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與野 모두 강성 세력에 순치하려 극단적 목소리 내”
“정치권, 극단 세력에 휘둘리면 중도층 반감사게 돼”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유경민 기자]

1985년 2월 12일에 실시된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제1야당으로 급부상한 신민당. 이는 전두환 정권의 내리막길을 열었습니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대통령 임기를 7년 단임으로 정하고 대통령 선거인단을 통해 체육관에서 뽑은 간선제를 채택하고 있었는데요. 제5공화국 헌법에 명시된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꿀 것을 요구하면서 개헌 문제가 사회적 화두고 떠오르고, 전국에서는 개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기 시작한 겁니다.
“선진 민주국가의 경우 직선제를 택하는 나라가 별로 없고 (직선제)민주정치의 이상향인 평화적 정권교체의 전통을 제대로 확립한 경우가 얼마나 되는지 유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러한 엄연한 진실은 우리가 눈을 감는다고 해서 없어지는 것은 아니며 또 눈을 감을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대통령 선거 방법에 변경에 관한 문제는 평화적 정권교체의 선례와 서울 올림픽의 교체라는 긴급한 국가적 과제가 성취되고 난 연후인 1989년에 가서 그러한 성취의 바탕 위에서 논의하는 것이 순서라고 본인은 믿고 있습니다.”
-1986년 1월 16일 국정 연설
그동안 전두환 정부는 민주화추진협의회(민추협)의 개헌 촉구에 ‘89년 개헌’ 입장으로 맞서왔습니다. 1986년 연초, 김영삼·김대중 두 공동의장과 이민우 고문이 회동을 갖고 그해 2월부터 ‘1천만 명 개헌 서명운동’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는데요. 이후 신민당과 민추협은 총선 승리 1주년인 2월12일, 기습적으로 ‘직선제개헌 1천만 명 서명운동’을 전개할 것을 선언한 겁니다.
하지만 신민당과 민추협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가증됐는데요. 1천만 명 서명운동과 관련해 민추협 사무실에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돼 12일간 사무실 출입 봉쇄와 함께 YS는 여러 차례의 가택연금과 강제 귀가 조치를 당했습니다. DJ 또한 다시 자택에 연금돼 전화 단절 및 외부인 출입이 봉쇄됐습니다.
정국이 파국의 위기로 치닫던 중 11월 29일, 신민당과 민추협은 ‘대통령직선제 개헌 및 영구 집권음모 분쇄 범국민 서울대회’를 열었는데요. 그러나 경찰의 철저한 사전 봉쇄와 당일 참석자들에 대한 폭력적 집회 방해로 ‘서울 대회’는 무산됐습니다.
당시 ‘대통령직선제개헌’을 두고 신민당 지도부에서 파열음이 나오고 있었습니다. 이 무렵 서울대생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이 발생합니다. 1987년 1월 14일 치안본부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폭압적인 취조를 받은 박종철 군이 생을 마감하게 된 사건인데요. 당시 경찰은 단순 쇼크사로 발표했으나, 전기 고문과 물고문에 의해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에 국민은 전두환 정권에 대한 분노와 내연하던 민주화 투쟁 열기가 다시 끓기 시작했습니다.

“촉박한 임기와 현재의 국가적 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중대한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이제 본인은 임기 중 개헌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현행 헌법에 따라 내년 2월 25일 본인의 임기 만료와 더불어 후임자에게 정부를 이양할 것을 천명하는 바입니다. 이와 함께 본인은 평화적인 정부 이양과 서울 올림픽이라는 양대 국가 대사를 성공적으로 치르기 위해서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력을 낭비하는 소모적인 개헌 논의를 지양할 것을 선언합니다.”
-1987년 4월13일 특별 담화문
민주화 투쟁 열기에 위기감을 느낀 전두환은 이를 억누르고자 개헌에 대한 논의를 일체 금지 시키는 ‘4·13 호헌 조치’를 발표하는데요. 전두환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선언한 겁니다. 이에 야당은 즉각 반발하면서 ‘4·13 조치’ 철회를 촉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울러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과 ‘4·13 호헌 조치’는 국민적 공분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돼 87년 6월항쟁의 서막이 열리게 됩니다.
이즈음 YS와 DJ 등 야당 정치인들과 재야인사, 그리고 언론인과 종교인들이 주축이 돼 ‘민주헌법쟁취 국민운동본부(국본)’를 탄생시켰는데요. 이들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목도리를 드높이면서 전두환 정권을 압박하기 시작했습니다. 1987년 6월 10일. 전국 주요 도시에서 일제히 규탄 집회를 열었는데요. 대학생들은 “호헌 철폐”, “독재 타도”, “민주 쟁취”, “직선제 개헌’ 등 구호를 외치면서 민주화를 위해 싸웠습니다.
6월 26일, 민주헌법 쟁취 국민 평화 대행진이 시작됐는데요. 전국 33개 시 4개 군에서 180만 명이 참가했는데요. 제5공화국 이래 최대의 인파가 참가했습니다. 시민·학생들이 참가한 ‘국민 평화 대행진’으로 전국적 민주화 열망이 절정을 이뤘습니다.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은 ‘호헌 철폐’, ‘독재 타도’에서 ‘민주 쟁취’, ‘군부독재 지원하는 미국은 물러가라’등으로 격화됐는데요.
이들 중 한 세력인 이른바 ‘제헌의회’(CA) 그룹도 있었습니다. 대학생 청년들로 결성된 CA는 한국 사회를 부정하고, 한국 사회를 ‘제국주의의 새로운 식민지’로 여기면서 ‘파쇼 하의 개헌 반대, 혁명으로 제헌의회’를 주장했는데요. 이들은 이참에 새로운 공화국을 수립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었던 겁니다.
또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전말이 드러난 후 연세대 이한열 군이 시위 중 최루탄을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정국은 격랑 속으로 빠져들어 갔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학생 운동권에서 서로 다른 의견을 갖고 투쟁을 벌이는 동안 YS와 DJ는 계속해서 개헌 운동을 하며 민주화 쟁취를 위해 전두환 정권의 방해에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사태가 급박하게 돌아가자 전두환은 결국 항복했는데요. 1987년 6월 29일. 노태우 민정당 대표는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직선제 개헌, 김대중 사면 복권, 언론 자유 보장 등 시국 수습 8개 항이 담긴 이른바 ‘6·29선언’을 발표하게 됩니다.
‘6·29 선언’을 하기까지 숨은 주역 중에는 YS와 DJ가 있었습니다. 끊임없이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고 강경한 투쟁을 벌이며, 학생 운동권들을 하나로 통합시켜 마침내 군부독재의 항복을 받아냈는데요. 수많은 학생의 희생이 있었지만 YS와 DJ가 뛰어난 정치력으로 그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사람들을 하나로 통합시켜 민주화를 쟁취할 수 있었던 겁니다.

