서울시장 선거나 대통령 선거 등을 치르는 과정 속에 때때로 마주하게 된 부조리한 면면을 하나둘 느끼게 되면서 단순히 내가 소속돼 있는 정당이라는 이유로, 이를 감싸 덮어야 했다. 사안이 옳은 일이든, 잘못된 일이든, 당이나 당 대표의 입장만을 대변하느라 무조건적인 옹호와 지지를 해야만 했던 나 자신이 너무도 실망스럽고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 첫 시발점이었다. 초기 어설픈 정의감에 불타서 당내 이슈 사안에 지적을 하거나 답답함을 토로하게 되면, 2선 3선 의원들로부터 ‘현실 정치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라는 핀잔만 돌아오곤 했다.
주변에선 ‘네 솔직 담백함이 큰 무기이긴 하지만, 대변인의 책임을 맡은 이상, 정치권 언저리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영리하게 스스로의 목소리는 일찌감치 삼키고 정당 내 불편한 일들은 눈을 질끈 감고, 힘 있는 우두머리 지근거리에서 발 빠르게 반응하며 열심히 무수리 역할을 충실히 하다보면 언젠가 한자리 꿰차게 될 것’이라는 조언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2년여 시간이 흐르는 동안 처음 생각했던 정치인으로서의 소명의식은 어느틈엔가 사라진지 오래고 당수를 위한 헌신적인(?) 무수리가 돼 감을 느끼게 된 즈음엔 이미 몸과 마음까지 만신창이가 돼 있었다. 이후 여러 차례 당시 안철수 당 대표나 사무총장 등에게 대변인직을 사임하고 떠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는데, 당 대표의 서울시장 출마, 대통령 선거 출마 시기와 겹쳐 제 대변 인직 사임이 또 하나의 이슈거리가 돼 정당에 피해를 줄 수 있다는 판단이 들어 선거가 마무리되는 시기까지는 주어진 역할을 다 하진 못해도 이슈를 만들진 말자라고 생각했다.
매번 대변인의 역할이 치열하고 분주하게 돌아가야 할 시점들이었고, 주요 당직자 대부분이 내 사임에 대해 난색을 표명하고 있었다. 나를 지지해 줬던 몇몇 열성 당원의 성원이 저의 결단을 지지부진하게 만들고 했었다. 그러다 20대 대통령 선거 중 단일화를 목전에 둔 시기에 나를 향한 부대변인단의 일탈에 극도의 회의감이 밀려와 마음의 병이 생겼고 온 몸에 염증 수치가 높아져서 정치인의 생활을 정리하게 됐다.”
- 보람됐던 때는 없던 것인지?
“지금은 석유협회 회장으로 재직 중인 박주선 전 취임준비위원회 위원장과 함께 했던 대통령 취임준비위원회 활동 약 120일 정도의 동행 기간이 가장 기억에 남았고 보람 있었다. 박주선 회장은 국회부의장으로 활동할 때부터 인연이 있었다. 전남 지역에 할당되는 단 1개의 면세점이라도 도입해 지역 관광산업을 활성화시키시고자 하는 바람으로 저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이분의 애국, 애민 정신이 저를 정치인으로 도전하게 만든 동기가 됐고, 취임준비위 상근 대변인직을 맡게 되면서 이분의 면면을 다 들여다보게 됐다.
역대 최고의 사법고시 성적을 자랑했듯 여전히 탁월하게 총명하시다. 말투는 매우 무뚝뚝 퉁명스러운데도 가슴에 따뜻한 인간미를 늘 장착하고 계신 분이었다. 항상 유머를 잃지 않으셨고, 매사 누구를 대하든, 솔직하고 진실한 태도로 전하시는 모습에서 감동을 느끼곤 했다. 언론이나 방송 인터뷰를 하실 때도 대부분의 정치인들처럼 사전 질문지에 주변 보좌관들이나 대변인이 미리 적어놓은 적절한 답을 암기하듯 영혼 없는 인터뷰를 하시는 것을 혐오하셨다. 늘 당신의 가슴속 이야기를 말하시고자 했다. 여러 면에서 저에게 훌륭한 멘토이자, 인생의 어른이셨기에 언제든 시간만 허락하시면 한달음에 찾아뵙고 싶은 분이다.”
