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앞 문방구’를 기억하시나요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①]
스크롤 이동 상태바
‘학교 앞 문방구’를 기억하시나요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①]
  • 김나영 기자
  • 승인 2024.09.27 0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천호문구거리, 10개 학교 밀집·새학기 맞아도 ‘썰렁’
저출생·디지털화 원인?…대형 이커머스 성장 한몫
“이대로라면 길게 잡아도 5년 내 모두 사라질 것”

[시사오늘·시사ON·시사온=김나영 기자]

어느샌가 학교 앞 문방구가 사라지고, 형 손잡고 따라다녔던 용산전자상가엔 인적이 끊겼다. 인디 문화 중심지였던 홍대 소공연장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 모든게 빠르게 변하고 사라지는 가운데,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마지막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 시사오늘
어느샌가 학교 앞 문방구가 사라지고, 형 손잡고 따라다녔던 용산전자상가엔 인적이 끊겼다. 인디 문화 중심지였던 홍대 소공연장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 모든게 빠르게 변하고 사라지는 가운데,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마지막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 ⓒ 시사오늘

어느샌가 학교 앞 문방구가 사라졌다. 어쩌다 운좋게 문방구를 발견할 때면 마치 희귀 포켓몬을 찾은 기분이 든다. 이젠 학용품을 학교에서 일괄 지급한다고 한다. 아이들 역시 조그맣고 지나다니기 불편한 문방구보다 인터넷 주문 또는 아트박스, 교보문고 같은 대형 점포를 선호한다. 문방구의 소멸은 누구의 잘못도 아닌 그저 시대의 변화였다.

지독히도 엄마를 졸라 생애 첫 컴퓨터를 사러 갔던 용산전자상가. 그곳 역시 인적이 끊긴 지 오래다. 옛날의 설렘 가득했던 추억은 온데간데없다. 셔터가 내려간 가게들만이 자리를 지킨다. 콘텐츠도 다 온라인으로 받을 수 있는 시대이기에 게임 시디나 DVD 역시 필요 없어졌다. 용팔이로 불리며 무섭게 강매를 권했던 형들의 일화는 3040세대의 안줏거리 이야기로만 전해질 뿐이다. 

지금처럼 오락거리가 풍성하지 못했던 예전엔 인디 문화도 번창했다. 아이돌 일색의 주류 문화에 치우치지 않고 비주류 문화도 대우받던, 다양성의 시대였다. 배고픈 음악가들은 조그마한 공연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재능을 꽃피우고, 그곳 사장님들은 문화에 기여한다는 자부심이 넘쳤다.

이젠 모든 게 추억 속으로 사라질 참이다. 그 기억조차 빠르게 지워져 “그때가 좋았지, 그땐 그랬지”라 말할 기회조차도 없어진다. 모든 게 변하기에 추억마저 사치로 여겨지는가 싶다. 그래도 아직 되돌아볼 기회, 시간은 있다.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마지막 기록을 남기려 한다. 〈편집자주〉

‘천호문구완구거리’의 한 문구점. ⓒ시사오늘 김나영 기자

“요즘 문구점에 가는 사람이 있긴 한가요?”

2002년생 서세은(가명) 양은 필요한 문구류가 있으면 다이소에 들르거나 인터넷으로 검색해 주문한다. 문구점보다 종류가 다양하고 값도 저렴해서다. 아주 어릴 땐 ‘학교 앞 문방구’를 갔던 기억이 있긴 하지만, 대형 이커머스와 유통 업체들이 자리잡은 지금 문방구는 그에게 ‘메리트 없는’ 공간일 뿐이다.

새학기 시작 후 얼마 되지 않은 지난 23일, 직접 찾은 강동구 ‘천호문구완구거리(이하 천호문구거리)’는 썰렁함 그 자체였다. 인근에 10개 안팎의 학교가 있음에도 학생은 단 한명도 볼 수 없었다. 문구점의 쇠퇴를 실감케했다.

천호문구거리는 창신동 동대문문구거리에서 파생된 곳으로, 1989년 3개 점포가 이주하면서 그 역사가 시작됐다. 이후 1990년대 말~2000년 초반에 30여 개의 문구점이 연이어 들어섰고, 2001년엔 강동구 ‘문구의 거리’ 특화구역으로 공식 지정됐다. 물론 ‘전성기’를 누렸던 2000년대 초반엔 문구점 수가 40개에 육박 했지만, 지금은 10개 남짓만 남은 상태다.

이곳에서 30년 째 문구점을 운영하는 터줏대감, 박진환(가명) 씨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하루에 문구점을 찾는 손님 수가 거의 없다시피 한다는 거다. 주변 상인들이 거리를 떠나는 일도 현재진행형이고, 도매상들마저 대부분 문구 사업에 손을 떼 이젠 그 수가 손에 꼽을 정도다.