야권과 학생들이 힘을 하나로 모아 민주화를 이뤄낸 것과 달리 38년이 지난 지금, 탄핵 정국으로 극심한 국론분열 현상이 일고 있는데요.
특히 강성 지지층 간의 내전 양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인데요. 어느 정도 양상인지 살펴보면 지난달 25일, 윤 대통령의 마지막 변론 기일 탄핵 반대 집회에 참가한 지지자들이 “파면하려 든다면 우리 국민들은 문형배, 이미선, 정정미, 정계선 이 을사오적을 전부 국민 혁명으로 국민 심판대에 세워 단두대로 즉결 척결할 것이다”라는 발언을 해 논란이 된 바 있습니다.
탄핵 찬성 집회에서도 극단적인 외침들이 쏟아졌는데요. 참가자들이 단두대 모형을 설치하고 “윤석열을 참수하라” 등 구호를 외친 바 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성 집회에 참가해 ‘윤석열 참수’라는 문구가 적힌 모형 칼을 들고 지지자와 기념사진을 찍어 논란이 불거진 바 있습니다.
이 같은 데에는 여야 정치권부터 강성 세력의 목소리에 끌려가거나 오히려 부추기는 행위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우려도 나오는데요. 탄핵 반대 집회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주당을 겨냥해 “반국가 세력과 맞서는 게 시대적 명령” “반국가 세력과의 전쟁을 선포한다”며 극단적 대결 양상의 선언들이 나오고 있는 양상이고요.
민주당에서도 윤 대통령의 파면을 촉구하기 위해 탄핵 찬성 집회에 ‘전국 총동원령’을 내리는 등 단합을 강조하며 극단 세력을 부추기는 모습인데요. 국민의힘을 ‘내란 동조 극우 정당’으로 낙인찍어 중도층을 분리시키고 당을 고립시키겠다는 전략도 세웠다는 전언도 나오고 있습니다.
이재명 대표 또한 지난 19일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하지 않는 최 대행은 직무 유기의 현행범”이라며 “이 순간부터 국민 누구나 직무 유기 현행범으로 체포할 수 있기 때문에 몸조심하기 바란다”고 경고했는데요.
12·3 계엄 이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찬반을 두고 이처럼 여야 모두 혐오와 분열을 조장하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명언 중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는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앞서 언급했듯이, 정치권과 국민들은 힘을 하나로 모아 전두환 정권에게 민주화 투쟁으로 맞서 군부독재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정치권은 현재 서로를 비난하고 분열을 획책하는 게 아닌 ‘국가 발전’이라는 공동 목표를 갖고 국민들을 이끌어 나가야 할 때 아닐까요.
국론분열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는 지금. 어떻게 봐야 할까요. 정세운 정치평론가는 이제 대해 지난 28일 <시사오늘>과의 통화에서 정치권이 극단 세력에 휘둘릴수록 중도층으로부터 반감을 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을 내놨는데요.
정 평론가는 “현재 찬반 집회에서 나오는 구호들이 매우 극단적이다. 87년 직선제를 쟁취할 때, 학생들은 한국을 부정하는 ‘제원 의회’를 만들고 ‘새로운 나라를 만들자’는 구호까지 나왔지만, 정치권은 그런 사람들까지 하나로 모아 직선제를 쟁취했다”며 “지금의 정치권이 그런 역할을 못 하고 있는 것이 문제다. 이것이 중도층이 떠나게 만드는 원인”이라고 평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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