- 지난해 다시금 시티플러스 대표로 취임했는데 어떤 회사인가.
“㈜시티플러스는 정치 입문 전 2015년 3월부터 2020년 5월까지 5년 2개월가량 전문경영인(대표이사)으로 일하면서 저에게 많은 것들을 꿈꾸게 하고 중년의 대부분의 날들을 채워준 회사다. 재직 당시 2015년 인천국제공항 제3기 중소·중견 면세사업자로 특허를 취득하여 첫발을 내딛게 된 이후 제1여객터미널에 매장 5개, 2018년 제2여객터미널에 2개, 총 7개 점포를 운영하였고, 중소·중견을 넘어 대기업과의 경쟁에서 김포국제공항 주류 담배 매장을 확보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이후 인천 2항만 면세점 특허를 취득해서 안정적으로 회사를 운영한 면세 유통 전문 기업이다. 당시 직원들과의 회식자리에서도 자주 ‘나는 죽어서도 시티면세점의 수호신이 될 거다’라고 장담할 정도로 사랑하는 회사다. 2015년 인천국제공항 최초로 진행된 중소·중견 면세사업을 운영하며 전 직원들이 똘똘 뭉쳐서 허리띠를 졸라매고 일한 덕택에, 2016년 최초로 흑자경영을 이뤄냈다. 이후 면세 인재 사관학교로 불리며 인재 육성에도 많은 기여를 했다. 그리고 사스, 메르스, 사드 사태,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까지 극복해낸 투지가 있는 기업이다.
면세업은 롯데, 신라, 신세계면세점 등 대기업들이 규모의 경제를 통해 공격적인 ‘제 살 깎아먹는 할인 경쟁’을 진행했고 시티면세점은 중소·중견기업으로서 밀리지 않기 위해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프로모션으로 고객을 유치했다. 우리만의 경쟁력 있는 국내 중소·중견 브랜드를 발굴과 함께 가격 할인, 고객에게 가치 소비를 높일 수 있는 증정품(GWP_리유저블백)을 제공하며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중소·중견 브랜드 상품을 끊임없이 발굴하고, 시즌별로 다양한 프로모션을 구상하여 코로나 팬데믹까지 극복하고 거뜬히 살아남았다.
물론 사드 사태와 코로나 기간을 견디어오는 동안 쓴 눈물을 삼켜야 하는 일도 많았지만,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회사는 더욱 단단해졌다. 그 결과 작년 11월 인천공항 4기 면세사업자로서 첫 매장을 오픈한 이래 올해 초 4월부터 다시 흑자경영을 이뤄낸 덕택에 분기별 단기 성과금 지급 제도를 마련해서 헌신적인 노력을 기울인 전 직원들에게 성과금을 지급했는데 코로나 팬데믹 이후 업계 최초라 생각하고 있다.”
- 경영에 복귀하면서 여러 계획을 세웠을 텐데 어떻게 잘 되고 있나.
“힘든 시기를 이겨낸 만큼, 시티 가족들의 모습에선 늘 자긍심이 넘쳐나고, 우리 매장을 방문하는 모든 고객들은 ‘세상에서 가장 친절한 면세점’을 경험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 사회 기여를 당연한 덕목으로 여기고 상생 마인드를 늘 기본으로 삼았기에 여러 기관이나 협회, 언론사들에게서 면세 유통부문 최우수상, 우수상 등을 수상하게 됐다. 작년 한국 ESG 위원회에서 선정한 베스트 ESG 최우수기업상을 수상했고 올해 8월 말 우수기업상을 2년 연속 수상하게 됐다.
마지막으로 3번째 입찰인 김해출국장 면세점 입찰의 마지막 프레젠테이션 심사를 남겨놓고 있다. 사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중소·중견 면세점의 특허 반납과 휴업 등으로 대부분의 중소·중견면세점이 사라졌거나 아직도 힘들어하고 있다. 그 기간 동안 인천공항에서 주류 담배 임시매장을 독점 운영했던 모 업체는 제한경쟁 속에 있는 중소·중견기업 매출이라고 하기에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급격한 매출을 올린 까닭에 다른 중소·중견기업간의 격차가 많이 나고 있다. 인천공항 1터미널과 제2터미널 입국장 면세점도 독점 운영 중인데다가 김해공항 입국장 2곳 다 독점 운영중이어서 위 기업의 매출 성과로 신용등급의 격차가 심각하게 벌어져 있다.