문구점 바깥 진열대엔 팔리지 않아 먼지가 켜켜이 쌓인 제품들이 즐비하다. ⓒ시사오늘 김나영 기자

박 씨는 문구점 업계가 침체된 건 ‘온라인’의 탓이 크다고 했다. 이커머스 시장이 커지면서 문구류를 온라인에서 구입하는 소비자가 늘었단 거다. 그는 “쿠팡처럼 온라인 시장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이 문구점을 찾지 않게 됐다”며 “편리하고 저렴하다는 장점을 이기기 힘든 실정”이라고 전했다.

문구점 사장님들이 온라인 판매에 도전하기도 쉽지 않다. 유통 대기업에 맞설 엄두도, 자신도 없기 때문이다. 박 씨는 “온라인 상점 입점은 결과가 뻔해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면서 “그저 단골장사로 버티고 있다”고 말했다.

천호문구거리 상점들의 알록달록한 외벽은 적막한 골목 분위기와 대비를 이뤄 더욱 쓸쓸함을 자아냈다. 생기 잃은 골목을 살리고자 지난 2021년 지자체와 상인들이 손잡고 만들어낸 해당 경관은 반전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당시 강동구는 대형프랜차이즈 문구점의 성장으로 천호문구거리 경기가 침체되자 천호문구거리에 건축물 외벽 특화 도시경관사업을 추진했다. 문구완구 특성을 살려 동심을 자극하는 벽화를 곳곳에 새기고, 거리의 6개소 상인들과 주도적인 경관관리를 약속하는 협정을 체결한 것. 하지만 효과는 미미했다.

인근 상인 진철민(가명) 씨는 “하루 유동인구나 방문객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고 하소연했다. 온라인 유통 시장도 한몫했지만, 저출생으로 학교와 학생이 크게 줄어 타격이 크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천호문구완구거리’ 내 상점들의 알록달록한 외벽. 골목의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지자체가 상인들과 손잡고 추진한 도시경관사업이다. ⓒ시사오늘 김나영 기자

문구거리에서 어려움을 토로하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거리 내 공영주차장 안내원 김동진(가명) 씨는 “문구거리지만 학생들은 보기 힘들다. 평일 유동 인구는 대부분 도매상이고, 손님이라고 해봤자 명절이나 크리스마스에 어린 아이들과 찾는 가족들이 전부”라고 거들었다.

그는 얼마 남지 않은 문구점도 곧 사라지지 않을까 우려를 표했다. 김 씨는 “온라인 시장이 커지면서 어려워졌다는 상인들이 많다”며 “이를 이겨보기 위해 온라인 판매를 병행하는 곳도 봤지만,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자체들은 나름대로 앞선 도시경관사업처럼 문구점을 되살릴 방안들을 계속해 내놓곤 있다. 일례로 지난 6월 부산광역시의회는 ‘학습준비물 지원 조례안’을 가결, ‘문구점 지키기’에 동참했다. 골자는 학습준비물 구입 시 학교 인근 문구점을 이용하잔 거다. △학교 인근 문구점의 범위 △인근 문구점 구매 권장 비율 △인근 문구점 구매 권장 물품 및 범위 등 규정이 포함됐다.

일각에선 문구점 스스로도 시대에 발맞춰 변화해야한다는 조언의 목소리가 나온다. 대형 이커머스와 중국 공세를 뛰어넘는 건 사실상 어렵고, 필기조차 디지털화한 시대가 도래했단 이유에서다. 기존 사무용품에 주력했던 상품 카테고리를 장난감으로 차츰 옮기고, 문구점 내에 체험공간을 마련하는 등 오프라인 강점을 최대한 살려 집객에 힘써야 한단 거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판매 매커니즘은 다른 면이 많아 온라인 판매를 병행하기 보다 오프라인의 강점을 살리는 게 현실적”이라며 “사무용품과 장난감의 경계를 허물고, 사람들이 즐길만한 체험과 놀이 요소를 공간해 추가해 발길을 모으는 게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대로라면 골목 문구점은 길게 잡아도 5년 내 사라질 것’이라는 엄중한 경고까지 덧붙였다. 단순 겁주려는 얘긴 분명 아니다. 지난 2017년 기준 1만620여 곳이던 문구소매업점은 2022년 약 8000여 곳으로 줄었다. 매년 500여 개 문구점이 문을 닫은 셈이다. 지키든 바꾸든, 문방구에겐 재흥할 시나리오가 필요한 시점이다.

‘천호문구완구거리’ 골목 모습. 강동구 천호대로151길 일대 약 230m에 걸쳐있다. ⓒ시사오늘 김나영 기자

 

담당업무 : 의약, 편의점, 홈쇼핑, 패션, 뷰티 등을 담당합니다.
좌우명 : Enivrez-vous

관련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