이로 인해 2024년 중소중견 제한경쟁 입찰에서도 위 기업이 독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라 저희의 목표는 중소중견기업군의 경쟁을 부활시켜 인천공항을 제외한 한국공항공사의 지방공항 면세점 이용객의 소비자 할인 혜택이 돌아갈 수 있게 하고자 부단히 재무적 신용등급의 격차를 만회하기 위해 강점인 운영 노하우와 관세 행정 등 기술적인 측면들을 더 열심히 보강하고 있다.”
- 대기업과 경쟁하는 중소기업이기에 어려운 점이 많을 듯하다. 애로점들은?
“인천국제공항 내에서 국내 최고의 공룡 유통 대기업들과의 경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셀 수 없이 많은 애로사항들을 다 토로하기엔 밤을 지새워야 할 것 같아 두 가지 정도만 말씀드리겠다.
가장 큰 애로사항은 바잉파워의 차이에서 오는 마진의 취약성이다. 인천공항은 대기업 권역의 경우 판매 품목 카테고리가 나뉘어 있어서 대기업끼리의 경쟁은 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다. 대기업을 거쳐 엔틀러 쪽에 이웃하고 있는 저희 중소·중견기업 매장은 각각의 대기업들이 판매하고 있는 상품들을 판매하도록 돼있으나 임대료 과부담으로 대규모 할인 정책을 공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대기업에 맞서 역마진으로 손해를 감수하고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 거의 매일 벌어진다. 바잉파워가 큰 대기업들은 마진도 좋고, 규모의 경제로 인해 할인 프로모션 진행시 공급업체로부터 보상받는 프로그램의 횟수도 많아 고객의 유입을 유도하고 있다.
그다음의 애로 사항은 브랜드 유치 경쟁이다. 소·중견면세점의 위치보다 좋은 위치에 있는 대기업 면세점들은 매출이 좋은 브랜드들을 유치하기가 수월하다. 파워 브랜드들을 유치하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들을 내걸어 협상하기에 당연히 저희는 2순위로 밀릴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건강식품 카테고리에 있는 ‘정관장’ 같은 메인 브랜드는 저희 매장을 포함해 이미 공항 내 11개 이상 입점해있다. 그런데도 모 대기업에서 출국 고객의 지근거리(40여m)에 또 입점시키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 큰 걱정 중에 있다. 중소·중견기업의 식품 매출은 전체 매출의 35%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대기업 매장에 또 입점이 된다면 중소기업은 고사될 수 있는 사안이라 극도의 불안감에 빠져 있는 중이다.
다가올 9월 중순경 오픈될 대기업 매장에 혹시나 저희와 중복된 MD구성으로 얼마만큼의 피해가 닥칠지 노심초사하고 있다. 대기업이야 중소기업 매출을 뺏어서라도 쉬운 길을 가겠다는 전략인데, 이는 전 세계 고객 서비스 1위 공항이라는 인천공항 이미지도 실추되고 상품의 다양성으로 고객 선택의 폭을 넓혀서 유니크한 면세점을 구축해야하는 비전과도 크게 동떨어진 행태라고 생각한다.”
- 타개책으로 생각하는 방안은 무엇인가.
“발 빠르게 제2의 정관장을 꿈꾸는 국내 중소중견 식품 브랜드나 제2의 설화수를 꿈꾸는 K뷰티 화장품 브랜드 등 신규 브랜드들을 입점시켜 하루 평균 6만 명 이상 출국하는 내외국인들에게 소개해 중소기업의 성장을 돕고 추가 매출 증진도 모색하고 있다. 대기업 면세점들은 국내 중소·중견 브랜드의 발굴과 신규 브랜드 유치에 발 벗고 나서야 마땅한데도 인천공항 내 매출 쪼개기 방식으로 이미 입점해있는 브랜드에 대해 파격적인 거래 조건으로 우대해 유치하려 하고 있다.”
- 제도적 개선에 필요한 제언을 한다면.
“특허 제도를 일반경쟁과 제한경쟁으로 나누어 입찰을 하는 것처럼 대기업은 대기업들끼리 선의의 경쟁 구조를 만들어 상호 발전 보완하게 해야 하고 우리 중소·중견사업자들도 상호 선의의 경쟁구도가 만들어져서 발전하게 해야 한다. 가장 간절한 제도 개선점이라 하면, 담배면 담배, 식품이면 식품, 단 한 품목이라도 저희 중소·중견 면세 사업자에게 단품목이라도 독점으로 판매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면, 중견 사업자는 대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제 살을 깎아 할인 경쟁을 하거나 브랜드를 빼앗기지 않게 하기 위해 피를 흘리지 않아도 되니 조금은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생존의 기틀이 마련돼질 것이라고 본다. 역으로 대기업은 중소·중견 면세사업자에게 독점 운영권이 있는 단일 품목 외, 모든 품목의 판매권한을 주면 강점이 많은 대기업은 자신들만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신규 브랜드를 발굴하려 혈안이 될 것이다. 매출을 증대시키기 위해 더 많은 전략과 프로모션으로 전 세계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으려고 노력할 것이 분명하다.”
- 시티플러스의 가장 큰 비전은 뭔가.
“예전에도 밝힌 바 있지만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국민면세점’을 만드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면세점’, ‘가장 응원하고 싶은 면세점’, ‘국가가 육성하고자하는 중소기업’의 롤모델로 성장하는 것이 저희 기업의 꿈이다. 정부가 대기업면세점들의 독과점을 막고 건실한 중소·중견면세 기업을 육성하겠다는 취지하에 시작된 첫 산물인 우리 시티면세점이 반드시 기대에 부응해 국가가 육성하고자 하는 중소·중견면세 기업이 돼 대기업의 전유물로 알려진 면세산업 영역에서 우뚝 서는 것이다. 안정적인 성과로 3년 후 기업공개(IPO)에 성공해 국민 누구나 언제든 우리 시티면세점의 주주가 될 수 있도록 상장기업으로 발돋움하는 것이 사실상 저와 직원들의 꿈이자 목표다. 정직하고 뚝심있게, 한 걸음 한 걸음을 성심을 다해 내딛다보면 많은 응원군이 생길 터이고, 많은 이들로부터 박수받는 기업으로 성장한다면 충분히 가능한 플랜이라 확신한다.”
- 수학교사에서 면세점 업계 여성 최초 CEO 진출, 그리고 정계 입문에 이어 다시 기업인으로서의 복귀 등 변화무쌍한 삶을 살아오고 있다. 직업은 바뀌었지만 변하지 않는 일관된 소신이 있다면.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세상에서 ‘신뢰’를 잃어버리면 존재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해 왔다. ‘정직’이야말로 최선의 정책임을 확신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단 1%의 이상주의자가 세상을 변화시켜왔다’고 생각하고 있다. 지금도 평소 소신인 ‘정직한 태도와 신뢰‘를 가장 중히 여기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삶을 이어가고 있다고 자부한다. 타인의 아픔에 공감할 줄 아는 사람이 이 세상을 따뜻하게 변화시킨다고 믿다.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발산하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제가 추구하는 삶의 철학이다.”
- 기업인이 아닌 ‘안혜진’으로서 계획하고 있는 것들이 있다면 뭔가.
“버킷리스트가 있긴 하다. 너무 초라하거나 유치한 것들이 많아 말하기 좀 거북스럽지만 몇 가지만 나열하면 타투해보기, 바디프로필 사진 도전, 골프 티칭프로 자격증 따기. 셔플댄스 마스터하기, 아이슬란드 오로라 투어, 자전거 여행하기, 문화공간 디자인 학부 이탈리아 유학 가기 등이다. 시기나 순서가 안 정해졌을 뿐 반드시 실행할 계획들이다. 조금 더 욕심을 부리자면 ‘도쿄바나나’를 뛰어넘는 ‘한국을 대표할 수 있는 식품 브랜드’를 만들어보고 싶어 도전 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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